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26화 (326/463)

326화: 누구

“밖으로 서신을 보내야겠다!”

주 귀비 이야기가 나오자, 대황자는 무심결에 주변을 돌아봤다. 계속해서 어머니 꿈을 꾼다. 어머니가 입, 코, 눈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노려보는 꿈을.

“서신이요? 누구에게요? 어떻게요?”

장 선생이 삐딱하게 대황자를 바라봤다.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외숙이지. 얼른 나를 내보내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넷째 그 고얀 놈을 지켜보라고 해야지!”

대황자는 투지 가득한 모습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 선생은 허허 웃었다. 정말이지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서신을 어떻게 내보냅니까?”

“자네가 방도를 생각해야지!”

대황자는 장 선생을 가리키며 횡포하게 명령했다. 장 선생은 등받이에 기댔다.

“저는 방도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여인도 쌀 없이 밥을 짓지 못합니다.”

“뭐라? 그럼 자네가 무슨 쓸모 있나?”

대황자는 포악하게 눈을 부릅떴고 장 선생은 담담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쓸모없다고 여기시면 죽이세요.”

“자네!”

대황자는 눈알을 부라리다가 한참 만에 허허 웃었다.

“방법이 없으면 없는 거지. 앞날은 길다.”

대황자는 곧바로 돌아서서 나갔다. 장 선생은 대황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살며시 한숨을 내쉬고 붓을 다시 들어 계속해서 경을 베꼈다.

하 십일낭이 궁에 들어간 지 며칠 만에 새 승상을 추대하는 일도 결과가 나왔다.

자기 외에 다른 이는 생각도 하지 않던 고서강은 내시가 초회현의 이름을 읊자 귀를 의심하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주 추밀부사는 더더욱 아연해진 얼굴로 맨 앞에 서 있는 태자를 바라봤다. 태자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자 주 추밀부사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고서강을 바라봤다.

태자의 사람을 천거하려고 새 승상을 올린 것일 터, 분명 태자의 사람을 천거하려고 뽑는 승상일 텐데 어째서 고 사사가 아닌가. 그렇다고 자기도 아니고, 어째서 초회현인가? 태자의 생각인가? 태자에게 다른 마음이 생긴 건가? 어떻게 전혀 모를 수가 있었지?

조회가 끝난 후, 혼란스러워진 주 추밀부사가 태자를 따라가 물어봐야 하는지 아니면 먼저 고서강과 이야기를 해 봐야 하는지 주저하고 있는데 고서강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성큼성큼 주 추밀부사 앞으로 달려간 고서강은 음험한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큰일이 다 끝났으니 이제 모든 이익을 손에 넣으려는 게지? 그렇지? 나부터 없애려고? 다른 사람 좋은 일 시킬지언정 나는 아니다? 좋다! 그래, 좋아!”

고서강은 그 말을 던지고 바로 돌아섰다.

주 추밀부사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한참 만에 알아듣고 허둥지둥 고서강을 뒤쫓아갔다.

“고 형! 고 사사! 기다리시게!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말 좀 듣게…….”

주 추밀부사가 고함칠수록 고서강은 걸음을 서둘렀다.

저 멀리, 하나는 멀어지고 하나는 뒤쫓는 고서강과 주 추밀부사를 바라보던 여 승상이 눈썹을 까딱이고는 돌아서서 태연하게 사라졌다.

위리안치된 대황자의 저택은 여전히 한두 군데 보수할 곳이 있어서인지, 초회현이 승상으로 올라간 다음 날, 그 잡역이 또 저택 수리하러 따라 들어갔다.

대황자가 빤히 보고 있는 걸 눈치챈 잡역은 눈짓을 보냈고, 대황자가 서둘러 구석으로 따라갔다. 잡역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공수하며 공손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대왕야, 축하드립니다. 초 상서가 승진했습니다. 이제 초 승상입니다.”

대황자는 얼떨떨해졌다. 초 상서가 승상으로 승진했는데 축하는 왜?

“초 승상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대왕야를 주군으로 여겼습니다. 소인은 그 이야기를 대왕야께 전하러 온 것입니다.”

대황자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초 상서가 나를 주군으로 여겨? 금시초문인데?

