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48화 (348/463)

348화: 지인들

마차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쉴 새 없이 앞으로 이동했고 속도도 빠른 편이라서 수녕백부 마차 두 대도 금세 계가 측문 앞에 멈춰 섰다. 마차가 막 안전히 움직임을 멈추자마자 어멈이 밖에서 휘장을 들어 올리며 공손하게 웃으며 아래로 모셨다. 왕 어멈이 먼저 내려 곡 대내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곡 대내내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발판을 놓아주고 휘장을 열어준 어멈은 쳐다보지도 않고 왕 어멈이 공손히 내민 팔을 붙잡고 낭창낭창 안으로 들어갔다. 몇 걸음 가다가 그제야 진 부인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걸음을 멈췄다. 진 부인이 다가오자, 여전히 왕 어멈을 붙들고 진 부인과 살짝 떨어져서 계가 관사 어멈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주위에 각 가문의 노부인, 부인, 어린 낭자들이 가득했다. 곡 대내내는 몰래 주변을 살폈다. 다들 생글생글 웃으며 손에 든 둥글부채를 살랑살랑 흔드는 걸 보더니, 왕 어멈을 붙잡은 손을 내리고 주변을 살펴 본 다음 나직하지만 매서운 목소리로 훈계했다.

“내 둥글부채는? 잊은 게야?”

“소인이 소홀했습니다.”

왕 어멈은 눈 질끈 감고 잘못을 인정했다. 측근 시녀도 아닌데, 둥글부채인지 안 둥글부채인지 알게 뭐람. 하지만 일단 잘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월동문 안으로 들어간 강완과 강녕은 눈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계가, 너무나 우아하고 너무나 고상하고 너무나 고귀하고 너무나 귀티 나고 너무나 멋져! 어찌 됐든 다 좋아!

이번에 자기를 선보려고 부른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니, 선보려는 것도 그저 형식적이고 분명 진작 마음에 둔 걸 생각하면 이 저택이 더 사랑스럽기만 했다.

계 천관은 배우자를 잃은 지 수년, 곁에 첩이나 통방 하나 없었다. 계소영은 외아들이고, 백 노부인은 화청 앞에 서서 전 노부인을 비롯한 연륜과 덕이 지긋한 노부인 몇을 맞이했을 뿐, 다른 사람은 모두 계씨 일족 중 몇몇 며느리가 맞이하고 대접했다. 계씨는 대가족이라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백 노부인 곁에서 화청의 전체 관리를 맡게 된 건, 계소영과 같이 진사에 급제한 계소명의 처 소(邵) 구내내였다. 소 구내내는 당부 두 가지를 들었는데, 하나는 수녕백부 사람들을 신경 써서 돌보라는 당부와, 또 하나는 전려 이 한림의 모친과 누이를 신경 써서 돌보라는 당부였다.

첫 번째 당부는 계 천관이, 두 번째 당부는 계소영이 했다. 두 당부 모두 지아비 계소명을 통해 그녀에게 전해졌다. 소 구내내는 영리하고 민첩한 사람이라 지아비에게 두 가지 당부를 들었을 때 얼떨떨해하다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강가와 이가에 벌어진 일을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녀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지 않겠나.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양쪽 다 신경 써서 돌보라고 하니, 소 구내내는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두 가문이 측문으로 들어와서 화청으로 가는 길부터 이리저리 궁리하며 동선을 짜냈다. 다행히 오늘 손님 접대하는 화청은 첫째, 아주 넓고, 둘째, 네 면에 난 문에 정, 측 구별이 없어 어디든 정문으로 볼 수 있었다. 수녕백부 여식솔은 서쪽 문으로 들이고 이가 모녀는 동쪽 문으로 들인 다음, 화청에 종친 며느리 둘을 배치해서 각자 지켜보게 했다. 사실 두 사람이 지켜볼 것도 없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노부인, 부인, 그리고 어린 낭자들이 알아서 두 가문이 같이 있을 일 없이 알아서 피하게 했다.

강완과 강녕은 남에게 말 못 할 심정을 품고 양옆에서 진 부인 팔짱을 끼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긴장됐다. 백 노부인은 무섭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따 만나면 무슨 말을 하려나. 무엇을 물으려나. 분명 무슨 서책을 읽었는지, 바느질 솜씨는 어떤지 물으시겠지. 이따 잘 보여야 하는데.

