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호사가들
“그래, 그럼 서 있으려무나. 그냥 서 있지만 말고 여기저기 둘러보렴. 경성에 온 것이 늦어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으냐. 마침 잘 되었다. 젊은 부인들이 많으니 이야기 나누렴.”
곁에 서서 기민하고 재빠르게 주변을 살피던 소 구내내가 얼른 다가와서 곡 대내내를 데리고 나이 비슷한 각 가문의 며느리를 차례로 소개해줬다.
원래 장 태태는 백 노부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고 상 대내내도 그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곡 대내내가 그쪽으로 막 다가가자마자, 상 대내내의 대시녀가 얼른 상 대내내에게 귀띔했다. 상 대내내는 강환장의 새 부인이란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일어서서 장 태태를 잡아당겼다.
“계가 화원이 경성 일색이라는 말을 산서에 있을 때부터 들었어요. 후원에 가서 좀 거닐어요.”
“좋아요.”
장 태태는 곧바로 일어서서 웃으며 상 대내내를 바라보며 고맙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장 태태와 상 대내내는 그보다 더 살금살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살며시 움직였지만, 모두 그 모습을 보았다. 곡 대내내가 다가오는 걸 본 그 부근 사람들의 시선이 절반은 곡 대내내에게, 나머지 절반은 장 태태에게 향했었다.
백 노부인은 못 본 체했다. 어쨌든 서로 피하는 게 좋은 집안이었다.
소 구내내는 곡 대내내를 사람들에게 일일이 소개했고, 백 노부인과 전 노부인은 계속해서 고릿적 이야기를 했다.
한 바퀴 소개를 마친 소 구내내가 자리를 뜨자, 자리를 에워싼 어린 며느리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들 호기심이 목까지 치민 얼굴로 곡 대내내를 힐끔거렸다.
“고 부인하고 함께 오셨나요?”
한 며느리가 화젯거리를 찾아서 말을 걸었다.
“우리 가문은 고 부인과 인척이랍니다. 아주 가까운 인척이지요. 어머님 친동생이 고 부인 가문과 혼인했거든요.”
곡 대내내는 얼른 설명했다. 승상 가문과 친척으로 얽힌다니, 그야말로 위풍당당할 일이었다.
“귀댁에 고가 여식을 첩으로 들였다면서요. 첩으로 들어갔다면 법도상 친척으로 왕래할 수 없답니다.”
고지식해 보이는 한 며느리가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인척은 당연히 윗대로 따져야지, 아랫사람으로 따지는 법이 어디 있나요.”
곡 대내내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곡 대내내가 고 부인과 인척이라고 말하자마자, 줄곧 그쪽을 흘겨보고 있던 마 부인이 한창 백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는 고 부인을 잡아당겨서 곡 대내내가 한 말을 속삭였다. 고 부인의 얼굴에 순간 노여움이 치밀어 오르더니, 곡 대내내의 말이 다시 끝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인척은 무슨! 고유덕 일파는 십수 년 전에 종친에게 쫓겨나서 진작 족보에서도 제명됐습니다. 그 당시 꽤 떠들썩했던 일이랍니다.”
마 부인도 얼른 맞장구쳤다.
“맞아요, 맞아. 나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고유덕이 종친 조카며느리를……. 이 일뿐이 아니에요. 어찌 됐든 하나같이 악행이었어요. 결국 사당에서도 제명되었지요. 그 당시 난리도 아니었는데……. 쯧쯧. 수녕백부에 이번에 벌어진 일처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마 부인은 혀를 끌끌 차면서 그 김에 곡 대내내 얼굴에 재를 뿌렸다.
곡 대내내는 잠시 어색해하다가 이내 태연해졌다.
“어머님이 인척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곡 대내내가 태연해지자 다른 사람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한 며느리가 살짝 그녀를 잡아당기면서 웃는 얼굴로 물었다.
“귀댁에 그 고 이낭 때문에 족히 은자 20여만 냥을 썼다면서요?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아들을 낳았다던데요?”
“강가에 아들이 어디 한둘인가요.”
다른 며느리가 질투 나는 듯 한마디 보탰다.
“정말로 20만 냥을 썼나요?”
어린 며느리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그 부분이었다.
“그렇다니까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화제의 중심이 된 곡 대내내는 매우 뿌듯해져서 손수건을 휘둘렀다.