“소인이 줄곧 대왕야를 주군으로 여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대왕야는 만백성의 주군, 대왕야를 주군으로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왕야는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소인들끼리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잡역은 대황자의 의문을 읽은 듯이 살짝 허리 숙이며 공손하게 웃음 지었다.

대황자는 표정이 서서히 돌아와서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지극히 옳은 말이지. 자신은 세상에 내려온 진룡, 하늘의 아들, 만민의 주인이다. 자신을 주군으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일일이 다 알겠나.

“누가 말을 전하라고 한 것이냐? 국공?”

“아룁니다, 대왕야. 소인은 그런 건 모릅니다. 소인은 그저 위의 분부대로 전언을 전하러 온 것이고 다른 건 전혀 모릅니다.”

잡역의 지극히 공손한 태도는 전혀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 위라는 게 누군데?”

대황자가 얼른 다시 물었다.

“소인을 부리는 분입니다. 소인은 일개 잡역이고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이라 아무것도 모릅니다. 소인은 이제 가야 합니다. 대왕야,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소인, 이만 물러갑니다.”

잡역은 뒷걸음질 치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대황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돌아서서 장 선생을 만나러 곧장 장 선생 거처로 달려갔다.

대황자의 말을 다 듣고도 장 선생의 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이번엔 의심할 여지가 없지! 외숙 말고 누가 있겠나. 얼른 외숙에게 소식을 전해야겠어. 지금 궁에 하가 낭자, 조정엔 초회현이 있으니 날 내보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어쩌면 며칠 내에…….”

“초회현의 마음이 대왕야에게 향한 걸 제가 모를 수 있겠습니까?”

장 선생은 초회현이 대왕야를 주군으로 여긴다는 건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일이라고 여겼다. 긴 세월 호부를 관장한 초회현은 조정에 큰 파급을 미치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마음이 대왕야에게 있는데 자신이 몰랐을 리가 있나.

“나는 황장자다. 앞으로 이 천하는 내 것이다. 이 천하의 민심이 나를 향하고 나를 주군으로 여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초회현은 똑똑한 자다!”

대황자는 위리안치되기 전보다 더 투지가 불타오르는 듯했다.

장 선생은 허, 하고 실소했다.

“대왕야, 이미 태자가 세워졌습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영 황후마마의 적자 오황자가 있습니다. 대왕야, 살고 싶으면, 살아서 이 높은 담장을 나가고 싶으면 일단 정신 차려야 합니다.”

대황자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자네 그게! 그래, 좋다! 그럼 말해 봐라. 초회현의 마음이 누구에게 있지? 전언을 전한 건 누구고? 잡역이 혼자서 한 일이겠느냐? 그놈이 미쳐서?”

“대왕야, 말 전할 만한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소생이 생각하기에 가장 가능성 없는 사람이 바로 왕야의 외숙 수국공입니다.”

장 선생은 대황자를 직시하며 가차 없이 말했다.

“대왕야는 수국공부의 생질이지만, 태자 역시 그렇습니다. 수국공의 품성, 성격이라면 대왕야가 무너졌을 때 곧바로 태자에게 의탁했을 겁니다.”

대황자는 얼굴이 다 새파래졌다.

“외숙이 아니면 누구란 말이냐? 초회현?”

“제가 보기엔 대왕야를 어지럽히려고 일부러 말을 전한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도록 도발하려고요. 큰 잘못을요.”

장 선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황자를 바라봤다.

“누구냐고요? 어쩌면 진왕야, 어쩌면 오황자, 또 어쩌면 태자, 모두 가능성 있습니다.”

“진왕? 그 무지렁이가? 오황자? 오황자가 누군데? 어디에서 튀어나온 오황자?”

대황자는 우스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다음에 그 잡역이 다시 들어오거든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장 선생은 정말로 대황자와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 장 선생을 노려보다가 힘주어 코웃음 치고는 소매를 휘두르며 나갔다.

대황자가 위리안치된 후로 태의가 다시 왕부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곽씨의 병은 빠르게 회복했다.

도요가 후다닥 들어오는 소리에 서책을 읽던 곽씨가 서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냐?”

