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51화 (351/463)

351화: 공손한 강환장

“그 사람 말고. 비녀를 뺏은 애도 못됐지만. 내 말은 비녀 보고 혼수 어쩌고 했던 애.”

강녕은 ‘이(李)’자를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알게 뭐람. 지난번 입궁했을 때 그 둘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는걸.”

정신을 차린 강완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심히 돌이켜봤다. 입궁했을 때 신기한 구경하느라 눈이 돌아가서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없었어!”

강녕이 지극히 단호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녀 역시 넋이 나갔었다. 하지만 강완보다 자신 있었다. 자신은 총명하고 영특한 식견 넓은 사람이다. 정신이 팔려서 다른 걸 신경 쓰지 못할 리가 있나!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그 자리에 없었음이 틀림없다.

“그럼 신경 쓸 것 없어.”

강녕이 그토록 단호하게 없다고 하자 강완도 순간 마음을 놓고 태연하게 손사래 쳤다.

“입궁도 못 해 본 집안이라면 대갓집이 아니야. 경성에 말단 관리가 얼마나 많아. 어느 집 애인지 알게 뭐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강완의 말에 강녕은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철저히 가라앉히고 다시 길게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언니, 이 화원, 참 아름답다. 어딜 봐도 참신해. 계가 저택도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았어? 어떻게 이렇게 새롭지? 참 이상하네. 그리고 화초도 그래. 어쩌면 이렇게 예쁘지? 우리 화원도 푸르긴 한데 꽃이 안 피잖아. 피어도 예쁘지 않고.”

강가 저택은 그녀들이 태어난 이래 저택 보수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다. 화초를 가꾸는 담당 종복은 사실 두 사람이 아주 어렸을 때는 있었다. 나중에 진 부인이 팔았다. 화초 담당이나 찬모 같은 손재주가 필요한 종복은 꽤 값이 나가서, 조금이라도 값나가는 종복은 진 부인이 진작 다 팔아치웠다.

“가자. 우리 구경 좀 해.”

강완은 속셈을 굴리며 강녕과 함께 일어나 오던 길로 걸어갔다.

계 탐화를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쩌면 바로 계 탐화가 나를 점찍은 건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강완의 머릿속은 온통 아름다운 상상뿐이었다. 그녀는 걸어가면서 가끔 까치발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막 구경하기 시작했을 때, 격식을 갖춰 차려입은 관사 어멈 둘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두 사람을 본 두 어멈은 동시에 안도하며 후다닥 다가가 웃음 지었다.

“두 분 낭자를 모시라고 우리 어르신이 소인을 보내셨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나랑 동생 둘이 편하게 돌아보면 되네.”

강완이 매우 우아한 모습으로 말했지만, 두 어멈은 강완과 강녕 좌우로 가서 섰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르신의 분부입니다. 대낭자와 이낭자를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고 모시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어르신도 참. 남도 아닌데 뭘 또 이렇게까지.”

강녕은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백 노부인이 이렇게 특별히 대해주시는구나. 보아하니……. 음, 분명 그런 거야!

“언니, 우리 아직 어르신께 문안드리지 않았는걸. 구경하지 말고 어르신하고 말씀 나누러 가자.”

두 어멈은 눈빛을 주고받고는 동시에 아래로 눈을 흘겼다. 어르신은 이를 다 악물고 이 두 물건을 잘 지켜보라고 분부하셨다. 수녕백부, 정말 명불허전, 온 집구석이 파렴치하구나.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강완은 매우 찬성했다. 두 사람이 돌아서서 왔던 길로 돌아가자 두 어멈도 긴말 없이 한 사람은 앞에 서고 한 사람은 뒤를 따랐다. 두 어멈은 이리저리 모퉁이를 돌더니 두 사람을 곧바로 중문으로 이끌었다.

중문 안, 곡 대내내가 벌써 기다리고 있다가 두 사람을 보고는 눈은 가늘게 뜨면서 매우 즐거운 듯 웃음 지었다.

“일이 좀 생겨서 지금 바로 돌아가야 해요.”

“어머니는?”

