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공연
대영이 재빨리 사라졌다가 어깨에 활을 지고 품엔 화살이 가득 담긴 통을 안고 돌아왔다.
이신은 대영이 짊어지고 온 활을 보는 순간 막 머금은 차를 뿜을 뻔했다. 견문을 넓히려 세상을 떠돌던 동안 호신을 위해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힌 적 있어서 아는데 이건 일석(一石) 궁이었다. 일석(一石: 한 섬. 한 섬은 10두斗 무게) 무게 활로, 그때 일석도 안 되는, 4두 무게 활을 들고 열 몇 발 쏘는 것만으로 어깨에 힘이 빠졌었다. 이신은 주육을 바라봤다. 꼴만 봐도 주육이 자기보다 힘이 셀 것 같지 않았다.
대영은 활을 주육에게 건네고 화살도 하나 건넸다. 영원은 의자를 들고 반 바퀴 돌고서 여남은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저 나무로 하자. 표적 반만 한 크기이니 적당하다.”
이신은 일어서서 조금 더 잘 보려고 주육 곁으로 다가갔다. 계소영도 다가갔다. 진안방은 더 호기심 내며 두 사람 뒤에 서서 까치발을 들고 목을 길게 뺐다.
주육은 왼쪽으로 갸우뚱, 또 오른쪽으로 갸우뚱하며 살폈다. 확실히 멀지 않았다. 이 정도 거리는 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원 형님이 체면 세워주려고 하는 것이지!
주육이 활을 들고 화살을 걸어 이얍, 하고 기합을 넣으며 힘껏 당겼는데 활시위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능청 떨지 말고 얼른 쏘아라!”
주육이 표적을 놓치고 ‘그 옆의 관리를 맞히길’ 기다리던 고자의는 주육이 기합을 넣었는데 활시위가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보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재촉했다.
주육은 끽소리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며 다시 이얍, 하고 소리쳤다. 이번에도 활시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자의도 그제야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응? 너 활시위도 당기지 못하는 거 아니겠지?”
“자네 평소에 몇 두짜리 활을 쓰나?”
이신이 물었다.
“이것과…… 비슷하다.”
주육은 제가 쓰는 활 무게를 말하기 창피해서 얼버무렸다.
“이 활, 몇 두냐?”
계소영도 알아차리고 대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영은 영원을 힐끔 보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룁니다, 계 공자. 일석 궁입니다. 가장 작은 활입니다.”
“일석 궁도 당기지 못하는 거냐?”
손방서가 하하 웃었다.
“그럼 네가 해 보아라!”
일석 궁이라는 말에 주육은 기고만장해져서 손방서의 말이 끝나기 전에 활을 그의 손에 찔러넣었다. 주육은 아무리 그래도 며칠 몽둥이를 휘두르고 말 타며 활을 쏘아 본 사람이었고 손방서는 전형적인 나약한 서생이었다. 말을 타고 반 시진만 있어도 죽을 듯이 힘들어하는 그는 활을 받자마자 몸이 축 꺼졌다. 그는 안고 있기도 무거운 활을 얼른 곁에 있는 조명헌 품에 넘겨 버렸다.
“나는 몸이 허약하지 않은가. 조 형, 자네가 해 보게.”
조명헌은 활을 받아서 만지작거리다가 힘껏 활시위를 당겨 보고는 고자의에게 건넸다.
“나도 안 되겠군. 활시위가 어찌 이리 철근처럼 무거운 것이야. 자네가 해 보게.”
서로 넘겨주고 찔러준 활은 반 바퀴 돌아서 여염을 거쳐 계소영 손으로 들어갔다. 계소영은 활을 들고 유심히 살핀 후에 들어 올렸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힘껏 활시위를 잡아당겨도 활시위가 반 정도 늘어나고는 버티지 못하고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얼굴이 시뻘게졌다.
“일석 넘는 것 같군. 이러니 육소야가 당기지 못하지.”
주육은 들썩거리며 모두를 바라봤다. 나만 활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
계소영은 활을 이신에게 넘겼다.
“자넨 궁마(弓馬)를 연습한 적 있으니 해 보게.”
이신은 활을 받아 자세 잡고 당겨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기껏해야 4두 궁을 썼을 뿐이라 이건 당기지 못하네.”
“북삼로 군의 궁수는 적어도 일석 궁을 쓰지.”
