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28화 (328/463)

328화: 이야의 의견

“여 승상이 안원후 소가와 연을 맺은 것에 비하면 우리 가문이 묵 승상가와 연을 맺는 건 과분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아니라 그때도, 여 승상이 안원후부를 넘봤다고 말하기보다 안원후 소 후야의 혜안이 독특하다고 했습니다. 춘시 방이 난 후에 적당한 사람을 묵 승상가에 보내 의중을 떠봐도 될 일입니다. 다만 떠볼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 않겠군요.”

문 이야는 흡족한 듯이 뒤로 기대 고개를 들었다. 이동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과거 결과가 이번에도 예전과 같다면, 경성 규수 중에 누가 오라버니와 혼인하더라도 복 받은 일이라고 누구나 부러워할 것이다.

이동은 잠시 침묵하다가 살며시 말했다.

“떠볼 사람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묵칠이 있잖아요.”

문 이야는 멈칫하다가 곧 껄껄 웃었다.

“그렇군요! 맞아요, 묵칠이 있지요. 묵칠을 잊었군요. 영 칠야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문 이야는 생각만 해도 웃겨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노부인은 계 공자를 점찍었을지도 몰라요.”

이동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계소영 이야기를 꺼냈다.

“계 천관이 진왕 쪽에 서지 않았다면 확실히 좋은 혼담이지요. 지금은……. 허허!”

“전 노부인과 몇 번 이야기 나눈 적 있어요. 안원후부 묵 부인하고도요. 전 노부인은 조정은 조정, 집안은 집안, 사내는 사내, 여인은 여인, 이런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야도 계소영은 계 천관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혼인 맺는다고 해도, 대립하는 사람도 많아요. 수국공부도 그렇잖아요. 같은 주씨가 두 무리로 나뉜걸요.”

이동이 나지막이 하는 말에 문 이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쓰다듬다가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낭자가 말한 사내는 사내, 여인은 여인이라는 건 혼인한 다음 이야기입니다. 이미 몇 대가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찢어질 수 없을 때, 제일 좋은 방법이 사내는 사내, 여인은 여인입니다. 지금은 묵가와 계가는 아직 혼인 맺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요.”

이동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묵 육낭자는 예전에 계소영과 혼인했다. 이번 생에 양 구야는 여전히 오 낭자와 혼인했고.

“저는 진왕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묵 승상은, 진왕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귀한 손녀를 계가에 보내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4, 5년 안에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르는 걸 굳이 무릅쓰고요? 예전에 묵 부인이 안원후부와 정혼 한 후, 선황의 병이 깊어져서 황상을 태자로 세웠을 때 노 안원후가 약속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아들을 묵 부인 앞에 무릎도 꿇렸다던 걸요. 하늘에 맹세까지 시키고요. 묵가에서 정말로 사내는 사내, 여인은 여인이라고 생각했다면 노 안원후가 그럴 필요까지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 노 안원후도 누구나 떠받들던 사람이었습니다. 노 안원후가 평생 첩을 얼마나 들였습니까? 서출은요? 이번 일로 마침 묵 승상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영 칠야도 그럴 생각일 것이고요.”

문 이야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어차피 우리에겐 말 떠보기 가장 좋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묵칠 공자의 황당함과 허튼짓은 온 경성에 유명합니다. 제대로 떠보고 올 겁니다.”

이동은 실소하고 말았다.

“그럼 묵칠과 명 삼낭자 일은요?”

이동이 살며시 물었다. 오라버니와 묵 육낭자 일보다 더 망설여졌다.

“명 삼낭자는 만난 적 있나요?”

문 이야가 되묻자 이동은 잠시 주저했다. 이번 생엔 아직이다.

“만나보진 못했는데, 듣자 하니 딱 명가 사람이래요. 대단히 영특하고요.”

그 말 한마디에 문 이야는 바로 깨달았다.

“강남 양절 일대, 계가, 명가가 첫째, 둘째로 손꼽히는 집안이지요. 하지만 저는 줄곧 명가가 계가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명가 낭자가 계가 낭자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요. 명가 낭자는 열서너 살, 심지어 더 클 때까지 가문 형제들과 함께 글공부합니다. 심지어 문장을 짓기도 하고요. 명가 낭자는 묵가에 어울리지만, 묵칠은 명가 낭자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묵칠이 무지하긴 해도 마음은 반듯하군요. 명가 낭자와 혼인하지 않겠다는 것도 명가 낭자보다 못하다는 걸 알아서겠지요.”

