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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346화 (346/463)

346화: 지금의 인과는 지금의 세상

무지는 왔다가 갔다가, 화로를 가져다주고 또 숯과 물을 가져다주고는 습관적으로 타이르고 당부하고는 돌아갔다.

두꺼운 두봉과 화로가 생긴 강환장은 이제 적어도 춥지 않았다. 비도 잦아든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갈수록 잦아들어 온화하게 내리는 보슬비를 바라봤다. 날도 차츰 밝아 왔다.

강환장은 일어서서 발을 구르며 뭉친 다리를 풀어주고는 다시 꿇어앉아 두봉을 여미며 편안한 자세를 찾았다. 가물가물 잠이 들려는데 정원 안에서 공허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휴, 뭐 하러 이런 고생을 하나.”

강환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곧바로 상반신을 곧추세웠다. 문을 밀려고 손을 내밀다가 얼른 다시 거뒀다. 이쪽에서 밀어선 안 된다!

“법사, 가르침을 주십시오. 법사께서 절 다시 돌려보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강환장은 바닥에 엎드려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끼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 안에 앙상한 스님이 서 있었다. 강환장이 몇 번 만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그에게는 멈춘 듯한 모습이었다.

“법사!”

강환장은 넋이 나간 눈빛으로 스님을 바라봤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강렬한 서러움이 몰려왔다. 달려가 스님을 끌어안고 통곡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스님은 하늘 저 높은 곳에 있는 듯 고개를 숙이고 연민 가득한 눈빛으로 강환장을 내려다봤다.

“법사,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강환장은 한없는 억울함,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스님을 올려다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법사, 과거로 보내주신다고 해서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건 과거가 아닙니다. 돌아온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게 변했습니다. 다 변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겁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사람은 같은데, 아니, 사람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법사, 그녀가 왜 돌아온 겁니까. 어째서요? 어째서 이렇게 된 겁니까. 법사!”

강환장은 갈수록 격앙해서 횡설수설했다. 이씨도 같이 돌아온 걸 생각하면 숨만 쉬어도 칼에 베이는 듯이 아팠다. 도저히 제어할 수 없어서 계단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

“나도 모른다네.”

스님의 목소리가 마치 저 먼 곳에서 들리는 듯 공허하고 요원했다.

“이건 자네의 인과네. 내가 자네를 돌려보낸 건 나의 인과고. 자네가 물은 건 모두 자네의 인과라서 나는 모르네. 불조 말씀이, 삼천대천 세계, 자네 예전의 인과는 예전의 세상이고 지금의 인과는 당연히 지금의 세상이라네.”

강환장은 멍하니 스님을 바라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도 같고 못 알아들은 것도 같았다. 예전의 인과는 예전의 세상이고, 지금의 인과는 지금의 세상이다? 지금은, 자신의 인과로 인해 이렇게 변한 것이란 말인가? 말이 되는가.

“법사, 그럼 진왕은요? 천명도 바뀔 수 있습니까? 천도는요? 천도도 있지 않습니까.”

스님이 돌아서려고 하자, 강환장이 허둥지둥 달려가서 다급하게 물었다. 스님이 서서히 돌아섰다.

“나는 모른다네. 이렇게 만났으니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났네.”

“법사! 법사!”

강환장이 앞으로 달려들려는데 바람도 없이 뜨락 문이 서서히 닫히더니 그를 문밖에 가둬버렸다.

강환장이 필사적으로 다시 마당 문을 열었을 때, 뜨락 안은 어느새 아무도 없이 텅 비었다. 긴 시간 꼿꼿이 무릎을 꿇고 있던 강환장의 상반신이 차츰 기울었다. 머리는 바닥에 박히고 몸은 움츠러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흩어졌다. 이 폭우에 달빛이 씻긴 듯이 초승달임에도 희한할 정도로 밝게 빛났다.

강환장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일어서려다가 일어서지 못하고 다리가 풀려 비틀비틀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주저앉아서 손을 덜덜 떨며 두봉을 끌어당겨 천천히 여몄다.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문틀을 부여잡고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계단 아래로 내려가 천막에서 나가서 맑고 드넓은 별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삼천대천 세계, 예전의 인과는 예전의 세계요, 지금의 인과는 지금의 세계라. 지금 세상은 이미 전생의 세상이 아니라는 뜻이었을까.