영원이 일어서서 궁을 받아 아무렇지 않게 활을 당겼다. 활시위가 끊어질 듯이 팽팽히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북방의 만족(蠻族)은 열몇 살 아이도 이런 일석 궁을 쓴다. 성년 전사는 일석 2두, 일석 5두 무게 활을 쓰는 사람도 흔하고. 만족은 말 등에서 태어나 활과 창을 장난감으로 쓰며 자란 만큼, 무거운 활을 당기고 정확히 쏜다. 일석 5두짜리 활로 혼자 우리 순시 소대 열 명을 한 번에 쏘아죽인다.”
영원의 말에 대청 안이 진지해졌다. 여염은 눈빛을 반짝이며 영원을 바라봤다. 그야말로 적절한 시기, 적절한 곳에서 한 말이었다. 그조차도 저도 모르게 영원을 다시 보고 영가에 경의가 생겼다.
이신은 여염을 힐끔 보고 또 계소영을 바라봤다. 계소영의 시선을 마주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신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피어났다. 계소영의 눈빛에 경의가 가득했다. 영가에 쭉정이는 없구나!
“내가 열넷이 되던 해, 번갈아 변경을 지키고 순시 나갔다가 십인 소대를 마주쳤는데 그중에 일석 5두짜리 강궁을 쓰는 궁수가 넷이나 있었다. 다행히 내가 데리고 나간 순시 중에 우리 쪽에 나 말고 대영도 있었지. 대영도 일석 5두짜리 활을 쓴다. 우리쪽 반을 잃었지만 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해치웠다.”
영원은 이야기하면서 손을 내밀어 화살을 받아 시위에 걸쳤다. 그리고 어디에 쏘아야 할지 찾는 듯 활시위를 당긴 채 빙그르르 돌았다.
“칠야도 그때 일석 5두짜리 궁을 썼습니까?”
“칠야가 그때 마침 일석 7두짜리 궁을 얻었습니다. 그 궁을 얻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사정거리에 들기 전에 상대 궁수 둘을 먼저 해치웠습니다. 아니었으면…….”
대영이 곁에 서서 지금 생각해도 두려운 듯이 대답했다.
“일석 7두!”
주육이 두 눈이 다 휘둥그레져서 꽥 고함쳤다.
“원 형님, 일석 7두짜리 활을 당긴단 말이오?”
“당기는 게 아니라 쓰는 거지! 일석 7두짜리 활을 쓰는 거지! 당기는 거랑 쓰는 건 천지 차이다. 칠 형님, 정말 대단하오!”
묵칠은 주육의 말을 고쳐 주고는 화살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화살촉을 뽑는 영원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적진으로 달려 들어갈 때는 일석 7두의 사정거리에서 일석 5두의 사정거리까지는 고작 숨 몇 번 쉴 사이지. 그사이에 상대의 궁수를 확인하고 화살을 연발하다니. 이런 민첩성, 안목, 그리고 활을 걸고 당기는 속도라니.”
이신은 감탄하고는 영원을 향해 공수하며 경의를 표했다.
“칠야,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원은 벌써 맨손으로 화살촉을 뽑았고 대영이 손수건을 건네자 화살촉에 손수건을 감으면서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지 말게.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들으면 배를 잡고 웃을 걸세. 솔직히 말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익힌 것이네. 북부엔 1년 사계절 만족이 끊이지 않아. 영가 사내는 물론이고 큰누님도 입궁하기 전에 수시로 변경을 지킬 수밖에 없었지. 싸움도 수시로 하고. 큰누님이 몸이 안 좋아진 것도 그 당시 변경을 나가서 적을 쫓다가 추위에 근본이 상했어.”
영원은 손수건을 두른 다음 다시 화살촉을 꽂고 호수 맞은편에 활짝 핀 해당화 나무를 가리켰다.
“저 나무로 하지. 활을 참 오랜만에 쏘는군.”
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활시위 소리가 들리더니 화살촉에 비단을 감은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서 해당화 나무에 꽂혔다. 나무 가득하던 해당화가 팔랑팔랑 흩날렸다.
“좋다!”
주육이 손뼉 치며 발을 구르고 큰소리로 고함쳤다. 묵칠도 따라 좋다고 외쳐댔다. 고자의는 조금 두려운 얼굴로 영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것이 영가에서 가장 변변치 않다는 자제인가. 이 활 솜씨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영 후야와 두 형님은 어떨까. 그리고 영 황후. 아까 한 말을 들어보면 그 당시 영 황후도 비슷했을 것이다. 적어도 영원보다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염은 슬쩍 뒷걸음쳐서 이신과 계소영 중간에 서서 나지막이 말했다.
