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34화 (334/463)

334화: 지나친 생각

“그걸 누가 알아. 난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거, 남 이야기하는 거 제일 싫어.”

해 이낭자는 부채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 앞으로 육낭자랑 같이 있을 때 다들 조심해. 생각해 봐. 자기 고모랑 오라버니도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아유, 그만하자. 어쨌든 다들 조심들 해.”

해 이낭자가 부채를 흔들며 일어섰다.

“그냥 한담이니까 다들 우스갯소리로 듣고 넘겨. 진짜로 여기면 안 돼. 그냥 할 일 없어서 우스갯소리 한 거야. 진짜로 여기면 큰일 나.”

조 구낭자가 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혀를 끌끌 찼다.

“당연히 우스갯소리지. 정말이지, 다들 육낭자가 이러네저러네 하는데 정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을 모른다는 말이 맞네. 쯧쯧.”

초 삼낭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네. 육낭자도 참…….”

해 삼낭자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런 말 없이 차를 마셨다.

능운루 별실 안, 주육은 다소 불안한 듯이 창틀에 기댄 채 이 길로 쭉 행진해서 아래를 지나가는 진사 행렬을 내려다봤다. 묵칠은 옆에 붙어서 부러운 얼굴로 진사 행렬과 길잡이인 영원을 바라봤다.

“봐봐, 칠 형님이니까 저 정도 위세가 나오는 거라고. 난 칠 형님이 뒤에 있는 모든 진사를 압도하는 것 같아!”

묵칠은 어느 진사를 봐도 씁쓸하고 거북하기만 하고 금빛 수놓인 예복을 입고 말에 탄 영원이 너무 위풍당당하고 멋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야 물론이지. 휴.”

주육은 영원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계소영을 턱을 괸 채 바라봤다. 급제했을 뿐만 아니라 일갑 탐화로 급제하다니. 자기는 국공 세자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울적했다.

“칠 형님, 나왔다!”

묵칠이 저 멀리 가리키며 고함쳤다.

영원의 임무는 신진 진사를 예부로 데리고 돌아오면 끝. 이어지는 경림연 등 다른 행사는 그가 참석할 몫이 없었다.

영원이 예부 입구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서자 묵칠의 사환 야우가 쪼르르 달려가서 웃으며 고했다.

“칠야, 우리 칠소야와 주 육소야가 능운루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리 칠소야 말씀이, 칠야께서 고생했다고 주 육소야와 함께 술 한잔하며 푸시랍니다.”

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돌려 능운루로 향했다. 금빛 찬란한 옷이 비록 눈에 띈다지만, 눈에 띄고 말고를 연연하진 않았다. 어차피 눈에 띄면서 자라왔으니까.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묵칠과 주육이 함께 입구로 비집고 나왔다. 다행히 능운루 별실 문은 넓어서 두 사람이 함께 비집고 나와도 충분했다.

“원 형님, 아까 정말 위풍당당했소!”

주육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앞다퉈 칭찬했다. 영원이 눈썹을 높이 치켜들고 어이없는 듯 그를 흘겨봤다. 아까는 신진 진사들의 영광스러운 순간이고 자기는 그저 의례적인 배경판인데 위풍당당할 것이 뭐가 있다고.

“칠 형님, 생김새며 분위기며…….”

묵칠도 뒤에서 칭찬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원이 무질렀다.

“다 닥쳐라! 신진 진사들의 영광스러운 날에 내가 멋있긴 개뿔!”

“그건 그래. 진사는 우리가 평생 꿈도 못 꾸지. 휴!”

묵칠은 금세 말을 바꿔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사가 뭐? 진사 출신이면 뭐? 국공으로 봉해진 사람 있어? 억…….”

주육의 뿌듯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묵칠과 영원이 노려보는 걸 보고 순간, 국공 세자가 된 건 자기뿐이고 영원과 묵칠은 이어받을 작위가 없음을 금세 깨달았다.

“어휴! 내 말은, 엉? 원 형님, 정3품으로 승진했군! 축하해, 축하! 형님, 한턱내야 하오! 제대로 축하해 주겠어!”

주육의 말 돌리는 재주는 일품이었다.

그런 쪽으로 잘 아는 묵칠도 진심으로 영원을 축하했다.

“무관이 정3품으로 승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다 허직인데 축하는 무슨. 됐다.”

영원은 주육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참, 너 계소영하고 내기했었지?”

묵칠이 탁자를 내리치며 흥분한 눈썹이 마구 꿈틀거렸다.