화청 계단에 오른 두 사람은 벌써 심장이 북 치듯 쿵쿵 울렸다. 절반은 백 노부인이 자기를 선본다는 생각에 긴장했고, 나머지 절반은 계 탐화의 풍채를 생각해서 들뜬 것이었다.

곡 대내내는 세 사람 뒤를 따라 계단으로 오르자마자 아는 사람을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난번에 같이 입궁했던 사람은 모두 지인이니까.

계가 며느리는 진 부인 일행을 보자마자 다가가 맞이해서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진작 배정해둔 곳으로 안내했다.

백 노부인이 접자희를 좋아해서 계가 연회엔 반드시 접자희를 하곤 했다. 접자희가 있으면 좋은 점이, 접대하고 싶지 않거나 접대할 사람이 없는 사람은 앉아서 열심히 극만 보면 되어서 그렇게 난처하고 어색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 구내내는 수녕백부 네 사람이 접자희를 제대로 즐기고 돌아가도록 준비할 심산이었다.

진 부인 일행을 접자희를 감상하기 아주 좋은 자리로 안내한 계가 며느리는 직접 진 부인을 부축해서 자리에 앉힌 다음 입맛이 어떤지 다정하게 물었다. 시녀에게 지시해서 차를 명전차로 바꾸고 진 부인이 좋아하는 간식을 내어주는 등 그보다 완벽할 수 없게 마련해 준 다음 인사치레 몇 마디 하고 돌아서려는데 강완과 강녕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직 어르신께 문안 올리지 않았는걸요.”

며느리는 얼떨떨해하다가 금세 웃음 지었다.

“어르신은 지금 노부인들과 말씀 중이세요. 나중에야 여유가 생기실 겁니다.”

며느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혹시 모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명확하게 말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어르신은 손님들이 저택에 오시면 잘 즐기고 편안히 계시다가 가는 걸 가장 중시하십니다. 문안 같은 법도는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세요. 두 분 낭자, 어르신께 문안 올리는 일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편안히 놀다가 가세요.”

강녕이 곧바로 안색이 변해서 또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강완이 확 잡아끌어 자리에 앉히고 귓속말했다.

“이 바보야, 몇 촌인지도 모를 종친 며느리가 어르신 생각을 알 게 뭐니. 상대할 것 없어. 그냥 기다려.”

“응응!”

강녕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며느리를 고르는 이런 큰일을 몇 다리나 넘어갔을지 모를 일개 종친 며느리가 어떻게 알겠어.

강완과 강녕의 작은 꼼수, 작은 동작을 진 부인은 깨닫지 못했다. 그녀의 신경은 오로지 무대에서 노래하는 기녀들에게 쏠려 있었다.

진 부인도 어릴 때부터 접자희를 좋아했다. 낭자 시절엔 가법이 엄격했고, 집안이 부유한 편이 아니라서 극단을 모실 수도 없고 집에 둘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땐 다른 저택에 꽃 구경, 눈 구경하러 갔었을 때나 소곡, 접자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집에 가든 소곡, 접자희만 있으면 다른 건 일절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극을 끝까지 보고 듣고 돌아갔다.

혼인한 후엔……. 벌써 십수 년 동안 접자희를 보지 못했다. 접자희를 보고 있자니 한순간 낭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극을 보는 것 말고 다른 건 아랑곳할 겨를이 없었다.

곡 대내내야 더더욱 강완, 강녕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마구 둘러보며 같이 입궁했었던 지인을 찾았다. 그녀 생각엔, 그때 함께 입궁했었던 집안이야말로 그녀 집안과 비슷한 가문이고 다른 가문은 내려다봐도 상관없는 집안이었다.

하늘은 공들인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곡 대내내는 한눈에 초 승상 부인 고씨를 알아보고는 허둥지둥 일어나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고 부인이 가장 기억에 남긴 했다. 첫째, 고 부인은 승상 부인이었다. 곡 대내내의 견해 기준으로는, 그날 입궁한 귀인 중에 손꼽히는 고귀한 사람이었다. 둘째, 고 부인은 그녀 가문과 친척인 셈이었다. 고 이낭의 친정과 고 부인 모두 같은 고씨였다. 멀긴 해도 어쨌든 같은 고씨 아닌가.

