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연꽃이 아닌걸
“오늘 온 낭자는 조금 전에 다 이야기했어요. 어느 댁 낭자가 괜찮은데요?”
이동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 혼사에 내가 어떻게 끼어들어?
영원이 고개를 저었다.
“다 안 괜찮습니다. 난 글공부를 많이 안 해서, 묵가, 명가, 먹물 냄새 폴폴 풍기는 집안은 내가 눈에 안 찰 것이고, 나도 그 쉰내는 못 견딥니다. 주가는 말할 것도 없고요. 너무 멍청해. 낭자, 난 말입니다. 가문 필요 없고, 우아함이니 서생이니 다 상관없어요. 현명하고 어진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딱 하나, 나와 말이 통하면 됩니다. 우리처럼요. 우리가 얼마나 말이 잘 통합니까! 부부 두 사람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요? 난 이거 딱 하나, 다른 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나는 말입니다, 법도, 세속, 이런 건 하나 안중에 없어요.”
영원은 이동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이동은 삐딱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시선을 뗐다.
“그럼 어렵네요. 말이 통해야 한다니, 정말로 알아서 하셔야겠어요. 제가 도울 일이 아니에요.”
“낭자 말고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지 맙시다. 낭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줍니까?”
영원은 정말 어쩔 도리가 없는 듯했다. 이동은 상대하기 귀찮아져서 얼굴을 가리고 슬쩍 하품했다.
“또 볼일이 남았나요? 없으면 이만 가요. 종일 지쳤어요.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고.”
“있어요, 있어! 중요한 일은 아직 이야기하지도 않았는걸!”
영원이 팔걸이를 탁탁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낭자 말고 물어볼 곳이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낭자, 강환장이 대상국사 제일 구석에 낡은 뜨락 앞에서 보름 넘게 죽치고 있다는 거, 들었습니까? 뜨락 입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답니다. 그 낡은 뜨락에 폐관하는 고승이 있는데 곧 출관한다고요. 꼭 만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대상국사 지객승 무지, 그리고 다른 스님도 그 뜨락은 줄곧 비어있다고 합니다. 고승이 폐관 중이라는 소식은 듣도 보도 못했답니다. 강가에 있을 때, 뭐 들은 것 없습니까?”
이동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자 영원은 움찔해서 순간 매우 후회했다. 내가 미쳤구나. 어떻게 강환장 일을 물을 수가 있나. 강가에 들어간 지 한 달 남짓해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강가 일을 알게 뭐람. 내가 너무 느닷없었구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아이고, 아이고! 내가 미쳤지!
이동은 손가락 끝까지 차가워졌다. 그 뜨락에 고승이 살았었다. 전생 이맘때쯤, 그녀가 강가에 들어간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인데 줄곧 아무 일 없었다. 바로 이달에 강환장이 그녀와 함께 대상국사에 점괘 뽑으러 함께 갔었다. 두 사람이 내내 절하고 향을 피우다가 마지막 대전에서 나왔을 때 그 맨 뒤에 있는 작은 뜨락에서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늙은 스님이 나와서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이야기했다. 아무리 바라도 모두 헛것이니 돌아가라고.
그때는 아이를 바라는 마음을 말하는 줄 알았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스님이 말한 건 아이가 아니라 강환장을 향한 그녀의 헛된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스님은 그 한마디만 하고 가버렸다. 강환장하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지금 강환장이 그 뜨락 앞에서 그 스님을 만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 스님이 한 말을 알아들었나? 아니면 그 후로 그녀가 모르는 무언가가 일어난 걸까?
“미안합니다.”
영원은 짙은 불안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기어들어 갈 듯이 말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난 그저…… 낭자도 알다시피, 나는 낭자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슨 말이든 하잖습니까. 낭자가 강가와 혼인했던 걸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정말로…….”
“그 뜨락…….”
이동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영원이 하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 뜨락에 뭐가 있는지 난 몰라요. 다만…….”
이동이 침을 꼴깍 삼키며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불안과 동요를 억누르며 할 말을 정리했다. 최대한 확실히 설명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도록.
