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19화 (319/463)

319화: 충고하다

강환장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정말로 자기가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진룡을 바꾸는 것 같은 천도가 윤회하는 일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천도는 바꾸지 못하는 것이 맞을까?

강환장의 가슴 깊은 속에서 두려움이 피어났다. 슬금슬금 피어난 두려움은 조금씩 커졌다. 혼백을 돌려 몇십 년 전으로 돌아오기까지 했는데, 불가능한 일이 또 무엇이랴.

강환장은 영벽에서 몸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문지기를 불러 출타할 것이니 독산에게 말을 준비시키라고 분부했다.

계 천관이 저택에 없길래 곧바로 이부로 달려갔다. 이부로 찾아가 기별을 넣었더니 들어오라는 전갈이 곧바로 떨어졌다.

그가 예를 갖추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계 천관이 먼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어째서 여기로 찾아온 건가? 급한 일인가?”

강환장은 멈칫했다. 계 천관이 이렇게 대놓고 언짢은 티를 낼 줄은 몰랐다.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서 얼굴이 시뻘게졌다.

계 천관은 이부를 긴 세월 관장하고 식견 넓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강환장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가 없어서 콧방귀를 뀌었다.

“자네는 이부와 왕래할 일이 없는 진왕부 장사네. 수녕백부와 우리 계가도 왕래하지 않았고. 그런데 무턱대고 나를 찾으러 이부에 오다니. 너무 눈에 띄는 일이네!”

계 천관은 몇 마디 설명을 해주고는, 강환장이 그간 한 행동을 생각하니 더 불쾌해져서 그를 빤히 바라봤다.

“자네는 수녕백 세자, 고귀한 1품 세도가 자제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있고 또 임무를 받아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정말로 쓴소리 들었거나 상관에게 한 소리 들었대도 그렇지. 그게 당연한 세상의 이치고 인지상정이라서 득이 되면 득이 되지, 해가 될 일이 없을 터인데 어떻게 바로 화를 낼 수가 있는가.”

강환장은 계 천관의 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랬다. 이것 역시 그가 의식하지 못한 일 중의 하나였다. 그는 지금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십수 년 동안 거의 모든 관리를 훈계하고 내려다보던 강 승상, 강 왕야가 아니었다. 이제 막 스물 남짓, 벼슬길에 막 오른 청년이라 모든 일에 훈계받고 수시로 허리를 숙여야 할 때였다. 상관의 가르침을 받으면 화를 낼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마땅했다.

아무리 그 이치를 이해했다 해도, 도저히 예전처럼 기뻐하고 영광으로 여길 수가 없었다. 지난 생의 경험과 몇십 년 동안 익혀온 예민함이 있어서 지금 계 천관의 비평, 지적, 가르침엔 호의는 거의 없고 혐오와 경멸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예전에 젊은 부하를 훈계했을 때처럼.

“긴말하지 않겠네, 앞으로 잘 처신하게!”

계 천관은 얼굴이 시뻘겋다가 하얘지더니 이제는 멍하니 넋이 나간 강환장의 모습에 강렬하게 몰려오는 혐오를 감출 수가 없었다. 정말 말도 길게 하기 싫었다.

“긴한 일이 있어서 찾아온 건가?”

“예.”

강환장은 계 천관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 반사적으로 깊이 장읍했다.

“아까 모친이 궁에서 돌아왔는데 하관의 전처 이씨가 장공주와 지극히 친밀한 것을 봤다기에 어서 보고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계 천관이 강환장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나도 알고 있네. 뭘 걱정하는 건가.”

강환장은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천도의 무상(無常)함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것을 이겨서 눈 질끈 감고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씨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로 평범한 여인이 아닙니다. 강가와 곡가에 혼약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관의 부친이 아무리 황당하다고 하나 외아들의 혼사를 정한 중요한 일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황당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그때 제 부친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소위 지기라던 호 노야는 곡씨가 수녕백부에 들어온 이래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강환장이 또 강가와 곡가의 혼약이 거짓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자 계 천관은 짜증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강환장의 말에 잔뜩 찌푸려진 계 천관의 미간이 조금씩 펴졌다.

