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18화 (318/463)

318화: 예전 며느리

“차 한잔 다오.”

돌아가는 내내 울던 진 부인은 우느라 목이 말랐다. 강완과 강녕은 눈빛을 주고받고는 일제히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차를 마시겠다잖아. 그러니 차 시중은 당연히 며느리가 들어야지! 시어머니 시중드는 건 며느리가 유일하게 해야 할 큰일이야!

곡 대내내의 시선이 진 부인에게서 강완으로, 그리고 강녕에게 삐딱하게 향했다. 두 사람이 꿈쩍하지 않고 자기를 바라보기만 하는 걸 보고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흔들리는 휘장을 바라봤다.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며느리야, 차를 다오!”

진 부인은 화가 났다. 이런 며느리가 어디에 있나.

“나도 목말라요. 아완, 차 두 잔 따르렴.”

진 부인이 꼭 찍어 부르자 곡 대내내는 시선을 돌리더니 강완에게 분부했다. 시선은 진부인에게 향한 채였다. 진 부인은 기가 차서 손가락이 다 떨렸다.

“너! 차를 달라고 했는데, 아완은 왜 부르느냐!”

“아완이 아니면 누굴 불러요? 아녕? 아니면 봉운을 부를까요? 봉운은 저택에 있는걸요. 그럼 저택에 가서 드셔야겠네요.”

곡 대내내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너!”

진 부인은 반평생 사는 동안 반평생 울어왔다. 그녀는 굳게 닫힌 수녕백부 대문 안에서 만족하며 살았다. 누구나 그녀를 떠받들고 우러러보는, 꿈꿔온 삶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녀와 말싸움하며 알력을 다투는 사람은 없어서 나름 편안하게 살아왔다. 곡 대내내의 말에 말문이 턱턱 막혔다.

이미 말랐던 진 부인의 눈물이 또다시 폭우처럼 쏟아졌다.

“아이고, 내 팔자야. 우리 강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며느리를! 아이고, 내 팔자야.”

진 부인은 가슴을 두드렸다. 이번 눈물은 진짜 슬퍼서 우는 것이었다.

“멀쩡한 며느리를, 장공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며느리가 어쩌다가 없어졌을까. 내 팔자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쩌다가 없어졌기는요. 강가가 혼약을 무르고 따로 혼인했잖아요. 체면도 없고 면목도 없고, 무슨 염치로 우세요?”

곡 대내내는 언짢아졌다.

“무슨 말버릇이냐?”

진 부인은 놀라서 넋이 나갔다. 강완과 강녕은 겁에 질려 딱 붙어서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곡 대내내는 싸늘하게 웃고는 진 부인을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진 부인은 곡 대내내가 입을 다물자 이겼다고 생각하는지 허벅지를 내리치며 더 크게 울어댔다.

울면서 정원 상방으로 돌아온 진 부인은 울면서 분부했다.

“세자야를 모셔와라. 세자야를 불러! 긴히 할 말이 있다. 세자를 불러라……. 내 팔자야…….”

곡 대내내는 천천히 진 부인 뒤를 따라가다가 짜증을 내며 손수건을 비틀었다.

오늘 입궁한 건 원래 큰 경사였다. 오늘 대갓집 귀부인을 잘 사귀어서 앞으로 자주 왕래하다 보면 종종 궁에 들어가서 마마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리라고 밤새 궁리했다. 그야말로 진정한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것 아닌가. 그런데 웬걸, 악처에 상문살(喪門煞: 사람이 죽은 방위方位로부터 퍼졌다고 하는 살煞)을 마주칠 줄이야. 하필 또 그것이 장공주와 함께 있고 황후마마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줄이야.

진 부인이 왜 그렇게 우는 건지 알고 있었다. 이씨가 장공주 줄을 잡고 황후마마까지 관계 맺어서 그런 것 아닌가. 후회되어서 슬픈 거겠지.

퉤! 염치없는 물건!

세자를 부르라니, 세자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상문살 이씨를 다시 맞이해 오라고 하려고? 안 되겠다. 들어야겠어. 난 외로운 혼자 몸인데 핍박당하면 안 되지!

결심한 곡 대내내는 손수건을 휘두르며 고개를 들고 쿵쿵쿵 진 부인의 뒤를 따라 정원 상방으로 뛰쳐들어갔다.

강환장이 들어왔을 때, 진 부인은 이미 화항에 엎어져 있었다. 강완과 강녕은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고 이미 달아나고 없었고 곡 대내내만 꼿꼿하게 화항 앞에 서서 찻잔을 들고 있었다.

강환장은 곡 대내내와 곡 대내내 손에 들린 찻잔을 잠시 빤히 보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뗐다. 몸을 틀고 화항 자락에 앉아서 애끓게 우는 진 부인의 모습에 그는 신물 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머니, 또 무슨 일입니까.”

