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38화 (338/463)

338화: 한 무리 어린 낭자들

조명헌은 손방서를 잡아끌고는 진안방을 밀치고 나가서 고자의를 잡아당겼다. 손방서 역시 영리한 사람이라 서둘러 다가가 고자의를 흔들며 주육을 돌아봤다.

“육랑, 그렇게 말하면 진정한 손산 뒤 내 체면은 어쩌나. 고 형은 손산이 아니지. 고 형 뒤에 삼갑 전체가 있는걸!”

여염은 손방서의 말에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했다. 그가 입을 떼기 전에 계소영이 먼저 한 발짝 나갔다.

“고 형이 꼴등이면 나도 꼴등이네. 육랑, 지금 벌주를 피하려고 이러는 게지? 꼴등이라도 방에 있으니 술을 사지 않고 넘길 순 없네!”

그 말에 모두 우르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그럼, 벌주를 마셔야지! 지금 벌주를 마셔야겠어! 육랑의 말대로라면 여 장원과 이 전려만 넘어갈 수 있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벌주로 술 한 동이 마셔야겠군!”

제 말이 심했다는 걸 아는 주육은 두루두루 장읍하고는 실실 웃는 얼굴로 사과했다.

“그래, 내 잘못이다. 인정하면 될 것 아니냐. 벌주를 마시는 건 일도 아니다만, 창을 하지 않았다. 일단 창부터 제대로 하고 나서 벌주를 마시는 게 어떠냐.”

모두가 왁자지껄하며 웃음을 터트렸고 여염이 종복에게 분부해서 퉁소, 초미금을 꺼내왔다. 묵칠은 커다란 필세를 찾아와서 막대기를 들고 먼저 두드리기 시작했다. 계소영은 피리를 꺼냈고 모두가 곡을 정해 가락을 연주하자 주육이 따라서 요즘 유행하는 곡을 불렀다. 웬걸, 주육이 제법 노래를 잘했다. 다만 그가 입을 열자마자 모두 손뼉 치고 발을 부르고 휘파람을 부느라 이 좋은 곡을 아무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문득문득 맞은편 정자로 흘러 들어갔다. 정자로 돌아가서 앉은 이동은 차를 머금고서 맞은편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입가에 언뜻 미소가 피어났다. 춘시가 끝난 후 가장 신나는 사람이 바로 이 신진 진사들이다. 반년, 1년 동안 진사가 된 영광이 퇴색되고 구름 위에서 관료 사회 가장 아래층으로 떨어진 다음엔 이런 소란스러움과 기쁨을 다시 느끼지 못한다.

역시 이렇게 유쾌한 게 기분이 좋았다.

맞은편 소란이 사그라지더니, 잠시 후,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자 안에 있는 어린 낭자들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화살촉 없는 활이 아름다운 해당화 나무에 휙 날아와 꽂히고 해당화가 흩날렸다.

정자 안에 비명이 울렸다. 이동은 일어서서 수련에게 가보라고 서둘러 지시했다.

해 이낭자가 가장 먼저 맞은편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날아왔어. 이게 문회야, 무회야! 저택에 사람이 가득한데 이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럴 일 없어요.”

이동이 맞은편을 힐끔 보고 말했다.

“감히 여기서 화살을 쏜다는 건 실력이 뛰어나고 간이 크다는 거예요. 게다가 맞은편에서 날아온 거라 그럴 일 없어요. 다만 신이 나도 너무 났네요.”

“저 화살, 영 칠야가 쏜 거겠지?”

묵 육낭자는 심장이 떨리는 듯이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해당화 나무를 바라봤다. 하늘 높은지 모르는 영 칠야 말고 감히 이 화살을 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영 칠야요?”

명 삼낭자가 놀란 목소리로 나직이 읊조렸다. 영 칠야를 만난 적 없지만 영 칠야에 관한 일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영 칠야 말고 누가 있겠어! 야만인하고 가깝게 살더니 야만인이 다 되었네!”

초 삼낭자는 지극히 불만스러워 보였다. 주육의 누이 주 팔낭자는 영 칠야라는 말에 순간 눈을 반짝였다.

탕 오낭자는 줄곧 이동 곁에 달라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경성 대갓집의 꽃 연회, 문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이 정자에 있으면 호수를 사이에 두고 어렴풋이 저편의 사내들 모습이 보이고 웃음소리가 문득문득 들렸다. 그것만 해도 매우 놀랐다. 산서에서는 남녀 사이가 매우 엄격해서 안손님과 바깥손님은 적어도 담 하나는 사이에 둔다.

화살이 날아오자 더욱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물에서 기어나와서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상의 놀라움과 흥분을 본 느낌이었다. 경성의 생기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신진 진사들 참화 행진하던 그날, 앞에서 길잡이 한 게 영 칠야라면서요?”

