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상의 없이 때리다
해 이낭자는 얼른 조 구낭자를 향해 눈짓하고 함께 다가가 한 사람은 강녕, 또 한 사람은 강완의 팔짱을 끼고 간식이 놓인 긴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다들 장난치는 거예요. 항상 이렇게 지내서 그렇지, 다른 뜻은 없어요. 개의치 말아요. 어서 앉아요. 무슨 차 마실래요?”
지난번 입궁했을 때 강완과 강녕 모두 구경하느라 정신없어서 누가 누군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도 앞에 있는 낭자들이 너무 많고 놀림 받아서 정신이 나간 터라 지금 양옆에서 자신들을 붙잡고 난처함을 풀어주는 해 이낭자와 조 구낭자가 어느 댁 낭자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것만 봐도 말단 관리의 여식인 것만은 틀림없겠지?
“나랑 언니는 옷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강녕은 아직 우기는데 조금은 똑똑한 강완이 호통치며 막았다.
“그만해. 별일도 아닌 일로 따질 것 없어.”
해 이낭자는 폭소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맞아, 맞아. 별일도 아니에요. 원래 팔낭자는 악한 마음도 없이 저래요. 신경 쓰지 말아요.”
까칠한 성격인 조 구낭자는 짓궂은 얼굴로 강녕을 바라봤다.
“옷이 많으면 관리할 시녀를 좀 더 두어야죠. 주 태후는 옷이 많아서 옷 관리하는 시녀만 오륙십 명이었다는 걸요. 이낭자에겐 옷, 장신구 관리하는 시녀가 몇이나 있나요? 아이고, 우리 같은 사람은 옷, 장신구가 너무 적어서 시녀 하나면 충분한데, 이낭자 곁엔 따로 관리하는 시녀가 있겠네요?”
낭자들은 다른 일은 모두 제쳐놓고 오로지 강완과 강녕을 빤히 보며 구경했다.
주 팔낭자와 조 육낭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생각은 그다지 없고 부자인 걸 자랑하는 재미로 여기는지라 이런 소란스러운 구경이 제일 좋았다.
“당연히 따로지.”
강녕은 좀 얼떨떨해져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우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체면은 세워야 했다.
강완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집에서 망상할 때는 무궁무진하던 지혜와 기민함이 오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영리하고 수완 좋다고 자부하는 그 머리가 지금은 하나도 굴러가지 않았다.
“그럼 옷 관리하는 시녀가 몇인가요? 장신구는요?”
조 구낭자가 또 캐물었다.
강녕은 조금 당황한 듯 강완을 바라봤다. 강완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많아요. 어쨌든 많아요!”
강녕도 은근히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늑대 무리에 에워싸인 기분이랄까.
“많은 게 몇인가요? 설마 옷 관리하는 시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가요?”
조 구낭자가 강녕을 이대로 봐줄 리가 있나.
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에서 곧바로 웃음소리가 터졌다. 평소에 강가와 고가에서 벌어진 궁색한 이야기들을 모친에게서 적잖게 들은 조 육낭자는 한 손으로 주 팔낭자 팔짱을 낀 채 다른 손으로 강녕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주 태후보다 더 많진 않겠지. 말해 봐, 대체 몇이야? 셋? 다섯? 아님 열?”
“그렇게 많을 리가 있어? 그냥 하나야. 옷 관리하는 사람 하나, 장신구 관리하는 사람 하나.”
강완은 일단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눈앞에 벌어진 것부터 넘기자고 결정했다.
“와!”
주변에 모인 낭자들은 이 지경까지 뻔뻔한 두 사람의 모습에 안목을 제대로 넓힌 기분이었다. 다들 까르르 웃으며 하나같이 들뜬 얼굴로 몰려들었다. 개중에 좀 곧이곧대로인 낭자도 있어서, 그 낭자가 불퉁하게 물었다.
“강가는 가난해서 저택도 저당 잡혔다면서?”
“얘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수녕백부엔 은자가 넘쳐나!”
강완과 강녕이 대답하기 전에 곁에 있던 낭자가 말 꺼낸 낭자에게 눈짓하며 얼른 화제를 다시 돌렸다.
조 구낭자가 모두를 향해 눈짓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맞아. 십일낭, 허튼소리 하지 마. 수녕백부엔 첩 하나 들이면서 단번에 2, 30만 냥을 내놓는걸. 강 대낭자와 이낭자 옆에 시녀 수십 명 있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지!”
