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저마다의 계획
“어머니…….”
“저걸 보렴.”
전 노부인은 또 웃음소리가 터지는 대청을 가리켰다. 묵칠과 주육이 꽥꽥 고함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렇게 한 번 모일 때마다 정이 깊어진다. 이번 연회가 끝나고 이런 자리가 몇 번 더 있을지 모른다. 자람을 지금 불러오지 않으면, 이번 춘시 연회가 끝난 후에 모두와 어색해질 것이다.”
그 말에 묵 부인의 안색이 변했다. 경성 자제에게 정이란 너무나 중요한 말이었다.
“게다가.”
전 노부인은 흥분해서 음정이 변한 묵칠의 고함을 듣고 못 말린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소칠이 꽥꽥대는 저 소리 좀 들어 봐라. 전엔 자람이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영칠이 기르는 세견이 되었다!”
묵 부인은 풉 웃음을 터트렸다가 금세 미소를 거두고 걱정스러운 듯 모친을 바라봤다.
“소칠이 영칠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 걸 걱정하시는 건가요? 자람이 소칠을 어쩌지 못할까 걱정이에요. 소칠 성격도 그렇고, 영칠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소칠을 빼내 오긴커녕 오히려 자람이 휩쓸릴까 걱정이네요.”
“소칠을 빼내 오는 게 아니라, 소칠 옆에 함께 있으란 것이다.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자람을 불러들여라. 앞날에 무슨 일이 생기든, 자람이 모두와 멀어져선 안 된다. 게다가 자람의 혼사도 얼른 결정해야지.”
전 노부인은 딸에게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일은 지금 이야기한 것보다 원대한 일이었다.
“알겠어요.”
묵 부인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모녀가 속닥댈 일이 있어도 집에서 얼마든지 할 것을. 굳이 여기서 하느라 날 구석에 외롭게 두기는.”
백 노부인이 찻잔을 들고 웃는 얼굴로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모른 척한 게 누군데, 뒤집어씌우기는!”
전 노부인은 웃으며 되받아쳤고 묵 부인은 얼른 일어서서 백 노부인을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로 모셨다. 그러고 백 노부인이 든 찻잔을 받아서 직접 차를 내려서 바쳤다.
“여씨 가문, 참 부럽군.”
백 노부인은 경사 가득한 얼굴로 싱글벙글 웃는 여염 모친 원 부인을 바라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내가 부러워하면 모를까, 자네가 뭘 부러워해! 계가는 대대로 영재인데.”
전 노부인이 쏘아붙이자 백 노부인이 빙그레 웃었다.
“음, 그건 또 그렇군.”
두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육낭자 상대로 점찍은 집 있는가?”
백 노부인이 대수롭지 않은 듯 묻는 말에 전 노부인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백 노부인이 계소영의 상대로 육저아에게 혼담을 넣을 의향을 몇 번 넌지시 비쳤었다. 하지만 계소영의 성격이라면 앞으로 벼슬길에 기복이 매우 클 것이다. 육저아의 성격을 생각하면 도무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육저아의 성격, 자네도 알지 않나. 생각이 너무 많네. 큰일을 견디지도 못하고. 게다가 너무 곱게 키웠어. 휴. 어려운 일이네.”
전 노부인으로서는 솔직히 말한 셈이었다.
“우리 같은 집안에서 평생 순풍에 돛단 듯 기복, 우여곡절 없이 사는 게 쉽나.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여 승상이 그나마 가장 순조로운 사람인데도 지금껏 머리가 날아갈 뻔한 일도, 하물며 온 가문이 몰살될 뻔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야. 육저아가 아무리 나약해도 묵씨인 이상 얼마나 다르겠나. 나약하다는 것도 자네나 나 같은 늙은 괴짜하고 비교해서 그렇지.”
백 노부인은 전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큰일이야 누구와 혼인하든 피할 수 없는 일겠지만, 밉살스러운 시어미는 피할 수 있지.”
전 노부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육저아 아비가 몇 년 동안 줄곧 지방을 전전하느라 육저아는 태어나자마자 내 곁에서 소칠과 함께 컸네. 육저아가 동생인데 큰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소칠을 보살피고 가르쳤네. 게다가 소칠은 또 육저아의 말만 듣네. 내 말보다, 제 아비 말보다 더 잘 먹히네.”
“그건 그렇지.”
백 노부인의 마음이 조금 서늘해졌다. 아무래도 이 혼사, 그른 것 같았다.
