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55화 (355/463)

355화: 악랄한 수단

강환장은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 후에야 채찍을 내던지고 강녕을 가리키며 으스스하게 분부했다.

“거처에 가두고 자물쇠를 잠가라. 내 허락 없이 아무도 꺼내주지 말아라. 부인과 백야도 안 된다!”

강환장은 말을 마치고는 소매를 휘두르며 돌아서서 들어갔다. 흡족하게 구경한 곡 대내내는 속이 후련한 듯 숨을 내뱉고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구경하는 종복들을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세자야의 분부를 못 들었느냐? 어서 끌고 가라! 가두란 말이다!”

곡 대내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아니면 충분히 못 즐겼는지 피를 철철 흘리는 강녕을 따라가서 그녀를 방 안에 던지고 자물쇠를 채우는 것까지 지켜봤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열쇠를 달라고 명령하고 열쇠를 움켜쥔 채 득의양양하게 곡란원으로 돌아갔다.

곡란원으로 들어가자, 춘연을 비롯한 시녀들이 조심스럽게 시중들며 곡 대내내의 옷을 갈아입혔다. 곡 대내내는 탑상에 비스듬히 누워서 차를 마시면서 왕 어멈을 부르라고 분부했다. 강녕이 어쩌다가 해 상서 댁 낭자와 싸운 건지 아직 제대로 듣지 못했다.

왕 어멈이 들어오자, 곡 대내내는 우선 가지고 오라고 분부한 밀전 찬합을 한참 뒤적이며 고르다가 복숭아 절임을 골라서 입에 쏙 넣고는 그제야 느긋하게 물었다.

“이야기해 봐. 이낭자가 어쩌다가 해 상서 댁 낭자와 싸운 거지?”

“아룁니다, 대내내. 싸운 것이 아니라, 우리 이낭자가 해 이낭자 뺨을 때렸습니다. 해 이낭자 얼굴 한쪽이 다 부풀었어요. 해 이낭자는 같이 싸우지 않았습니다. 일을 키우지도 않았고요. 한마디 없이 돌아갔습니다.”

“하!”

곡 대내내는 코웃음 치고는 한입 깨문 복숭아 절임을 찬합에 던져 넣고 다시 은행 절임을 골랐다.

“잘난 척하기는. 일을 더 키우려고 놓아준 거지. 소문내지 않았는데, 알아야 할 사람 몰라야 할 사람이 다 알아? 짖지 않은 개가 더 모질게 무는 법이야. 우리 저택에 그 고 이낭 같은 분 말이야.”

곡 대내내는 공손히 문 앞에 서서 문안 올리려고 기다리는 고 이낭을 흘겨봤다.

“물색없는 것! 바쁜 것 안 보이니? 꺼져!”

고 이낭은 큰 사면을 받은 듯이 허둥지둥 물러갔다.

“계속해!”

“예. 대내내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왕 어멈은 옳고 그르고 상관없이 일단 알랑거렸다.

“해가 이낭자는 대단하다고 소문난…….”

“왜 싸웠냐고 묻는데 상관없는 이야기는 왜 늘어놓아!”

곡 대대내가 짜증을 부리자 왕 어멈이 얼른 묻는 대로 대답했다.

“예, 예! 백 노부인을 모시는 어멈이 참으로 좋은 분이더군요. 낱낱이 알려주지 뭐예요. 우리 대낭자와 이낭자가 해 이낭자 무리 쪽으로 갔는데, 지난번에 궁에서 우리 대낭자와 이낭자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형국공부 적녀 팔낭자가, 우리 대낭자와 이낭자에게 왜 지난번에 입궁할 때 입었던 옷을 또 입었냐고 물었답니다.”

곡 대내내는 얼떨떨해졌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 대낭자와 이낭자는 지극히 체면을 따지는 분이라서, 우리 저택엔 같은 옷을 두 번 입는 법이 없다고 대답했답니다. 이번엔 옷이 너무 많아서,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옷이 새 옷인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서라고…….”

“잠시만!”

곡 대내내도 드디어 알아듣고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앉으며 왕 어멈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한 번 입은 옷을 두 번 입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왕 어멈이 허허 웃었다.

