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누가 누구와
“언니네 장사가 얼마나 많은데요. 이게 뭐…….”
탕 오낭자가 한창 이야기하는데 이동이 살짝 잡아당겼다. 영리한 탕 오낭자는 이동이 그러면 안 된다고 귀띔하는 걸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이게 무슨 대단한 장사라고요. 장사하는 집엔 어느 집이든 잘 되는 점포 두엇은 있어요. 다 그래요.”
조 구낭자는 탕 오낭자가 말을 바꾸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동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호수 맞은편을 뒤돌아봤다. 이동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이리저리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 조 구낭자가 고자의와 혼인한 후로 그리 오래되지 않아 산서로 돌아갔다. 수십 년 동안 가끔 이야기를 들었는데 평판이 모두 형편없었다. 이제 보니 그 형편 없는 평판 중에 사실이 많은 듯했다.
마침 자등병 하나 더 먹고 싶었던 이동은 조 구낭자가 넋이 나간 틈에 자등병을 가지러 가려고 일어섰다. 이동 뒤를 졸졸 쫓던 탕 오낭자는 이동이 일어서자 따라 일어섰다. 이동이 자등병을 집자 탕 오낭자도 활짝 웃으면서 따라서 집었다. 이 자등병이 너무 좋았다.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에, 근래 새로 들인 교양 어멈이 뭘 먹든 한 입만 먹어야지 연달아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가 언니가 먼저 집었는데 따라서 집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건 이가 언니와 함께 먹는 거지 연달아 먹는 게 아니니까.
자등병을 집은 이동은 돌아서다가 구석에 앉아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해 삼낭자를 발견하고 다가가 곁에 앉았다. 탕 오낭자도 당연히 따라가서 앉았다.
해 삼낭자는 예전에도 지금처럼 과묵했다. 전생에 서로 왕래하면서도 깊은 친분을 맺지 못했다. 이동은 자기 탓도 있지만, 순전히 자기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 기억 속에 이 여인은 자기 의견이나 견해를 내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삼낭자, 백차(白茶: 차의 어린 싹을 따서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 좋아해요?”
이동은 해 삼낭자 손에 들린 찻잔을 힐끔 보고 화제를 찾아 말을 걸었다. 해 삼낭자는 멈칫했다. 백차를 가장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이건 백차가 아니에요.”
이동이 다시 찻잔을 들여다보는 걸 보고 해 삼낭자가 미소 지으며 찻잔을 내밀어 보였다.
“올해 새 차예요.”
“어디 좀 봐요.”
이동은 체면 차리지 않고 고개를 내밀었고 탕 오낭자도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봤다. 탕 오낭자가 힐끔 보고는 향을 맡으며 말했다.
“명전(明前) 차네. 정말 좋은 차네! 청향이 짙어요. 참 향긋하다. 한 잔 마셔 봐야겠어요. 언니는요?”
“매화향이야. 나도 한 잔 내려줘요. 그리고 연자소도. 이 차는 연자소랑 먹으면 제일 좋아.”
“좋아요!”
이동이 웃으며 하는 말에 탕 오낭자가 폴짝폴짝 뛰며 대답했다. 갈수록 이가 언니가 좋아졌다. 갈수록 이 경성이 좋아졌다.
“난 향기를 못 맡았어요.”
해 삼낭자의 목소리가 어쩐지 기운 없어 보였다.
해 삼낭자의 목소리가 어쩐지 기운 없다는 걸 민감하게 느낀 이동은 웃으며 얼굴을 바짝 가까이 댔다.
“나도예요. 돌아가신 소 노부인이 혼수로 가지고 온 차밭 말이에요. 그 차밭 옆이 다 홍매, 녹매예요. 거기서 딴 찻잎엔 다 매화향이 난다더라고요. 경성에서 가장 우아한 찻잎이라고 자자하던데, 그런 이야기 못 들었어요? 오늘 저택에 손님을 모셨으니 당연히 그 차밭에서 나는 차로 대접했겠죠. 나는 향을 맡은 게 아니라 맞힌 거예요.”
그 말에 해 삼낭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난 향을 맡은 건 줄 알았죠.”
“언니, 차 가지고 왔어요.”
탕 오낭자는 아예 쟁반을 들고 이동과 해 삼낭자 앞에 내밀었다.
“해 언니도 연자소 하나 먹어 봐요. 이 연자소, 참 예쁘게 만들었죠?”
