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모두 내 것
“우리와 탕가는 장사나 하며 왕래하는 사이라서 명절이나 큰일 있을 때 관사 어멈을 보내서 대수롭지 않은 선물이나 주고받았지, 친분이랄 게 어디 있었더냐. 아까 어멈 넷이 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격식을 갖췄지 않으냐. 그러고 나서는 이 물건들이…….”
장 태태는 손 어멈과 진주가 벌써 탁자에 꺼내 놓은 후한 선물들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이동은 일어서서 일단 물건부터 살펴보고 돌아와서 앉으며 웃어 보였다.
“사실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돕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고요. 장공주예요. 황후마마가 후궁에 사람을 들이려고 하시는 건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오늘 수국공 부인이 하가 십일낭을 데리고 갔고 고 승상부 부인이 탕가 오낭자를 데리고 갔어요. 뭘 바라는지 뻔하고요.”
장 태태는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하가 십일낭은 본인이 입궁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들어가서 좀 돌아다니더니 정해진 길대로 황상을 우연히 만나러 가더라고요. 탕 오낭자는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저랑 장공주가 앉은 곳이 시야가 트여서 마침 탕 오낭자가 밖에서 쭈뼛거리며 난처해하는 걸 봤죠. 장공주 성격이 원래 변덕스러운데 그땐 도와주고 싶었는지 녹운을 보내서 탕 오낭자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어요. 나한테 선물을 보내다니, 보아하니 그 오낭자, 똑똑한 사람 같네요. 다만 선물이 너무 과하네요.”
이동은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장 태태는 들으면서 생각하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상 대내내도 자식을 참 아끼는 사람 같구나. 예전에 탕가에서 고가와 혼인을 맺으려고 애를 썼었다. 고가는 좋은 혼처지만 고가 삼야가……. 휴. 상 대내내가 자식을 아끼지만, 혼사 문제에 힘을 쓰진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후한 선물을 보내지. 장공주는 대수롭지 않게 도와준 것이지만,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면 탕 오낭자는 목숨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입궁해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 지금 같은 상황에 입궁했다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목숨을 잃는 것조차 작은 일이 될 수 있는데. 탕가도 참. 지극히 돈이 많아지면 권력을 가지고 싶은 것도 당연하지만, 갈수록 좋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다들 두 번째 주 귀비가 되고 싶어 하니까요.”
이동도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 주 귀비를 향한 황상의 마음은 역사상 드문 일이라고 하는데, 드문 일이 연달아 일어날 리가 있나.
“날짜를 셈해 보니…….”
장 태태는 이야기하면서 손을 꼽았다.
“산서에서 경성은 가까운 편이 아니니까, 상 대내내가 탕 오낭자를 데리고 산서에서 출발했을 때 주 귀비가 아직 살아 있었다. 주 귀비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상 대내내 일가가 무슨 일로 갑자기 경성에 온 걸까. 두 가아는 데리고 오지 않고 오낭자만 데리고 오다니, 오낭자의 혼사 때문에 온 것이지 싶다.”
이동도 생각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탕 오낭자, 그리고 상 대내내, 탕가 대야, 모두 이번에 경성에 오지 않았다. 탕가 대야는 확실하지 않지만 탕 오낭자와 상 대내내는 분명 한 번도 경성에 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둘 다 왔다.
“오낭자를 입궁시키는 건 경성에 온 다음에 갑자기 결정한 일일 것이다. 그럼 처음엔? 어느 가문을 바라고 오낭자를 데리고 왔을까? 탕가의 생각일까, 아니면 상 대내내의 생각일까.”
장 태태는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고가는 분명 아닐 테고요. 주가? 주가 서출 방계는 탕가의 눈에 차지 않을 것이고 눈에 찰 만한 사람이라면 그나마 주 육소야겠네요. 하지만 지금 주 육소야는 형국공 세자가 되었죠.”
“그래. 산서에서 출발했을 때만 해도 넘볼 만했겠지. 가문이라는 게 참……. 주가가 아니라도 다른 가문이 있잖으냐. 경성에서 가문이 그럭저럭 괜찮은 세도가 공자는 많으니까.”
장 태태는 돌연 말을 뚝 그치고 눈부신 선물들을 가리켰다.
