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괴력난신
“계 천관!”
강환장은 그보다 더 빠를 수 없을 만큼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부를 관장하는 계가 놈이 나를 진왕부에서 꺼내 지방으로 보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이걸 나서서 막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도 남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경성, 진왕 곁에 남아야만 해!
남으려면 계 천관을 설득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왕야를 보좌해서 대업을 이루려면 저 없이는 안 됩니다. 아니, 제가 있으면 들인 수고보다 공을 더 거둘 수 있습니다. 아니, 더가 아니라 열 배, 백 배는 거둘 수 있습니다!”
강환장은 계 천관을 직시했다. 남기 위해, 계 천관을 설득하기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다.
계 천관은 비웃고 또 비웃었다. 정말이지 우스운 소리로군!
“저는…….”
강환장은 말을 멈췄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제가 기연을 만났습니다. 앞뒤로 스무 해 동안 벌어지는 대소사를 제가 친히 겪은 듯 알 수 있습니다.”
강환장은 또 말을 멈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많은 일이 변했다. 심하게 변했다. 사실 지금 벌어지는 일과 지금의 사람이 예전과 같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인과가 모두 변했다.
“천기는 누설할 수 없습니다.”
강환장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계 천관은 허, 하고 조소했다. 이제 이런 도깨비 같은 소리를 하는 농간까지 부리는군!
“왕야, 제 기억…… 제가 겪은 기연에서 들은 게 맞다면, 지금 왕비가 회임하셨을 겁니다.”
강환장이 돌아보며 하는 말에 진왕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손사래 쳤다.
“소화, 말조심하게. 그런 일 없네.”
“허튼 말이 아닙니다. 왕야께서 아직 모르실 뿐, 회임하셨습니다. 아마 왕비께서도 확신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태의를 불러 진맥해 보십시오. 바로 알게 될 겁니다.”
계 천관은 눈살을 찌푸리며 강환장을 빤히 봤다.
“다만 이 아이를 지키지 못하고 보름 뒤에 잃게 됩니다.”
강환장은 눈을 내리깔고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들고 눈이 더 휘둥그레진 진왕을 바라봤다.
“귀신 놀음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강호 술사들처럼 술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는 기연을 만났습니다. 이 아이는 왕야와 왕비와 인연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 달 뒤, 왕비께서 다시 회임하십니다. 그 후로는 순조롭게 내년 초에 왕야의 장자를 생산하실 겁니다.”
내년 초에 태어날 진왕의 장자를 떠올린 강환장은 무뎌졌던 마음이 다시 쿡쿡 쑤셨다. 바로 그 장자 때문에, 태자로 십수 년 산 장자 때문에 이렇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와서 지금까지 걸음걸음이 힘겹고 갈수록 진창에 빠졌다.
강환장의 말에 진왕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계 천관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성현 말씀에 괴력난신은 없으니 믿지 말라 했지만 정말로 없다기엔 이 세상에 기이한 일과 사람이 너무나 많지 않나.
“왕야, 태의를 불러 진맥해 보도록 하지요.”
“그래, 그래. 그럽시다!”
계 천관이 제안하자 진왕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높여 사람을 부르는데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종복이 들어오자 진왕은 어서 태의원에 가서 회임 맥을 잘 짚는 태의를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두 분을 모셔라. 같이 진맥하면 더 믿을 수 있다.”
계 천관이 뒤에서 한마디 더 당부했다. 종복은 서둘러 대답하고는 공손히 물러가서 말을 꺼내 다급하게 태의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태의 둘이 약상자를 짊어지고 종복을 따라 허둥지둥 들어왔다. 태의 둘은 진왕의 분부대로 진왕비를 진맥하러 후택으로 달려갔고 진왕도 일어섰다.
“나도 가 봐야겠다.”
강환장은 다리를 꼬고 당당하게 앉아 있었고, 계 천관이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돌아온 진왕은 두 눈이 풀려서 강환장을 바라봤다.
“정말로 지키지 못한다고? 보름?”
강환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심 안도했다. 이 일은 변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하늘이시어!