“뜬금없이 강가와 곡가의 혼약을 만들고, 곡씨를 억지로 강가에 밀어 넣은 것, 모두 이씨가 한 짓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강가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좋은 명성은 명성대로 얻고 경성 모두의 동정도 얻고요. 모든 잘못은 우리 강가에게 씌우고 말입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강환장은 울분과 분노로 말을 이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씨의 솜씨입니다. 못 믿으시겠지요? 저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이씨가 지금 장공주와 연을 맺었습니다. 분명 의도가 있을 겁니다. 그녀는 저를 미워합니다. 저는 진왕부 장사고요. 저를 향한 미움 때문에 왕야에게 불리한 일을 계획할까 걱정입니다.”

단숨에 그렇게 내뱉은 강환장은 숨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큰일이라 지체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천관을 뵈러 여기로 온 것입니다.”

“장공주가 확실히 비범하긴 하지.”

계 천관이 복안 장공주 이야기를 입에 올리자 강환장은 얼떨떨해졌다.

“장공주요?”

장공주는 왕야가 막 즉위했을 때 금을 삼키고 자진했는데? 양 태후가 혼인 상대를 정해줬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양 태후가 누구로 정해줬는지는 잊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든, 고작 혼인 상대를 정해준 일로 금을 삼키고 자진한다? 웃기는 이야기였다. 그도 알았다. 금을 삼킨 게 아니라, 영 황후 때처럼 아마도 양 태후가 금을 억지로 입에 쑤셔 넣은 것이리라.

그런 장공주가 비범할 것이 뭐가 있어서.

“장공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씨의 사주를 받을까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장공주를 향한 황상의 정이 깊으니까요.”

복안 장공주가 이미 이씨의 손에 들린 바둑돌이 됐을까 걱정인 것이다!

“허!”

계 천관은 눈썹 끝을 치켜올리며 강환장을 힐끔 살폈다. 우습고 괴이한 느낌이 몰려왔다. 수녕백부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평판이 괜찮던 세자가, 수녕백부 이 대에 유일한 사내가, 제 아비와 똑같이 어리석고 못됐는데 하필 자만하기 짝이 없구나.

“천관, 이가에서 얼마 전에 양자로 들인 이씨의 오라비 이신은 의뭉스럽고 교활한 자입니다. 시기를 탁월하게 잡습니다. 올해 춘시에서 분명 급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가의 막료, 문도도 한 번 수소문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문도의 내력, 문도의 증조부, 조부, 그리고 부친과 숙부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조사하면 바로 아실 겁니다.”

“알고 있네.”

계 천관이 강환장의 말을 잘랐다. 강환장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 어두워졌다. 지극히 통찰력 있는 이 말에, 강환장의 광기와도 같은 그 괴이한 느낌이 더 짙어졌다.

“아신다면 문도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아시겠지요. 일개 상인 가문인 이가에서 이런 사람을 막료로 들였습니다. 무얼 하려는 걸까요? 그 야심이…….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요? 하찮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이씨는 왕야에게 불리한 일을 하려는 겁니다. 저를 무너뜨리고 강가를 무너뜨리려고요. 그녀는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강환장은 예전의 모든 일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이를 못 낳게 한 것 말고 잘못 한 게 없다. 일개 상인 가문 여식이 낳은 아이가 무슨 미래가 있다고.

“생각이 지나친 것 같네.”

계 천관은 이씨에 대한 모친의 평가를 떠올리고 헛웃음 쳤다.

