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하늘의 뜻을 거슬러
이동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걸 어떻게 맞혀요! 그냥 이야기하지 말아요. 분명 좋은 일이 아니지.”
“에헤이, 이러면 안 되지! 분명 단번에 맞히리라 생각했는데. 지난번 상원절에 우리 둘이 등 보러 갔을 때 만났던 묵 육낭자입니다. 묵칠 누이!”
영원의 득의양양한 얼굴에 이동은 얼떨떨해하다가 한참 만에 겨우 숨을 내쉬며 이상한 얼굴로 영원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묵 육낭자는 계소영과 혼인했고 그 당시 경성 사람들이 몇 년에 걸쳐서 선남선녀의 걸맞은 혼인이라고 칭송했었다. 하지만 묵 육낭자는 그다지 잘 살지 못한 듯했다. 명 삼낭자가 죽은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그녀도 죽었다.
“정말 대담한 생각이네요.”
이동이 비아냥거렸다. 오라버니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녀 가문으로서 묵 승상가를 넘보는 건 대담한 발상이었다.
“내가 곰곰이 가늠해 봤지. 자, 봐요. 경성 젊은이 중에 사실 재자는 별로 많지 않아요. 손에 꼽힌다고. 묵 승상가와 가문도 걸맞고 육 낭자와 어울리는 사람은 첫째, 여염. 다만 묵 승상과 여 승상은 맞지 않아요. 게다가 여 승상은 지금 지지하는 쪽이 있어서 그 혼인은 분명 불가능합니다. 그다음이 계소영인데, 계 천관이 진왕 쪽에 섰음을 드러냈지요. 묵 육낭자와 계 천관의 외아들이 혼인을 맺으면 묵 승상이 줄을 서지 않아도 선 게 됩니다. 그러니 거기도 안 되고.”
영원은 엄숙한 표정으로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고가는 묵 승상 눈에 안 찰 테니 이야기할 것도 없고. 또 몇 가문 있긴 한데, 예부시랑 조가, 손 학사 등등 가문은 확실히 이가보다 좋다만, 그 댁 자제들이 당신 오라버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지. 묵 승상 본인이 빈한한 출신이라 차라리 빈한해도 출중한 사람을 더 원할 겁니다. 또 하나, 당신 집안, 식솔이 얼마나 단출합니까. 당신 어머니 평판은 또 얼마나 출중하고요. 능력 있기로 유명한 분 아닙니까. 가능성 있습니다!”
이동은 웃으며 이야기 들었다. 묵 육낭자가 정말 오라버니와 혼인하면 계소영은 어쩌라고. 누구와 혼인하라고.
“묵 칠소야를 위해서 묵 칠소야 마음에 드는 혼처를 구해주려는 거 아니었어요? 왜 내 오라버니를 끌어들여요. 묵가 육낭자와 오라버니를 이어주면 묵칠 혼사가 해결되기라도 하나요?”
이동이 웃으며 물었다.
“당신이 도와주길 바라서 그러는 거지. 당신 오라버니가 묵가 육낭자와 혼인한다면, 두 사람이 천생연분인 건 말할 것 없고 오라버니 앞날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일이 성사되면 내가 먼저 당신을 도와준 셈이고, 당신 가문과 묵가가 사돈이 되면 당신도 묵칠 혼사에 좋은 인연을 이어줄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닙니까? 아니, 당신이 아니라, 내 말은 당신 어머니가 나서서 두 혼사를 한 번에 처리하면 된다는 거지.”
영원이 손가락을 왔다 갔다 하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내 도움을 얻으려고 단물부터 준다는 거네요?”
이동이 영원의 긴말을 지극히 간결하게 총결하자 영원이 코를 문지르며 꿍얼거렸다.
“아니, 우리 사이에 단물은 무슨 단물. 솔직히 말해서, 당신 오라버니와 묵가 육낭자, 상원절 때부터 그 생각을 했습니다. 묵칠 문제보다 먼저 생각했다고요. 사실은 당신 오라버니와 묵가 육낭자를 이어줄 생각에 묵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걸 승낙했다고 봐야지. 선후를 뒤바꾸지 말아요.”
“난 당신을 도와줄 능력이 안 돼요. 묵칠을 도울 능력은 더 없고요. 우리 집안도 묵가를 넘볼 수 없고요.”
이동이 가차 없이 거절했다.
“혼인은 큰일입니다. 혼인을 잘못하면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하면서 평생을 마주 봐야 한다고요. 얼마나 괴로워? 봐 봐요, 나처럼 강철 심장인 인간도 차마 그건 못 보겠어서 도와준다고 한 건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안 된다고 하지?”
영원은 정의감과 자비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이동은 그를 흘겨보면서도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 본인이 사람을 잘못 만나 혼인한 바람에 평생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나. 지금도 그때를 잠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계소영과 혼인한 묵 육낭자는 겉으로 보기엔 선남선녀, 천생연분이었지만 그녀는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다. 그 점은 확실했다.
