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다채로움
묵칠은 주육의 말을 상대하지 않고 오로지 그를 잡아끌고 대청 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영원은 어이없어 죽겠다는 듯 주육을 흘겨봤다. 번번이 예상을 뛰어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나!
이신과 여염은 계단 아래로 내려왔고, 대청 안에 서 있던 고자의 일행 중에 고자의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영 칠야, 오셨군. 아까 주 소육이 무릎 꿇기 전문가라고 칠야를 칭찬하던데? 칠야가 없으니 이렇게 뒷말하더란 말이지. 이건 고자질이 아닐세. 나였다면 절대로 못 참을 일이지!”
“나랑 원 형님이 어떤 친분인데? 흥흥! 그따위 수작이 무서울 것 같으냐?”
주육이 뿌듯한 듯 턱을 치켜들었다.
계단 아래, 이신과 여염이 영원을 향해 공수하고는 키 작은 오황자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장읍했다.
“오소야, 평온합니까?”
오황자는 진지한 얼굴로 공수하며 답례하고는 고개를 들고 여염과 이신을 번갈아 봤다.
“당신이 여 장원, 당신이 이 전려군요. 두 사람의 문장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좋은 문장이더군요.”
“오소야, 과찬이십니다.”
여염과 이신이 막 사양하는데 영원이 말을 무지르며 나섰다.
“천하 1등이 과찬은 무슨. 너무 겸손한 것도 교만일세.”
여염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모르는 것이 있다고 했지? 마침 잘 되었다. 장원이 여기 있고 저쪽에 방안, 탐화, 전려도 다 있으니 제대로 가르침을 구해라.”
영원은 오황자에게 이야기하면서 시선은 여염과 이신을 바라봤다.
묵칠은 자리로 돌아가서 조금 불안한 듯 차를 마셨다. 소자람이 막 영원과 인사치레하고 돌아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묵칠이 그를 잡아당겼다.
“왜 그래?”
소자람이 돌아보며 묻자 묵칠은 주변을 둘러보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일어서서 수상쩍게 소자람을 향해 손짓했다. 소자람이 피식 웃었다.
“왜 이러는 거냐. 몇 달 못 본 새에 왜 이렇게…….”
묵칠이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쉿! 아까 저 오소야, 형님도 봤지?”
“봤지. 그게 왜?”
소자람은 대답하면서 주변을 한참 둘러보고서야 여염의 손을 붙잡고 진안방과 이야기 중인 오소야를 발견했다.
“참 잘생겼어. 공들여 빚은 도자기 같은 얼굴이야.”
묵칠이 다시 쉿 소리를 냈다.
“쉿!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돼. 어느 댁, 어느 댁 오소야인 줄 알아?”
“어느 댁인데?”
소자람은 오황자 쪽으로는 조금도 연결하지 못했다.
“천가(天家: 천자 가문)!”
묵칠이 하늘을 가리키고 또 가리키자 소자람은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 천가? 아!”
소자람이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네 말은…….”
소자람은 말을 다 하지 않고 휙 돌더니, 무얼 물었는지 진안방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웃게 만든 오황자를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다. 묵칠은 소자람을 휙 잡아 돌렸다.
“쉿! 소란 피우지 마라! 저기…….”
묵칠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비딱하게 이쪽을 보는 것 같은 영원을 향해 입을 비죽였다. 소자람이 대답하기도 전에 영원이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형제 둘이 집에서 다 못한 말이 있어서 여기서도 이렇게 붙어 있는 거냐?”
“소칠이야 원래 이렇게 성가시게 굴잖소. 소 대랑이 막 새장에서 풀려났는데 제대로 놀게 해줘야지!”
주육이 얼른 옆에서 거들었다. 소자람은 묵칠의 손을 꼬집고는 둘이 함께 일어났다. 영원은 묵칠과 소자람을 번갈아 보면서 뼈 있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소칠의 안목이 참 대단하구나. 흠잡을 수가 없어.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니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나도 알지! 칠 형님, 걱정할 것 없어! 나도 안다!”
