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32화 (332/463)

332화: 떠들썩한 구경

이신과 계소영, 훤칠하고 분위기가 출중한 사내 둘이 나란히 걸어오는 것만 해도 매우 눈에 띄는데 두 사람 주변에 사환과 종복이 너무 많은 건 말할 것도 없고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짙어서 그야말로 팻말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이 먼저 계소영을 알아봤고 이어서 누군가가 이신의 이름을 외쳤다. 그렇게 되니 사람들이 순식간에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영해를 비롯한 종복들은 손을 붙잡고 안간힘을 써서 인파를 막았다. 반루에서 뛰쳐나온 일꾼들과 안팎으로 협조해서 겨우 새 귀인 두 사람을 반루 대문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무술 실력이 뛰어나고 건장한 일꾼과 종복 여남은 명이 입구를 지키며 몰려드는 인파를 막았다.

영해와 사환, 종복들, 그리고 반루의 일꾼들은 하나같이 신이 벗겨지고 두건이 비뚤어져서 땀을 뻘뻘 흘렸다. 일꾼들은 두렵기도 하고 들뜨기도 한 마음으로 까치발을 들고 문밖에 몰린 인파를 바라보았다.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자기집 대야가 춘시에서 4등이 되자마자 첫 번째로 한 일이 가문 점포에 들러 돌봐 준 일이 아닌가! 앞으로 반루가 더 유명해지게 되지 않겠나.

장원, 방안과 탐화, 거기에 이갑 1등 등, 선두 4등을 차지한 재능이 뛰어나고 준수하기 짝이 없는 사내들이 방안 진씨 저택 옆 반루에 모였다는 소식은 바람보다 더 빨리 퍼졌다. 온 경성 사람이 반루로 몰려들었다. 이런 떠들썩한 구경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이 네 명의 따끈따끈한 귀인들은 재능, 기품은 말할 것도 없고, 보기 드문 미남자였다. 눈 호강도 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아무도 정혼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한 번 보러 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거의 온 경성 사람이 그렇게 겹겹이 반루 밖을 에워쌌다.

마침 반루 안에 있던 손님은 더더욱 들떴고 별실에 있던 손님들까지 우르르 몰려나왔다. 대청에 있는 사람은 심지어 탁자에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반루 장궤가 서둘러 나와 고함쳤다.

“오늘은 점포에서 한턱내겠습니다. 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네 귀인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서 다들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실례를 무릅쓰고 밖으로 모실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조용히 해주세요, 조용히!”

별실로 들어간 계소영은 아직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창문 틈으로 갈수록 많아지는 새카만 머리통을 바라봤다. 경성에 사람이 이토록 많은지 오늘 처음 알았다.

“우리…….”

여염이 네 사람을 가리키고는 아래층을 가리켰다.

“이것도 인연인데, 이따 족자를 써서 주루에 있는 손님에게 하나씩 선물하면 어떻겠나.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방해한 것 아닌가.”

“방해요? 우리를 만나서 기뻐해도 모자랄 텐데요.”

진안방이 실소했다.

“방해는 무슨. 아닐세 아니야.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 주루가 우리 가문 점포네. 방해니 말고 할 것도 없어.”

막 놀란 가슴을 진정한 이신도 얼른 상황을 설명하고 정중히 예의를 차렸다.

진안방의 말에 계소영의 눈빛에 경멸의 기색이 스쳤다. 진안방에 대한 인상도 많이 안 좋아졌다.

이신과 거리낌 없는 사이인 여염이 이신을 툭 쳤다.

“나는 주루에 있는 손님을 말하는 것일세! 자넨 장사 생각만 하는군.”

“그런 게 아닐세!”

이신이 웃으며 진안방을 향해 공수하고는 다시 여염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장원이니 당연히 자네 말이 우선일세. 자네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여기가 이가 점포라는 말을 들은 계소영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 대랑 말이 맞지. 자네가 장원이니 오늘은 자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네.”

여염이 영해를 불러 분부하자, 영해는 눈이 사라져라 웃으며 대답하고는 서둘러 장궤를 찾아 말을 전했다.

