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안타까운 세상 부모의 마음
그런데 웬걸, 상 대내내에게 전 노부인과 백 노부인을 소개하고 잠시 더 이야기 나누다가 핑계 대고 물러나는데, 상 대내내도 같이 물러나는 게 아닌가.
장 태태는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으로 상 대내내를 힐끔 봤다. 태연하게 자기를 따르는 그녀를 보며, 얼른 다시 머리를 굴리다가 탕 오낭자 일을 떠올렸다. 탕 오낭자에게 다른 문제가 있어서 동저아를 통해서 장공주에게 부탁하고 싶은 모양인가?
장 태태는 그런 생각이 들자, 원래 하려던 대로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을 찾아 자리 잡았다. 상 대내내도 곁에 앉아서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차츰 본론에 돌입했다.
“산서에 있을 때부터 동저아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다 들은 건 아니고, 토막토막. 어찌나 걱정되던지, 살짝 사람을 경성으로 보내 수소문했지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다 알게 되었답니다. 정말 동저아가 너무 힘들었겠어요. 마음도 아프고, 태태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오로지 자식 생각을 한 거잖아요. 우리 어미나 이렇게 자식 걱정하지요.”
상 대내내는 이동의 실패한 혼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자식 사랑하는 마음까지 이야기했다.
“나도 태태와 같아요. 다른 건 바라는 거 없답니다. 자식들이 잘되기만 바라요. 우리 대저아, 태태도 아시겠지요. 소식을 보내올 때마다 번번이 잘 지낸다고 하지만, 그 먼 산서에서도 내가…….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딸이 잘 지내는지 아닌지 왜 모르겠어요. 애초에 혼사를 찬성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어요. 다 애 아비와 할아버지가 정한 다음에 이야기하지 뭡니까. 아이고!”
상 대내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태태가 박복하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가장 박복하지요. 내 딸 하나도 지키지 못했잖아요. 태태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를 거예요. 정말이에요. 우리 대야가 밖에서 여인을 이리 품고 저리 품어도, 심지어 징과 북을 치며 집에 들여도, 양두대 어쩌고 해도 난 하나도 개의치 않았어요. 양두대는 무슨. 눈 가리고 아옹이지. 태원부에 돌아와서 감히 그 세 글자를 입에 올리지도 못해요. 가법, 기강이 다 있어서요.”
상 대내내는 마음 아픈 듯이 말했고 장 태태는 마음 아파하며 들었다. 탕가 대야의 황당한 이야기를 적잖게 들었다. 상 대내내는 탕가 노야가 점찍은 며느리로, 탕가 대야는 그녀의 용모를 타박해서 부부의 정이 그럭저럭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대저아 혼사 이야기가 나왔을 땐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이 셋을 노심초사 이 나이까지 키웠더니, 아비라는 사람이 호우가 올해 몇 살인지도 모릅니다. 대저아는 여덟 살쯤 될 때까지 아비 얼굴도 몰랐어요. 내가 금이야 옥이야 기른 그 아이를, 말 한마디에 저 멀리 경성으로 혼인시켜서 보내버렸답니다. 고가 가풍이 어떤지, 고가 삼야의 인품, 성격은 어떤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요. 원하는 건 오로지, 고가 나무에 오르는 거였답니다.”
속상한 부분에 이르자 상 대내내는 눈시울을 붉히며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일, 태태도 다 아시지요. 내 작은딸도 보셨고요. 고가 말 한마디에 오저아를 궁으로 보내려고 했어요. 황가 외척이 되겠다는 망상을 품고요. 정말이지 나는……. 솔직히 말해서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답니다. 다행히 동저아가 돌봐 줘서 오저아가 살았어요. 하지만 이번 겁은 넘겼지만, 다음은 피할 수 있을지 어찌 압니까.”
장 태태가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상 대내내가 자기를 붙잡고 놓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작은딸 때문이었다. 경성에 처음 와서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이고, 경성 세도가 중에 유일하게 줄이 닿는 고가는 작은딸을 혼인으로 거래하려는 집안이었다. 그러니 자신은 상 대내내 눈앞의 지푸라기일 것이다. 얼른 꽉 붙들어야지, 다른 사람 응대하고 돌아다닐 심정이 어디에 있겠나.