그 생각이 미치자, 날카롭기 짝이 없는 강철 침이 심장과 머리에 박히는 듯했다.

춘시에서 진안방이 아니라 여염이 장원이 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도 지금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을 무너뜨릴 만큼 날카로운 강철 침이 심장에 박히는 듯했다.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질 만큼 아팠다.

장원은 별이 환생하여 세상에 내려오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변할 수가 있을까. 천도가 왜 변한 것일까.

그래, 이제 천도가 변한 것이다.

강환장은 고개를 숙인 채 다리를 질질 끌며 한 발짝, 한 발짝 대상국사 밖으로 나갔다.

자신은 멍청이였다. 그저 돌아오기만 하면, 아, 그래, 그녀도 있었지. 어찌 됐든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같을 줄 알았다. 자기가 돌아오기만 하면. 그랬다. 위풍당당하던 때로 다시 돌아오긴 했다. 그런데 인(因) 때문인지, 아니면 과(果) 때문인지, 아니면 인과 때문인지 그녀도 돌아왔다. 그녀가 변했다. 그녀는 그를 무너뜨리려 한다. 강가를 무너뜨리려 한다. 심지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강환장은 걸음을 멈추고 회랑에 섰다. 잠시 후 서서히 난간 위에 걸터앉았다. 며칠 내내 무릎 꿇고 있어서 몸이 매우 허약했다. 몇 걸음 만에 지칠 대로 지쳤다.

그녀가 나를 원망하다니, 어떻게 그런가.

강환장은 고개를 기둥에 대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기를 원망한다고 생각해도 놀랍게도 마음이 평온했다. 여전히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있다면, 장 태태겠지.

하지만 그 당시 최선을 다해 그 일을 벌이지 않았던들 뭐가 달라지랴. 그저 구차하게 조금 더 살았겠지.

그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더라?

강환장의 미간이 조금씩 좁혀졌다.

그때 왜 그런 마음을 품었더라?

강환장은 거의 잊어가던 옛일을 조금씩 돌이켜봤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진작 까맣게 잊었었다. 정말로 잊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흐릿하기만 했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었더라?

그래!

강환장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 여자가 고분고분하지 않았었지. 뒤에서 이씨를 이래저래 사주했었지. 심지어 강가의 돈 흐름을 몰래 빼가기도 했었고. 이신과 갈수록 가깝게 지냈고.

강환장은 생각할수록 심장이 빨리 뛰어서 앓는 소리를 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더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때 죽어서 다행이었지!

장 태태가 제때 잘 죽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강환장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두려움이 생겨서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이었다. 뭐가 두려웠기에?

이미 권력을 잡은 1품 관리가 된 때였다. 천자가 가장 신임하는 중신이었는데, 뭐가 두려웠지? 하찮디하찮은 일개 상인 여인을 왜 두려워했었지?

강환장은 서서히 손을 들어 얼굴을 붙잡았다.

문 이야가 이신의 막료가 된 건 이신 때문이 아니라 그녀 때문이다. 영해는 이가 가노이고, 그리고 도 관사도……. 그 외에도 많다. 다 그녀의 사람이었다.

그녀의 사람과 그녀의 돈.

그 시절에는 다 알고 있었으리라. 언제부터 잊었을까? 문 이야가 여러 번 말했었다. 그런데 신경 쓰지 않았다. 들으려 하지 않았다. 듣기만 하고 새기지 않았다. 그땐, 그녀가 퇴로 없이 막다른 곳에 갇힌 걸 알고 있었다. 그녀에겐 죽음 외엔 다른 길이 없었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예전엔 이런 것들을 잊어도 상관없었다. 잊었으면 잊은 거지. 그런데 지금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올 때 너무 황급하게 돌아와서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아예 준비하지 못했다.

그가 말했었다. 혼인한 그달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두 사람은 운명이 얽혔기에 떨어지면 안 된다고.

강환장은 머리를 기둥에 쿵쿵 박았다. 그자가 했던 말……. 이렇게 명백하게 말했었는데, 왜 귓등으로 들었을까. 문 이야가 무수히 많이 했던 말처럼 그의 말도 다 귓등으로 들었다. 시종일관 그녀를 무시하는 데 너무 익숙했다. 그녀를 혐오했다. 구린 돈 냄새가 풍기는 그 오만한 여인을.