강완은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를 바짝 따라오던 어멈이 길을 막았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접자희를 보고 계시잖아!”

“어머니는 신경 쓰지 말아요. 벌써 사람을 보내 오라버니에게 알렸어요. 가요. 우리가 돌아갈 때쯤이면 오라버니도 도착했을 거예요.”

곡 대내내가 손수건을 휘두르고는 돌아서서 마차에 올랐다.

“나랑 언니 마차는? 한 마차에 타지 않을 거야!”

강녕은 곡 대내내 마차 한 대만 온 걸 보고 언짢아서 외쳤다. 옆에 있던 어멈이 어서 마차를 끌고 오라고 분부하자 잠시 후 허드렛일하는 어멈이 진 부인과 강완, 강녕이 함께 타고 온 마차를 끌고 나왔다. 강완과 강녕이 마차에 오른 후, 수녕백부에서 온 두 마차 몽땅 출발해 버렸다.

마차를 배웅한 두 관사 어멈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월동문 안으로 들어간 뒤, 한 어멈이 다른 어멈을 붙잡고 나직이 물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저 강가 이낭자가 방비각에서 해 이낭자를 때렸잖아. 해 이낭자의 얼굴이 다 부었어.”

감출 필요 없는 일이었다.

“뭐?!”

물었던 어멈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한참 만에 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두 사람은 같이 한숨을 내쉬고는 수군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강환장은 원래 조금 일찍 계가에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고 이낭 일로 시간이 지체되어 계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이른 시간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선 강환장은 진작 기다리고 있던 사환을 따라 계 천관의 서재로 직행했다.

계 천관은 평상복에 복두도 매지 않았는데,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강환장이 들어가 예를 갖추자, 계 천관은 질린 듯이 눈짓했다.

“앉게. 허례는 필요 없네. 일찍 오라고 한 건 당부할 일이 있어서인데, 됐네. 변명할 것 없네. 분명 불가피한 일이 있었을 테지.”

계 천관은 변명하려는 강환장을 손을 들어 저지했다. 강환장은 변명을 삼키고 고개를 숙이며 ‘예’ 하고 대답했다. 늦은 건 확실히 자기 잘못이었다. 그동안 해 온 모든 행동도 모두 자신이 거만하게 군 것이었다. 계 천관이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문회에 오황자도 오시네.”

계 천관은 본론으로 돌입했다. 두 사람 사이엔 본론 말고 할 말도 없었다.

“오황자요? 그럼 왕야는요?”

강환장이 민감하게 물었다.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나. 왕야는 우선 착실히 실무를 하자고. 대놓고 서생들과 교제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거늘, 자네, 자네가 뒤에서 이 사람과 사귀고 저 사람과 가까이 지내라고 왕야를 부추긴 건가?”

계 천관이 화를 냈다.

“가당치 않습니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습니다.”

대상국사 일이 있고 난 후, 강환장도 꽤 정신을 차렸다. 지금도 서둘러 일어나서 공수하며 사죄했다.

“단지 오황자가 오신다기에, 오황자가 어쩌면 왕야께도 함께 가자 하지 않았을까 했을 뿐입니다.”

“왕야도 함께? 오황자는 궁에 어머니가 계시고 궁 밖에 외숙이 있네. 왕야에게 함께 가자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 생각은 항상 기상천외하군.”

계 천관은 매우 가차 없이 말했다. 강환장을 대할 때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었다.

“예.”

강환장은 고개를 숙인 채 잘못을 인정했고, 계 천관은 그런 강환장이 뜻밖이라는 듯 한참 동안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사람이 바뀐 것 같다고나 할까.

“왕야의 책략을 내가 조금 전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오황자 뒤엔 영가가 있으니 분명 가만히 있진 않을 걸세. 영가가 움직인다면야 그보다 좋은 일이 없지. 태자가 누굴 가장 거리끼겠나? 바로 적자인 오황자네. 두 사람 모두 파멸하면 제일 좋아.”

계 천관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강환장은 길게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개 숙인 채 ‘예.’ 하고 대답했다.