장 태태는 깨닫긴 했지만, 생각할수록 골치 아파졌다. 탕가 오저아의 혼사에 대해 상 대내내는 그저 딸이 잘 지내기만 하면 되고 이득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탕가 대야는 작정하고 딸을 이용해 권세를 잡으려고 이득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진다. 딸이 혼인한 후에 잘 살지 아닐지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탕가의 신분은 이가와 비교해서 더 나을 것도 없었다. 경성 같은 곳에서 탕가 오저아가 잘 지낼 만한 혼처는 찾기 쉽지 않았다. 오로지 권세를 잡고 이득을 도모하면 되는 집안이라면 찾기 어렵진 않다. 그러나 잘 살기도 하고 권세도 잡아야 하는 집안은……. 게다가 그사이에 은연중에 형성된 당파 싸움까지 있어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 대내내는 이미 정확히 생각을 끝냈으리라. 장공주의 세를 빌리고 싶어서 자신을 꽉 잡는 것이고. 장공주가 나서서 중매만 서준다면, 고 사사와 탕가 대야는 마음에 들든 말든 코 꿴 채 끌려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장공주가 탕가를 위해서 나서줄 리가 있나. 장 태태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조정 국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상 대내내는 또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상 대내내가 얼마나 알든, 적어도 지금은 이런 상황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번에 거절한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서 탕가 오저아가 동저아라면 지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대내내 마음을 잘 압니다.”
장 태태는 잠시 주저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상 대내내의 손을 토닥였다.
“동저아 일도……. 나도 그랬어요. 마음을 누가 찢어놓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시니, 나도 솔직히 말할게요. 장공주의 손을 빌리고 싶은 거지요? 하지만 장공주는 긴 세월 동안 수행했고, 이런 속세 일을 묻지 않은 지 오래래요. 동저아가 장공주에게 갈 때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일 불법 이야기한답니다.”
상 대내내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장 태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일단 돌아가서 동저아와 이야기해볼게요. 장공주에게 한 번 부탁해 볼 수 있을지 한 번 봅시다. 다만.”
장 태태는 순간 환해지는 상 대내내의 얼굴에 어렵게 말을 이었다.
“큰 희망은 품지 말아요. 그동안 동저아가 한 말을 들어보면, 장공주는 십중팔구 이런 일을 상대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자식 일이니 만에 하나의 희망이라고 해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지 어쩌겠어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상 대내내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태태에게 부탁해 보려고 했던 겁니다.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쪽으로도 제가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나는 그저…… 태태 말처럼 만에 하나의 희망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세상에 끝나지 않는 연회란 없다. 모두를 배웅한 원 부인은 도와주러 온 젊은 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다음, 대청에 누워서 정리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어서 며느리를 들이면 좋겠다 싶었다. 며느리가 있으면 뒷정리 같은 걸 자기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 하면서 졸고 있는데 여염이 들어왔다. 아들을 본 원 부인은 곧바로 정신이 들어서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종일 바빴는데 얼른 가서 쉬지 않고.”
“어머니도 아직 못 쉬시잖아요. 정리는 제가 지켜볼 테니 어머니는 어서 가서 쉬세요. 졸고 계시던데.”
여염이 탑상 자락에 앉으며 웃으며 하는 말에 원 부인은 순간 웃느라 눈이 다 가늘어졌다. 흠잡을 곳이 정말이지 하나도 없는 아들이었다.
“그냥 잠깐 눈 감고 쉰 거다. 졸기는. 쉬러 가지 않을 거면 어미와 이야기나 하자.”
원 부인은 마음이 동해서 아들을 붙잡았다. 이 기회에 아들의 속내를 떠볼 생각이었다. 이가의 그 한 번 갔다가 다시 온 낭자가 마음에 든 건 아닌지. 이건 정말 큰일이었다.
“오늘에야 이가 낭자를 제대로 봤구나.”
몇 마디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는 원 부인이 화제를 이동 이야기로 돌렸다.
“응? 이가요? 이 대랑 누이 말씀이십니까?”
여염이 곧바로 대답하자 원 부인은 바짝 긴장하며 그래, 하고 대답했다. 이가라고 하자마자 어느 이가인지 알아?
“전에도 몇 번 보긴 했는데, 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참으로 예쁘더구나. 분위기도 있고. 확실히 보기 드문 낭자였다.”
