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24화 (324/463)

324화: 선물

“한동안 난을 일으킬 생각만 하면서 어떻게 병사를 훈련하고 어디서 용병을 구할지, 어느 노선으로 경성을 공격할지, 가는 길에 식량, 은자는 어떻게 조달할지, 심지어 경성을 공략한 후 성을 도륙할지 말지까지 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휴, 하늘이 나를 돕지 않더군요. 한 번은 풍성(豐城)에서 삼십 리 떨어진 곳에 산적 소굴을 소탕했는데, 풍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차 파는 작은 다포에서 잠시 쉬는데, 차 파는 할멈과 며느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올해 바람도 좋고 비도 많이 와서 연말에 땅 몇 묘 더 늘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몇 년 더 살면서 땅 백 묘 채우는 걸 보고 가면 얼마나 큰 복이겠냐고 하더라고요.”

영원은 집중해서 듣는 이동을 바라봤다.

“내가 난을 일으키면, 그 할멈은 백 묘 땅을 못 보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날 생으로 삼키고 싶지 않겠습니까? 우울한 마음으로 다포에서 나왔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그런 때에 난을 일으키는 건 세상 사람과 대립하는 겁니다. 한데 그런 일을 아버지께 말씀드리진 않았습니다. 풍성에서 돌아온 후로 도적 소탕도 그만뒀습니다. 여기저기 한가롭게 놀러 다녔지요. 아버지와 두 형님 모두 못 본 체했습니다. 아버지는 난을 일으키는 것만 아니면 다른 건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이동은 이마를 문질렀다. 반역할 일념뿐이었다는 그 4, 5년 동안 분명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었을 것이다. 자식의 그 일념과 준비를 누르고 어르느라 아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일념만 누를 수 있다면 다른 건 뭘 하든 간섭할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혼인하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난 혼인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생겼고요?”

“그렇지요! 혼자는 너무 외롭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말 통하는 사람은 있어야지요. 낭자가 유의해서 골라줘요. 다른 건 상관없어요. 사람 좋고, 나랑 잘 맞고 말 통하는 사람이면 됩니다.”

영원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랑 잘 맞고 말 통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야 쉽지. 당신이랑 잘 맞고 말 통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잘 맞고 말 통할 겁니다.”

“나는 장공주랑 잘 맞고 말 통하는데요.”

이동이 빙긋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공주요! 허허허, 장공주는 혼인하지 않는다잖아요! 게다가, 내가 말했잖습니까? 장공주는 여인이 아니라 스라소니라니까. 크흠, 진지한 이야기 합시다. 어쨌든 당신 오라버니를 염두에 두고 묵가 육낭자를 잘 유의해 봐요. 그 김에 내 상대도 잘 봐주고. 고르고 남으면 묵칠에게 적당한 사람은 없는지도 봐주고요.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겸사겸사 좋잖아.”

이동은 어이없기 짝이 없는 얼굴로 영원을 바라봤다. 영원은 소매에서 무언가 꺼내 손에 받쳐서 내밀었다.

“사례부터 하지요. 후한 선물은 나중에.”

“이런 거 안 써요.”

이동은 영원이 손바닥에 올린 보석 박힌 적금 향구(香球: 금속 향낭)를 바라보며 얼른 고개를 저었다.

“잘 봐요.”

영원이 헤헤 웃으며 향구를 비틀어 열었다. 안에 든 살짝 검은빛 도는 둥근 붉은 놋쇠를 조심스럽게 밀고서 한쪽 면에 쪼르륵 나 있는 아주 작은 구멍을 가리켰다.

“여기 보이지요?”

그러면서 다시 닫아 손에 쥐고는 탁자 위 향연(香櫞: 감귤, 시트론) 접시 쪽으로 가져다 댔다. 지극히 미세한 소리가 들리더니 접시 위에 향연 하나가 살짝 흔들렸다.

영원이 몸을 내밀고 향연을 가지고 와서 이동에게 건넸다. 향연 위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영원이 또 다른 향연을 들어서 보여줬다. 이 향연은 한쪽에만 구멍이 나고 다른 쪽에 거의 보이지 않는 얇은 은침이 뚫고 나와 있었다.

“봤지요? 호신용입니다. 이 은침엔 독이 없어요.”

영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소매에서 아주 작은 은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상자 안에 족히 마흔 개는 되어 보이는 푸른빛 도는 은침이 촘촘히 담겨 있었다. 영원은 뚜껑을 닫고 뒤집어서 다시 열었다. 이쪽에도 은침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이쪽에 있는 은침은 아까 쏜 것처럼 은백색이었다.