묵칠이 얼른 태도를 밝히자, 주육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무슨 이야기 하는 거냐? 알긴 뭘 알아? 수수께끼냐? 나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소칠 집안일이다. 무슨 일이겠느냐. 소칠 집안일, 그리고 우리 집안일이다. 나중에 알려주마.”
영원이 나서서 주육을 상대했다. 주육은 금세 신이 났다.
“집안일? 묵가에 무슨 일이 있을 게 있어서? 알았다! 네 할머님이 또 혼담 이야기를 하더냐? 너, 죽어도 안 된다고 해라. 명가 삼낭자를 해치면 안 되지!”
“닥쳐라!”
묵칠은 주육이 명 삼낭자와의 혼담을 입에 올리자마자 골이 지끈거렸다.
“칠 형님, 이 일이!”
“걱정하지 말고 이 형님에게 맡겨라.”
묵칠이 바라보자 영원이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동저아가 나선다고 했으니, 나에게 맡겨도 절대로 문제없지!
“그럼 나는? 나도!”
주육이 얼른 얼굴을 내밀었다. 원 형님과 관련된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빠질 수가 없었다.
“넌 일단 일이나 생기고 말해라.”
영원은 주육을 흘겨보고는 오황자 쪽을 힐끔 봤다. 사실, 온 신경이 오황자에게 쏠려 있었다. 처음으로 오황자를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기로 한 후 곧바로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오에겐 작은 일도 생겨서는 안 되니까.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오황자가 중간에 서고 여염이 오른쪽, 이신은 뒤에 서 있었다. 진안방은 오황자 맞은편에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웅크리고 앉아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전시 때 쓴 책론에 관한 오황자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진안방은 오황자를 만난 적은 없지만, 방안이 된 실력인 만큼 통찰력과 영리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황자는 영원과 함께 왔고 여염과 이신이 어딜 가든 따르고 있었다. 기품 넘치는 언행에 또 오소야란다. 이 오소야가 누구일지 불 보듯 뻔한 일인데, 어찌 감히 서서 내려다보며 이야기하겠나.
오황자는 매우 집중해서 들으면서 수시로 감탄했다.
“그런 것이었군요! 진 방안이 직접 본 것들인가요? 흠, 이제 알겠군요. 고맙습니다. 진사들은 모두 학식이 깊고 식견이 넓은 재자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일갑은 더더욱 천하에 드문 영재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렇군요!”
오황자의 감탄에 주변에 모인 진사들은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오늘 이 대청 안팎에 모인 사람은, 주육만 빼고 다 영리한 사람이었다. 여염과 이신이 오황자와 함께 돌아다닐 때만 해도 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더럿 있었지만, 진안방이 거의 무릎 꿇듯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걸 보고 나서는 오소야의 신분을 모를 사람이 없었다. 다만 서로 속으로만 훤히 알고 있을 뿐이었다. 상대가 미복하고 신분을 감추려고 하니, 같이 이 놀이에 동참해서 모르는 체하는 게 제일 좋을 것이고.
오황자가 말하는 어머니란 당연히 영 황후인데, 영 황후가 진사들을 그렇게 평가했다고 하니, 그 뿌듯함과 영광을 말로 할 수 없었다. 역시 황후 아니랄까 봐! 영 황후는 매우 영명한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책을 많이 읽은 것 같군요. 문장을 쓰기 시작했습니까?”
대담하고 속셈 있는 서생 하나가 오황자의 정체를 모르는 척 다가와서 공손하게 물었다.
“이미 여덟 살, 어리지 않습니다. 책은 많이 읽지 못했어요. 어릴 때 몸이 허약해서 근래에야 겨우 좋아졌거든요. 아직 글짓기를 시작하지 않았고요. 공자도 올해 신진 진사인가요?”
오황자는 대범하게 대답하다가 질문한 서생이 벌써 반쯤 무릎을 꿇은 걸 바라봤다. 진안방도 아직 무릎을 꿇고 있는 걸 보고는 서생이 대답하기 전에 여염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앉아서 이야기하지요.”
“그러지요.”