“아룁니다, 대내내. 형국공 주씨 가문 같은 집안은 털옷 말고는 두 번 입는 법이 없습니다. 새 옷이 넘쳐나는데 왜 두 번 입겠습니까. 새 옷도 다 입지 못할 만큼 많은데요. 털옷도 겨울에 겹치게 입는 법이 없습니다. 다음 해 겨울이 되면 값어치 없는 가죽은 새로 바꿀 겁니다. 자초(紫貂: 검은담비) 같은 건 실로 너무 귀해서 천을 바꿔서 다시 입겠지만요. 경성에서 우리와 비슷한 가문은 거의 다 그렇습니다. 우리 집안도, 지금은 쇠락했지만, 예전에 소인이 처음 왔을 때는 그랬습니다.”

곡 대내내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옷을 한 번 입고 버린다고? 그래도 새 옷이 넘쳐난다니. 경성에서 비슷한 집안은 집집마다 다 그런다니! 이 말, 이 사실에 너무 놀라서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왕 어멈은 곡 대내내의 믿을 수 없어 하는 표정을 힐끔 보고는 경멸하듯 입을 비죽였다. 그렇게 비죽이다가 얼른 입가를 위로 끌어올리며 알랑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 이 대내내가 혼인해서 들어왔을 때, 사계절 의복만 해도 혼수 사오십 상자를 채워서 왔습니다. 그 상자가 죄다 사람 허리춤 높이만 한 커다란 녹나무 상자였지요. 안에 손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옷이 꽉꽉 차 있었고요. 그런데도 이 대내내는 혼인한 첫 달에 입을 옷이 없다고 타박하며 힐수방에서 새 옷을 지었습니다. 이 대내내가 우리 저택에 몇 달 안 살긴 했지만, 몇 달 있는 동안 같은 옷을 입는 걸 한 번도 못 본 걸요. 이 대내내는 격식을 따지는 사람이라 때로는 하루에 서너 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곡 대내내는 눈앞이 어른어른했다. 자신은 혼인해서 들어올 때 혼수로 옷 상자 하나 꽉 채워서 들어온 것만 해도 너무나 흡족했었다. 평생 입을 옷을 다 마련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왕 어멈은 두 눈이 풀린 곡 대내내를 바라보며 뚱하게 말했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대내내가 혼수로 가지고 온 꽉꽉 찬 그 옷 상자들, 갈 때는 하나도 가지고 가는 걸 못 봤습니다. 그 옷들이…….”

왕 어멈이 껄껄 소리 내서 웃었다.

“어디로 갔는지 누가 압니까. 사오십 상자예요. 작은 수량이 아닙니다. 나중에 제가 보긴 했는데…….”

왕 어멈은 다시 웃으면서 입구를 흘깃 보고는 목소리를 훅 낮췄다.

“고 이낭이 치마 몇 개를 입었고, 대낭자와 이낭자가 오늘 입은 두 벌도 이 대내내의 혼수랍니다. 고 이낭에게서 빼앗은 거라고 하던걸요.”

“그년일 줄 알았어!”

곡 대내내는 이씨가 가지고 가지 않은 혼수를 고 이낭이 몽땅 꿍쳤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모든 이가 다 아는 사실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난 진작 알고 있었어!

“고가 계집을 불러와!”

곡 대내내가 이를 갈며 분부했다. 강녕이 왜 해 상서 댁 이낭자를 때렸는지, 이제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졌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이씨가 혼인했을 때 가지고 온 옷 상자 수십 개, 그리고 무수한 금은보화였다.

“대내내, 소인 드릴 말씀이 있는데 말씀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해! 말씀드려야 할지 말지는 무슨!”

왕 어멈이 주저하며 묻자 곡 대내내가 화를 버럭 냈다. 흥분하고 부아가 치밀어서 감정이 격할 때라 말이 거칠었다.

“대내내, 이렇게 된 일입니다. 대내내, 생각해 보세요. 고씨 같은 첩실이, 꼴도 그저 그러잖습니까. 대내내도 다 보셔서 알잖아요. 그깟 계집이 무슨 간이 있어서 안주인의 혼수를 꿀꺽하겠습니까? 물론 고씨같이 은자만 보면 목숨도 내놓을 인간은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설령 그럴 용기가 있다고 해도 일개 첩실이……. 우리 저택의 종복들도 다 법도가 있답니다. 상전의 물건을 훔치는 걸 용납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대내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세자야가 허락했단 말이야?”

곡 대내내는 짜증 나는 와중에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대내내 역시 영리하세요! 허락했을뿐더러 세자야가 직접 준 것입니다. 고씨 그것이 참으로 보란 듯이 세자야의 아들을 낳았고요.”