진 부인은 몸을 일으키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들을 바라봤다.

“왔느냐? 다 네 며느리 때문이 아니고 뭐겠느냐.”

강환장의 매서운 시선이 곡 대내내에게 향했다. 곡 대내내가 입을 열기 전에 진 부인이 덥석 그를 잡았다.

“이것 말고. 대가아, 오늘 어미가 누굴 봤는지 아니? 네 전처를 봤다. 네 전처가 말이다, 장공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서 장공주가 어딜 가든 그 애를 데리고 가더구나. 황후마마도 그 애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셨다. 대가아, 네 처 아니냐. 이 어미를 쳐다보지도 않더라. 그리고 네 누이들도. 하루 부부 인연은 백일의 정이라던데, 어떻게 그렇게 박정할 수 있느냐? 대가아, 그 애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고도 인간이냐?”

곡 대내내는 눈을 부릅뜨고 진 부인을 바라봤다. 입이 다 벌어질 지경이었다. 저런 말을 어떻게 입에 올리는 거지? 무슨 염치로. 게다가, 인간이냐고? 그럼 자기는 인간인가?

“어머니! 이씨는 이제 강가 며느리가 아닙니다! 우리 강가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강환장은 진 부인을 밀치고 벌떡 일어나서 곡 대내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어머니가 나이 들어 어리석은 말씀을 한다지만, 당신도 어리석은 것이오? 이런 말을 하는 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오!”

곡 대내내의 눈썹이 곧바로 치켜 올라갔다. 이런 것도 내 탓을 한다고?

반박하려던 곡 대내내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자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켰다.

그가 직접 한 말이다. 어리석은 시모를 단속하지 않았다고 나무랐으니 앞으로 당당하게 단속할 수 있지 않나.

“대가아, 어리석은 사람이 대체 누구냐? 우리 집안이, 대체 무슨 업장을 지었길래. 처음엔 방택 그 천것이 난리를 부리더니.”

진 부인은 생각할수록 슬퍼서 눈물을 더 철철 흘렸다.

“멀쩡히 잘 지냈었거늘. 네가 이씨와 혼인한 후로, 이가와 정혼한 후로 나날이 형편이 풀렸다. 필요한 건 다 손에 넣었어. 네 누이도 하루에 두 끼씩 제비집을 먹었고. 네가 혼인하기 전부터 힐수방에서 하루에 몇 번이나 우리 저택에 들렀고 이씨가 들어온 후엔 은자를 상자로 날라왔다. 그런데 네가 뭐에 씐 것처럼 은자 몇십만 냥을 방택 그 천것에게 쓰더니…….”

곡 대내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환장을 휙 바라봤다. 세자야가 몇십만 냥을 써서 고 이낭을 집으로 들인 거라는 이야기는 이미 듣긴 했다.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다. 고씨 같은 물건에 그 큰돈을 쓸 리가 있나. 대낮에 귀신을 봤다는 것보다 더 터무니없는 소리지 싶었다. 그런데 진 부인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는데 세자가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아? 그럼 인정한 것이지!

곡 대내내는 폭발할 것 같았다. 몇십만 냥! 은자 몇십만 냥! 그게 얼마나 큰돈인가.

곡 대내내는 두 눈이 은빛으로 물들고 마음은 혼란해졌다. 정말로 몇십만 냥이라는 큰돈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금산은해겠지!

그 금산은해가 고씨 그 천것의 손에 있다니. 어쩐지, 그 거만을 떨더라니. 어쩐지!

“어머니, 다 옛일입니다. 이야기해서 무얼 합니까.”

진 부인의 말이 너무 거슬린 강환장은 그녀의 말을 자르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진 부인이 달려가 강환장을 덥석 잡았다.

“대가아, 어딜 가느냐. 어미 말을 다 듣고 가라. 대가아, 이 어미 팔자가 사나워서…….”

“할 말이 남았습니까?”

강환장은 성가셔서 죽을 것 같았다.

“대가아, 네 누이, 아완과 아녕 모두 나이가 찼다. 슬슬 혼사를 신경 써야지. 오늘 궁에서 어미는 낄 수가 없었다. 이 어미 팔자가 사나워서……. 예전에 이씨가 아완과 아녕에게 혼수 10만 냥을 준비했다고 했었다. 대가아, 모른 척할 일이 아니다. 대가아, 이 어미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구나. 잘 살던 날을……. 이가, 그 돈더미를…….”

진 부인은 강환장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아완과 아녕의 혼사만 생각하면 10만 냥 혼수가 생각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부귀영화가 떠올라서 심장을 칼로 베는 듯했다. 다 자신의 것이었는데. 다 자신의 아들, 자신의 딸 것이었는데.