“우린 다 늙어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겠나. 난 소칠이 제일 걱정이네. 육저아가 지금처럼 곁에서 수시로 소칠을 돌봐 준다면, 나도 마음 놓이네.”
전 노부인은 얼버무리듯 말했지만, 백 노부인은 명명백백하게 알아들었다.
묵 이야가 호부 상서를 맡은 일을 황상이 드디어 전교를 내렸다. 하지만 임시였다. 묵 이야는 벼슬길에 든 이래 줄곧 육부에서 전전하고 지방에 가지 않았다. 그 일이 호부 상서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임시로 맡은 이 자리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올해 가을엔 지방 관원의 자리 이동이 있을 것이다. 묵 이야는 이번에 분명 지방으로 배정될 것이다. 이번에 부임하면 각지에서 십여 년은 전전해야 할 것이다. 지방에서 십여 년 동안 전전하던 묵 대야가 이번엔 분명 경성으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묵 대야는 묵 이야보다 묵가 다음 대 장문으로 백 배는 더 적합한 사람이었다. 승상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으로도 괴짜로 유명한 묵 이야보다 훨씬 더 적합하고.
묵칠과 백부 가문은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 못했지만, 묵 육낭자가 가장 큰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묵 승상과 전 노부인이 묵 이야에게 죄책감이 있는 것처럼, 묵 대야 부부는 태어나자마자 경성에 홀로 남겨둔 묵 육낭자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묵 육낭자의 어미는 자기 혼수 전부를 육낭자의 혼수에 보탠다는 말까지 했었다.
묵 육낭자가 중간에 있으면, 묵 대야가 묵 승상과 묵 이야처럼 묵칠을 오냐오냐하진 않아도 그리 나쁘게 대하지는 못한다. 전 노부인의 그 계획의 전제는 묵 육낭자가 지아비를 따라 지방에 가지 않고, 경성을 떠날 일 없는 묵칠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소영은 새 황상으로 바뀌기 전에, 혹은 그 이후에 분명 지방에서 길게는 10년은 단련하고 충분한 경력을 쌓고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만 승상 자리를 바라볼 희망이 생긴다.
백 노부인은 유감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계획은 참 잘 세웠으나, 인간이 세운 계획이 하늘의 뜻을 이길 수 있겠나. 벼슬길이 어떻게 될지 사람 마음대로 되어야 말이지.”
“자네 가문엔 영가아를 제외하면 계 천관뿐이지.”
전 노부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백 노부인은 할 말이 없었다. 계씨 가문엔 영가아를 제외하면 믿을 사람이 그녀의 외아들뿐이었다. 그러나 제 외아들은 성격이, 묵칠 같은 변변찮은 인물을 포용할 성격이 아니었다. 영가아도 부족하다고 타박하는걸.
“그럼 여씨 가문도 안 될 테고.”
시원스럽기 짝이 없는 백 노부인은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바로 포기하고 전 노부인과 함께 묵 육낭자의 미래를 셈했다.
“휴. 며느리, 사위 구할 때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전 노부인이 그런 듯 아닌 듯 ‘그렇지.’ 했다. 정말로 고민이었다. 안 그래도 어느 집을 골라도 넘어갈 수 없는 흠이 하나씩 있었다. 그것만도 골치 아픈데 이제 돌아가는 정세 국면까지 봐야 했다. 그녀 마음에 계가가 부족한 게 아니라, 묵 승상이 가장 좋게 보지 않는 게 진왕이었다. 큰 함정이 눈앞에 있는데 육저아를 계가와 혼인시킬 리가 있나.
그런 고민을 하는 건 전 노부인뿐만 아니라 새 상공 부인이 된 초 승상 부인 고씨도 있었다.
경성에 공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가문도 좋고 인품이 좋고 재능까지 뛰어난 공자는 고르고 골라도 손에 꼽혔다. 여염을 진작 점찍어 두었었다. 다 좋은데 성격까지 아주 좋았다. 성격 좋은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자기가 낳은 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삼저아는 성격이 유순한 편이 아니었다. 성깔 부리는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를 골라야 했다.
안 그래도 조금은 넘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초 상서가 승상으로 승진한 후에 너무나 기뻤다. 그런데 여염이 장원이 되어 찬물을 끼얹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장원랑, 온 세상이 눈독 들이는 최고의 사윗감 아닌가 말이다. 자기네 삼저아의 상대로는 이제 못 오를 나무가 되었다.