곡 대내내가 다가가 무릎을 구부려 예를 갖추자, 고 부인 역시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강가와 인척 관계라서가 아니라, 경성에서 수녕백부와 곡 대내내의 유명세가 실로 대단해서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유명인은 유명인이었다.

“부인, 잘 지내셨지요. 한동안 못 뵌 사이에 안색이 더 좋아지셨네요.”

말주변, 사교술을 따지면 곡 대내내도 조금은 영민하고 쓸 만했다.

고 부인 곁에 서 있던 초 삼낭자는 곡 대내내를 몇 번 흘깃 보다가 고 부인의 옷자락을 당기며 나긋나긋 말했다.

“어머니, 난 저쪽으로 가 볼게요.”

“그래, 그래. 가 보렴.”

고 부인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딸의 손을 토닥인 후에야 곡 대내내를 돌아봤다. 웃으며 몇 마디하고는 핑계 대고 인사치레를 끝내고 돌아서려는데, 고개를 돌리자마자 큰며느리 조씨의 모친인 예부시랑 부인 마씨가 손짓하며 다급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찾고 있었어요. 어서 와요. 노부인 두 분이 고릿적 이야기하고 계세요.”

“그럼 이만.”

고 부인은 곡 대내내에게 한마디하고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돌아섰다. 곡 대내내는 주저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저도 들을래요.”

그러고는 고 부인 뒤에 바짝 붙어서 백 노부인과 전 노부인 등 부인들이 잔뜩 있는 쪽으로 향했다.

예부시랑 부인 마씨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고 부인을 힐끔 보고 곡 대내내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러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 부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정말이지…….”

마씨가 아무리 신랄한 말이 목구멍으로 차올라도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러니 그저 다 생략하고 그 말만 하고 말꼬리를 길게 늘일 수밖에 없었다.

성격이 솔직하고 교양을 갖춘 고 부인은 마 부인의 신랄한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곡 대내내를 보지도 않고 곧장 직진해서 백 노부인과 전 노부인 등 노부인, 어르신들에게 예를 갖췄다.

곡 대내내는 고 부인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서 예를 갖췄다.

마 부인은 그런 곡 대내내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백 노부인, 전 노부인은 물론 곡 대내내를 알았고, 두 사람을 에워싼 부인, 태태들도 대부분 이 여인을 알았다.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귓속말해주었다. ‘곡’자를 꺼내면 금세 알아들었다. 곡 대내내를 본 적이 없는 노부인 두세 사람도 같이 온 시녀, 어멈의 귀띔에 금방 알게 되었다.

백 노부인은 곡 대내내를 쳐다보지도 않는 고 부인을 힐끔 보고는 곡 대내내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보렴. 어째서 시어머니 곁에 있지 않고.”

계 천관의 계획을 백 노부인도 훤히 알고 있었다. 눈앞에 기회가 왔으니 어찌 됐든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김에 곡씨의 인품과 성격도 알아볼 생각이었다.

전 노부인도 자상하게 웃으며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백 노부인의 호의는 예상한 일이었다. 계 천관이 강가와 같은 배를 탄 사이 아닌가.

“어머님은 극을 보고 계세요.”

곡 대내내에게 백 노부인의 호의는 당연히 예상한 행동이었지만, 수녕백부보다 훨씬 귀한 가문인 노부인, 부인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건 역시나 조금 어질어질한 일이었다.

“그랬구나. 극이 좋다니 됐다. 그럼 방해하지 말자꾸나. 앉으렴. 차와 간식을 먹으면서 수다나 떨자꾸나.”

백 노부인이 온화하게 웃으며 곡 대내내에게 말했다. 그 정도 영리함은 갖춘 곡 대내내는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는 앉은 사람이 거의 나이 든 노부인, 노태태인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가장 젊은 사람도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고, 비슷한 나이대 어린 부인은 다 서 있었다.

“어르신 앞에서 어찌 감히 앉겠어요. 여기 서서 시중들겠습니다.”

곡 대내내는 하려고만 들면 말주변이 꽤 좋은 사람이었다. 백 노부인은 흡족한 얼굴로 칭찬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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