해 삼낭자는 쟁반에 간식 세 개가 놓여 있는 걸 보고 웃으며 하나를 집었다.
“낭자의 아우는 올해 몇 살이에요?”
이동은 열심히 화제를 찾았다. 기억하기로 해 삼낭자는 묻는 말에 겨우 대답하고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절대로 없었다.
해 삼낭자는 다시 얼떨떨해졌다. 아우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긴, 경성엔 사람이 빤하니까. 어쨌든 그녀 일가는 해 상서부에 살고 있고, 할아버님이 올해 춘시 시험관이니…….
“열여섯이에요.”
아우는 그녀보다 두 살 아래로, 그녀는 올해 벌써 열여덟, 해 이낭자보다 2개월 늦게 태어났다.
해 이낭자를 힐끔 본 해 삼낭자는 조금 멍해졌다. 해 이낭자의 혼사가 정해지면 그녀의 혼담도 시작할 것이다.
이동이 어떻게 이야기를 계속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해 이낭자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슨 이야기해? 여기 좀 봐. 먹고 마시고, 정말이지 자유롭네!”
해 이낭자는 살짝 배회하다가 해 삼낭자 곁에 앉았다.
“나도 차 한 잔 줘. 연자소도.”
그 말에 해 삼낭자가 서둘러 일어섰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해 이낭자가 밝은 말투로 웃으며 물었다.
“좋은 차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매화 청향이 나요.”
이동이 대답했다. 탕 오낭자는 ‘먹고 마시고’라는 해 이낭자의 말에 조금 주눅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해 이낭자 앞에서 자꾸 뜨끔하고 기가 죽었다. 아마도 해 이낭자가 실로 너무 출중해서이리라.
“여씨 가문 차밭에서 올해 새로 난 차예요. 매화 향이 정말 진하죠? 맡아 봐요. 여기저기 이 향이 가득해요.”
해 이낭자는 향이 너무 진하다는 듯 손을 저었다.
“언니는 장공주 곁에서 수행하는데 이렇게 짙은 향을 좋아해요? 장공주는 이런 향을 제일 싫어한다던데.”
“글쎄요, 눈여겨보지 않았네요.”
해 이낭자가 장공주를 거론하자 이동은 더 신중해졌다.
“그럼 장공주는 어떤 차를 좋아하세요? 언니가 차를 내려준다던데요.”
“장공주 거처엔 용봉단차가 제일 많아요. 다 어사품이죠.”
이동이 얼버무렸다.
“용봉단차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잖아요. 언니, 자주 보록궁에 가세요?”
해 이낭자는 이동이 긴말하고 싶지 않은 걸 눈치챘으면서도 계속해서 물어댔다. 장공주와 왕래하고 싶을 뿐, 이동은 안중에 없었다. 물론 온 경성에서 그녀가 신경 쓰는 낭자는 애초에 몇 없었다.
“자주는 아니에요. 가끔 장공주가 부르시면 들러요.”
장공주와의 친분 때문에 자기를 통해서 장공주 줄을 잡으려는 것이 해 이낭자가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해 이낭자의 이런 시도는 어쩐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다시 돌아와서 막 눈을 떴을 때, 과거의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예전에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안개가 걷힌 듯이 또렷하게 보였던 것처럼.
예전에 해 이낭자를 알게 되었을 때 수녕백부는 이미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진가와 해가는 쇠락해 갔다. 해 이낭자는 해 삼낭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강환장의 세도는 내내 하늘을 찔렀고, 해 이낭자는 내내 그녀에게 살가웠다. 강환장이 북으로 좌천된 몇 년을 제외하고는…….
예전엔 왜 이런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여기고 벗으로 여겼을까.
이동은 무심결에 고개를 저었다. 예전 일은 이제 더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장공주와 함께 수행하다니, 언니 정말 복도 많아요.”
해 이낭자는 해 삼낭자에게 차를 받으며 생글생글 말했다. 해 삼낭자는 간식 접시를 들고 가만히 해 이낭자 곁에 앉았다.
“하지만 언니는 수행 같은 걸 할 나이가 아니에요. 그냥 한 걸음 잘못 간 거잖아요. 앞으로 잘 계획하면 돼요.”
해 이낭자가 이동을 바라보며 위로했다.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동이 미소 짓자 해 이낭자가 활짝 웃었다.
“역시 영리한 사람이네요. 가서 할머님께 언니 일을 신경 쓰라고 말씀드려야겠어요. 언니의 인품, 용모, 얼마나 드물어요!”
