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15화 (315/463)

315화: 어리석은 한 묶음

손 노부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할미 앞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참, 여 승상부 원씨도 묵가 육낭자를 점찍은 것 같더구나.”

“제가 반드시 여 대랑이어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요, 뭘. 춘시 방이 붙으려면 아직 한 달 남았어요. 혼사는 장원이 결정되면 정할 거예요.”

해 이낭자가 손 노부인에게 기대며 말했다.

“정혼하지 않은 소년 장원은 그야말로 만나기 어렵단다!”

손 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제 생각엔요, 올해 장원은 여 대랑 아니면 계 대랑일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아니에요. 둘 중에 장원이 되는 사람이랑 혼인 맺어요. 여 대랑이면 좋겠어요.”

해 이낭자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손 노부인이 콧등을 콕 눌렀다.

“여 대랑이면 좋겠다니. 원씨는 묵가 육낭자를 점찍었는걸.”

“할머니, 여 승상은 오황자 편에 섰어요. 묵 승상이 여 승상과 사돈을 맺으려면, 한쪽은 묵 승상 장방 적녀, 다른 쪽은 여 승상 장방 적장자예요. 이렇게 혼인으로 맺어지면 사심이 없어도 사심이 생겨요. 여 승상이야 바라마지 않겠지만 묵 승상이 승낙할 리 있나요? 두 집안이 사돈이 되지 못하면, 다음으로 걸맞은 집안은 우리예요.”

해 이낭자의 자신만만한 분석에 손 노부인은 웃음 지었다.

“네 말을 들어보니 정말 그렇구나. 가문은 접어두고, 첫째 우리 손녀는 경성에서 손꼽히는 규수지. 용모면 용모, 재능이면 재능, 어디와 혼인해도 낮춰 가는 것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해 이낭자가 눈썹을 까딱이며 웃었다. 손 노부인도 하하 웃었다.

영안백부 민 노부인이 중문 안에서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며느리 영안백 부인 화씨가 서둘러 다가와 그녀를 잡아끌었다.

“어머님, 이동과 이야기하시던데요? 왜 금세 돌아오셨어요.”

“장공주가 불러서 갔다. 백 노부인 쪽에 볼일이 있다고 말이다.”

민 노부인이 나직이 설명했다. 조염도 마차에서 내려서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슨 말씀 하세요?”

“아가씨 이야기요!”

화 부인이 조염의 이마를 톡 쳤다.

“어머님과 함께 이가 저아랑 이야기 좀 하라니까 그렇게 싫다고 해요. 아가씨도 참.”

“보기 싫은 걸 어떡해요.”

조염이 코를 찡그렸다.

“너도 참. 네 올케가 몇 번이나 말했니. 따지고 보면 이가 저아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강가가 정말 우리 집안을 받아들였으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겠어? 그 강가가 참…….”

민 노부인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웠다.

“어떻게 그 지경일 수 있지. 그리고 강가 세자도. 좋게 봤었는데 그렇게 말도 못 하게 어리석을 줄 알았을까.”

“그러니까 혼인하려면 가문을 먼저 보고 사람을 봐야 한다고 하는 거겠지요. 좋은 대나무에서 나쁜 죽순 나지 않고, 쥐 새끼 자식은 날 때부터 구멍 뚫는 데나 쓴다잖아요. 그땐 혼인하기 전이었으니 당연히 감췄겠죠. 혼인하고 나면, 보세요, 본성을 다 드러냈잖아요.”

화씨가 끌끌 혀를 찼다.

“올케언니, 수녕백부와 곡가가 정혼했던 거, 오라버니가 정말로 전혀 몰랐던 거예요?”

조염은 사실 이제 강환장에게 마음이 없었다. 이동을 보면 껄끄러운 것도 그저 항상 고개를 숙이던 사람이 강가와의 혼인에서 자기를 누른 것이 못마땅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도 저를 누르려고 하니 언짢은 것이다. 매우 언짢았다.

“앞으로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마세요. 정혼 했는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영안백 부인 화씨가 무서운 얼굴로 받아치자 조염은 꿍얼거릴 뿐 뭐라고 더 말하지 못했다.

“가서 쉬세요. 난 어머님과 할 이야기가 있어요.”

화씨가 조염을 물리자 조염은 거처로 돌아갔다.

“오늘 고모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우리 염저아가 마음에 든 것 같진 않아요.”

조염이 멀어진 걸 본 화씨는 민 노부인과 나란히 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형국공부 화씨는 이 집 조염을 마음에 두지 않은 게 맞았다.