“이쪽은 독이 없어요. 먼저 보여준 쪽엔 독이 있고. 자, 끼우는 법 알려드리지요. 여기 이 장치, 보이지요? 누르고, 집게로, 이렇게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손 떼고. 소리 들렸지? 소리가 나면 잘 맞물린 겁니다. 혹시 소리가 나지 않으면 이렇게 흔들어 봐요. 침이 나올 겁니다. 혹시 안 나오면 다시 닫고, 여길 눌러서 침을 꺼내요. 명심해요, 이쪽엔 독이 있으니까 절대로 건들면 안 됩니다. 견혈봉후(見血封喉: 유퍼스 나무. 맹독성 식물) 독입니다. 아주 비싸요.”

영원은 아주 천천히 침을 장착하고 안에 넣은 침을 향연에 쏘고는 향구를 이동에게 건넸다.

“해 봐요.”

처음으로 이런 암기(暗器)를 보는 이동은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마음으로 향구를 받아서 영원이 시범 보인 대로 은침을 넣고 향연에 쏘았다.

“정말 똑똑하다니까. 잘했습니다! 무술을 배우지 않은 게 아쉬울 실력이네요. 맞아요. 그렇게! 이건 뭐, 나보다 더 잘하는걸?”

영원이 혀를 내두르며 칭찬했다.

“재미있네요. 하지만 필요 없어요.”

이동은 잠시 가지고 놀다가 향구를 건넸다.

“일부러 만든 겁니다. 난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가지고 있어요. 사람 속은 헤아리기 힘들다고 하잖습니까. 당신, 장공주와 자주 왕래하는 데다가 요즘 경성이 평온하지 않아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정말 생겼을 때 이게 있으면 도움 될 겁니다. 호신용.”

영원의 표정이 진지했다. 이동은 얼떨떨해졌다. 맞는 말이었다. 며칠 전엔 어머니가 실력 좋은 여자 호위를 구해서 붙여줘야 할까 고민도 했었다.

“그럼, 고마워요.”

이동은 잠시 주저하다가 손바닥에 올린 향구를 다시 거뒀다.

“이것도 받아두고.”

영원은 은침이 담긴 작은 상자도 이동 앞으로 내밀고 손을 짝짝 쳤다.

“됐습니다. 할 일은 다 했고, 이제 잡담이나 합시다.”

“잡담은 무슨 잡담이에요. 늦었어요.”

이동이 모래시계를 바라봤다.

“늦기는. 아직 일러요. 난 잡담이나 나누러 온 겁니다. 그 김에 할 일도 하고.”

영원은 미끄러져서 지극히 편안하고 나른하게 자세를 잡았다.

“강가 이야기는 듣지 않을 거예요.”

이동이 우선 밝혔다.

“그럼 강가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낭자는 경성에서 자랐습니까?”

영원은 편안하게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물었다.

“그런 셈이죠.”

“그럼 말해 봐요. 경성 사람은 봄에 어딜 다닙니까? 놀거리, 먹을거리, 볼거리, 뭐가 있지?”

“봄이라…….”

이동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영원은 작년 여름에 경성에 처음 와서 경성에서 봄을 지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기억 속 경성의 봄은 너무 아득해서 거의 기억 나지 않았다.

“별다른 게 뭐 있겠어요. 기껏해야 답청(踏靑: 풀을 밟으며 하는 봄나들이. 특히 청명절에 하는 행사)이죠. 성 밖 전룡만, 독락암, 판교, 북금수강 모두 경치가 좋아요. 떠들썩하고요. 청명이 지나면 행사가 많죠. 3월 초하루엔 금명지 경림원을 개방해요. 올해엔 신진 진사 참화 행진도 하겠네요. 이 정도예요.”

“낭자는…… 보통 어디로 나들이 갑니까? 경치가 어때요? 재미있는 건 있고?”

영원은 매우 고무된 듯했다.

“작년엔 아팠고, 재작년엔 출가 준비했고, 재재작년엔 지아비감 고르느라 바빠서 나들이 갈 심정이 아니었네요.”

이동은 열심히 먼 옛일을 회상했지만 온통 흐릿했다.

“그럼 올해는 어디로 갈 겁니까? 낭자가 가는 곳이라면 분명 최고로 좋은 곳이겠지. 참고하게 말해 봐요.”

“우리 장원에 갈 거예요.”

이동이 영원을 흘겨보며 천천히 말하자 영원이 눈썹을 높이 까딱였다.

그러고는 팔걸이를 탁, 쳤다.

“그렇지! 경치 좋고 사람은 적고. 먹을 건 또 잘 먹고 뭐든 편한 곳이라면 자기 집 장원이 최고지! 경성에 이가 장원이 많습니까?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은 어디?”