오늘 여러분을 방해했으니 장원, 방안, 탐화, 그리고 이갑 1등 네 사람이 사람마다 하나씩 글을 선물하기로 했다는 장원의 말을 장궤가 공포하자 주루의 손님들은 매우 기뻐하며 끊임없이 칭찬했다.

역시 천하제일의 재자들 아니랄까 봐 참으로 대범한 풍채로구나!

어차피 반루에 갇혔으니, 네 사람은 아예 반루 안에서 사은표(謝恩表: 황제에게 올리는 감사 서신) 등 써내야 할 미사여구가 화려한 문장을 함께 상의하며 써 내려가면서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무렵 저녁이 되었고, 반루 밖에 모인 한가한 사람들도 서서히 흩어졌다. 네 사람은 종복들에게 둘러싸여 반루 뒷문으로 살금살금 나가서 각자 저택으로 돌아갔다.

고자의가 진사가 된 일로 온 저택이 경사스러운 분위기였다. 탕호우도 이갑에 들어서 원래라면 대대적으로 축하해야 하는데, 고서강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

황상에게 막 훈계를 들었다. 황상의 훈계는 온화했지만, 그 훈계에 담긴 내용이 실로 심상치 않았다.

‘고자의의 재능, 식견은 가까스로 금방에 이름이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찌 감히 일갑 장원을 바라는가? 짐은 평소에 자네가 신중하고 분별 있다고 여겼거늘, 어떻게 이런 망상을 품어? 짐이 자네를 잘못 본 것인가?

태자가 순후하지. 그런데 자네가 그런 태자를 부추겨서 대신 그런 말을 하게 하다니, 그건 소인배의 행실이네. 자네가 이러니 짐이 마음이 매우 아프네. 짐은 고자의를 낙방시킬 생각이었는데, 해 상서가 말렸네. 태자가 그저 재자를 아끼는 마음에 그랬을 거라고. 고자의의 재능이 사실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득하길래 짐이 해 상서의 체면을 봐서 이갑 말미에 남겨두었네.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되네!’

고서강은 가슴 가득한 두려움과 분노를 누르고 일어섰다. 잠시 서성이며 마음을 다스리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했다.

보아하니 태자가 황상 앞에서 고자의를 일갑으로 천거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장원의 재주가 있다고 했거나. 아이고, 고자의의 재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만, 장원의 재주라니. 계소영과 다른 사람이 있는데 가능할 리가 있나. 고자의를 일갑으로 천거한 일, 태자 본인의 생각일까, 아니면 누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태자를 부추긴 걸까.

태자 본인의 생각? 불가능한 일이다.

고 서강은 태자의 성품과 성격을 떠올렸다. 그동안 해 온 것을 봐도 태자는 신하를 위하고 은혜를 베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승상이 되지 못해서, 태자가 미안해서 주는 보상인가?

하!

고서상은 코웃음 쳤다. 그럴 리가 있나. 태자의 마음속 승상이 그가 아닐 수 있는 건 둘째치고, 설령 맞더라도 태자의 인품, 성격으로 신하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을 리가 있나.

그렇다면 누군가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 것이다. 누굴까.

누구는 누구야.

고서강의 얼굴이 퍼렇게 떴다. 주택헌 그놈 말고 또 누가 있으랴.

자신이 승상이 되지 못한 것이 바로 주택헌이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닭을 훔치지는 못하고 오히려 쌀을 손해 본다고, 주택헌도 안타깝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지.

설마, 내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이번 춘시를 이용해서 나를 해치려고?

그런 것이 분명하군!

고서강은 코웃음을 치고 또 쳤다. 주가, 어쩌면 온 가문 위아래가 이렇게 안목이 짧을 수가 있을까. 태자가 아직 등극하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 어떻게 자신을 해치는 이런 수작을 부릴 수가 있나. 어떻게 이렇게 여지를 남기지 않고 몰아붙일 수가 있나. 태자가 잘못될까 봐 두렵지도 않은 걸까.

자고로 태자가 되어서도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설령 만사가 타당하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데, 나, 고서강이 두려워할 것으로 정말 생각하는 것인가!

매해 3월, 경성에서 가장 떠들썩한 일은 바로 신진 진사들의 탐화 행진, 경림연 그리고 갖가지 관련된 소식이었다.

