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21화 (321/463)

321화: 거짓말을 보탠 결과

왕 어멈은 손가락을 꼽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 10만 냥은 빳빳한 은표로 줬어요. 복륭전장에서 발행한, 바로 은자로 바꿀 수 있는 은표를 다 보는 앞에서 대뜸 고가 노아와 대야에게 주었어요. 확실한 10만 냥이었어요.”

곡 대내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일단 10만 냥!

“예전 이 대내내가 들어왔을 때 가지고 온 혼수 책자가 있는데, 지참금이 40만 냥이었대요.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고요. 그 10만 냥을 빼면 30만 냥 남았고요. 맞지요? 고가 노야와 대야가 사람을 거느리고 들어와 강탈해간 후에, 오 어멈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만 냥 조금 넘게 남았답니다. 세자야가 그걸 장방에서 꺼내서 또 고 이낭에게 주었고요. 그렇다면 40만 냥을 다 고가가 가지고 간 거지요. 그렇지요?”

왕 어멈은 원래 과장해서 말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번엔 과장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곡 대내내는 더는 참지 못하고 숨을 힉 들이마셨다. 40만 냥? 40만 냥!

“40만 냥이면, 은자가 대체 얼마야.”

“이만 오천 근이지요. 쌓아 놓으면 그야말로 은자 산이에요. 은표가 아니라 은자를 수레로 끌고 갔으면 고가 노야와 대야가 평생 끌고 갔어야 할걸요.”

40만 은자를 떠올린 왕 어멈은 혀를 끌끌 찼다. 곡 대내내는 눈이 다 풀렸다. 은자 이만 오천 근, 은자 이만 오천 근!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왕 어멈은 곡 대내내의 두 눈이 풀린 모습이 매우 흡족했다. 후, 예전 대내내하고 비교하면 이 대내내는 참 무시당할 만하지!

“그리고 예전 대내내가 가지고 온 장신구, 의복, 갖가지 장식품, 물건들도 있지요. 예전 대내내 집엔 은자가 넘쳐나는 데다가 자식이라곤 딸 하나였으니까요. 그때는 이가 그 대야를 양자로 들이기 전이었거든요. 예전 대내내가 가지고 온 옷은 모두 힐수방에서 나온 최고급 의상이었어요. 최고의 옷감이고요. 각사, 금수, 아이고, 아이고. 정말이지……. 말해 뭐해요. 촛대도 다 적금이었어요. 그런 물건은 대체 얼마를 주고 살 수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전에 오 어멈에게 한 번 들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예전 대내내가 가지고 온 적금 장신구, 그리고 적금 장식품 같은 건 공임을 제외하고 녹여도 이, 삼십만 냥은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나 많아?”

곡 대내내는 놀라서 고함쳤다.

“그러니까요. 예전 대내내는 상인 가문 출신이고 친정에 모친밖에 없는데, 부자가 아니었다면 우리 세자야가 혼인했겠어요? 그야말로 금으로 된 산, 은으로 된 바다처럼 재물이 넘쳤어요. 그 장신구, 장식품도 대부분 고가 노야와 대야가 강탈해갔어요. 오 어멈 말이, 옮기기 쉬운 물건이 아니라 저택에도 많이 남아 있었대요. 부인도 아시다시피 우리 저택에 손버릇 안 좋은 사람이 있어요. 그때 금에 눈이 멀어서 물건을 훔쳤지요. 나중에 결국 우리 세자야가 수완이 좋아서 옷을 싹 벗겨서 아무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지 못했답니다.”

왕 어멈은 이야기꾼처럼 이야기했다. 이 일은 강가 종복들 입을 거치면서 원래 사실보다 열 배는 더 부풀려졌으니, 왕 어멈도 당연히 뒤질 수 없었다.

“나머지 장신구, 장식품을 세자야가 모두 고 이낭에게 넘겼습니다.”

“고 이낭이 가지고 있어? 그럼 물건은? 어디에 뒀어?”

곡 대내내가 꽥 고함쳤다. 고 이낭과 고 이낭 새끼 거처엔 기저귀 말고 아무것도 없었는데?

왕 어멈이 입을 삐죽였다.