“선물이 저렇게 후한 걸 보니, 그저 감사의 뜻이 아니라 앞날을 부탁하는 뜻도 있는 것 같구나.”
이동은 실소했다.
“탕 오낭자 혼사에 우리가 도움 될 일이 뭐가 있어서요. 우리가 도움 줄 수 있는 상대는 다 눈에 안 찰 걸요……. 오라버니요?”
이동은 말하다 말고 이신을 떠올렸다. 장 태태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같은 가문은, 상 대내내는 몰라도 탕가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 잊었어? 넌 장공주와 친분이 깊지 않으냐. 네가 아니라 너를 통해 장공주를 보는 것이다.”
“장공주는 남의 혼사를 망치는 건 모를까, 이뤄준다? 쉽지 않을 텐데요. 이 물건들…….”
이동은 자리를 옮겨 다가가 훑어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너무 사치스러워요. 장공주 마음에 들 만한 건 하나도 없어요. 그나마 이 필세가 낫겠네요. 장공주께 전해드리겠지만, 장공주가 앞으로도 도와줄지 말지는 탕 오낭자의 조홧속에 달렸어요.”
탕 오낭자의 일이 마음을 건드렸는지 장 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미 마음이란 다 똑같지. 다 자식이 잘되기만 바란다. 가문의 미래니 뭐니, 모두 자식 뒷전이지. 자기 미래, 가문이 더 중요한 사내와 다르다. 그런데 그런 결정을 짓는 건 모두 사내이니, 원.”
이동은 눈살을 찌푸렸다. 권세를 바라는 탕가의 욕망이 너무 왕성했다.
“상 대내내가 아무리 많이 궁리해도, 팔로 허벅지를 비틀지 못한다고 결국은 어쩔 수 없이 탕가 대야가 원하는 가문으로 탕 오낭자를 보내야 하겠지.”
“어머니, 다른 사람 때문에 한숨 쉬고 걱정할 것 없어요. 시간 내셔서 오라버니 혼사를 먼저 정해야 해요, 어머니. 오라버니 나이도 찼는데 정말로 진사에 급제하면 앞으로 들어오는 혼담이 몇 배는 늘 거예요. 미리 몇 집 봐두는 게 좋아요.”
이동이 화제를 돌렸는데 이동의 말에 장 태태는 더 고민스러워졌다.
“네 오라비 처를 고르는 게 쉽지 않다. 네 오라비 혼사에 관해 작년에 문 이야가 한 번 이야기한 적 있다. 세도가 집안으로 고르는 게 좋겠다고 하더구나. 신가아 같은 인품에 진사까지 되면 세도가 집안 며느리를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 집안이 경성에서 십여 년 살았다고는 해도 세도가 집안과 왕래한 적이 있어야 말이다. 며느리는 첫째가 인품인데, 인품을 우리가 어찌 알아.”
장 태태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싱긋 웃었다.
“이런, 나 좀 보라지. 지금은 나는 몰라도 너는 알려고 하면 알겠구나. 아동, 네 오라비 아내 문제는 네가 신경 써야겠다. 어느 댁 낭자가 좋은지, 사람부터 보고 나머지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장 태태는 언제나 결단력 있었다. 장 태태의 말에 이동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성 규수들을 보는 눈은 그녀보다 정확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수녕백부, 곡 대내내는 진 부인의 정원에서 나와 곡란원으로 돌아갔다. 진 부인이 말한 은자 몇십만 냥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흥분했다. 은자 몇십만 냥이라니. 얼마나 큰 돈인가. 그 은자는 이씨가 강가로 가지고 온 것이니 강가의 것이다. 강가 것은 그녀 것이고.
곡 대내내는 손수건을 비틀며 잔뜩 부푼 마음으로 실내를 서성였다. 은자 몇십만 냥,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아와야 해! 지금껏 내 손에서 이득을 갈취해간 사람은 없어!
그렇게 큰돈을 되찾으려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하지.
곡 대내내가 가늠하고 있는데 소예가 문밖에서 큰 주방 왕 어멈이 간식을 가지고 왔다고 기별했다.
큰 주방을 맡은 왕 어멈은 지금 곡 대내내의 신임을 받는 조력자였다.