“예전에 그 이씨, 지참금이 30만 냥이었는데 그걸 다 고씨 가문이, 그 염치없는 고씨 가문이 다 가져갔다지 뭐예요. 다들 알겠지만, 우리 가문은 법도를 따지는 서생 가문입니다. 그런 무뢰배를 어찌 이기겠어요.”
“대체 어떻게 뜯어 간 건가요?”
다른 며느리가 비집고 다가와 물었다.
“말하자면 창피해서 원…….”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중요한 순간이라 곡 대내내는 말하지 못할 게 없었다. 어차피 고가의 추문이라서 모두가 알도록 떠벌리는 게 좋다고 여겼다.
곡 대내내는 어린 며느리들에게 둘러싸인 채 침을 튀기며 수녕백부의 종복, 정확히는 절대다수 왕 어멈에게 들은 그 사건의 ‘진상’을 이야기했다. 언변도 좋아서, 며느리들은 연신 감탄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곡 대내내를 바라보는 백 노부인의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졌다. 전 노부인은 수시로 곡 대내내를 힐끔 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수녕백부가 아무래도 철저히 몰락할 모양이로군.
진 부인이 편안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접자희를 즐기는 동안, 곁에 앉은 강완과 강녕은 안절부절못했다.
처음엔 그나마 단정하게 앉아 있었지만, 곡 대내내가 자리를 뜬 후로 둘 다 불안해졌다. 마음이 불안하니 당연히 안절부절못했고, 안절부절못하는데도 억지로 앉아 있어야 하니 목을 빼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열심히 상반신을 세우고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강녕이 먼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르르 몰려 있는 나이 비슷한 어린 낭자들을 발견했다.
“언니, 저길 좀 봐. 영안백부 육낭자 맞지? 우리와 친분 있는 집안이잖아! 다들 저기서 놀고 있어!”
강녕은 더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져서 강완을 끌고 가려고 일어섰다. 강완은 저쪽에 잔뜩 몰려 있는 낭자들을 바라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백 노부인이 아직도 두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 어쩌면 따로 불러서 선보려는 게 아니라 벌써 지켜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니, 우리도 가 보자. 육낭자야. 봐봐, 분명 육낭자야. 내가 잘못 볼 리 없어.”
강녕은 벌써 일어서서 강완을 잡아당겼다. 강완은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워져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앉아서 접자희를 보는 사람은 몇몇뿐이었고, 그녀들과 비슷한 나이대 낭자는 하나도 없었다.
아녕의 말이 맞아. 역시 조 육낭자와 함께 있어야 해. 낭자들과 같이 있어야 우리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어.
“응, 가자.”
강완은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서 진중하게 옷자락을 가다듬었다. 지금 두 사람이 입은 옷은 지난번 입궁할 때의 옷을 두 번째 입는 것이었다. 귀한 옷이라서 저도 모르게 계속 매무새를 고쳤다. 잘못하다가 옷이 망가지면 안 되니까.
두 사람은 낭자 무리로 곧장 달려갔다.
묵 육낭자, 명 삼낭자, 그리고 탕 오낭자와 함께 앉아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이동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원 구경하러 혼자 좀 거닐어야겠어요.”
탕 오낭자는 지난번에 궁에 들어갔을 땐 너무 긴장해서 다른 곳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바람에 그날 누가 있었는지 아예 몰랐다. 그래서 같이 입궁했던 강완과 강녕이 누군지 몰랐고, 이동이 그렇게 말하자 망연하기만 했다.
둘 다 매우 영리한 묵 육낭자와 명 삼낭자는 이동의 시선을 따라 힐끔 보고는 금세 깨닫고 따라 일어섰다. 명 삼낭자가 얼떨떨한 표정인 탕 오낭자를 일으켰다.
“가자. 우리도 같이 구경해. 계가 화원은 경성에서 이름난 곳이야.”
한 번에 넷이 일어나니 기척이 작지 않았다. 해 이낭자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강완과 강녕을 벌써 발견하고는, 조금 낭패스러운 모습으로 일어서는 이동을 흘겨보며 빙그레 웃었다. 우습기도 하고 은근히 통쾌한 느낌도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 번 혼인한 적 있는 이동이 매번 낭자들처럼 자기들 무리에 끼어 있는 게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 삼낭자는 강완과 강녕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서서 손수건을 흔들었다. 이동을 따라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인척도 아닌데 자꾸 친분으로 엮이려는 강가가 너무나 진저리쳐지게 싫었다. 두 사람이 이따 또 무슨 말을 해서 속을 뒤집을지 어찌 알겠나. 역시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초 삼낭자가 걸음을 떼려는데, 해 이낭자가 대뜸 붙잡았다.
