소설리스트

금동-366화 (366/463)

366화: 정확한 곳을 질끈 밟다

주육은 아라 문제를 분명 금세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라에 대한 태자의 감정이 남다르니 말만 하면 바로 될 줄 알았다. 아라 앞에서 호언장담했는데 성사하지 못했을뿐더러 태자에게 된통 혼났다. 주육은 이리저리 생각해도 아라에게 뭐라고 해야 좋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나지 않으니 아예 연향루에 가지 않았고 다급해진 아라는 하루에 몇 번씩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다. 초조해진 주육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결국 원 형님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육은 시위방에서 정북후부, 또 정북후부에서 경부 관아까지 찾아다녔다. 관아에서 영 칠야가 사람을 데리고 거리를 순시하러 갔다기에 주육은 제 원 형님이 오늘은 어느 거리를 순시하는지 알아낸 다음 사환을 데리고 아전이 알려준 거리를 뒤지고 다녔다.

모퉁이 두 개만 돌면 대황자 저택이 나오는 곳에서 영원은 말 옆에 서서 호위가 귓속말로 보고하는 걸 듣고 있었다. 잠시 후, 호위가 공수하고 돌아서 사라지자 영원은 말에 올라 대황자 저택 쪽을 바라봤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주 태의가 커다란 약상자를 짊어진 약동(藥童)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느긋하게 나오는 것이 보였다.

대황자가 태의를 통해 소식을 밖으로 전한 사실을 퍼트려야 했다. 하지만 제 손을 통해 밝힐 수는 없었다.

영원이 주 태의를 피하려고 말머리를 돌리는데 주육이 맞은편 모퉁이에서 돌아 나오다가 대번에 영원을 보고 흥분해서 채찍을 흔들며 꽥꽥 소리쳤다.

“원 형님! 원 형님, 드디어 찾았군!”

영원은 지금 심경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모를 마음으로 주육을 빤히 봤다. 참으로, 때맞춰 왔구나!

“날 찾았느냐?”

이제 자리를 피할 필요가 없어졌군.

“한참 동안 찾았지!”

주육이 말을 몰아 영원 앞에 달려와서 급하게 고삐를 잡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어. 이쪽으로 오면 분명 만날 줄 알았지. 원 형님, 순시 끝났나? 잠깐 쉬고 다시 하지. 우리 어디 가서…… 그래, 능운루로 가자! 내가 한턱내겠소!”

주육이 번번이 가슴을 두드리며 한턱낸다고 하지만, 마지막에 은자를 내는 건 언제나 영원이었다. 그래서 한턱낸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쩌렁쩌렁해졌다.

“좋지. 마침 지쳤었는데 잘 되었다.”

영원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면서 여기서 까발릴지 아니면 이따 주육에게 귀띔해주고 자기는 철저히 발을 뺄지 고민했다. 그렇게 가늠하는데 뒤에서 놀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영원이 휙 고개를 돌렸더니, 주 태의가 그와 주육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엉? 주 태의 아닌가? 태의, 어디 편찮은가?”

주육이 관심 두는 점은 항상 남달랐다.

영원은 미끄러지듯 말에서 내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신과 주육을 번갈아 보다가 다시 자신을 보는 주 태의를 눈썹을 높이 치켜들고 바라봤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달달 떨리는 주 태의의 손도.

영원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썹을 서서히 내렸다. 보아하니 이 일을 어떻게 까발릴지는 이제 자기 손을 떠났다. 그가 까발릴 생각이 없어도 상대가 굳이 까발려달라고 이렇게 앞에 나타났다. 주육이 때맞춰 나타나 줘서 천만다행이었다.

“괘, 괘…… 괜찮습니다.”

주 태의는 그 짧은 말을 하느라 온몸에 힘을 다 쓰는 듯이 달달 떨면서 겨우 대답했다.

“괜찮아? 그럼 귀신이라도 봤나?”

주육은 자기가 매우 익살맞다고 생각하며 하하 웃었다.

영원은 주 태의를 힐끔 바라보다가 고개를 틀어 주육을 힐끔 봤다. 그렇게 잠깐 쳐다보는 사이 결정을 내렸다. 대황자가 밖으로 소식을 보낸 이 일, 주 태의는 얼른 까발리려고 안달이고, 큰 공을 세우고 싶은 주육이 여기에 있다. 그는 입을 뻥끗하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된다.