계 천관도 안색이 살짝 변해서 강환장을 빤히 바라봤다.
“또 무엇을 알지? 앞뒤로 스무 해라고 했나? 어떻게 안 것인가.”
한참 만에 계 천관이 나직이 묻는 말에 강환장은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아까 한 말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아야 할 것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계 천관은 숨을 훅 들이마시며 강환장을 빤히 바라봤다. 한참 만에 결심한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았네. 경성에 남게. 다만 왕부 장사 직은 안 되네. 육부에 자네 자리를…….”
“저는 왕야 곁에 있어야 합니다. 진왕부 장사는 저여야만 합니다.”
강환장은 한 치 양보 없이 계 천관의 말을 무질렀다.
계 천관은 이를 악물고 한참 만에 겨우 웃음을 쥐어짜고 잇새로 내뱉듯이 말했다.
“알았네. 승낙하지. 경성에 3개월 더 있게. 내년에…….”
“내년이면 큰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다 밝혀집니다.”
강환장이 계 천관의 말을 잘랐다. 내년에 모든 것이 밝혀질지 아닐지 사실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않나.
계 천관은 밖으로 나와 마차에 타고 꼿꼿이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강환장이 허튼소리를 한다고 의심하진 않는다. 예전에 자신도 이런 괴상한 일을 겪었으니까.
몇십 년 전 일이었다. 강남 고향 집으로 수재 고사를 보러 갈 때 반년 일찍 경성에서 출발했었다. 저주(滁州) 경내에 들어갔을 때, 배를 타는 것이 질려서 육로를 통해서 가기로 하고 사환과 종복을 데리고 마차를 타고 경치 구경하면서 강남으로 돌아갔다.
강녕성 밖의 어느 다포에 멈춰 쉬는데 다포 안에 하얀 옷을 입은 매우 준수한 젊은 사내가 정신을 집중해서 앞에 놓인 해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분위기가 범상치 않고 해시계를 열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매우 기이해서 다가가서 바라봤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무엇을 보는지 물었더니 사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해시계를 거뒀다.
그 모습이 더 이상해서 다시 물으려는데 뭐라고 묻기도 전에 사내가 해시계를 치우고 앉으라고 손짓했다.
‘시진을 보고 있었습니다.’
‘다 봤습니까?’
‘음, 다 봤습니다. 한순간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휴!’
사내의 긴 한숨에 매우 큰 고통이 감춰진 듯했다.
‘한순간도 어긋나지 않았다니, 무엇이 말입니까? 해시계를 잘 만들어서요? 시진이 딱 맞아서요? 무엇과 비교해서 그렇단 말입니까?’
주변엔 시간을 비교할 만한 물시계 같은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당신이 입을 연 그 순간 말입니다. 지난번과 똑같습니다. 완전히 똑같아요. 한 치의 오차도 없었습니다. 휴. 지금까지 변화가 없다니. 한 치도 변화가 없었어요.’
사내는 더더욱 허탈해하고 괴로워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지난번과 같다니요? 나는 여기 처음 옵니다. 무엇과 무엇이 같다는 겁니까?’
그는 그때 매우 의아해했다.
‘왔었습니다. 본인이 모를 뿐입니다.’
사내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를 술병을 꺼내서 큰 그릇에 반쯤 채워주고는 자기 그릇도 채웠다. 그러고는 마시라는 말도 없이 애달픈 얼굴로 천천히 홀짝였다.
‘내가 왔었다고요? 농담도 참.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육로로 갑니다. 물길로도 고작 서너 번 다녔을 뿐이에요. 이곳에 왔을 리가 있나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그렇지. 그 당시엔 눈앞에 있는 그 준수하고 신선 같은, 총기가 비상한 사내가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당신은 당연히 모르겠지요. 당신은 장원이 될 사람이니, 돌아온 사람이 아닐 터. 그러니 이곳에 온 적 있다는 걸 어찌 알겠습니까. 어째서 변화가 없을까요.’
사내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농담을 참 잘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를 장원이 될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경성이든 지방이든, 일꾼, 장궤, 다양한 사람들 모두 서생을 보면 앞으로 장원이 될 사람이라고 추켜세웠으니까.