강환장은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예전엔 이런 골치 아픈 일이 있으면 이씨를 힐끔 보기만 하면 됐다. 이씨가 곧바로 나서서 아무리 곤란한 일도 자기가 나서서 막고 그는 벗어나게 해주었다.

곡 대내내는 강환장의 시선에 눈썹을 높이 치켜들었다. 온몸에 솜털이 다 솟는 기분이었다.

“나는 왜 쳐다보세요? 어머니가 미쳐서 헛꿈 꾸는 걸, 나는 왜 쳐다보세요? 혼수 10만 냥이요? 어머니 딸이 공주인 줄 아나 봐요? 쯧쯧!”

곡 대내내는 가차 없이 혀를 찼다. 혼수 10만 냥이란 소리를 잘도 입에 올려?

“저것 좀 봐라. 저것 좀 보라고. 저게 세가 종부의 모습이냐? 강가가 대체 무슨 죄업을 지었길래! 내 팔자야! 예전에 이씨는 얼마나 좋은 아이였는데!”

진 부인은 더 슬프게 울어댔다. 놀랍게도 강환장은 별 느낌이 없었다. 1년 사이에 이미 무감각해졌다. 이제 이 집안일로 흔들릴 일이 더는 없을 것만 같았다.

“난 볼일이 있으니 당신이 어머니를 설득하시오.”

강환장은 진 부인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화항에 엎어진 진 부인은 강환장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가아! 거기 서라! 누이의 혼사, 네 누이 나이가 찼다!”

성큼성큼 나간 강환장은 갈수록 걸음을 서둘러 단숨에 중문까지 달려갔다. 영벽 앞까지 뛰어가서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 숨을 헐떡였다.

예전에 이씨……. 예전의 이씨!

그는 갈수록 그 예전, 그 예전의 수녕왕부, 그 예전의 부귀영화가 이씨와 관련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을 떠올릴 때마다, 그 예전 일에 모두 이씨가 있었다.

근래 반년 남짓 동안, 예전의 일이 많이 기억났다. 막 이씨와 혼인했을 때 일, 이씨와 혼인하기 전의 일, 그리고 이씨와 정혼하기 전의 많은 일이…….

이씨와 혼인하기 전, 그는 은자 때문에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버지는 저택을 저당 잡히고도 태연했다. 뭐라더라, 진정한 명사는 오두막집, 논밭에 사는 거라고도 했었다. 그때 조급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심지어 대상국사 앞에서 진부하고 저속한 문장을 팔고 배움을 파는 사람이 얼마나 돈을 버는지 지켜본 적도 있었고, 허구한 날 경성을 뛰어다니며 돈 벌 곳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돈 생각에 거의 미쳐버릴 것 같았을 때, 매파가 찾아와 돈이 산더미처럼 있는 이가 외동딸 이야기를 했다. 산더미 같은 돈이란 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거면 됐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궁핍한 생활에 시달려서 미쳐버릴 것 같았던 그 과거를 잊게 된 것이. 언제부터 은자를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게 됐을까.

강환장은 영벽으로 바짝 다가가 머리를 대고 두 눈을 감았다. 꿈쩍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격식과 체면을 따지던 수녕왕부의 고고하고 우아한 분위기는 모두 금산은해로 유지된 것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격식, 체면과 우아함만 보고 그 아래 감춰진 아도물을 외면하게 된 것이.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나.

강환장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눈물은 나지 않고 버석하기만 했다. 이씨와 평생 동상이몽을 꾼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었다. 그가 돌아오고 그녀도 돌아왔는데 경각심을 조금도 갖지 않았다. 그녀가 예전의 그녀가 아니라는 걸 잊었다. 예전의 그녀에겐 친정, 가족이 없었다. 자기 말고, 수녕왕부 말고 기댈 곳이 없고, 갈 곳이 없었다. 지금은 어머니가 살아있고, 이신을 양자로 들였다.

이신을 양자로 들였을 때도 무감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문 이야를 이신 곁에 들였을 때도 변함없이 무감각했다. 그런 그녀가 장공주와 연을 맺었다…….

문 이야가 부인은 문(文)으로 가문을 일으키고 무(武)로 천하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코웃음 치며 들었다. 일개 상인 가문 여식이, 자기가 아니라면 무슨 수로 가문을 일으키느냐고 생각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오만하고 안하무인이 되었을까. 그러다가 나중엔 문 이야까지 안중에 두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예전에도 천하를 세울 수 있었다면 지금은 어떨까. 왜 장공주와 연을 맺었을까? 철저히 그를 부수려고? 강가를 부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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