왕 어멈이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경멸하는 듯이 손수건을 휘둘렀다.

“가서 세자야가 어디에 가셨는지 알아봐!”

곡 대내내는 어두운 얼굴로 한참 넋이 나갔다가 싸늘하게 분부했다. 왕 어멈은 얼른 대답하고 공손히 물러갔다.

“고씨를 불러!”

왕 어멈이 나간 지 한참 뒤에 곡 대내내가 춘연을 불러 매섭게 분부했다.

춘연은 재빨리 고 이낭을 불러왔고 곡 대내내는 독을 묻힌 비수 같은 눈빛으로 고 이낭을 샅샅이 훑었다. 고 이낭은 그 눈빛에 살이 파르르 떨리고 두려워졌다.

“말해. 이씨의 혼수, 그리고 은자, 다 어디에 숨겼지?”

“아룁니다, 대내내.”

곡 대내내가 또 그걸 묻자 고 이낭은 무너질 것 같았다. 노후에 쓸 은자를 어렵게 모았는데, 강완과 강녕이 싹 쓸어갔다. 그 은자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안절부절못하고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런데 물건을 감췄다고 추궁하다니. 차라리 감춰둔 수많은 재물이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른다.

“없습니다. 정말로 없어요. 소인 은자 한 냥도 없습니다. 소인은 이 대내내의 물건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없습니다!”

둥글둥글 살이 오를 대로 오른 고 이낭은 엎드려서 절을 하고 싶어도 너무 살이 쪄서 바닥에 엎드릴 수가 없었다.

곡 대내내가 연신 싸늘하게 웃었다.

“정말로 은자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종자구나. 그렇게 눈치 없이 군다니, 내가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 춘연, 가서 이가아를 안고 와라. 내가 가장 예뻐하는 이가아 아니냐. 안고 오렴. 제대로 예뻐해 줘야겠다.”

“대내내…….”

고 이낭은 얼떨떨해졌다. 이미 내 아들을 이 거처에 끌고 와놓고. 나까지 여기에 끌고 와놓고. 뭘 더 하려고. 뭐가 더 남았을까?

춘연은 두려운 눈빛이지만, 명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 곁채에서 이가아를 안고 와서 곡 대내내 곁에 데리고 갔다. 곡 대내내는 춘연의 품에 안긴 갓난아이를 힐끔 내려다봤다. 아이는 막 배불리 먹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침을 흘리면서 옹알이하며 혼자 기분 좋게 놀고 있었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를 들은 곡 대내내는 미움이 치밀었다. 천것이 낳은 아들이다. 천것처럼 똑같이 천한 것!

“여기에 내려놓아라.”

곡 대내내는 춘연이 아이를 곁에 내려놓는 걸 바라보며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이 잡것은 보기만 해도 역겹구나!”

고 이낭의 온몸이 굳었다. 무슨 뜻이야? 무슨 짓을 하려고? 내 아들을 어쩌려고?

고 이낭은 넋이 나가서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곡 대내내는 그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세자야의 아들은 내 아들 아니냐. 내 아들인데 당연히 예뻐해야지. 넌 눈에 거슬리지 말고 나가라.”

고 이낭은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 상방 입구에 서 있을 엄두는 나지 않아도 멀리 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곁채 문 앞에 서서 두렵고 불안한 눈으로 상방을 바라봤다.

상방 안, 곡 대대내는 옹알거리는 아이를 노려보았고, 춘연은 두려운 마음으로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무슨 짓을 하려고?

곡 대내내가 손을 내밀어 길디긴 손톱으로 아이의 얼굴을 꾹 누르더니 목으로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두 손가락을 벌려서 아이의 목을 잡고 가늠하는 듯하자, 춘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곡 대내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이의 목을 쥔 손을 툭 떼더니 화가 난 듯이 아이의 뺨을 철썩 갈겼다. 아이가 순간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소리를 들은 고 이낭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서 상방 문 앞으로 달려와서 쿵쿵 머리를 찧었다.

“대내내, 제발, 제발 이렇게 빕니다. 아이는 무고합니다. 제발. 세자야의 아이입니다. 강가의 아이입니다. 대내내…….”

곡 대내내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문밖에서 고 이낭이 애걸복걸하는 소리를 들으며 흡족한 듯 한숨을 내쉬며 춘연에게 분부했다.

“멍하니 서서 무얼 해? 눈치 없는 천것! 차를 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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