이동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고마워요. 어르신께 수고 끼칠 순 없어요. 근래 심신이 지쳐서 당분간 아무 생각 없어요.”
해 이낭자는 깨달은 듯이 살짝 손뼉을 쳤다.
“하긴 그래요! 내가 어리석었네요. 그 계획이 제일 좋아요.”
이동은 얼떨떨해졌다. 내가 무슨 좋은 계획을 했기에?
“이 한림이 이갑 1등을 하고 한림원에 들어갔잖아요. 황상을 곁에서 모시고 있으니 이제 출세할 날만 남았어요. 경성에 이가와 사돈 맺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해 이낭자가 조 구낭자를 힐끔 보며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가 좋은 사돈을 맺으면 언니 문제도 상황이 달라질 거예요. 수녕백부까지는 안 되더라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동은 실소했다. 정말 대단한 계산속이구나. 예전엔……. 그랬다. 해 이낭자는 예전에도 그랬다. 그땐 자기도 이렇게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집안일을 처리했다. 젊음, 미모를 믿고 능구렁이처럼 도가 튼, 무지하고 겁이 없는 첩들을 그렇게 상대했었다. 그리고 가득했던 자녀들도. 자녀들의 혼사를 마련할 때 출중한 아이부터 혼인시켜서 그다지 출중하지 않은 아이를 끌어 올렸다.
심혈을 기울여 그 아이들의 인생을 마련해 줬었다.
“언니 내 말대로 해요.”
해 이낭자는 이동과 몇 마디 나눈 후에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한 모습으로 이동의 팔짱을 끼었다. 얼마나 친밀하게 구는지, 십수 년 동안 절친한 벗으로 지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언니, 그러지 말고 올해 신진 진사 중에 한 사람을 골라요. 우리도 방 아래서 남편을 납치해 오자고요!”
“내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이낭자도 어리지 않잖아요. 할머님이 점찍은 공자는 없나요?”
이동은 수비할 수만은 없어져서 얼른 되받아쳤다.
“아마 할머니도 방 아래서 손자사위를 납치하려고 할걸요.”
해 이낭자가 그렇게 말하고 까르르 웃자, 이동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맞혀 볼게요. 맞힐 것도 없지. 이낭자의 상대로 어울릴 만한 사람은 장원랑밖에 없잖아요. 마침 올해 장원이 여 공자이니 가문도 걸맞고, 정말 딱이네요.”
탕 오낭자는 곁에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경성의 어린 낭자들, 간이 커도 너무 커. 누가 마음에 들었는지, 누구와 혼인하고 싶은지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다니. 세상에!
나, 경성이 너무 좋아!
해 이낭자는 이동을 흘깃 보며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여염에 눈독을 들인 건 맞다. 자신이 여염을 점찍었으니, 할머니가 점찍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호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엔 재잘재잘 떠들며 웃어 대는 어린 낭자들이 있고, 다른 쪽엔 처음엔 문회 하다가 곧 군자의 육예를 발휘하더니 이제는 갈수록 허튼 장난을 하는 공자들이 있었다. 호수 다른 쪽에는 각 가문의 노부인과 부인들이 있었다.
“내일 자람을 경성으로 불러들여라.”
문득문득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전 노부인이 곁에 앉은 딸 묵 부인에게 나직이 말했다. 묵 부인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예? 또 사고 치면 어쩌려고요.”
“지난 일이다.”
전 노부인은 공자들이 잔뜩 모여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호숫가 대청을 바라봤다.
“요 며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계속 움츠리고 있어선 안 되겠더구나. 정말로 화가 닥친다면, 간이 크든 작든 피하지 못한다. 차라리 편안하게 있는 게 낫다. 또 하나, 그날 소칠이 돌아와서 일리 있는 말을 하더구나.”
“소칠이요?”
묵 부인은 매우 의외로 생각했다. 소칠이 일리 있는 말을 다 한다고?
“음, 싸울 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직진하라고, 직진하는 사람일수록 살아남는다고 영칠이 그랬다더구나. 며칠 동안 생각했는데 매우 일리 있는 말 같더구나. 자람을 불러들여라. 깊이 생각할 것 없다.”
“예?”
묵 부인은 가슴이 파르르 떨렸다. 자람은 그녀의 보배 덩어리, 아니 보배 덩어리가 아니라 명줄, 그녀의 목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