“다만 문도 문제는 맞는 말이네. 그 일은 주시하겠네. 강가와 이가는 이미 인연이 끊어졌네. 계속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과거는 과거로 흘려보내게. 됐네. 알았으니 이만 돌아가게. 올해는 작년과 다르네. 진왕부 장사의 책임이 막중해졌어. 만사 신중해야 하는 걸 명심하게. 만사 숙고하고 왕야를 보좌해서 왕부의 제반사를 잘 처리하게. 앞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면 여기로 날 찾아오지 말고. 됐네. 이만 돌아가게.”

계 천관이 자기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고 흘려들은 걸 깨달은 강환장은 뭐라고 더 이야기하려다가 입가에 맴도는 말을 그냥 삼켰다. 계 천관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씨 같은 상인 가문 여식을 안중에 두지 않을 것이다. 자기조차 몇십 년 동안 밤낮으로 같은 지붕에서 보내고도 이씨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이제야 깨닫지 않았나.

장읍하고 물러 나온 강환장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씨는 자기가 지켜보면서 알아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하는 일에 감춰진 깊은 뜻을 알아볼 사람도 자기밖에 없었다. 너무 방심해서 크게 한 방 먹었다. 그녀를 너무 믿었다. 전생에 그녀를 믿은 시간이 수십 년이다. 그녀가 자기를 배신할 것이라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생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죽이려 든다. 강가 전체를 죽음으로 내몰려고 한다.

무서워할 줄 아느냐. 내가 언제는 무서워했더냐!

이동이 집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상 대내내가 보낸 어멈 넷이 큰 상자 두 개를 들고 이가에 왔다. 장 태태는 탕가에서 어멈이 넷이나 왔다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서 어서 모시라고 분부했다.

네 어멈은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린 후에 단자는 내놓지 않고 상자 두 개를 웃으며 가리켰다.

“우리 오낭자가 막 경성에 도착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 댁 대낭자의 큰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우리 대내내와 오낭자 모두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내내가 오낭자와 함께 직접 인사드리러 와야 마땅한데 이 댁 대야가 춘시를 앞두고 있는 시기라 태태도 바쁘실까 걱정이니, 대야가 춘시 급제한 후에 오낭자를 데리고 태태께 축하드리러 오겠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장 태태는 ‘이 댁 대낭자의 큰 보살핌과 가르침’이라는 말에 이번 방문과 두 상자 물건이 딸과 관계있는 걸 깨닫고 길게 묻지도 길게 말하지도 않고 네 어멈에게 열 냥씩 상을 줘서 돌려보냈다.

“열어 보게.”

사람들을 돌려보낸 후 장 태태가 분부하자 손 어멈이 다가가 상자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나!”

“왜 그러는가.”

장 태태가 일어서자 손 어멈은 상자 안에 비취로 만든 석류 분재를 가리켰다.

“너무 귀한 선물이군.”

장 태태는 비취 석류나무 아래 떨어진 모양으로 꾸며둔 옥 석류를 들어 올려 돌리며 살펴봤다. 석류를 누르자 석류가 갈라지더니 알알이 보석으로 만든 씨가 드러났다.

“세상에, 정말 귀한 분재네요.”

손 어멈은 조금 작은 석류를 들어 올려 눌러서 열고 안에 가득 든 홍보석 씨를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이게 겨우 첫 칸 아닌가. 아래는 또 뭐가 있는지 보세. 들어 올려 보게.”

장 태태가 뒤로 물러나 상자를 살펴보다가 분부했다. 손 어멈이 진주를 불러서 상자 맨 위에 있는 황동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역시나, 아래 한 층 더 있었고 그 안에 양지옥으로 조각한 필세(筆洗: 붓을 씻는 그릇)가 있었다.

“동저아가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지.”

장 태태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닫게. 일단 거치적거리지 않는 곳에 두고 동동이 돌아오거든 다시 이야기하세. 곧 돌아오겠지.”

장 태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대낭자가 돌아왔다고 기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장 태태는 이동이 안으로 들어와 두봉을 벗고 얼굴도 닦고 정리하고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신 후에야 상자를 가리키며 탕가가 후한 선물을 보내온 일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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