나중에 정말로 장원이 되었을 때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앞으로 분명 장원이 될 거라고, 미래의 장원랑이 확실하다고 한 사람은 많디많았다. 물론 그에게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했다.
‘이따 출발하면 천천히 가십시오. 서두르느라 마차를 재촉하지 마세요. 이따 비가 내릴 겁니다. 아무리 달려도 큰비를 피할 수 없습니다. 달리지 말고, 길을 똑똑히 보고 천천히 가세요. 아니면 다리의 근골을 다칩니다.’
사내는 일어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몇 마디 당부하고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돌연 모습이 사라졌다.
그때 너무나 놀랐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줄곧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던 하늘에 별안간 큰바람이 불더니 먹구름이 뒤덮고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환, 종복, 그리고 그 모두가 비를 피할 곳을 찾느라 사내의 당부를 잊고 속도를 냈다. 결국 멀리 가지 못해서 마차가 뒤집혔고 마차에 갈려 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의 말대로 그 폭우를 피하지 못했다.
강녕성에 들어가서 폭우가 멎자마자 즉시 사람을 보내 곳곳에서 그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살아오면서 종종 그 사내가 했던 말을 곱씹곤 했다. 곱씹을수록, 어쩌면 아무렇게 한 말이 가끔 맞는 운 좋은 미치광이, 사기꾼을 만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환장이 조금 전에 한 말을 듣기까지는…….
강환장의 말을 듣자마자 오래전 강녕성 밖에서 만난 그 사내가 곧바로 떠올랐다. 그 사내가 한 말, 그가 준 강렬한 느낌. 강환장과 그 사내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같은 부류의 말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건 같은 사람, 같은 일, 같은 노래일지 모른다.
계 천관은 흔들리는 마차의 움직임도 느끼지 못하고 줄곧 꼿꼿이 앉아 있었다.
강환장이 무엇을 겪은 것일까. 어떻게 미래의 일을 아는 것일까. 어째서 그에게서 몇십 년 전에 만난 그 사내의 느낌이 나는 것일까.
얼마 전에 며칠 내내 대상국사에서 무릎 꿇고 있던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로 그 텅 빈 뜨락에 있다는 뜬금없는 고승을 만나기 위해서였을까. 만났을까? 그 고승은 누구일까.
계 천관은 손을 들어 이마를 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강환장과 그 해 길가 다포에서 만난 사내는 천지 차이다. 저 품행이 저열한 소인배를 어떻게 그 해 만났던 매우 출중한 사내와 비교할 수 있나.
어쩌면 어딘가에서 괴력난신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음.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 다들 오통신이 붙은 것 같다고 한다지 않나. 붙은 것 같은 게 아니라 붙은 것이지!
그런 괴력난신은 절대로 구해선 안 되는 것이다. 큰 화를 초래하는 것이야!
계 천관은 번잡하기 짝이 없는 마음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멀리 내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아까 경성에, 진왕 곁에 두겠다고 승낙하고 말았다…….
소식이 두 번 들어온 이래, 높은 담장 안에 갇혀 모든 것을 포기해가던 대황자는 다시 무수한 야심과 갈망에 사로잡혔다. 허튼 꿈을 꾸며 눈앞의 높은 담장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1년처럼 보냈다.
기운을 차린 대황자가 매일 눈을 뜬 후에 묻는 첫마디가 ‘들어온 사람이 있느냐’였다. 종복이 없다고 대답하면 잠깐 있다가 다시 두 번째로 물었다. 하루에 몇백 번 묻는지 모른다.
담 밖에서 들어오는 소식 외에 대황자는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기다리는 사이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인내심이 갈수록 바닥나고 인내심이 바닥날수록 성질이 포악해졌다.
이 높은 담장 안, 대황자 본인과 진작 숨어 버린 장 선생을 제외하고 대황자비 곽씨부터 아랫사람까지 모두 하나같이 조마조마, 두려운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을 기다리느라 대황자는 죽었다가 살았다가, 또다시 죽었다가 생사를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른다. 드디어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장 선생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