여염이 티 나지 않게 살짝 허리를 숙였다. 옆에서 귀를 세우고 분부를 기다리던 사환이 얼른 다가와 의자와 탁자를 놓고 차와 간식을 주르륵 올려놓았다. 오황자가 먹든 말든, 한 상 가득 차려놓아야 했다.
“학생, 이갑 제 49등, 성은 유, 이름은 의경입니다.”
유의경이 한쪽에 자리 잡고 앉으면서 오황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안 그래도 얼굴 내밀러 온 것이니 얼른 이름을 고해야 했다.
“자(字)가 있습니까?”
의자에 앉은 오황자는 다리가 땅에 닿진 않아도 매우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이신은 허공에 뜬 오황자의 다리를 보고는 곁에 있는 사환을 향해 눈짓했다. 사환은 뜻을 바로 알아듣고 금세 받침대를 들고 와서 오황자 다리 아래 놓았다.
“수정(守正)입니다.”
유의경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오황자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생각났다. 유 선생의 책론, 염법(鹽法: 소금의 밀매를 단속하기 위해 제정한 형법)에 대해 쓴 것이지요. 좋은 문장이었어요. 다만 선생이 쓴 염법을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염법은 민생에 관한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어요.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선생.”
“가당치 않습니다. 가당치 않습니다.”
유의경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가 쓴 책론은 염법이 맞았다. 오황자가 자기 문장을 읽었다니. 이렇게 똑똑히 기억하다니. 게다가 염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다니. 정말이지, 천생 성명하신 분이로세!
어느새 맨 앞으로 다가온 강환장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진사들의 문장을 모두 읽었습니까? 아직 어린데 벌써 정무에 이토록 마음 쓰다니요. 태생이 비범하고 큰 뜻을 품은 분이시로군요.”
“특별한 일은 아니지. 글공부하는 사람 중에 진사의 문장을 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는 오소야 나이쯤에 막 천자문을 시작했는데 글선생이 그해 진사 문장을 읽으라고 하셨는걸. 다만 나는 오소야처럼 영특하지 못해서 외우기만 했지,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고. 글자 하나하나는 분명 이해하는데 합치니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더군.”
이신이 얼른 대답하자 모두 저마다 심사를 품고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했다. 이신의 말에 맞장구치며 자기가 진사 문장을 외웠을 때 나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강환장 말에 맞장구치며 오황자의 큰 뜻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껄껄 웃기만 하고 끽소리도 하지 않고 벽화처럼 서 있었다.
강환장이 샛눈을 뜨고 이신을 흘겨보고는 막 입을 떼려는데 사환 하나가 다급하게 들어와 강환장을 살짝 잡아당겼다. 강환장이 노려보자 사환이 얼른 고했다.
“세자, 귀댁의 어멈이 바로 저기에서 급한 일로 뵙길 청합니다. 귀댁의 여식솔에게 문제가 생겼답니다.”
강환장은 멈칫하다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서둘러 모두를 향해 두루두루 공수하고는 곧바로 돌아섰다.
강환장을 찾아온 것은 곡 대내내와 함께 온 왕 어멈이었다. 왕 어멈은 강환장이 다가오자 얼른 다가가 강녕이 해 이낭자를 때린 일을 나직이 고했다.
“대내내 말씀이, 우선 두 분 낭자를 모시고 저택으로 돌아가시겠답니다. 다만 두 분 낭자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 혼자는 저지하지 못할 거라고, 어쩌면 좋을지 여쭈라고 소인을 보내셨습니다. 행여 난리를 부리면…… 어쩌냐고요.”
강환장은 강녕이 해 상서의 금지옥엽 해 이낭자를 때렸다는 말에, 그것도 뺨을 때렸다는 말에 눈앞이 순간 캄캄해졌다. 나를 죽일 셈이냐!
“돌아가자!”
강환장은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어졌다. 얼른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서 자초지종을 물은 뒤에 어서 사과하러 해 상서부에 가야 했다.
계소영, 영원, 여염과 이신 등 세심한 사람들은 모두 강환장이 서둘러 돌아가는 걸 발견했다. 계소영은 즉시 관사를 불렀고 관사는 그가 묻기도 전에 후화원에서 일어난 일을 세세히 고했다.
계소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이지 어찌 이렇게 다채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