탕 오낭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곁에, 홀로 서 있던 주 팔낭자가 말을 받았다.

“당연하지. 영 칠야 말고 장원, 탐화보다 잘생긴 사람이 어디 있어. 영 칠야는 잘생기고 재주도 뛰어나. 인품도 훌륭하고!”

주 팔낭자의 말에 탕 오낭자는 무심결에 주변을 훑었다. 주저할 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젊은 사내를 평가하다니…….

“재주는 무슨. 쓰잘머리 하나 없는 가마니인데!”

안 그래도 영원, 주육 무리를 무시해 온 초 삼낭자는 아까 날아온 화살에 놀라서 툴툴거리며 말했다.

“가마니보다는 자수 베개겠지. 가마니보단 보기 좋잖아.”

해 이낭자가 웃으며 하는 말에 명 삼낭자는 웃으려다가 무심결에 묵 육낭자를 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묵 육낭자의 안색이 별로였다. 영 칠야가 자수 베개라면 그녀의 칠 오라버니는 정말 그냥 가마니였다. 제 오라비가 가마니인 건 알지만, 오라비를 그렇게 말하는 건 별로 듣기 좋지 않았다.

“그냥 자수 베개도 아니고 힐수방 자수 베개지!”

조 구낭자가 얼른 한마디 하면서 묵 육낭자를 힐끔 보고는 금세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힐수방에서 새로 나온 남방 자수, 좀 재미있어. 화려하고 저속한 색에 자수도 그렇게 조잡해 보이는데, 옷과 함께 보면 희한하게 아주 우아해. 참,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힐수방 어멈이 그러는데, 저 멀디먼 남쪽에서 사 온 거래. 그래서 그렇게 비싼 거고. 내가 보기엔 거친 자수를 값비싸게 부를 수 없어서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나도 봤어요. 그 자수품, 얼핏 보면 지나치게 화려하고 저속한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느낌이 있고 볼수록 예뻐요. 자수가 조악한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매우 섬세해 보이더라고요. 참 재미있지. 나랑 여섯째도, 여러 벌 지었는걸요.”

명 삼낭자가 얼른 조 구낭자를 이어서 말했다.

옷, 자수품 이야기가 나오자 어린 낭자들이 하나같이 눈을 반짝였다.

“맞아, 맞아! 힐수방 올해 새 물건, 보기만 해도 좋더라고. 나도 여러 벌 지었어.”

“나도! 난 짙은 남색 바탕에 하얀 비단으로 안감을 댔어.”

“난 두봉을 지어서 한 바퀴 두르려고 했는데, 할 수는 있는데 1년은 걸린대. 옷감을 남쪽에 보내서 자수 놓은 다음에 다시 가지고 와야 한대. 남쪽 사람만 수 놓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더라니까.”

조 구낭자가 투덜거렸다.

“그래서 지었어?”

해 이낭자가 물었다.

“고민하는 중이야. 은자는 문제가 아닌데, 내년이 되면 유행이 바뀔지 누가 알아. 유행이 지나면 괜히 만든 거게?”

“옷 한 벌인데, 뭐. 유행 지나면 버리면 되지. 고민할 게 뭐 있어.”

해 이낭자가 조 구낭자를 흘깃 보며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조 구낭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자기가 집에 은자가 넘쳐서 마음대로 쓰는 해 이낭자도 아니고, 1년 월전이 정해져 있는 것을.

탕 오낭자는 조 구낭자와 이동을 번갈아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언니, 바로 받고 싶으면 간단해요. 이가 언니에게 부탁하면 돼요.”

조 구낭자는 움찔했다. 그럼 정말 골치 아파진다. 은자가 어디에 있어서.

“힐수방이 이가 점포예요?”

해 이낭자의 반응이 가장 빨랐다.

이동이 웃으며 대답했다.

“외할머니 배가 재산이에요. 하지만 도움은 못 되겠네요. 그건 정말로 남쪽 대산 자수법이에요. 재작년에 힐수방에서 남쪽 비단을 구매하러 갔다가 그 자수품을 보고 예뻐 보인다고 하나 사 왔어요. 어머니가 보시고 마음에 들어서 작년에 사람을 보내서 그 자수품을 사들였어요. 정말로 완성된 것밖에 없었고, 새로 자수를 놓으려고 해도 놓을 수가 없었어요.”

“힐수방의 수낭 솜씨가 얼마나 좋은데요. 쓱 보면 할 줄 아는 거 아니에요?”

초 삼낭자도 이런 자수품을 매우 좋아하는데 힐수방에서 바로 수 놓을 수 없다고 해서 얼마나 불평했는지 모른다.