전생 이른 시기에 계가와 수녕백부가 자주 왕래해서 그녀와 묵 육낭자도 자주 왕래했다. 묵 육낭자는 늘 근심 많고 울적한 모습이었다. 에둘러서 이리저리 알아보려고 애썼는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었다.
묵 육낭자가 나중에 회임했을 때도 출산이 순조롭지 못했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왔는데, 지나친 근심과 과한 울결 때문에 혈행이 순조롭지 못해서 난산이 됐다고 했다. 첫 아이인 장녀를 낳은 다음에 묵 육낭자는 1년 넘게 앓다가 겨우 병상에서 내려왔다. 그녀의 지나친 근심의 근원은 그녀가 죽은 다음에 은근히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아마도 계소영 때문일 것이다. 계소영은 고모 계 황후의 죽음에 연연해서 주 귀비의 악명을 천하에 알리고 주가를 무너뜨릴 일념뿐이었다. 전생에 계소영은 일생을 걸고 온갖 속셈을 부리며 심혈을 기울인 일을 결국 인생이 끝날 때까지 이루지 못했다.
계소영의 그 울분, 고통, 초조한 마음을 털어놓을 유일한 사람이 바로 묵 육낭자였을 것이다. 육낭자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털어놓을 곳이 없으니 두려움, 걱정, 조바심 모두 마음에 쌓였을 것이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두 사람이 서로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주육도, 주육 그놈도 나한테…… 크흠!”
영원은 헛기침하며 뒷말을 삼켰다.
“다 공덕 쌓는 일입니다. 어차피 당신은 한가하니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내가 한가하다니요?”
그 말에 이동은 언짢아져서 톡 쏘듯 내뱉었다.
“아니라고요? 그럼, 좋습니다. 무슨 큰일이 있는지 말해 봅시다.”
영원이 팔걸이를 탁, 치며 되물었다. 이동은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를 노려봤다. 이 인간, 허물없어도 너무 없잖아!
“무슨 큰일이 있든, 당신에겐 말 못 해요.”
이동이 되받아쳤다.
“당신이 큰일이 뭐가 있어. 누구 씨인지 모를 애 하나 서자 둘 상대할 필요도 없고, 구멍 숭숭 난 집안일을 신경 쓸 것도 없으면서. 참, 그게…….”
영원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됐다. 강가 일은 상대하고 싶지 않댔지. 그냥……. 아니다, 아니야. 강가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이건 말해야겠다.”
이동은 삐딱하게 영원을 흘겨보며 계속 말하길 기다렸다. 영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봄이 되면 시작할 하도 공사, 그 좋은 일거리가 강환장 손에 떨어졌습니다. 연말에 결정된 일이에요. 누님이 막 별궁에서 돌아왔을 때라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더니, 어느새 공부의 문서도 강환장 손에 들어갔습디다. 주육을 부추겨서 일거리를 뺏어 오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우리 누님이 막 궁에 돌아와서 힘겨울 때라, 문제 일으키지 않은 게 좋을 것 같아서 움직이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좋은 일거리를 강환장이 얻었죠?”
이동이 묻는 말에 영원이 발을 구르며 손뼉을 짝 쳤다.
“그거 봐, 똑똑하다니까! 단번에 핵심을 찌르는군. 그럼 맞혀봐요. 그 좋은 일거리를 어떻게 얻었을까요?”
“계 천관?”
“똑똑해!”
이동이 곧바로 대답하자 영원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맞습니다. 그 일거리는 진왕부에 떨어졌어요. 문서에 진왕부 장사 강환장이 진왕을 보좌하라고 되어 있어요. 강환장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게 계 천관이 성심성의껏 도와준 겁니다.”
영원은 혀를 끌끌 찼고 이동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다. 하도 공사는 이름난 좋은 일거리지만, 은자가 많이 떨어지는 것 말고 다른 큰 장점은 정말로 없었다.
“계 천관은 진왕부에 돈을 벌어주려는 걸까요, 아니면 강환장에게 보탬을 주려고 하는 걸까요?”
잠시 침묵하던 이동이 영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 생각엔 진왕부는 아닐 것 같습니다. 하도 공사로 버는 돈은 강환장에게는 큰 보탬이 되겠지만, 진왕부로서는 글쎄……. 진왕의 거사에 쓰기엔 그 정도 적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진왕을 돈 벌게 해줄 생각이었다면 경성 하도 쪽으로 손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영원이 매우 확신하며 하는 말에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하도 공사 수익은 많아야 20만 냥이다. 강가로서는 두어 해 버틸 돈이지만 진왕의 큰일에 쓰기엔 너무 적었다.