“이따 오황자가 오시면 곁에서 이야기 나눠 보게. 오황자의 성품, 인품과 영리함은 어떤지 살펴보란 말일세. 지피지기가 가장 중요하네. 지금 자네는…….”

계 천관이 위아래로 강환장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기연을 만난 건지, 드디어 젊은이다운 겸손함이 느껴지는군. 아주 좋네. 오황자를 공손히 대하게. 잘 보이고. 가깝게 지낼수록 기회가 많아질 걸세.”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환장의 공손한 태도에 계 천관은 기분이 좋아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가 보게. 사람들도 거의 도착했네. 그리고.”

강환장이 문턱을 넘으려는 참에 계 천관이 돌연 그를 불러 한마디 더 당부했다.

“이신을 만나면 반드시 싹싹하게 대해야 하네. 설령 그쪽에서 욕을 퍼붓더라도 자네는 가능하면 참게. 큰일도 아닐세.”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가와의 문제는 제가 이가에 잘못한 것입니다. 양보하고 참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동이 함정을 판 것이고, 곡씨를 억지로 강가에 밀어 넣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음을 이번엔 강환장도 깨달았다. 이동의 열몇 살 겉가죽 아래 환갑 지난 할망구가 들어앉았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계 천관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군. 아주 잘하고 있네. 가 보게.”

강환장이 계 천관의 서재에서 나와서 사환을 따라 후화원 뒤쪽 가장 너른 대청에 도착했을 때 대청 안은 벌써 떠들썩했다.

대청이 보이자 사환은 공손하게 물러났다. 강환장은 걸음을 늦추고 유심히 대청 안을 살폈다.

대청 안팎에 여남은 명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대다수 수군수군 담소를 나누거나 붓을 들고 글을 쓰고 있었다. 대청 정중앙, 사람이 가장 많은 무리에 주육이 중간에서 고자의를 붙들고 늘어지고 있었다.

“나와 소칠이 헛소리하는 건 몰라도 너도 같이 헛소리하다니. 안 되지! 다른 사람은 넘어가는지 몰라도 나는 안 돼! 어쩔 건가? 너도 3년 동안 이루지 못했다는 그 문장, 한 번 읊을 건가? 사실 넌 나보다 못하지. 나는 북을 치는 사람이라도 맞히지만, 너는 활시위를 당기지도 못하잖아!”

고자의는 주육에게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면서도 입씨름하는 걸 잊지 않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긴! 난 진사가 된 사람이네! 꼴찌니 뭐니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라. 꼴찌면 뭐? 그래도 진사 출신이다!”

주육이 가차 없이 대답했다.

“그럼 뒤에서 일등이라고 해야지! 앞으로 네 묘비명에 적힐 진사 출신 뒤에 ‘뒤에서 일등’이라는 글도 적어야 한다!”

모두 우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고자의는 일단 배포가 크고 또 주육이 꼴찌라고 놀리는 것에 진작 익숙해져서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자 같이 웃었다.

“이거 놔라! 네 꼴 좀 보아라. 돼지 잡는 백정처럼…….”

고자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차, 했다. 주육은 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계소영이 먼저 웃음을 터트렸다. 여염은 음정이 다 변해서 웃었고 이신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웃어댔다. 모두 그 말의 묘미를 알아들었다. 고자의를 붙든 주육이 돼지 잡는 백정이면, 고자의 자신은 뭐가 되나. 하필 본인이 한 말이라니!

대청 안에 웃음소리가 지붕을 날릴 듯이 커졌다. 주육은 웃느라 고자의를 붙잡을 힘도 없어져서 자연스럽게 팔걸이의자를 잡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난감해 죽으려고 하는 고자의를 가리키며 미친 듯이 웃느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온 대청에 웃음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안으로 들어선 강환장은 옆에서 빙긋이 웃으며 지켜보다가 아까 가려서 안 보이던 곳을 들여다봤다. 역시나 영원은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영원은 오황자와 함께 오려는 모양이었다.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주인인 계소영이 사방을 살피다가 강환장을 보고는 서둘러 맞이하러 다가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