그랬다. 주 태의 같은 사람은 절대로 이 흙탕물에 발 디디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황자가 소식을 전하라고 했으니 감히 전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높은 담장 안에 있을 때나 그렇지, 밖으로 나온 이상 분명 얼른 그 서신에서 벗어나고, 또 사적으로 서신을 전하려 했다는 죄명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는 그 죄명은 크게 되었다간 온 가문을 멸문할 만큼 커질 테니까.

대황자는 황상과 주 귀비가 태자로 대하며 키운 이십여 년 동안 철두철미한 쓰레기로 자랐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직 온 세상 사람이 자신의 심부름을 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한마디면 누구나 감격해서 눈물 콧물 흘리며 물불 가리지 않으리라고 여기다니, 돼지도 타박할 정도로 어리석기는.

벌벌 떠는 주 태의, 대황자의 어리석음을 떠올린 영원은 순간 매우 아쉬워졌다. 동저아가 있으면 좋을 텐데. 같이 발을 구르고 호탕하게 웃으면 얼마나 통쾌할까.

“무슨 일인가? 뭐에 씌었나?”

주육은 말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서 고개를 조아려대는 주 태의를 바라보며 답답해 죽겠다는 듯 물었다. 영원은 쉴 새 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주 태의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봤다.

주육 같은 알찬 돌대가리를 만났으니, 쯧. 대황자를 ‘어쩔 수 없이 고발’해야 하는 주 태의로서는 쉽지 않게 되었구나.

“칠야, 육소야, 살려주십시오. 소신은 감히…… 감히…….”

주 태의는 고개를 조아렸다가 드는 사이에 영원을 힐끔 쳐다봤다. 영원은 턱을 치켜들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정말 답답해서 울화병이 생길 것 같았다. 칠야는 지나치게 영리했다. 태도를 보니 이 흙탕물에 신발 밑창도 적실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육소야는 너무나 멍청했다. 까놓고 말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아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재수 옴 붙은 모양이로구나!

“살려줘? 치료하다가 사람을 죽였나? 감히 무얼? 무슨 일이 난 건가?”

주육이 아무리 어리석어도 뭔가가 잘못됐음은 알아차렸다.

턱을 치켜들고 하늘만 보는 영원을 보던 주 태의가 질끈 눈을 감고 결심했다. 됐다. 그냥 까발리자!

“대왕야가 칼을 들고 소신을 협박했습니다. 육소야, 살려주십시오!”

주 태의는 신발에서 서신을 꺼내 양손으로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대왕야라니? 대왕야가 왜?”

어리벙벙하게 묻던 주육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난히 높은 담장을 휙 바라보고는 순간 깨달았다.

“대왕야가? 서신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단 말인가? 자네는 감히 그 서신을 가지고 나왔고? 이건, 이건 주군 기만죄인 걸 모르나?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주육은 놀라고 흥분되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 서신은 누구에게 주려고? 내가 좀 보자.”

주육은 주 태의의 손에 들린 서신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영원은 어리석은 주육의 모습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곧 서신에 닿을 것 같은 주육의 손을 채찍으로 쳐냈다.

“이건 큰일이다. 이 서신을 네가 봐선 안 돼. 그냥 저자를…….”

영원은 멈칫했다. 주 태의를 누구에게 데리고 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입도 열지 말았어야 했다.

“육소야, 살려주십시오. 칠야, 살려주십시오.”

주 태의는 영원이 주육의 손을 치워서 서신이 아직 제 손에 남은 걸 보고 다급해져서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태자께 데리고 가야겠다! 이건 큰일이다!”

주육은 흥분해서 두 눈을 빛냈다. 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어서 가라, 어서 가.”

영원이 손을 휘저었다. 주육은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할 겨를 없이 후다닥 다가가 주 태의를 압송해서 말을 타고 선덕문으로 직행했다.

주육이 주 태의를 데리고 사라지자 영원은 천천히 길게 숨을 내뱉고는 말머리를 돌려 유유히 경부 관아로 돌아갔다.

오늘은 일찍 돌아가야겠다. 그녀에게 이 재미있는 일을 제대로 말해줘야지!

수녕백부, 곡 대내내는 계가 꽃 연회에서 돌아온 이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없고 오로지 어떻게 해야 진 부인 손에서 이씨의 혼수 몇십만 냥, 그리고 그동안 진 부인이 강가 장부에서 긁어간 은자를 되찾아 올지 궁리했다.

