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56화 (356/463)

356화: 화근을 돌리다

춘연은 손을 덜덜 떨며 차를 내렸다. 곡 대내내는 문 안팎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아이 울음소리가 잦아들면 손을 들어 철썩 뺨을 때렸다. 이마에 피가 스며 나오도록 머리를 찧던 고 이낭은 아들의 울음소리가 다시 커지고 아이 목이 다 쉰 걸 듣고는 더는 참지 못하고 무너지며 울부짖었다.

“대내내, 제발 살려주세요. 정말로 은자가 없습니다. 대낭자와 이낭자가 싹 털어 갔어요. 싹 털어 갔습니다. 그리고 부인도요. 그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고가도 못 가져갔어요. 대내내, 고가에 가서 한번 보세요. 대내내, 수소문 해 보세요. 고가에서 정말로 은자를 가져갔다면 아직도 그렇게 궁핍하겠습니까. 대내내, 명확히 조사해 보세요. 다 부인이 가져가고 제게 뒤집어씌운 거랍니다. 대내내, 명확히 조사해 보세요…….”

곡 대내내는 멈칫하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춘연을 흘겨보며 물었다.

“넌 이씨 그 천것의 배가 시녀이지? 네가 말해 보렴. 혼수가 다 어디로 갔지?”

“아룁니다, 대내내. 소인은 그저 미천한 천것이라 정말 모릅니다.”

춘연은 겁에 질려 종아리가 다 오그라들었다. 화살이 왜 이리로 돌아오나.

“이 축생을 던져 줘라! 꺼지라고 해!”

곡 대내내는 한참 생각하다가 별안간 분부했다.

춘연은 울다가 진이 다 빠진 아이를 안고 몇 걸음 만에 상방에서 달려나가 고 이낭에게 안겨 주고 어서 가라고 눈짓했다. 고 이낭은 아이를 안고 두려운 듯이 후원으로 달려갔다.

“왕 어멈을 불러.”

곡 대내내가 등 뒤에서 분부하자 춘연은 얼른 밖으로 나가 직접 부르러 갔다.

왕 어멈은 허둥지둥 들어오다가 곡 대내내의 음험한 얼굴을 보고는 즉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매우 신중히 고개를 조아렸다.

“예전에 이씨의 혼수 몇십만 냥을 다 고가가 뺏어 갔다고 했지? 그럼 요즘 고가는 어떻지? 떵떵거리겠네?”

곡 대내내는 왕 어멈을 빤히 바라보다가 겉가죽만 웃으면서 물었다. 왕 어멈은 멈칫했다.

“그렇게 떵떵거리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몇십만 냥을 횡재했는데도 떵떵거리지 않는다고? 고가 씀씀이도 너무 큰 거 아니야?”

곡 대내내는 이제 겉으로도 웃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대내내가 고가를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고가 두 나리, 고가 노야와 대야, 고가는 바로 이 두 나리 손에 몰락한 것입니다. 예전 대내내의 혼수도 이 두 나리가 빼앗아 갔고요. 두 나리는 은자를 손에 넣고는 집에 가지고 간 게 아니라 몽땅 거리의 사창에게 썼습니다.”

곡 대내내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화는 더 난 것 같지 않자, 왕 어멈은 조심조심 말을 이었다.

“예전에 고가가 잘 살 때도 두 나리는 물 뿌리듯 기녀에게 돈을 썼습니다. 나중에 은자가 없어서 기녀에게 쓸 돈이 없어지자 기녀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근래 10년 동안은 사창에 쓸 돈밖에 없었을 겁니다. 대내내,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인간인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며칠 만에 바닥나지 않겠습니까?”

“은자는 그렇다고 치고, 그럼 의복이며 장신구는? 그것도 다 사창에 주었다는 거야?”

곡 대내내는 언짢아졌다. 은자를 정말로 다 써 버렸다면 돌려받을 길이 없다. 한 푼도 쓰지 않고 꼭꼭 숨겨 놓았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찾아서 크게 횡재하지.

왕 어멈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무슨 뜻일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대내내가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예전 대내내의 의복은 최고로 좋은 옷감에 최고의 수공으로 지은 옷입니다. 장신구는 모두 속이 실한 적금이고요. 하나같이 물건이었습니다. 옷은 고의포(古衣浦: 헌 옷을 사고파는 점포)가 있고 적금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아무 전당포에 가면 은자로 변통할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이에요.”