“정전에서 당직 서는 손 어멈이 그러는데 또 밖에서 사람이 들어왔대요. 화원 동북쪽에 있는 그 두 칸짜리 각문 문간방을 수리한다고요. 손 어멈 말이, 웬 잡역 차림인 사내가 대왕야와 한참 이야기했답니다. 다 듣지는 못했고, 초 상서가 상공이 되었네, 초 승상이 줄곧 대왕야를 주군으로 여겼네, 이런 이야기하는 걸 들었대요. 뒷부분은 잘 안 들렸고, 나중에 국공야가 보낸 것이냐고 대왕야가 물었더니 위에서 보냈다고 대답하더래요. 그 뒤로는 또 못 들었답니다. 그리고 잡역은 돌아갔고요. 지난번에 물 새는지 보러 왔을 때도 그 잡역이 들어와서 대왕야를 붙들고 뭐라고 이야기하더래요.”

도요는 단숨에 말하고는 긴장한 얼굴로 곽씨를 빤히 봤다. 곽씨는 들을수록 얼굴이 창백해져서 서책이 다 꾸깃꾸깃해질 정도로 꽉 부여잡았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온 가문이 멸문해야 후련해서? 다른 사람 살길 하나 열어 주면 안 되는 건가.”

곽씨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대왕야께서 아직도 그러신 걸까요?”

도요는 손 어멈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두렵기만 했다.

“생각할 것이 뭐가 있어. 전에 장자 자리에서 호령하던 때에도, 그런 시절에도 손에 넣지 못한 것을. 위리안치될 짓을 해놓고, 이런 지경이 되어서 뭘 더 생각할 것이 있어서?”

곽씨의 목소리는 떨림이 멈추고 분노가 가득했다.

“친모를 죽였어. 하늘이 아무리 눈이 멀어도…… 하늘이 눈이 멀 리가 있어? 이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화를 자초하는 것이야! 온 집안사람을 해쳐야 속이 후련한 것이지!”

“그럼 우리는요? 우리는 어떡해요.”

안 그래도 두렵던 도요는 곽씨의 말에 더 두려워졌다.

“우리가 뭘 어쩌겠어.”

곽씨는 서책을 바닥에 획 내던지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뭘 어쩔 수가 있어. 내가 누구를 탓하겠어. 다 내 탓이지. 내가 가로채지 않았다면……. 원래는 셋째 언니였는데. 스스로 업장을 지은 것을, 누구 탓을 해. 나는…….”

“이게 왜 왕비 탓인가요. 다 왕야가 하신 일인 걸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고, 지난번에 말씀하셨잖아요. 왕비, 지금은 이제 어쩌면 좋을지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곽씨를 모신 도요는 곽씨가 이렇게 우는 모습에 가슴이 시려서 같이 펑펑 울고 싶어졌다.

손을 내린 곽씨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뭘 어쩔 수가 있겠어. 전에 그분은 왕야, 대황자였어. 많은 이의 하늘이셨다고. 지금은 이 높은 담장에 갇혀서 다른 사람은 해치지 못하게 되었다만, 여전히 우리의 하늘인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 네가 말해 보아라. 내가 방도가 있다면…… 내게 무슨 방도가 있겠느냐.”

도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그렇지. 무슨 방법이 있겠어.

“담장이 높이 올라가는 걸 보고 좋아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갇히면 모든 것이 끝 아니냐. 담장을 높이 두르는 게 나쁠 것도 없었다. 나쁠 것이 무엇이야. 이 높은 담장 안에서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나는 또…… 이 담장 안에 있으면 편안하게 살 줄 알았지…….”

곽씨는 도요가 건넨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누르며 흐느꼈다.

연말연시부터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곧 열릴 춘시는 여전히 온 경성이 주시하고 궁금해하는 일이었다.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한 와자는 곧 눈에 띄게 떠들썩해지고 각 점포 앞에서 저마다 올해 일갑에 누가 들지 돈을 걸었다. 계소영에게 거는 사람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여염, 그다음은 딱히 눈에 띄는 사람 없이 비슷비슷하게 쌓였다.

이가에서도 긴장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기쁜 일도 있었다. 문 이야가 춘시 하루 전 오전에 이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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