영원은 손가락을 비비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진왕도 형편이 쪼들리긴 하지요. 진왕이 묵칠에게 돈을 꽤 빌렸습니다. 처음엔 빌리면 갚더니, 지금은 갚지도 않아요. 다행히 금액이 많지 않아요. 몇백 냥, 천 냥, 이천 냥, 그 정도. 진왕이 한 푼도 안 가지고 가진 않을 거고, 강환장이 가져가는 돈이 많지 않을 겁니다. 내가 주시할 테니 강환장이 돈을 받으면 찾아가서 빚 받아버립시다. 괜히 이득 보게 하면 안 되지!”
영원의 들뜬 얼굴에 이동은 헛웃음이 나왔다.
“빚을 받긴 무슨 빚을 받아요. 그럴 시간 없어요. 게다가 사람을 너무 궁지로 몰면 안 돼요. 쥐도 다급하면 고양이를 문댔어요. 괜히 손해예요. 그 돈은 필요 없어요. 강가에서 나를 노리지 않으면 내가 굳이 상대할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당신도 날 위해서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말아요.”
“그건 그렇지. 암, 그렇지.”
영원은 허허 웃었다. 뭐 완전히 당신 위해서 신경 쓰는 것도 아니고. 엉망진창인 강가 구경하는 재미지. 심심하니까, 음.
“자, 그럼 본론 이야기합시다. 사람은 한가하게 노는 거 아닙니다. 특히, 당신…….”
“한가하지 않다고요!”
이동은 조금 화가 나서 영원의 말을 잘랐다.
“예, 예. 한가하지 않다 칩시다. 그래도 일이라는 게 순서와 경중이 있잖습니까? 당신 오라버니가 어떤 올케를 데리고 올지, 그건 당신과 당신 어머니의 나머지 생활이 걸린 일입니다. 압니까? 얼마나 중요합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 지금 이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게 있습니까?”
영원의 진지한 얼굴에 이동이 콧방귀를 뀌었다.
“오라버니 혼사는 어머니가 있어요.”
“첫째, 당신 어머니가 얼마나 바쁩니까. 어떻게 모든 일을 다 어머니께 부담 지웁니까? 어머니 부담 좀 덜어주면 안 됩니까? 그렇지요? 둘째, 당신 어머니는 어찌 됐든 윗사람이라 어느 댁 낭자가 적당한지, 어찌 정확히 보겠습니까. 당신이 봐야지요. 그렇지요?”
이동은 고개를 기울이고 아무런 말 없이 영원을 흘겨봤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사람 보는 눈은 경성에서 자신보다 정확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평생 봐 왔으니까, 확실히 어머니보다 더 꿰뚫어 볼 수 있다.
“당신 오라버니 혼사뿐만 아니라, 내 것도.”
영원이 제 코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이동은 숨이 목에 걸려 힘껏 가슴을 두드리며 숨을 고르고는 허 웃었다.
“당신 혼사를 내가 왜요.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요.”
“내 아내 좀 골라줍시다. 낭자가 혼인하라는 사람하고 혼인하겠습니다.”
영원이 빙그레 웃으며 이동을 바라봤다.
“당신 혼사에 내가 왜 나서요? 경성엔 당신 누님이 계시고 북삼로엔 당신 부모님, 형님이 계시는데. 다른 사람이 나설 차례가 오나요?”
“당연히 오지. 내 아내는 내가 혼인하고 싶은 사람으로 고르면 되니까. 누님은 상관 못 하고, 아버지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라고요.”
영원은 뿌듯해했고 이동은 코웃음 쳤다.
“내 이야기 들어보면 이해할 겁니다. 내가 어렸을 때, 아주 어렸을 때인데, 누님이 출가하기 전엔 나, 꽤 착하고 말 잘 들었습니다. 나중에 누님이 출가하는 문제로, 나는 그게 부모님, 그리고 두 형님 잘못인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사사건건 아버지와 두 형님에게 대들었지요.”
영원은 코웃음 치는 이동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그땐 반역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어요. 군대를 키워서 경성으로 쳐들어와 누님을 구하고 망할 놈들을 싹 다 죽이려고 했어요. 황…… 그 뭐냐, 난 원래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 두 형님이 식겁하고 눈도 떼지 못하고 날 단속했지요. 아버지는 온갖 이치를 늘어놓으며 타일렀고요. 그때 나는 굳게 결심해서 들리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아버지가, 북삼로의 크고 작은 도적을 다 소탕하면 그때 안씨 가문 그리고 작은할아버님을 찾아가서 병사를 빌려도 좋다고 하시면서 반역을 하든 말든 더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시길래 도적 소탕하러 갔지요.”
“도적을 어떻게 다 소탕해요.”
이동이 웃으며 하는 말에 영원은 눈이 시릴 때까지 흘겨보다가 시선을 돌리고 계속했다.
“3, 4년 소탕했더니 싹 다 소탕은 못 해도 비슷하게는 되던걸. 그러는 사이 나도 성장했고 철도 들었지요. 임가의 기운이 왕성한 것도 봤고, 반역은 민심을 거스르고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지요. 휴!”
영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