“고가 천것은 이가 혼수 문제를 자기가 뒤집어쓴 거라고 하던데? 사실 부인이 다 거둬간 거라던데?”

곡 대내내는 왕 어멈이 계속 딴소리하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예?”

왕 어멈은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손뼉을 짝 쳤다.

“아이고머니나, 어쩐지! 내 말이!”

“내 말이 뭐?”

곡 대내내가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은 우리 저택의 어르신 아닙니까. 소인이 어찌 감히 그쪽으로 생각했겠어요. 생각만 해도 장을 칠 일인 걸요!”

왕 어멈이 자기 입을 찰싹 때렸다.

“말해!”

곡 대내내가 살기를 내뿜으며 고함쳤다. 왕 어멈은 파르르 진저리쳤다. 더는 허튼소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 소인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혼수를 두고 다투는 동안 부인은 귀 닫고 눈 감고 계셨습니다. 지금까지도요. 일어난 적 없는 일처럼요. 대내내, 생각해 보세요. 자기 집 은자를 몇십만 냥을 빼앗겼는데 참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무 일 없이 넘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물며 우리 집안은 넉넉하지도 않은걸요. 부인은 또 유명한…….”

왕 어멈은 헛웃음 치며 손가락을 둥글게 말았다.

“이걸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걸요. 우리 저택이 그래도 떵떵거리던 시절에, 부인이 안주인으로 있을 때는 듣자 하니…….”

왕 어멈이 좌우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저택 돈을 자기 지참금으로 얼마나 보탰는지 모른다고 하던걸요! 은자를 꿍쳤고, 원래 혼수도 두둑했었으니 가진 은자가 얼마나 많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집안이 제일 힘들 때, 저택이 다 넘어가게 생겼는데도 부인은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인내심이 참……. 쯧쯧.”

왕 어멈이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돈 밝히는 사람이 남이 은자 몇십 냥을 가로채 가는데 끽소리하지 않는다? 대내내,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렇지!”

곡 대내내는 천천히 그렇게 대답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또 하나, 대내내가 말씀하셔서 겨우 생각났습니다. 애초에 고가에 몇십만 냥 주었을 때, 며칠 뒤에 고가가 다시 찾아와서 가짜 은표였다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그땐 아무도 안 믿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왕 어멈은 생각할수록 진 부인이 은자를 가로챈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아이고머니나!”

왕 어멈이 연달아 손뼉을 짝짝 쳤다.

“또 생각났네. 이 대내내가 병으로 쓰러졌을 때, 부인이 이 대내내의 혼수 곳간을 잠갔습니다. 그 일로 이 대내내의 배방들이 하마터면 우리 종복들과 싸울 뻔했지요. 아이고머니나! 정말이네! 예전 일을 생각해 보니까, 아이고, 대내내! 예전에 대내내의 병…… 무슨 병인지 아세요? 대낭자와 이낭자 때문에 생으로 생긴 병이랍니다! 아미타불. 정말이지……. 아미타불!”

왕 어멈은 생각할수록 눈앞이 컴컴해져서 제가 다 식은땀이 났다.

“흥! 그렇게 된 일이었군!”

곡 대내내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할 정도였다.

시어머니! 그럴 줄 알았지! 들어가기만 하고 나올 줄 모르지. 이씨의 혼수가 그 여자의 손에 들어간 이상, 내가 생각한 것과 같겠군. 큰 재물이 있는 거야! 내가 가지러 가길 조용히 기다리는 거지!

누가 누구를 해친 건지 등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잘 생각해 봐야겠어.”

곡 대내내가 이를 갈며 머리를 굴리는데 밖에서 시녀의 기별이 들렸다. 왕 어멈이 분부한 일을 고할 것이 있다고 부엌어멈이 왕 어멈을 찾으러 왔다나.

“대내내께서 조금 전에 분부한 그 일 때문일 겁니다!”

왕 어멈은 얼른 설명했다. 대내내와 이야기 중인데 부엌어멈이 사적인 일로 여기까지 찾아온 거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래.”

머리를 굴리고 있던 곡 대내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왕 어멈은 나갔다가 금세 다시 돌아와서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실실 웃었다.

“대내내, 세자야가 어디에 갔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지요. 역시 영명하십니다. 역시나 큰일이었어요!”

“무슨 큰일?”