“저쪽은 이유가 있어서 피하는 거지만, 너는 왜!”
“난 수녕백부 사람이 싫어.”
초 삼낭자가 가차 없이 말했다.
“나도 싫어. 싫어하니까 마침 잘 됐지. 우리…….”
해 이낭자는 거의 가까이 다가온 강완과 강녕을 힐끔 보고는 초 삼낭자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즐겨 보자고.”
“맞아. 구차한 애들 둘이잖아.”
조 구낭자가 얼른 한마디 하고는 까르르 웃었다.
“구차하든 말든 싫어. 알았어. 여기 있을게. 보고 있으면 되잖아.”
초 삼낭자는 해 이낭자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완과 강완은 낭자들 중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영안백부 조 육낭자 조염뿐이었고, 당연히 조염을 향해 달려왔다. 조 육낭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넌더리 난다는 듯 강완과 강녕을 흘겨봤다. 예전부터 경멸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경멸했다. 계가에 손님으로 온 것이라 그렇지, 자기 집이었다면 벌써 손수건을 휘두르고 가버렸을 것이다.
조 육낭자가 함께 이야기 중이던 주 팔낭자를 잡아끌고 돌아서려는데, 두 사람이 입은 옷을 본 주 팔낭자가 뛰어오는 강녕을 눈이 동그래져서 손가락질했다.
“어머, 이 옷, 지난번에 입궁할 때도 이 치마였던 것 같은데. 웃옷도 그렇고. 똑같아. 여기도네? 두 사람 왜 입었던 옷을 또 입고 온 거야?”
주 팔낭자가 놀라서 하는 말에 조 육낭자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수녕백부는 저택도 저당 잡힐 정도로 궁핍한 걸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팔낭자도 참, 신랄하네. 이런 사람인지 평소에 왜 몰랐지.
조 육낭자는 배를 잡고 웃으면서도 까칠하게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게! 한번 입은 옷을 어떻게 다시 입고 나왔대?”
조 육낭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까르르 웃었다. 곁에 있던 낭자들도 몰려와서 강완과 강녕의 옷이 몸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재잘재잘했다.
곁에 있던 해 삼낭자는 조 육낭자와 주 팔낭자의 말에 얼굴이 시퍼레진 강완과 강녕이 안쓰러워서 두 사람을 잡아당기며 미소 지었다.
“우리 집도 그래. 옷이 멀쩡하면 입으면 되지. 내 치마도 봐, 벌써 세 번째 입는걸.”
해 이낭자가 강완과 강녕을 위해 분위기를 풀어주는 해 삼낭자를 부르려고 하는데,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강녕이 고함쳤다.
“우린 너랑 달라! 나랑 언니는 옷이 많아. 다 입지 못할 정도로 많아! 뭘 입었는지 기억 못 할 정도로 많아. 오늘 서둘러 나오느라 실수로 입은 거야! 우리 집에 은자는 얼마든지 있어!”
해 삼낭자는 그 자리에서 굳었고, 주 팔낭자도 해 삼낭자처럼 넋이 나갔다. 강완과 강녕의 옷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망신 주려는 게 아니라 놀라서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조 육낭자는 떨잠이 어지러이 떨릴 정도로 웃었다. 곁에 있는 각 가문 낭자들은 누구는 해 삼낭자를, 누구는 강녕과 강완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트렸다.
해 이낭자는 화가 나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목소리 높여 해 삼낭자를 불렀다.
“이리 와. 정말이지, 매번 이러지! 아는 사람은 네가 호의로 이러는 걸 알아도 모르는 사람은 오지랖이라고 욕해. 타박이나 받고, 쌤통이다.”
솔직한 성격인 초 삼낭자는 웃으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웃으면서 해 삼낭자를 향해 손짓하면서 겨우 한마디 했다.
“삼낭자도, 참. 삼낭자의 호의가 개떡이 되었네.”
은방울 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강녕은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고 강완은 붉으락푸르락했다.
해 이낭자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했다.
저 두 사람이 이대로 화가 나서 돌아가 버리면 재미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