탐구심이 강한 낭자 하나가 앞으로 나와 물었다.
“정말로 고가 낭자를 집에 들이려고 2, 30만 냥을 쓴 거예요?”
“2, 30만 냥이 뭐 대수라고.”
강녕이 턱을 치켜들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주변의 낭자들이 우호적이지 않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공격을 되받아칠 생각으로 무의식적으로 온몸의 가시를 꼿꼿이 세웠다.
“와!”
낭자들은 놀라 고함치며 까르르 웃었다.
“정말 대단한걸?”
조 구낭자는 손뼉을 치며 과장한 얼굴로 고함치며 부러워했다.
“이낭자, 이 비녀가…….”
조 구낭자가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응? 이게 왜 도금 같지?”
“헛소리! 적금이야! 게다가 속이 꽉 찬 적금이야. 얼마나 무거운데!”
강녕은 순간 다급해졌다. 이 비녀는 이동의 혼수 중에 고 이낭이 훔친 것을 강녕이 빼앗아 온 것으로 확실한 적금이었다. 이가 물건 중에 도금이 있을 리가 있나.
“한번 보자!”
조 구낭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강녕의 비녀를 뽑아냈다.
“어머, 정말 무겁네.”
조 구낭자는 비녀의 무게를 가늠해 보고는 높이 치켜들고 돌아서서 모두를 향해 웃어 보였다.
“작년에 새로 유행했던 양식이네.”
어느 낭자가 큭큭 웃으며 말하자, 조 구낭자도 비녀를 흔들어대며 정색하고 말했다.
“이낭자에게 보석이랑 장신구가 너무 많아서 이건 올해 유행하는 양식이 아니라 작년 유행인 걸 잊었나 보네.”
주 팔낭자는 올곧은 편이었다.
“그게 아니라 녹여서 새로 만드는 걸 잊었겠지.”
“내가 좀 볼게.”
작년 유행이라는 말을 들은 해 이낭자는 강가에서 이동의 혼수를 가로챘다는 추문을 곧바로 떠올렸다. 어쩌면 이 비녀, 그 혼수일지도 모르겠는데?.
“내 동생에게 돌려줘!”
강완은 이미 낭자들과 교제할 기분도 싸울 기분도 사라졌다. 너무나 귀중한 비녀라서 반드시 돌려받아야 하는 것만 아니면 당장 여동생을 끌고 돌아가고 싶었다.
조 구낭자는 강완을 흘겨보면서 비녀를 해 이낭자에게 건넸다. 해 이낭자는 비녀를 쥐고 빙글 돌렸다. 역시나, 비녀 중간에 두 희(喜)자 중간에 꽃 모양 같은 이(李)자가 있었다.
“비녀 돌려줘!”
해 이낭자를 향해 돌아선 강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해 이낭자는 입을 비죽이며 상대도 하지 않고 비녀를 조 구낭자에게 건넸다.
“이것 좀 봐.”
조 구낭자는 해 이낭자가 시키는 대로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꽥 고함쳤다.
“이게 뭐야? 왜 ‘이’자가 있어? 이가 대낭자의 혼수지?”
“허튼소리!”
강완과 강녕이 동시에 날카롭게 외쳤다.
“얼른 비녀 돌려줘!”
강완이 비녀를 뺏으려고 덥석 달려들자 조 구낭자가 비녀를 치켜들고 옆으로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해 이낭자에게 넘겼다. 해 이낭자와 가깝게 서 있던 강녕이 비녀를 덥석 빼앗고는 다른 손을 높이 치켜들어 해 이낭자의 뺨을 철썩 갈겼다.
짝 소리와 함께 놀라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 뒤, 주위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해 이낭자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완전히 넋이 나갔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처음으로 맞았다. 게다가 얼굴을!
“어서 가자!”
사고 쳤음을 깨달은 강녕은 강완을 덥석 잡고 돌아서서 냅다 달렸다.
“막아!”
두 사람이 허둥지둥 달아나려 하자 초 삼낭자가 가장 먼저 고함쳤다.
“내버려 둬.”
해 이낭자가 정신을 차리고 초 삼낭자를 덥석 잡더니, 비틀비틀 달아나는 강완과 강녕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봤다.