“그걸 누가 압니까. 부인, 소인이 주제넘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고 이낭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세자야의 혼을 쏙 빼놓은 사람이 단순할 리가 있겠어요? 물건을 어디로 빼돌렸는지 알게 뭡니까. 어쩌면 진작 친정으로 옮겼을 수도 있지요. 부인은 모르시겠지만, 이전 대내내의 혼수를 가져갔다고 남들이 욕할까 봐, 그리고 예전 대내내가 되찾아갈까 봐, 그 적금 장신구, 장식품을 다 녹여서 새로 만들었어요. 열 근 넘는 접시, 몇십 근 되는 큰 촛대를요. 보세요, 계산속이 얼마나 깊어야 이런 짓을 합니까! 물건을 어디에 숨겼는지 누가 알겠어요.”

“나쁜 년!”

곡 대내내가 잇새로 모질게 내뱉었다. 왕 어멈은 충성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부인, 부인도 조심하셔야 해요. 따지고 보면 예전 대내내가 저택에서 나간 것도 고 이낭 때문에 쫓겨나듯 간 거랍니다. 고가 그것이 참 대단한 물건이에요! 세자야의 마음을 단단히 휘어잡고서 겉으로는 가련한 척하지만 사실 악랄하고 독하답니다. 부인,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곡 대내내가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흥! 나는 그 예전 대내내랑 달라!”

“그럼요!”

왕 어멈은 얼른 곡 대내내의 사고회로를 따라 맞장구쳤다.

“예전 대내내는 너무 유약했어요. 재주도 없었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핍박당했지요. 부인은 모르시지만, 예전 대내내가 이 집에서 나갈 때, 휴! 소인뿐만 아니라 우리 저택 거의 모두가 그 대내내가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답니다. 쯧쯧쯧.”

왕 어멈은 진심으로 이 대내내를 불쌍하게 생각했다.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좋은 끝을 못 봤으니까. 악독한 사람이 더 잘 사는 법인걸!

“진명천자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따지고 보면 부인이야말로 우리 수녕백부의 진정한 며느리라서 그랬겠지요. 예전 대내내가 설령 유약하지 않고 무능하지 않아도 그럴 팔자가 아니었던 거예요.”

곡 대내내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걸 본 왕 어멈이 얼른 덧붙이며 알랑거렸다. 그러나 곡 대내내의 안색이 좋지 않은 이유는 왕 어멈이 예전 대내내를 애틋해하고 칭찬해서가 아니라, 은자 몇만 근, 몇십 근 적금 촛대를 생각하느라였다.

“자네, 가서 고씨가 낳은 새끼를 데리고 와 봐.”

곡 대내내가 한참 어두운 얼굴로 생각하다가 분부하는 말에 왕 어멈이 멈칫했다.

“부인?”

“그년, 늘 몸이 안 좋다고 하잖아. 제 새끼 키우고 또 묵란이 낳은 새끼를 키우느라 젖이 모자라고 바쁘다고 하잖아. 안 그래? 바쁘다고 하니, 안주인인 내가 당연히 방법을 생각해 줘야지. 일단 그년이 낳은 새끼를 여기로 데리고 와.”

곡 대내내가 잘근잘근 씹듯이 하는 말에 왕 어멈은 얼떨떨해하다가 얼른 웃음을 쥐어짰다.

“부인, 정말 자비로우세요! 정말이지 부인도 참……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부인이 이러시는 건…….”

“어서 가!”

곡 대내내는 왕 어멈이 횡설수설 알랑거리는 걸 무질렀다. 왕 어멈은 굽실거리며 서둘러 상방에서 물러갔다. 밖으로 가가서 바람을 쐰 왕 어멈은 그제야 대내내가 고 이낭의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시켰음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악역을 맡긴 것이다.

미쳤지! 아깐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바로 핑계 대고 거절했어야 하는데! 고 이낭은 세자야의 보배 덩어리인데. 세자야는 자신을 보면 고 이낭이 낳은 이가아의 안부를 묻는다. 대가아와 삼가아 이야기는 한 번도 물은 적 없다.

그 아이가 대내내 손에 들어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악역을 내가 어떻게 맡나!

왕 어멈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도 그 악역을 맡을 수가 없어서 후회가 몰려왔다. 뭐라고 말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쭈뼛거리며 고 이낭과 청서의 거처 문 앞까지 도착한 왕 어멈은 쉴 새 없이 욕설을 퍼붓는 청서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뻔뻔한 것! 이렇게 염치없는 나쁜 년은 정말 처음 보네! 안 훔치는 게 없어, 안 훔치는 게! 크게는 사내부터 작게는 기저귀까지 다 손을 대?”