“강환장이라는 사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1년 동안 그가 한 짓, 황당하다고 생각하죠?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우습다고.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가 이러는 건, 내 말은…….”
이동은 심호흡하고 말을 이었다.
“애초에 내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한 건, 우리 어머니도 마음에 들어 한 건 그만큼 출중했기 때문이에요. 1년 동안 황당하고 가소롭게 굴고 어리석은 일을 많이 한 건, 그가 너무 방심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요, 방심했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이 한 가지를 잘못 판단했어요. 내가 강가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강가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예요. 강가를 위해 몸 바쳐 일할 것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그의 환심을 사려고, 강가의 환심을 사려고, 나에겐 그 길밖에 없다고 여겼을 거예요.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 어머니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이가의 돈으로 그의 환심을 살 거라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그가 내게 잘해줄 테니까. 그는 그저 날 잘못 보고 우리 어머니를 잘못 본 거예요.”
이동은 명백히, 조리 있게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나오는 말은 여전히 두서없었다. 하지만 영원은 알아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당신은 남다릅니다. 대부분, 열에 아홉은 다 혼인을 잘못하면 팔자라고 여기고 받아들이죠. 당신은 남달라요. 강환장이 어리석은 것만 탓할 수가 없습니다. 열에 아홉 사내는 강환장처럼 여길 테니까요. 나 같은 사람 빼고요. 당신이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점, 바로 그 점을 내가 매우 탄복합니다. 당신은 여중호걸입니다. 감히 하늘과 맞서고 운명에 맞서는 사람, 여기 내가 있고 당신도 있어요.”
“강환장은 평범하지 않아요. 호락호락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가 그 뜨락에 고승이 폐관한다고 한다면, 내 생각엔, 설령 폐관하는 고승은 없더라도 뭔가 있어요. 사람을 시켜 바짝 지켜 보세요.”
이동은 이 괴이하고 무시무시한 환생을 떠올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켜봐도 결과가 없을까 봐 걱정이네요. 최대한 그렇게 하세요. 강환장을 얕잡아 보지 마세요. 아마 지금쯤, 정신 차렸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영원은 진지하게 대답하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망설여지는 듯 말했다.
“정말로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네, 알아요. 강환장에 관한 일은 나에게 물어요. 아는 거라면 다 알려줄게요.”
이동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전생 그땐, 처음엔 저택 밖 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나중엔 현숙하고 어질게 보낼 일념으로 몇 년을 보냈다. 그 후엔 바깥의 시끄러운 일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몇십 년 보내면서 저택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아서 강환장이 저택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아는 게 생기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영원이 다짐했다. 이동의 담담한 모습에 내심 부끄러워졌다. 상대는 아무런 생각을 안 하는데 자기가 오히려 생각이 많았다. 그녀는 마음에 연꽃을 품은 듯 모든 것을 연꽃으로 보는데 자기 마음속엔 온갖 것이 다 있는 듯했다.
“이제 다른 일은 없죠? 마침 비가 잦아졌으니 어서 돌아가세요.”
이동이 다시 재촉했다.
“그럽시다.”
영원은 내키지 않는 듯 대답하고는 양손으로 팔걸이를 짚었다. 단숨에 일어서지 못하고 한 번 더 힘을 주고도 일어서지 못했다. 그렇게 서너 번 시도하다가 으쌰, 하고 힘주어 소리 내고 겨우 일어났다. 기지개를 쭉 켜고 실내를 빙빙 돌다가 겨우 두봉을 찾아서 손에 걸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갑니다.”
이동은 고개를 숙이고 무심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근심이 가득해서 영원이 온몸으로 수작을 부리는 걸 아예 보지도 못했다.
영원은 재미없는 듯 실내에서 나와 회랑을 따라 밖으로 가면서 두봉 끈을 묶고 풍모를 뒤집어썼다. 각문 밖으로 나가서 두봉을 단단히 여미고 경계하며 주변을 살피고는 빠른 걸음으로 이가를 벗어나 마차에 타고 젖은 두봉을 대영에게 벗어 던졌다.