그건 다 강가의 은자였고, 강가의 은자는 모두 자신의 은자였다. 곡 대내내는 이틀 궁리하고 또 왕 어멈과 몇 마디 상의한 끝에 방도를 생각해냈다.

저녁이 되자 곡 대내내는 시간을 계산한 다음 큰 부엌에서 진 부인 정원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처야 하는 길로 향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맞은편에서 오는 봉운을 마주쳤다.

“어머, 봉운이구나.”

곡 대내내가 다정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했다.

“대내내!”

봉운은 안주인인 이 여인에게 좋은 인상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솔직한 사람이었고 좋은 인상 없는 사람에겐 좋은 낯빛을 보일 수가 없었다. 뱃속 가득한 경멸과 혐오를 감춘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봉운, 오늘 참 예쁘게 치장했네. 한 떨기 꽃 같아.”

곡 대내내의 계획에서 봉운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중요한 인물 앞에서 허리를 숙이는 건 곡 대내내에게 문제도 아니었다.

“가당치 않아요. 과찬이세요.”

봉운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대내내가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주었다.

“소인, 명령받고 나온 길이라 얼른 돌아가야 해요.”

“뭐가 그리 급해. 걱정하지 마, 나무라지 않으실 거야. 이리 와 보렴. 긴히 할 말이 있어.”

곡 대내내는 봉운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정자 쪽으로 끌고 갔다.

봉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싫은 기색과 짜증이 얼굴에 다 드러났다. 그녀는 저택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바로 부인의 시녀로 뽑혀 나중엔 부인의 총괄 대시녀가 되었다. 부인 곁에 있었던 7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온 저택 위아래, 세자야까지 포함해서 모두 예의 갖춰 그녀를 대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엔 감히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일이 있다고 말을 했는데 곡 대내내가 억지로 끌고 가자 벌써 언짢아졌다. 게다가 무슨 개똥 운이 터져 수녕백부 대내내가 된 건지 모를 이 여인을 원래부터 무시했다. 봉운은 언짢은 마음이 더 강해졌다.

“들어 오렴. 앉아서 이야기하자!”

곡 대내내는 봉운 얼굴에 가득한 언짢은 기색을 무시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정하게 봉운을 아경의에 앉히고 자기도 얼른 옆에 앉았다.

“어머니 몸은 좀 어때? 왕 어멈이 다 이야기했어. 네 어머니 몸이 계속 안 좋았다고 하더구나. 너도 참. 어머니 몸이 안 좋은데 약 먹을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왜 하지 않았어?”

“별일 아니에요.”

봉운의 얼굴이 흐려졌다.

“별일 아니라니! 다 네가 글공부를 안 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글공부했으면 효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이라는 걸 알 텐데. 중신들도 다 효자 중에서 고른단다. 부모가 병이 나면 자식은 뼈를 갈고 살을 떼서라도 효도해야 해!”

곡 대내내는 엄숙한 얼굴로 봉운을 훈계했고 봉운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곡 대내내는 자기가 한 말을 매우 흡족해하며 봉운을 힐끔거렸다.

“이 은자 가지고 가렴.”

곡 대내내가 서너 냥은 되는 쇄은을 찔러주었다.

“일단 좋은 의원부터 불러서 약 몇 첩 지어드리렴.”

“대내내…….”

봉운은 금세 매우 감동했다. 대내내가 각박하다고 누가 그러나. 이렇게 싹싹하고 후덕한 분을!

“받으렴.”

곡 대내내는 은자를 다시 한 번 봉운 손에 찔러주었다. 봉운이 은자를 받았으니 앞으로 일이 쉬워진다.

“봉운, 물어볼 게 좀 있어.”

“예?”

봉운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듣자 하니 예전 이씨의 혼수, 사실 부인이 모두 챙겼다며? 너도 분명 알 거야. 그렇지?”

곡 대내내가 봉운을 빤히 봤다.

“누가 그런 입방아를 찧은 거예요? 부인이 어떤 분인데요. 그런 일을 할 리가 있나요. 말도 안 돼요!”

봉운은 놀란 다음에 화를 냈다. 이 수녕백부, 갈수록 말 같지가 않네! 감히 부인의 뒷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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