“저 계산속 좀 보게. 정말이지……. 계산속을 쓰긴 했지만 다 사실이지.”
여염이 잠시 멈칫하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실력이고.”
“제 겉모습을 바꾸려는 게지.”
계소영의 목소리가 살짝 차가워졌다.
여염은 잠깐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소영은 이신을 바라보았고, 이신은 호수 맞은편에 화살이 꽂힌 해당화 나무를 바라보며 전혀 상관없는 말을 내뱉었다.
“영 칠야가 경성에서 아내를 맞겠지?”
여염과 계소영은 얼떨떨해하다가 시선을 마주치고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고 또 동시에 영원을 바라봤다.
이런 사위라면 경성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겠지.
얼마 전에 막 머리를 튼 어린 사환 둘이 쪼르르 호수 너머로 달려가서 화살촉 없는 화살을 둘이 함께 뽑고서 다시 쪼르르 달려왔다. 사환이 대영에게 화살을 건네자 영원이 대영 손에 들린 화살을 바라봤다. 화살은 돌아왔는데 화살촉에 묶은 손수건이 돌아오지 않았다. 영원은 화살을 들고 잠시 들여다보다가 대영을 손짓해서 나지막이 당부하고 화살을 건넸다.
주육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곁에서 제가 화살을 쏘기라도 한 듯이 흥분했다. 묵칠도 혀를 내두르고 제 영광인 듯 자랑스러워했지만 주육처럼 춤을 추진 않았다.
“봤지? 원 형님이 쏜 활.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경천일전(驚天一箭), 하늘도 놀랄 화살이라고 한다!”
주육이 침을 튀기며 탁자를 탁탁 내리쳤다.
“칠야의 경천일전이지 네 경천일전이냐? 넌 활시위도 당기지 못해놓고!”
고자의가 가차 없이 주육의 흥분을 무질렀다. 고자의 곁에 서 있던 탕호우가 말리려고 손을 내밀다가 다시 거뒀다.
탕호우의 부친은 그가 태어나자마자 장사하느라 외지를 돌아다녔고 그는 모친과 누이와 함께 산서 고향 집에 있었다. 열몇 살이 될 때까지 부친을 몇 번 만나지도 못했다. 오히려 서출 아우 둘이 항상 부친 곁에 있었고 부친 손에 이끌려 자랐다. 그는 부친과 친밀하지 않은 대신, 모친, 누이와 지극히 정이 두터웠다. 고가가 그런 다섯째 누이를 궁으로 들여보내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된 그 날부터 마음속으로 고가와 멀어졌다.
고자의가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걸 예전이라면 벌써 몇 번은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너도 당기지 못해놓고!”
주육이 가차 없이 되받아쳤다.
“내가 글공부하다가 안 돼서 무술 연습한 것도 아니고! 내가 당기지 못한 것과 네가 당기지 못하는 것이 같으냐?”
고자의는 원래 이치를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육은 더더욱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하물며 지금은 원 형님의 화살 때문에 제가 다 의기양양할 때였다. 그는 입을 팔자로 늘어뜨리고 고자의를 흘겨봤다.
“거꾸로 세서 일등 주제에! 손산(孫山) 뒤의 손산 주제에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나라면 그 진사 자리, 마다하겠다!”
(※손산. 함께 과거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한 사람을 ‘명락손산名落孙山’[이름이 손산 뒤에 있다]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데서, 후세 사람들은 과거에 낙제하였을 때 ‘명락손산名落孙山’이라고 한다.)
“주육!”
고자의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꼴등이라니! 탕호우도 저보다 훨씬 앞에 있다는 것이 과거에 급제한 와중에도 심하게 울적한 일이었다. 파리를 집어삼킨 듯이 울적한데 주육이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니 얼마나 분하고 수치스러운가.
영원은 주육의 그 말을 못 들은 듯이 주육 옆에 서 있었다. 물론 고자의의 시퍼레진 얼굴도 못 본 듯 굴었다.
주육이 말을 꺼냈을 때 탕호우는 벌써 뒤로 물러났고 지금은 벌써 집중해서 차를 내리고 있었다.
여염, 계소영과 이신은 서로 속닥거린 후에 다들 조금 넋을 놓고 있다가, 고자의가 씩씩대며 ‘주육!’ 하고 외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고자의가 무슨 일로 화가 난 건지는 세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진안방은 말리러 다가서려다가, 고자의의 퍼레진 얼굴과 주육이 눈에 불을 켜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 모습에 주저주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