“글쎄요. 난 당신과 달라서 놀려고 장원에 가는 게 아니라 볼일 있는 장원에 가는 거라서요. 올해는 어디로 갈지 아직 몰라요.”

이동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그렇군. 우리 집안에도 장원 일 같은 서무는 어머니, 그리고 형수들이 처리합니다. 나는 신경 쓴 적이 없어요. 낭자 오라버니는 진사 급제하면 서길사 시험을 봅니까?”

영원은 정말로 잡담이나 하자는 듯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진사 급제도 하지 않았는데 그리 멀리 생각하겠어요?”

“멀기는. 코앞이지. 앞날을 잘 생각하지 않으면 코앞에 닥칠 때 곤란해지는 법입니다. 참, 문도는 어디로 갔습니까?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오라버니가 진사가 되면 바빠질 텐데, 그때까진 돌아온답니까?”

“몰라요. 바쁜 일이 뭐 있겠어요. 기껏해야 참화 행진, 경림연(瓊林宴: 천자가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위해 베푼 연회)인데요.”

이동도 문도가 무슨 일로 어디에 갔는지 모른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거의 한 곳에 사흘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 뿐이었다.

“서길사 시험 보라고 하세요. 한림원에 들어가서 몇 년 있으면서 소오를 가르치고요. 몇 년 동안은 분명 평온하지 않을 테니, 차라리 지방 현으로 내려가든지. 어찌 됐든 육부엔 들어가지 말라고 해요.”

영원은 다리를 탁자에 걸치고 흔들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오라버니도 그럴 생각이에요. 일단 현 관리로 몇 년 나가 있을 거래요. 서길사 문제는, 아무나 서길사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진사에 낙방하면 시험 볼 자격도 없는걸요.”

이동 역시 영원과 이야기할 때 묘하게 믿음 가고 마음이 편해서 무슨 말이든 해도 될 것 같았다.

영원이 웃으며 손사래 쳤다.

“분명 진사 방에 들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해 상서가 얼마나 능구렁인데. 당신과 장공주가……. 장공주는 스무 해 넘게 사귄 벗이 당신뿐이고, 게다가 당신 집안과 여 승상의 인연도 있잖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해 상서 그 능구렁이가 모른다? 그럴 리가 없지. 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해 상서가 당신 오라버니를 진사 방에서 떨어뜨릴 리가 있나. 누구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서길사 시험은 분명 볼 수 있어요. 붙을지 아닐지 몰라서 그렇지. 그것도 오라버니 실력 문제가 아닙니다. 실력이야 충분하지. 그건 두 승상의 뜻에 달렸습니다. 세 번째 승상은 뭐, 올해 서길사엔 아직 관여할 차례가 오지 않지.”

“해 상서는 오라버니 추시 시험관의 시험관이세요.”

이동의 대답에 영원이 손사래 쳤다.

“시험관이니 아니니, 그런 건 적어도 해 상서에겐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겸사겸사 조금 더 신경 쓸 정도지. 얼마나 능구렁인데! 능구렁이긴 하지만, 해 상서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가책 느낄 부덕한 짓은 하지 않아요. 해 상서 손녀가 바로 그 해 이낭자 맞지요? 만난 적 있나? 어떻던가요?”

“그러고 보니 해 이낭자라면 당신과 어울리겠네요.”

이동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해 이낭자는 전생에 장원 진안방과 혼인했다. 진안방이 장원이 되기 전에 대황자 파가 된 건지 장원이 된 후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두 황자의 쟁투에 휘말려 죽었다. 연루된 진가는 그 후로 갈수록 쇠락했고.

진안방이 죽은 지 반년 뒤, 해 이낭자는 유복자 감가아를 낳았다. 해 이낭자는 처음엔 친정에 의탁했다. 해 상서가 세상을 떠난 뒤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진 해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상을 치른 다음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해 이낭자는 그 후로 몇십 년 동안 경성의 옛 벗들 집을 떠돌며 어렵게 생활했다.

전생에 그녀가 해 이낭자를 알게 되어 깊이 사귀게 된 건 해가가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이었다. 따지고 보면 몇십 년 친분이 있었다. 그녀는 줄곧 해 이낭자의 불운한 운명을 애틋이 여겼다. 해 이낭자도 그녀처럼 사람을 잘못 만났다. 그녀는 밝은 달이 도랑을 비춘 짝이었고, 해 이낭자는 거울 속의 꽃과 물속의 달, 허상을 잡은 꼴이었다.

이해심 많고 두루두루 사람을 잘 사귀는 해 이낭자라면 영원과 보기 드문 한 쌍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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