“맞아요. 묵 칠소야가 영 칠야한테 그랬대요. 명가 삼낭자와 자기 여섯째 누이는 한마디면 서로 알아듣고 미소 짓는데, 자기는 글자는 다 알아듣겠는데 합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매우 거북하대요.”

이동은 다채롭게 설명하던 영원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빙그레 웃었다. 문 이야는 그런 그녀의 미소를 흘깃 바라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전 노부인은 생각 깊은 분입니다. 명가 낭자를 점찍은 건 아마도 묵칠의 자손이 일자무식하지 않길 바라서겠지요. 명가 낭자가 있으면 묵칠이 글을 몰라도 상관없으니까요. 오로지 자기 가문을 위해서 정한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혹시 끼어들면 묵가에 밉보이게 될까 걱정이고요.”

이동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된 사람과 혼인하는 괴로움을 그녀는 이미 겪었다.

문 이야는 잠시 생각하다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낭자의 뜻대로 하세요. 다만 영 칠야가 있는 한, 낭자가 이 일에 연관됐다는 걸 묵가는 모를 겁니다.”

문 이야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물었다.

“영 칠야도 혼인하지 않았는데, 대신 골라달라고 부탁하지 않던가요?”

이동은 얼떨떨했다. 곧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감정이 몰려왔다.

“영 칠야의 혼사는 누님이 있는걸요. 내가 나설 이유가 뭐가 있어요.”

문 이야가 이마를 탁탁 쳤다.

“아! 그렇네요. 황후마마가 계시지. 그래, 황후마마가 계시지.”

문 이야는 이동이 흘겨보는 걸 보고 허허 웃었다.

“그러게요, 황후마마가 계시지요. 참, 대야는 내일 축시(丑時: 오전 1시부터 3시) 말엔 고사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물건은 다 준비됐습니까?”

“진작 준비했죠.”

고사장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코앞에 닥쳤는데 아직 물건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내일 배웅하러 가니 오늘은 대야를 만나지 않으렵니다. 낭자는 내일 가십니까?”

문 이야는 딱 봐도 할 말 없는데 할 말을 찾고 있었다.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제가 배웅하러 가요. 어머니는 안 가신대요.”

“그렇지요, 그렇지. 중요한 일이라고는 하나 온 가족이 갈 필요는 없지요. 저는 이만 쉬러 가렵니다. 열흘 넘게 달려왔고 어제는 꼬박 달렸습니다.”

문 이야는 이동에게 인사하고 거처로 돌아갔다.

이날 밤, 온 이가가 유시(酉時: 오후 7시부터 9시) 말에 불을 끄고 조용해졌다.

소유는 밤사이 뒤척이다가 유시 말이 막 지나자마자 닭을 잡고 깨끗하게 씻어서 고았다.

자시가 지나자 큰 주방 전체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소유는 향안을 꺼내서 주방 어멈들을 거느리고 향을 피우고 자기 집 대야가 순조롭게 글이 마구마구 쏟아져서 단번에 장원에 붙길, 하늘의 모든 신과 불조, 보살에게 빌었다.

멀리 있는 이신의 거처에서 들릴 리가 없지만, 큰 주방 사람들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발끝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자기네 대야가 고사장에 들어가는 건 세상없는 큰일이었다.

축시 말엔 온 이가에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이날 밤, 경성 대부분 집안에 불빛이 환했다.

일어난 이신은 목욕하고 진작 준비해둔 옷으로 갈아입고 장 태태의 상방에 갔다. 장 태태와 이동은 벌써 모든 준비물을 다시 한번 살폈고, 진작 골라놓은 종복들도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이신을 고사장까지 배웅할 준비를 마치고 뜨락 밖에서 상자,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소유는 찬합을 잔뜩 든 어멈을 거느리고 와서 기름기가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 계탕면을 이신 앞에 내려놓았다. 어멈들은 향도 맛도 좋은 찬을 상에 주르륵 늘어놓았다.

이신은 헛웃음 쳤다.

“면 한 그릇이면 된다고 말했는데. 이게 다…….”

“다 격식을 따진 거예요. 하나도 빠지면 안 돼요. 이건 장원 급제를 의미하는 거고요, 이건 용문(龍門)을 뛰어넘으라고 잉어를 준비했고요, 이건 과거 급제를 의미한답니다. 대야, 저희에게도 나눠주세요. 저희도 대야의 글재주를 좀 배우게요.”

소유가 웃으며 하는 말에 장 태태도 웃었다.

“용문을 뛰어넘는 잉어라, 좋구나. 우리도 점심에 저걸 먹자.”