“맞다! 나도 기억한다! 하하하! 주육, 네가 졌다. 그때 뭐라고 했었더라? 그 뭐냐, 연무장에서 쏜 화살이 북 치던 관리 하나를 맞혔다던가? 주육, 네가 쏜 화살은 그 관리도 맞히지 못할 것이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지도 못할 것이고.”

주육은 얼굴이 다 시퍼레졌다.

“닥쳐! 내기는 무슨. 그냥 농담한 거지. 그 뭐냐…….”

“사내대장부가 내기했으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지!”

영원이 가차 없이 말을 잇자 주육은 순간 쭈그러들어 울상지었다.

“형님,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이고! 나도 참. 왜 미쳐서 그런 내기를 걸었지. 방이 붙은 후로 지금까지 골치였어. 안 그래도 형님에게 꾀를 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문장 하나 외우는 게 뭐 대수라고! 세상에 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으냐. 너도 아까 탐화가 뭐가 대수냐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대단하면 국공이 되고 이야기하라며. 그렇지?”

영원의 엄숙하고 진지한 말에 묵칠은 웃음을 터트렸다.

묵칠은 세상이 평안할까 두려운 듯 훈수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소육, 다시 내기해라. 넌 평생 국공이 못 된다고 내기해.”

“싫다! 하려거든 너나 해라. 평생 승상 손자가 못 된다고 내기해!”

주육은 가차 없이 되받아치고 영원을 바라봤다.

“형님, 이제 어쩌지? 말 좀 해 봐. 형님이 하라는 대로 할게.”

“뭘 어쩌겠어. 하려면 크게 해야지! 사람이 살면서 학문 없는 건 괜찮다. 하지만 인품을 잃어서는 안 되지. 사내는 이판사판 덤빌 줄 알아야 한다. 체면을 잃는 건 체면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네가 먼저 그 3년 동안 성과 없다 어쩌고 하는 그 문장을 읊어라.”

영원은 떠들썩한 구경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훈수를 뒀다.

“알았어.”

주육은 쭈그러들 대로 쭈그러져서 기운 없이 대답했다.

“칠 형님, 그 일은?”

묵칠이 오늘 다급하게 영원을 만나려 한 이유는 오늘 아침에 할머님이 또 명가와의 혼사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그 일? 아!”

영원은 막 묻다가 금방 떠올렸다.

“안심해라. 내가 있지 않으냐. 담담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티 내지 말라고. 네 꼴 좀 보아라. 싸우기도 전에 네 얼굴만 보면 속마음을 다 꿰뚫리겠구나.”

“형님, 조금만 털어놓아 봐. 우리 대체 어떻게 할 건데?”

묵칠이 크게 안도하며 물었다.

“너 같은 놈한테 털어놓을 수 있겠냐? 털어놓자마자 저택으로 돌아가면 네 할머님에게 다 들킬 텐데? 네 할머님, 네 할아버님, 그리고 네 아버지, 하나같이 그보다 더 영리할 수 없을 만큼 영리한 분인데? 넌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물을 것 없어.”

영원이 엄숙한 얼굴로 묵칠을 훈계했다.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아무런 꾀가 없어서이니 어쩌랴.

“그렇지! 너 같은 놈한테 털어놓긴 뭘 털어놔. 형님이 말해도 알아듣지도 못할 놈이. 날 봐라. 안 묻잖으냐!”

주육이 얼른 태도를 밝혔다.

“아라 문제, 듣자 하니 태자가 매월 은자 주는 일을 너에게 맡겼다고?”

아라 일을 떠올린 영원이 주육을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맡고 말았지. 한 달에 천 냥이다. 천 냥!”

주육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자기도 한 달에 그만한 월전을 못 받는 것을.

“그럼 은자는 너희 저택에서 내는 것이냐?”

주육이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응. 태자의 분부를 듣고 바로 할머님을 찾아갔지. 우리 가문은 이미 분가했거든. 분가는 하고 살기는 함께 사는 건 형님도 알지? 태자가 시킨 일인데, 내게 분부했다고 형국공부에서 할 일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래서 할머님이 백부를 불렀는데 웬걸, 백부가 그 돈을 우리 사방에서 내야 한다고 하잖아. 태자가 나한테 시킨 일이고, 잘 처리하면 내게 좋은 일이지 자기에게 좋은 일이냐고. 돈을 왜 내야 하냐고 하면서 분가 이야기도 꺼내시잖아. 쯧!”

주육이 화를 내며 혀를 찼다.

“웃어른이지만 상대하기도 싫더군. 나중에 할머님이 당신께서 내겠다고 하셨어. 어차피 날 보고 하신 일이니 내신다니 내라지.”

주육은 잠시 멈칫하다가 상반신을 수그렸다.