영원의 상방 회랑 앞, 유월 뒤에 시정잡배 차림의 사내 둘이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온몸이 흠뻑 젖었는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유월은 조마조마해 보였고 두 사내는 아예 얼굴이 창백했다. 두 눈에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다. 옷이 젖은 사소한 일은 거들떠볼 범위에 들지도 않았다.

상방의 등불이 켜졌다. 등불이 켜지는 거의 동시에 상방 문이 열리더니 대영이 휘장을 열고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앞장서서 실내로 들어간 유월은 머리를 풀고 홑옷 하나만 걸친 영원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룁니다, 칠야. 강환장이 대상국사에서 나와서 수녕백부로 돌아갔습니다.”

“그 신비한 자는 만났고?”

영원이 툭 물었다.

“아닙니다. 아니, 그러니까…… 모릅니다.”

유월은 만났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서 두 사내를 돌아봤다.

“너희가 말해라.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칠야께 고해라.”

두 사내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예. 아룁니다, 칠야. 소인 둘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봤습니다. 처음에 보슬비가 내리더니 나중엔 멎었습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달빛도 별빛도 밝았습니다. 소인들은 운이 좋다고 다행스러워했지요. 달빛이 밝아서 지켜보기 매우 좋았거든요. 그런데 돌연…….”

사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처음엔 그 천막 주변이 조금 흐릿해지나 싶더니, 금세, 정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큰 안개가 끼었습니다. 안개가 짙어서 저희 두 사람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고요. 소인들의 잘못입니다. 사전에 환경을 잘 파악했어야 하거늘. 그때 사방이 보이지 않아서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습니다.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아무 기척도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안개가 사라졌고, 강 장사가 넋이 나간 눈빛으로 계단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걷다가 못 걷겠는지 난간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일각 정도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수녕백부로 돌아갔습니다.”

단숨에 말을 마친 사내는 두렵고 갈등하는 얼굴로 영원을 바라봤다. 너무나 괴이한 일을 겪었다. 스스로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칠야가 믿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에는? 이상한 점이 없었고? 곧바로 돌아갔느냐?”

영원은 너무 괴이한 느낌이 몰려와서 무의식적으로 바짝 다가가며 물었다.

“천천히 걷는 것 말고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멈추지도 않았고요. 그냥 천천히, 한 걸음씩 걸었습니다.”

두 사내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칠야, 이 두 사람 모두 6, 7년 동안 일해 온 사람입니다. 언제나 진중하고 믿음직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고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유월이 다급하게 두 사람 대신 해명했다. 두 사람이 아까 그 짙은 안개 이야기를 한 이래 지금까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날이 갠 후로 안개는커녕 수증기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나도 안다. 너희들이 본 것, 사실일 것이다.”

영원은 이동이 한 말, 그녀의 얼굴에 은근히 퍼지던 두려움과 심각한 표정을 즉시 떠올렸다. 그녀도 그곳이 기괴한 걸 알았을까? 아니면 그 작은 뜨락에 신묘한 일이 있는 걸 아는 걸까? 어떻게 알았을까?

“둘 다 임무를 아주 잘했다. 돌아가서 푹 쉬어라.”

영원이 분부하자 바짝 굳어있던 두 사내는 순간 긴장이 풀려서 고개를 조아리고 공손히 물러갔다. 유월도 내심 안도했다. 대상국사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 해괴했지만, 칠야는 역시 영명한 사람이었다.

“강환장과 강가를 지켜봐라.”

영원이 분부하자 유월은 밖으로 나갔다. 영원은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혀달라고 대영에게 분부하다가, 금세 됐다고 손을 저었다.

이런 때 이가 낭자를 찾아가는 건 실로 지나친 일이었다. 게다가 강환장의 일을 자꾸 그녀에게 묻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지필묵을 준비하고 복백을 불러라.”

영원은 잠시 뒷짐 진 채 생각하다가 분부했다. 대영이 종이를 깔고 먹을 갈고, 대웅은 복백을 부르러 물러갔다.

복백이 당도했을 때 영원은 이미 서신을 다 쓰고 겉봉을 봉해서 복백에게 건넸다.

“소 사야에게 전하는 서신이네. 적당한 사람을 골라서 보내게. 빠를수록 좋아.”

복백은 의아했지만 한마디도 묻지 않고 조심스럽게 서신을 소매에 넣고 서신을 보내러 서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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