“잡아서 뭐 해. 똑같이 때리기라도 해?”
“네 얼굴이…….”
초 삼낭자가 해 이낭자에게 후다닥 다가갔다. 얼굴 위의 아주 뚜렷한 손가락 자국을 보자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다 떨어졌다.
다른 낭자들도 모두 쭈뼛쭈뼛 에워쌌다. 이 나이 될 때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 경성에서 사람들과 오랜 시간 교제해 오면서 서로 아무리 마음이 안 맞아도, 설령 원한이 있더라도 이렇게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일을 어떻게 넘어가! 가자, 어르신에게 가자. 저렇게 염치없는 사람은 처음이야.”
조 구낭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해 이낭자를 끌고 달려가려 했다.
“맞아! 제대로 벌줘야 해. 후회할 만큼 벌줘야지!”
조 육낭자도 따라 외쳤다. 주 팔낭자는 뒤따라가 가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가는 다 야만인이야. 너무 무서워!
“됐어.”
해 이낭자가 조 구낭자를 끌어당기며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강 대낭자와 강 이낭자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출타해서 연회에 참석한 거잖아. 예법을 모르는 건 당연해. 따질 것 없어. 게다가 난리를 피우다가 어르신들까지 알게 되면 계가 망신이잖아. 백 노부인이 얼마나 화를 내시겠어. 강 대낭자와 강 이낭자가 벌 받는 건 알 바 아니지만, 계가의 체면이 상하고, 어르신을 거스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야.”
“하지만, 네가 너무 억울하잖아!”
초 삼낭자는 씩씩거리는데 해 이낭자는 매우 담담했다.
“억울할 것도 없어. 개, 고양이한테 긁힌 셈 치면 돼. 얼굴이나 좀 봐줘. 붉어졌어? 화끈화끈한 게 아프네.”
“당연히 붉어졌지. 여기, 그리고 여기도. 손자국이 다 생겼어!”
초 삼낭자가 해 이낭자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졌다. 마음도 아프고 화도 났다. 다음에 강가 자매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얼굴에 물을 부어줄 거야!
해 이낭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초 삼낭자에게 말했다.
“그럼 난 먼저 돌아갈게. 네가 우리 할머님께 살짝 말씀드려 줘. 그리고 백 노부인께도.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먼저 돌아갔다고 말씀드려. 절대로 일 키우지 마.”
“걱정하지 마. 휴. 너도 참. 됐어. 알겠어. 쥐 잡으려다가 꽃병 깨질까 봐 그러는 거지.”
초 삼낭자가 승낙하자 해 이낭자는 두루두루 예를 갖추고 웃어 보였다.
“이 일을 숨기려면 다들 도와줘야 해. 다들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줘. 별일 아니잖아. 백 노부인 심기를 거스르면 안 돼.”
조 구낭자가 모두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네 그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입 꾹 다물게.”
모두 이러쿵저러쿵 한마디 하면서 해 이낭자를 뒤따라 잠시 배웅했다. 다들 며칠 뒤에 병문안 가겠다고 하고는 해 이낭자가 시녀를 데리고 화청의 작은 길을 통해 중문 너머로 사라지는 걸 바라봤다.
강완과 강녕은 방향도 모르고 무턱대고 달렸다. 단숨에 저 멀리 달아난 후에야 나무를 붙들고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비녀는? 가지고 왔어?”
막 숨을 돌리자마자 강완이 다급하게 물었다. 강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을 펼쳐서 꾹 쥐고 있던 비녀를 보여주었다.
“그럼 됐어!”
강완은 한시름 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 멀지 않은 석가산 옆에 돌의자가 있길래 그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강녕도 뒤를 따라 돌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둘이 앉아서 헉헉대며 잠시 쉬다가 강녕이 숨을 돌리고 강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언니, 그 사람 누구야? 어쩌면 저렇게 못됐지?”
“누구? 네 비녀를 뺏은 애?”
강완은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다.
아까 아녕이 사람을 때리는 걸 계가 사람이 봤을지 모르는데. 아녕은 이렇게 경솔한 게 문제지. 인내심이 조금도 없어.
혹시……, 아니야, 모를 일이야. 계 탐화의 아내는 종부가 될 사람이야. 종부는 매서워야 해. 수완이 있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