“내 생각엔 아라가 한 달에 천 냥을 다 쓰지 못할 것 같은데…….”

영원과 묵칠의 무시하는 눈빛에 주육은 하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그냥 다 쓰지 못한다고! 태자의 분부가 그랬다고! 그렇게 보지 마라. 내가 천 냥을 삥땅 친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다 쓰지 못한다고 한 건데……. 됐다, 됐어. 못 들은 것으로 해. 삥땅 치지 않았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어떻게 아라의 은자를 삥땅 쳐.”

“은자가 필요하면 날 찾아와라.”

영원이 주육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느릿느릿 하는 말에 주육이 허허 웃었다. 알았다고도 됐다고도 하지 않았다.

참화 행진, 경림연, 그리고 각명(刻銘) 등 급제자의 영광스럽기 짝이 없는 행사가 끝난 후, 금세 서길사 시험이 다가왔다. 한림원에 들어갈 계획이 없는 계소영은 참가하지 않았고 여염과 이신, 그리고 진안방은 모두 서길사에 합격해서 한림원 수습이 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계소영은 호부를 선택했다.

모든 일이 결정된 후, 여씨 가문에서 널리 청첩을 보내 각 가문을 저택으로 모셨다. 역시나 복안 장공주의 말대로 장 태태와 이동을 꽃 연회에 모시는 청첩이 이가에도 당도했다.

문회, 꽃 연회 전날, 여염은 여 승상 서재에서 나와 모친 원 부인의 정원으로 직행했다. 마지막으로 내일 쓸 장식품 같은 걸 기쁨에 겨워 살펴보던 원 부인은 여염이 들어가자 관사 어멈들을 잠시 물렸다.

“할아버님이 뭔가 분부하시더냐?”

원 부인과 시아버지 여 승상은 기본적으로 여염을 통해서 소통했다. 여염이 이럴 때 찾아온 걸 보면 여 승상이 전할 말이 있는 것이다.

“아, 아닙니다.”

여 승상의 분부로 찾아온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번 분부는 할아버님의 분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얽힌 게 너무 많아서 장 태태의 외할머니 이야기까지 해야 확실히 설명할 수 있는데, 여 승상은 이 일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라지 않았다.

“그게…… 어머님, 이 대랑의 모친과 누이를 초대하셨지요?”

여염은 몹시 부자연스럽게 물었다.

“어느 이 대랑 말이냐?”

원 부인은 한순간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갑 전려(轉臚: 이갑 1등) 이신 말입니다.”

“아! 알지. 모친과 누이도 만났었단다. 너와 친분 깊은 사이 아니냐. 당연히 초청했지. 왜 그러느냐?”

원 부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그저…… 이가 태태가 처음으로 우리 저택에 오는 것이라. 제 말은, 이가 태태와 이 대랑의 누이는 우리 가문과 별 왕래가 없었는데 내일 다른 가문 중에 가까운 집안이 있는지 몰라서요. 혹시 없으면 어머니가 잘 돌봐 주세요.”

말을 마친 여염은 내심 숨을 돌렸다.

“그야 물론이지.”

원 부인은 그렇게 대답하고 위아래로 여염을 살폈다.

“웬일로 네가 이렇게 꼼꼼히 생각한 것이냐. 이런 일을 신경 쓴 적이 없는 아이가?”

“조금 전에 생각나서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어머님이야 원래 꼼꼼하신 분 아닙니까. 그냥 생각나서 해 본 말입니다.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서 쉬겠습니다. 어머님도 너무 늦게까지 고생하지 마세요.”

여염은 어색하게 해명하고는 장읍하고 물러갔다.

문밖으로 나간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원 부인의 미소가 조금씩 흐려졌다.

그냥 해 본 말? 아들의 성격을 잘 안다. 염가아의 성격으로 이런 일에 그냥 생각나서 말을 할 리가 있나! 그냥 해 본 이 말을 얼마나 궁리하고 가늠하고 오래 고민하다가 와서 했을지 모를 일인데.

그런데 왜 갑자기 이가 모녀를 잘 돌봐 달라고 할 생각을 했을까? 이 대랑하고 친분이 깊어서?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아무리 친분이 깊어도 여식솔까지 돌보진 않지. 설마…… 이가 낭자 때문에?

원 부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가 낭자를 한두 번 만난 게 아니다. 생김새가 뛰어난 건 말할 것 없고 분위기며 도량이며 더 보기 드문 낭자였다. 가문이 너무 떨어지는 데다가 버림받은 여인이 아니라면 그녀조차 마음이 동할 정도였다.

염가아가 그 아이를 마음에 담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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