곡 대내내가 저택에 들어온 뒤로 칼을 휘두르며 혼수를 싹 다 되찾아 온 후로, 언제나 눈치 보고 움직이는 수녕백부 종복들은 이 저택의 진정한 주인이 누군지 깨달았고 우르르 몰려가 충심을 보였다. 왕 어멈이 사람들을 물리치고 곡 대내내에게 기용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주방을 관리하는 관사였기 때문이었다.
곡 대내내의 인식 속에 집안을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돈이었다. 그 부분은 누구에게 맡겨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모든 은자를 자물쇠를 채워 자기가 관리했다. 열쇠는 그녀의 허리춤에 걸어두고 누가 쓰는 돈이든 반드시 그녀 손을 거쳐야만 했다.
돈을 제외하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주방이었다. 마침 왕 어멈은 그녀에게 잘 보이려 했고 그녀는 왕 어멈을 포섭하려 했다. 손뼉이 마주쳤으니, 그렇게 왕 어멈은 곡 대내내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었다.
왕 어멈은 대홍색으로 칠한 금박 찬합을 들고 들어왔다. 곡 대내내가 대홍 금박을 제일 좋아해서 주방에서 보내는 간식은 언제나 이런 대홍색 금박 찬합에 담았다.
“부인, 오늘 고생 많으셨지요?”
왕 어멈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했다. 부인이 오늘 입궁했었다. 정말이지 대단히 체면 서는 일 아닌가. 참으로 복 많은 부인 아닌가.
“소인, 특별히 호두 대추탕을 고아 왔어요. 몸보신해야지요. 어멈들이 깨끗이 씻지 않을까 봐 소인이 직접 호두껍데기를 깨고 대추를 일일이 씻어서 직접 고았답니다. 해가 밝기 전부터 눈도 떼지 않고 지켜보며 곤 거랍니다. 조금 전에 다 되었어요. 맛 좀 보세요, 부인.”
왕 어멈은 백자 항아리를 곡 대내내 앞에 꺼내놓고 간식 몇 가지도 꺼냈다.
“부인이 제일 좋아하는 압유소(鴨油酥: 오리 기름으로 구운 바삭바삭한 간식)예요. 계사포(鷄絲包: 닭고기 채 만두), 오색고(五色糕: 오색 떡)도 있고요. 마단(麻團: 참깨 도너츠)도 있어요. 부인, 오늘 마단은 어떤지 드셔보세요. 꽤 그럴싸할 거예요.”
“거기 둬.”
오늘 곡 대내내는 맛있는 음식에 별 관심이 없었다.
“물어볼 말이 있어.”
“뭐든 말씀하세요. 혹시 소인이 모르는 거라면 얼른 가서 알아 오겠습니다.”
왕 어멈은 알랑거리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그동안 티 나지 않은 건 순전히 들어낼 기회가 없어서였을 뿐.
“고 이낭을 저택에 들이려고 세자야가 몇십만 냥을 썼다던데, 진짜야?”
곡 대내내는 탕을 홀짝이며 천천히 물었다.
“암만요! 당연히 진짜지요!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진짜입니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 왕 어멈은 분개하고 격앙했다. 고씨 천것이 가로채 간 돈이 죄다 저희 것인데!
“그럼 말해 봐. 자세할수록 좋아.”
곡 대내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왕 어멈도 기운이 나서 윤색하고 보태면서 그 당시 고 이낭이 어떻게 색으로 대야를 꼬드겼는지, 대야는 어떤 정신 나간 짓을 했는지, 고 이낭이 어떻게 친정과 합심했는지, 다른 사람과 달아나려다가 실패해서 어떻게 수녕백부로 도망쳐 왔는지, 세자야가 오통신에 쓰여서 무슨 짓을 했는지 줄줄 이야기하고, 예전 이 대내내 손에서 현은 10만 냥을 받아서 온 저택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고가 노야와 고가 대야에게 준 일, 고 이낭과 고가가 만족할 줄도 모르고 욕심을 부려서 또 강가를 갈취해서 이 대내내의 혼수를 몽땅 훔쳐 간 일도 이야기하고 그 바람에 이 대내내가 강가에서 나가고 나중에 인연을 끊은 것까지 이야기했다.
“그래서 은자가 모두 얼마였는데?”
자초지종을 처음으로 이렇게 상세하게 들은 곡 대내내는 흥분해서 얼굴이 다 빨개졌다.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