왕 어멈은 한 발은 안에 들이고 한 발은 문밖에 디딘 채 서서 잠시 듣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청서 이낭, 누구한테 그렇게 화내는 거예요? 거처에 도둑이 들었나?”

“도둑이 들긴. 아예 사는걸!”

청서는 매우 화가 났는지 문가에 앉아 아이 젖을 먹이면서 쉴 새 없이 욕을 해댔다.

“도둑이 살아? 어머나, 청서 이낭,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거처에…… 하긴 사람이 꽤 살긴 하네요. 소야 셋, 그리고 청서 이낭과 고 이낭, 그리고 도둑까지? 세 소야는 아직 어린데.”

왕 어멈은 끽소리 하나 없는 동쪽 곁채를 목을 빼고 바라봤다.

“쯧! 본인이 체면이고 뭐고 생각 안 하는데 모르는 척 감춰 줄 것 없어! 우리 거처에 사는 도둑이 바로 자칭 서생 가문 규수라는 고 낭자야! 염치없는 것! 왕 어멈, 같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부인 거처에 있을 때부터 내가 빨아 둔 속옷을 훔친 다음 그 자리에 냄새나고 더러운 제 옷을 아무렇지 않게 걸쳐 놓았더라고. 말 좀 해 봐. 세상에 이렇게 염치없는 년을 본 적 있어?”

왕 어멈은 깔깔 웃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배를 잡고 웃었고 들을 때마다 웃었다. 지금 들어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또 뭘 훔쳤길래요? 이낭도 참. 뻔히 그런 사람인 걸 알면서 제대로 간수해야지요.”

“제대로 간수했지! 그런데 뭐든 훔치잖아! 기저귀를 말려놓고도 옆에 의자를 옮겨놓고 앉아서 지켜야 한다고! 어제 가아가 젖을 토해서 솜옷이 다 젖었길래 가아가 자는 사이에 얼른 벗겨서 빨아서 화로에 올려놓고 말렸어. 오전에 시간 내서 꿰맨 다음에, 화로에서 말린 거라 탄 냄새가 날까 봐 볕 좋을 때 널었지. 가아가 울길래 잠깐 들어가서 가아를 달래고 나온 새에 훔쳐 갔어! 왕 어멈, 이렇게 염치없는 인간 봤어?”

청서는 화가 나서 눈물이 다 나왔다. 왕 어멈은 이 우스운 이야기에 기분 좋게 빙그레 웃다가 좋은 수가 떠올라서 청서를 향해 눈을 찡끗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한테 좋은 수가 있어요. 적어도 며칠은 조용하게 지낼 방법.”

왕 어멈은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고는 목소리를 높여 웃으며 말했다.

“오늘 부인과 대내내가 궁에서 돌아오시더니 기분 좋아 보이더라고요. 대내내 거처에 간식 드리러 갔더니 대내내가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이야기 들어보니까, 부인 밑에서 키울 가아를 골라야 하는데 누구로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 거더라고요. 세자야가 그러라고 했대요.”

“정말?”

청서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왕 어멈은 힘껏 눈짓하면서 동쪽 곁채를 향해 입을 비죽였다. 청서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야 분명 대가아겠지. 대가아는 세자야의 장자잖아. 게다가 대가아는 어미도 없고.”

“아이고. 그건 우리 대내내를 몰라서 하는 말이고요. 대가아 어미가 없는데 정말로 부인에게 데려가면 대가아를 누가 돌보겠어요. 부인이 직접 돌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에요. 그러려면 유모며 시녀며, 몇 명은 늘려야 할 텐데, 지금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요. 대내내는 곳곳에서 절약한다고 난리인데, 사람을 더 쓸 리 없죠. 그러니 분명 삼가아 아니면 고 이낭이 낳은 이가아겠죠. 가아를 부인 곁에서 키우려면 두 분도 따라가서 가아를 보살펴야겠죠. 어미는 자식 덕에 귀해진다잖아요.”

왕 어멈은 쉴 새 없이 동쪽 상방을 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대가아는 어쩌고.”

“거처에 남은 사람이 돌봐야지 뭘 어쩌겠어요. 얼른 삼가아를 데리고 대내내에게 문안드리러 가세요. 대내내가 누굴 보낼 건지 고를 거예요. 충성심을 표시해야 대내내가…….”

왕 어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쪽 곁방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고 이낭이 이가아를 안고 방에서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뜨락 정문 쪽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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