고 부인은 모두에게 둘러싸여 반짝반짝 빛나는 여염 모친 원 부인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한숨을 내쉬고 또 내쉬었다. 조금 일찍 와서 지금까지 지켜보면서 어느 정도 원 부인의 의중을 읽었다. 원 부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며느릿감은 묵 승상가 육낭자인 듯했다. 휴. 실로 좋은 낭자였다. 삼저아보다 훨씬 뛰어나고. 그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씨 가문이 안 되면 어느 집으로 골라야 하나. 얼른 살펴보고 혼사를 정해야 했다. 경성의 좋은 사윗감은 모두 앞다퉈 채간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원 부인도 고민이었다. 묵 육낭자를 진작 점찍었는데, 음으로 양으로 말을 전해도 전 노부인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염가아가 어제 한 말 때문에 마음이 더 급해져서 아까 전 노부인을 마중할 때 아예 대놓고 물었는데, 묵 육낭자의 혼사는 제 부모와 상의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육낭자의 부모는 저 멀리 회남동로에 있는데, 왔다 갔다 상의하다 보면 시간이…….
휴. 거절하는 말이리라. 묵가와의 혼사가 안 된다면 어느 댁 낭자가 적당할까.
염가아의 혼사를 얼른 정해야겠어. 길어지면 사달이 날 수 있어.
해 상서 부인 손씨는 느긋하게 앉아서 한담을 나눴다. 해 이낭자의 영리함, 식견을 따라잡을 경성 낭자는 거의 없으니까. 여가, 묵가 같은 집안이 재능 있는 며느리를 마다할 리 있나. 마다하긴커녕 며느리가 재능이 뛰어날수록 좋아할 텐데.
여염 모친 원 부인이 묵가 육저아를 점찍은 걸 진작 알아봤다. 해 이낭자도 알아봤다. 하지만 해 이낭자의 말이 맞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묵 승상이 여 승상과 사돈을 맺을 리가 없다. 육저아를 점찍은 건 원 부인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고.
우리 해가야말로 최고의 혼처지!
손 노부인은 미소 띤 채 손님을 응대하는 원 부인을 힐끔거렸다.
원씨가 정말이지 영리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 그래, 이저아의 말대로, 이런 상대가 제일 좋긴 하지. 아둔한 시어미가 영리한 시어미보다 상대하기 좋고. 게다가 그 시아버지와 아들은 지극히 드문 영리한 사람 아닌가. 그들이 이저아의 장점을 당연히 알아보리라. 이 집안은 곧 이 아둔한 며느리 손에서 이저아 손으로 떨어지리라.
이 혼사, 적당한 사람을 골라서 말을 전해 봐야겠구나.
거기까지 생각한 손 노부인은 누가 가장 적당할지 고민하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모두와 살짝 떨어졌는데 또 그렇게 멀지 않은 어느 구석에 장 태태와 상 대내내가 앉아 있었다.
장 태태는 여가 저택으로 들어와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자신과 이동을 은근히 언짢은 듯 대하는 원 부인의 태도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장 태태는 조금 의외로 여기다가 이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 부인은 여 승상 부인 소씨가 점찍어 혼인시킨 며느리로 시어머니 소씨와 사이가 매우 좋았다. 예전 일에 관해 시어머니 소씨에게 적잖게 들었을 테니 잘 알 것이다. 자신들 모녀에게 언짢은 건 너무나 당연했다.
장 태태는 저택으로 들어온 이래 괜히 원 부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상 대내내는 그녀를 본 순간부터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장 태태는 짚이는 게 있어서 진주를 보내 알아봤다. 역시나 상 대내내의 사돈 고서강 부인 유씨가 오늘 몸이 좋지 않아서 오지 않았다.
자기를 통해 경성의 사교 범위를 넓히려는 상 대내내의 생각을 알기에, 장 태태는 자기는 할 수 있는 한 조용히 있고 싶어도 상 대내내의 일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상 대내내를 데리고 한 바퀴 돌았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노부인, 부인 중에 장 태태가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대부분 장 태태는 상대를 알아도 상대는 그녀를 알지 못했다.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전 노부인이 백 노부인과 함께 앉아서 손짓했다. 장 태태는 기쁜 동시에 안도했다. 너무 잘된 일이었다. 상 대내내를 이 두 어르신에게 소개하면 상 대내내의 능력으로 분명 매우 적절하게 두 분을 모실 것이다. 그러면 소개해준 그녀로서도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