세자야라는 말을 들은 곡 대내내는 금세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대내내가 명령하신 일이니, 소인, 가장 기민한 어멈을 골랐지요. 그 어멈이 세자야의 뒤를 밟았는데, 세자야가 둘째 숙조부댁으로 갔답니다. 일각 만에 다시 나와서 곧장 마행가로 가셨대요. 진귀한 물건을 잔뜩 사서 해 상서 댁으로 가셨답니다.”

“진귀한 물건을 잔뜩 사? 은자가 어디에 있어서? 숙조부께 빌려서?”

곡 대내내가 재빨리 반응하고 묻자 왕 어멈이 헛웃음 지었다.

“대내내는 모르시겠지만, 우리 가문의 온갖 재산은 우리 노야가 대를 이은 지 몇 년 안 되어서 홀랑 날렸습니다. 종친 중에 누가 우리 노야와 대야에게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한 푼도 빌려주지 않아요.”

“그럼, 은자를 숙조부댁에 맡겨뒀다는 거야?”

곡 대내내는 그런 쪽으로 머리가 빠르고 정확하게 돌아갔다.

“그런데 세자야가 은자가 어디에서 났을까요?”

왕 어멈은 그게 이상했다. 이 댁 노야와 대야는 손을 쓸 줄만 알지 벌 줄은 모르는 사람들인데?

“세자야는 관리야. 관리가 은자가 없을까 봐?”

곡 대내내는 진지한 얼굴로 정곡을 찔렀고, 왕 어멈은 잠시 주저하다가 맞장구쳤다.

“그건 그렇지요.”

“나는 남다른 사람이야. 복이 연달아 오는 법이 없다지만, 난 번번이 연달아서 와!”

곡 대내내는 기분이 좋아져서 깔깔 웃었다.

“오늘 고생했어.”

곡 대내내가 슬쩍 움직이더니 허리춤에서 열쇠를 꺼내 화항 구석에 둔 큰 상자를 열었다. 쇄은을 꺼내서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내려놓고 작은 것으로 골라 왕 어멈에게 건넸다.

“자, 상이야.”

왕 어멈은 황공한 듯이 굽실거렸다. 대내내가 상을 내리다니, 너무나 드문 일이었다. 대내내뿐만 아니라 이 저택에서 상을 내리는 일 자체가 없기도 하고.

오황자가 계가 문회에 참석한 일은 오황자가 계가에서 떠나기도 전에 태자의 귀로 들어갔다.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서 알게 된 사람은 즉시 태자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서강도 보고를 듣자마자 즉시 말을 준비시켜서 다급하게 태자를 만나러 갔다.

고서강이 대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주 추밀부사 주택헌이 이미 자리에 있었다. 고서강은 가슴이 철렁해서 주 추밀부사를 바라보다가 금세 웃음 띤 얼굴로 공수하며 인사했다.

소인배를 어르는 면에서는 주택헌을 따라잡을 자가 없었다. 하필 태자는 군자가 아닌 소인배였다. 이렇게 알랑댈 줄만 알고 큰일은 하나도 못 하는 소인배만 아끼는 소인배!

그런 생각이 들자 고 사사는 낙담했다.

“소오가 함부로 나돌아다닌다는 일, 자네도 들었는가?”

고 사사가 더 낙담할 새도 없이 태자가 분노하고 짜증 난 듯이 물었다. 고 사사는 얼른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신도 그 일로 이리 급히 달려온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하찮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고 사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 추밀부사를 힐끔 보며 이었다.

“주 추밀부사, 자네 생각은 어떤가?”

“신도 고 사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주 추밀부사가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고 사사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다. 그는 주 추밀부사를 상대하지 않고 태자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전하, 오황자는 적자입니다. 영 황후는 지금 후궁을 관장하고요. 이 두 가지 모두 만만히 볼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영씨 가문은 대대로 나라의 북쪽을 지켜왔습니다. 전공도 잔뜩 세웠고요. 애초에 영원이 경성으로 온 것이 이제 보니 큰일을 위해서 온 것 같습니다. 오황자가 오늘 계가 문회에 나타난 건, 갑자기 흥미가 생겨 간 것이 아닙니다. 분명 사전에 계획하고 간 것입니다. 신의 예상이 맞다면, 오황자가 이번에 얼굴을 드러낸 일로 분명 다들 칭송할 겁니다. 행여 적자가 어질다는 명성을…….”

고 사사는 다음 말을 이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태자가 태자로 세워졌지만, 첫째 덕이 없고 둘째, 실로 너무 어리석었다. 태자를 좋게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 생각에 고 사사는 마음이 더욱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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