마차는 흔들리더니 차분하게 달려 정북후부로 돌아갔다.
영원은 마차에 앉아서 지붕에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동이 했던 말과 그녀의 표정, 그리고 아까 일어난 모든 것을 조금씩 곱씹었다. 강환장이 대상국사에 죽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왜 그리 안색이 안 좋아졌을까.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강환장을? 아니면 강환장이 대상국사 뒤 작은 뜨락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안색이 변한 것이 강환장이 대상국사에 죽치고 있어서인가?
무슨 속사정이 있기에.
강환장이 대상국사에 죽어라 죽치고 있다는 걸 들었을 때 매우 이상하게 여겼었다. 오늘 그녀의 반응 역시 매우 괴이했다. 강가와 남은 일이 있을까? 무슨 일이 있을 게 있어서.
영원은 생각할수록 기분이 안 좋아져서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마차 벽을 툭툭 두드렸다.
“대웅 있느냐.”
“예.”
잰걸음으로 마차를 따르던 대웅이 다급하게 다가가 대답했다.
“어서 가서 유월에게 전해라. 지금부터 강환장을 두 조로 나눠서 지켜본다. 그가 대상국사에서 완전히 나올 때까지 잠시도 눈을 떼선 안 된다.”
영원이 싸늘하게 분부하는 말에 대웅은 마차에서 멀어져 유월에게 말을 전하러 재빠르게 사라졌다.
대상국사 후원, 그 작은 뜨락 문 앞. 천막을 쳐서 비를 맞진 않았지만, 매서운 바람이 사방팔방에서 불어닥쳤다.
무지는 한 손으로 두꺼운 무명 두봉을 끌어안고 다른 손에 우산을 들고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우산부터 내려놓고, 추워서 작디작은 홍니로 앞에 바짝 붙어서 덜덜 떨고 있는 강환장에게 두봉을 걸쳐주었다.
“감사합니다.”
강환장은 두봉을 여미면서 쉰 목소리로 감사 인사했다.
“아이고, 강 시주!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고생하시는 겁니까.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미타불. 불조님, 보우하소서. 하루빨리 이 응어리를 푸십시오.”
무지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화로를 가져오겠습니다. 숯도 한 광주리 가져다드릴 테니 알아서 숯을 넣으세요. 따뜻한 물도 드릴까요?”
“예, 감사합니다.”
두봉을 걸친 강환장은 순간 훨씬 따듯해진 상태로 다시 감사 인사했다.
무지가 우산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자 강환장은 고개를 틀고 그를 바라봤다. 무지가 눈 깜짝할 사이 폭우 속으로 사라지는 걸 한참 바라보다가 서서히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낡은 뜨락 대문을 올려다봤다.
춘시가 끝난 다음, 바로 이번 달에 이씨와 함께 아들이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러 대상국사에 왔던 걸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 그 스님이 이 뜨락 문을 열고 나와서 이씨에게 그 묘한 말을 했었다.
다시 이곳에 와서 그를 만난 건 20년 후였다. 그때 고씨가 낳은 딸의 혼담이 오갈 때라 고씨와 함께 여기 왔었다. 무지를 만나 고씨가 낳은 딸의 사주를 줬을 때, 뜬금없이 이씨와 함께 왔었을 때 만났던 앙상한 스님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제어할 수 없는 듯이 여기까지 들어왔다. 문 앞에 서서 그 스님이 뜨락 문을 열고 나오는 걸 봤을 때, 그 순간, 이씨와 아들을 빌러 왔던 때로 갑자기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스님이 말하길, 그에게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돌이킬 길이 없을 때가 오면 젊은 시절로 돌려보내 줄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이렇게 다시 돌아왔다.
강환장은 뜨락 문에 손을 대고 살짝 밀다가 힘을 주어 밀었다. 벌써 몇 번이나 이렇게 민 것인지 모른다. 들어가서 구석구석 샅샅이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 스님이 이 뜨락 문을 열고 나와서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를 꼭 만나야 했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여기서 무릎 꿇다가 죽는 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