물론 올해 3월은 예년보다 배는 떠들썩했다. 올해 선두 네 명 모두 준수하고 멋스러운 사내, 게다가 아직 혼인하지 않은 사내인 걸 어쩌겠나.

참화 행진 날, 속세를 벗어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장공주마저 제대로 구경하겠다고 이동을 끌고 가장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했다.

등롱을 걸고 오색 띠를 두른 화려한 거리 양쪽에 구경하는 사람이 가득했다. 이동은 창가에 서서 그 떠들썩한 거리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어린 낭자가 많아 보였다.

평상복 차림을 한 복안 장공주가 이동과 나란히 서서 이리 보고 또 저리 보다가 까르르 웃었다.

“잠화 행진이지 수놓은 공을 던져서 인연을 맺는 날도 아닌데, 저 어린 낭자들 왜 저러는 거래. 뭘 하려고.”

“뭘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구경하는 거예요. 장원, 방안이 힐끔 바라봐 주기만 해도 큰 경사니까요.”

이동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에 멀고 먼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열대여섯 살 때, 그녀도 이 거리에 가득한 어린 낭자들처럼, 바로 여기에서 이렇게 창문에 엎드려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신진 진사들을 구경했던 것 같다. 다만 그때 선두 세 명 모두 매우 나이가 많았던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재미야.”

복안 장공주가 시시하다는 듯 입을 비죽였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여기서 구경하는 우리는 또 무슨 재미에요?”

이동이 되묻자 복안 장공주가 피식 웃었다.

“요 계집애! 하긴, 다 같은 구경이지.”

복안 장공주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생각이 많은 듯 탄식했다.

“신진 진사 참화 행진 구경하는 거 처음이야. 어릴 때, 내 말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그땐 어릴 때라, 신진 진사 참화 행진이 되게 떠들썩하다는 말을 듣고 궁금했어. 처음엔 내가 너무 어릴 때라, 혼자 궁 밖에 가는 게 마음 놓이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같이 나가려고 하셨어.”

복안 장공주의 말이 돌연 멈췄다가 잠시 후 계속 이어졌다.

“너도 알잖아. 황상이 출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두 번째 땐 나도 꽤 컸고, 아버지도 그땐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셨는데 계 노승상이 내가 출궁해서 참화 행진을 구경하면 우선 진사들이 너무 긴장할 거라고. 그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영광스러워야 할 때인데 말이야. 또 하나는 내가 누굴 보고 누굴 안 보는지, 그것도 누군가는 특별하게 생각할 거라고.”

복안 장공주는 주변을 둘러봤다.

“봐봐. 우리는 여기서 구경하는데, 이 주변에 우리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있어. 계 노승상 말이 맞아. 그 두 번을 거친 다음 다시는 구경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 나중에 아버지가 떠난 후엔, 어머니가 날 궁 밖으로 내보낼 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다음엔……. 하지만 드디어 이렇게 구경하네!”

이동은 살짝 고개를 치켜들고 자유로워 보이는 복안 장공주를 말없이 웃으며 바라봤다.

저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리자 복안 장공주가 쏜살처럼 창가로 달려가서 목을 길게 빼고 궁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뒤로 한 손을 뻗어서 이동을 향해 손짓했다.

“왔어, 왔어! 얼른, 얼른 와서 봐봐!”

이동은 탁자를 짚고 허리도 펴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대열의 맨 앞은 비단옷을 입고 준마를 탄 어전시위들이었다. 둘씩 짝을 이룬 어전시위 열 쌍 뒤엔 검은 바탕에 화려하게 수 놓인 비단옷을 입고 머리엔 커다랗게 흔들리는 붉은 융 뭉치를 단 금관을 쓰고 바짝 굳은 엄숙한 얼굴로 말에 탄 영원이 있었다. 영원 뒤, 열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 양쪽 귀밑머리에 꽃을 꽂은 신진 장원 여염이 있었다.

“어머!”

복안 장공주는 놀라서 고함치고는 창틀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웃었다.

“왜 웃어요?”

이동의 시선이 영원 앞에서 뒤로 왔다 갔다 했다. 장공주가 저렇게 웃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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