이신이 면을 먹은 다음 정 어멈과 자초가 중문으로 배웅했다. 이신은 문 이야와 함께 같은 마차에 올랐고, 영해와 청평 등 몇 사람이 마차를 따라갔다. 이동도 수련을 데리고 마차를 타고 고사장으로 따라갔다.

고사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길이 막혀 마차가 지나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마차에서 내렸다. 청평 등 사환이 조심스럽게 준비물 상자를 감싸 안았고 영해가 맨 앞에서 쉴 새 없이 까치발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이신과 문 이야는 양쪽에서 이동을 에워싸고 걸어갔다. 세 사람 모두 그다지 긴장하지 않고 꽤 느긋한 모습으로 떠들썩한 주변을 둘러봤다.

“이야, 고사장에 들어간 적 있나요?”

이동이 주변을 둘러보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수재 시험을 본 적이 있습니다. 두 번 보고 관뒀습니다. 고달파요!”

문 이야는 고개를 들어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인에게 물어봤는데, 닷새 안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닷새 후에는…….”

문 이야가 이가 시린 듯이 입을 벌렸다.

“혹시 비가 오면, 그나마 적게 오면 다행인데 큰비가 오면 큰일입니다. 다른 건 참을 수 있어도 볼일은 참을 수 없으니, 뭘 잘 모르는 수험생이 오줌통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기라도 하면…….”

문 이야가 입을 비죽이며 고개를 저었다.

“이야! 좋은 말 좀 하시면 안 돼요?”

수련이 뒤에서 듣다가 속이 울렁거려서 저도 모르게 타박했다.

“대야, 이야, 낭자. 여 공자가 저기 있습니다. 저쪽으로 갈까요?”

쉴 새 없이 까치발을 들고 살피던 영해가 돌아와 보고했다.

“가자, 가자! 같이 들어가는 게 좋다!”

이신이 대답하기 전에 문 이야가 손을 휘두르며 분부했다.

영원을 따라 잠시 걸어간 일행은 종복과 사환에게 에워싸인 여염 옆을 비집고 도착했다.

“안 그래도 자넬 찾아보라고 사람을 보낼 참이었지. 계 대랑은 봤는가? 왜 아직 안 보이지?”

여염은 이신을 보자마자 두 눈을 반짝이며 재빨리 손짓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마차도 저 앞부터 꿈쩍 못하더군.”

이신이 웃으며 말했다.

문 이야는 여염을 향해 장읍했고 이동은 살며시 웃으며 예를 갖췄다.

지난번에 여 승상의 말을 전한 이래 이동을 달리 보기 시작한 여염은 정중하게 답례했다. 막 몸을 일으키는데 사환이 뛰어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대소야, 계 공자가 오셨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보셨어요.”

계소영이 친척 형님 몇 사람과 함께 금세 다가와 모두를 향해 공수하며 예를 갖췄다. 여염은 계소영이 든 낡아 보이는 준비물 상자를 부러운 듯 바라봤다.

“자네 아버지가 쓰시던 상자군. 장원 상자 아닌가.”

“할아버님도 쓰셨지. 낡긴 했지만 멀쩡해서 나도 이걸 쓰기로 했네.”

계소영이 전혀 체면 차리지 않고 덧붙이는 말에 여염은 더 부러워졌다. 이신도 허리를 숙이고 유심히 살폈다. 계 노승상과 계 승상이 썼던 준비물 상자, 게다가 한 사람은 장원이었다. 그야말로 신성한 물건이었다.

이신과 여염, 그리고 문 이야가 계소영의 상자를 에워싸고 살펴보자 이동도 궁금해서 상자를 바라봤다. 계소영은 조용히 옆으로 옮겨서 등불 아래서 이동을 바라봤다.

이동은 길한 문안이 잔뜩 수 놓인 얇은 해당홍(海棠紅: 옅은 자홍색, 복숭아색보다 진한 색) 두봉을 걸쳤고 두봉 아래 쪽빛 치마, 치마 아래로 해당홍 꽃신이 살짝 드러났다. 계소영은 유난히 부드럽고 아담해 보이는 발을 잠시 바라보다가 얼른 시선을 거두고 위를 올려다봤다.

이동은 간단하게 올린 연미빈(燕尾鬢)에 보석 박힌 적금 비녀를 꽂고 연꽃 씨 크기의 분홍색 진주 귀걸이를 달았다. 귀걸이가 등불 아래 부드럽게 살짝 반짝였다.

이렇게 화려한 차림은 처음이었다. 해당홍 옷을 입고 밝고 부드러운 등불 아래 서 있으니 초여름 호수에 살짝 핀 연꽃 같달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 같은 그 운치를 형용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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