원 부인은 아들의 표정을 빤히 살펴보며 말했다. 여염이 또 얼마나 영리한 사람인가. 모친이 이상한 걸 바로 깨달았고, 모친이 긴장해서 숨죽이며 제 입만 바라보는 걸 보고 순간 무슨 일인지 깨닫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어머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여염은 그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긴장한 듯 다시 물었다.
“어머니, 이가 태태와 이가 낭자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으셨지요?”
“이 아이 말하는 것 좀 보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냐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안도하던 원 부인은 금세 다시 긴장했다.
“어머니!”
여염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안 그랬다가는……. 어머니, 제가 말씀드렸던 건, 할아버님이 당부해서입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할아버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냐면…… 예전에 할아버님이 장 태태의 모친, 장 태태의 부모님께 큰 은혜를 입어서입니다. 할아버님이 예전에 장 태태의 부모님 도움 덕분에 글공부하고 과거를 보셨어요. 어머니, 정말로 실례되는 일을 하신 건 아니지요?”
“응?”
원 부인은 멈칫하다가 이마를 탁, 쳤다. 아들의 말에 옛일이 떠올랐다. 시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가끔 시아버지에게 화를 내곤 했는데 한 번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시어머니가 투덜거리는 걸 몇 마디 들었었다. 자신과 혼인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니냐느니, 아직도 그 강남 여인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냐느니 하는 말이었다.
강남 여인이라, 이가가 바로 강남에서 오지 않았나.
“예전에 네 할머님이…….”
아들을 빤히 보며 말하던 원 부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 강남 여인이 장 태태인가, 아니면 장 태태의 모친인가. 이 일…… 아이고머니나!
“아이고!”
여염은 모친의 표정에 또 모친이 멀리까지 생각한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모친이 사달을 일으키기 전에 확실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할아버님이 저에게만 하신 이야기라 아버지도 모르십니다.”
여염은 일단 진지하게 그 말부터 했다.
“할아버님은 예전에 장 태태의 외할머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할아버님이 매우 가난했다는 건 어머니도 아시지요. 할아버님은 장 태태 외할머님 도움 덕에 글공부했습니다. 할아버님이 진사가 되던 그해, 장 태태의 부친이 횡사했답니다. 장 태태 모친은 지아비를 잃고 딸을 키우는 신세가 됐고요. 할아버님은 장 태태 외할머님에게 받은 큰 은혜를 갚으려고 장 태태의 모친과 혼인하려 하셨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았고요. 할머님은 곱게 자란 분이라, 할아버님이 은혜를 갚으려고 혼인하려고 한 걸 아시면서도……. 어쨌든 그래서 할아버님이 그동안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신 겁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지금 와서 꺼낼 수도 없고, 그냥 몰래 돌봐 주셨답니다. 그냥 그렇게 된 일입니다.”
원 부인은 눈을 깜빡, 또 깜빡였다. 한참 만에 ‘아이고머니나’에서 ‘아이고’는 내뱉고 ‘머니나’는 삼켰다. 호사가가 좋아할 만한 이 소문의 주인공이 시아버지라서 ‘아이고머니나’ 하고 쉽게 내뱉을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큰 은혜 아니냐. 네 할아버지……. 너도 참.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야? 정말로 돌봐 주려면 어미가 나서는 게 더 타당하지. 아이고, 정말이지. 진작 이야기했으면 동저아가 그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을. 어쩐지 네가 이가 대랑과 그렇게 친분 깊게 지냈구나. 이건 정말 큰 은혜다. 장 태태 일가의 팔자가 참으로 고되구나. 외할머니 때부터 팔자가 사나워서…….”
원 부인은 이 놀라운 소문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여염은 할 말을 잃고 모친을 바라봤다.
“어머니, 소문나면 안 될 일입니다. 어찌 됐든 이렇게 큰 은혜를, 따지고 보면 할아버님이…….”
“안다, 알아!”
원 부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말고. 이 일이 퍼졌다가 안 좋은 마음을 품은 누군가가 은혜를 갚지 않았다고 일을 키울 수 있지.
은혜를 갚지 않았다는 말을 떠올린 원 부인은 뜨끔해졌다. 오늘 두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다들 똑똑한 사람들인데…….
아이고머니나, 정말이지!
원 부인은 이마를 탁탁 쳤다. 어서 만회해야 할 일이었다. 아이고머니나, 세상에. 나도 참.
며칠 전에 염가아가 이야기 꺼냈을 때 왜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