“모양은 흉내 낼 수 있는데, 그 소박한 가운데 생동감을 흉내 내지 못해요. 그 자수품은 방직과 자수를 함께 쓴 거예요. 구매 담당 이야기를 들으니, 남쪽 여인들은 자수할 때 노래 부르면서 한대요.”

이동은 자세히 설명했고 초 삼낭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유, 정말. 그 자수품, 일렬로 늘어놓고 보기만 해도 좋더라고요. 뭐랄까, 생생한 느낌이랄까.”

그 말에 명 삼낭자가 손바닥을 치며 웃었다.

“참 좋은 말이네요! 생생한 느낌이라는 말이 딱 맞아요. 그 자수품의 정수를 꼭 짚는 말이네요.”

어린 낭자들이 이동을 에워싸고 흥분해서 자수품이 어쩌고, 올해 새 양식이 저쩌고 이야기할 때 조 구낭자는 곁에 있어도 정신이 딴 데 팔린 듯한 모습이었다.

조 구낭자의 시선은 이동의 머리 위 연꽃 씨만 한 진주에서 옷, 신발을 훑고 다시 올라왔다. 이동을 두어 번 만났는데 평소 차림은 별로 대수로운 것이 없어서 힐수방이 그녀 가문 재산일 줄 몰랐다. 이가가 매우 부자라고 하는 것 같긴 했다. 수녕백부에서 그녀와 혼인한 것도 가문의 은자 때문이라고 했고.

하지만 그는 의붓아들인데.

조 구낭자의 시선이 호수 맞은편으로 향했다가 호수 맞은편에서 다시 이동에게 향했다.

이 여인은 아무리 봐도 쫓겨나서 돌아온 버림받은 사람 같지 않잖아. 음, 이러는 걸 보면 분명 새로 혼인할 상대를 고르려는 것이지. 이제 상인 가문 여식에 버림받은 여인까지 되었으니, 좋은 가문과 혼인하려면 혼수가 많이 필요하겠지. 이 여인의 모친은 어쩌면 이가의 모든 은자를 혼수로 내어줄지도 모르고.

이가가 얼마나 부자일까?

조 구낭자는 넋을 잃고 주판을 튕겼다. 인품이며 재능이며, 이 전려는 꼬투리 잡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가문이…….

어찌 됐든 양자로 들인 이상 은자를 모두 친딸에게 주진 않겠지? 어찌 됐든 여생은 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데, 너무 각박하게 하진 못하겠지?

제대로 가늠해 봐야겠어.

떠들썩한 정자 밖에서 한 어멈이 허둥지둥 다가와서 정자 밖 당직 시녀와 귓속말했다. 당직 시녀는 안으로 들어와서 어린 낭자들에게 에워싸여서 한창 이야기 중인 이동을 보고 주저하다가 돌아서서 수련에게 다가가 속닥였다.

수련은 입술을 깨물고 생각하다가 결국 기회를 보고 이동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동이 돌아보자 수련이 눈짓했다.

“대낭자, 대야가 전할 말이 있다고 사람을 보내셨어요.”

이동은 갈등하는 가운데 은근히 분노가 느껴지는 수련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곧바로 일어서서 모두에게 인사하고 수련과 정자 구석으로 향했다.

대야라는 말을 들은 조 구낭자는 주변을 힐끔 살피고 이동과 수련 쪽으로 살금살금 자리를 옮겼다. 해 이낭자가 그녀를 흘겨봤다. 웃고는 있지만 경멸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수련은 화가 나서 못 살겠다는 듯 말했다.

“영 칠야예요! 정말이지……. 칠야가 화살을 쏜 그 나무를 좀 살펴봐달래요. 죽이진 않았는지, 귀한 나무는 아닌지요. 이게 뭐예요, 정말!”

이동은 손을 들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수련을 말렸다.

“별일 아니야. 네가 가 보렴.”

수련은 이동의 담담한 모습에 순간 안도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제가 가 볼게요.”

수련이 돌아서자 가까이 있던 조 구낭자도 휙 돌아섰다. 이동은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 그냥 모르는 체했다.

조 구낭자는 얼핏 ‘영’자를 들었을 뿐이다. 그 ‘영’자 하나로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충분했다. 그녀는 수련을 빤히 보며 곁눈으로 이동을 살폈다. 수련이 멀쩡히 있다가 화살에 맞은 해당화 나무 쪽으로 다가가는 걸 보고 아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바로 확신했다.

분명 영 칠야라고 했어! 이동이 언제 영 칠야와 관계 맺었을까?

갑자기 튀어나온 이 재미있는 일에 들뜬 조 구낭자는 이가와 혼인해야 하는지 마는지 궁리하던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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