민 노부인은 눈시울이 다 붉어졌다.

“염저아가 얼마나 좋은 아이인데! 저 아이의 혼사, 왜 이렇게 힘들까. 처음엔 강가도 십중팔구는 다 된 일이라고 여겼는데 갑자기 이가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니. 강가가 이가와 사돈을 맺을망정 우리는 마다하다니. 이건…….”

“그건 다 은자 때문이에요. 어찌 됐든 염저아가 이가 낭자처럼 혼수를 해갈 순 없으니까요. 강가는 궁핍하기 짝이 없어서 온 저택이 돈에 혈안이었어요. 그 혼사가 성사되지 않은 건 염저아의 큰 복이에요.”

화씨는 강가 이야기가 나오자 경멸하듯 혀를 찼다.

“그렇긴 하지. 그 혼사가 성사되지 않은 건 염저아의 큰 복이지. 하지만 지금은 네 고모 쪽도 글렀지 않아. 혹시, 이것도 큰 복일까?”

민 노부인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설마 형국공부가 앞으로 몰수당하고 멸족되는 걸까?

“무슨 말씀이세요. 너무 가셨어요.”

화 노부인은 불만스럽게 민 노인을 흘겨봤다.

“주가는 한창 번성하는 중인걸요. 제 고모님은 원래 눈이 높아요. 게다가 이제 국공부고 육가아는 국공 세자예요. 고모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앞으로 형국공부 세습 작위를 영원히 이어가는 것도 꿈꾸지 못할 일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신분, 지위가 있는데 눈이 높은 게 당연하죠. 염저아가 아무리 훌륭해도 우린 일개 백부잖아요. 그것도 모자라서 온 저택에 정당하게 관직을 받은 사람도 없고. 휴. 관직을 받고 아니고는 큰 차이가 나는걸요.”

“그러게 말이다. 남의 눈엔 우리 집안은 아무런 쓸모가 없겠지.”

민 노부인은 상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쓸모없단 말은 정말이지 너무 마음이 아팠다.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는데, 황상은 장공주를 매우 아낍니다. 장공주 말이라면 껌뻑하신대요. 이가 저아는 지금 장공주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사이랍니다. 이가 저아 줄만 단단히 잡으면 이가 저아를 통해 장공주에게 자주 드나들게 될 거예요. 그럼 쓸모없는 게 아니게 되어요.”

화씨가 눈썹을 휘날리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며칠 내로 우리 저택에 놀러 오라고 이미 말해두었다.”

민 노부인도 조금 흥분했다.

“어머니도 참. 아직도 예전인 줄 아세요. 이가는 지금 예전과 달라요. 양자로 들인 아들 이신이 경성에 들어오자마자 여 공자, 계 공자와 단짝이 되어 붙어 다닙니다. 알랑거리는 솜씨가 일품이에요. 제가 보기엔 분명 이번 과거에 급제할 겁니다. 진사가 되면, 수완도 좋고 집안에 은자가 넘쳐나는데, 보세요, 몇 년 안에 이가 대야는 큰 인물이 될 겁니다.”

화씨는 매우 부러웠다. 자기네 가문에도 이런 인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이가와 친밀하게 왕래하려면 거만하면 안 되겠어요. 생각해 보니 작년 2월에 이가 저아가 아팠을 때 문안 갔어야 했어요…….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사람을 보내서 집으로 부를 게 아니라, 우리가 내일 바로 이가에 가 봐야겠어요. 앞으로 잘 보여야 하는 쪽은 우리예요.”

화씨의 결단과 박력은 웬만한 사내보다 훨씬 뛰어났다.

“알았다! 네 말이 옳다. 내가 직접 선물을 몇 가지 고르마. 마음 쓴 것을 알아볼 선물로 말이다.”

민 노부인은 윗사람이지만 항상 화씨의 걸음을 따르고 그녀의 지휘에 따랐다.

“그렇게 해요. 내일 오전에 일찍 가서 제대로 이야기해요.”

고서강 부인 유씨는 마차에 오르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오늘 두 가지 일 중에 하나도 제대로 될 기척이 없어서 마음이 답답했다. 그리고 노야가 알게 되면 화를 내지 않으려나 걱정도 됐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씨는 휘장 너머로 어멈에게 분부해서 탕 오낭자에게 일단 돌아가고 무슨 일이 있으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서 알리라고 전했다.

유씨는 중문에서 내려 노야가 저택에 있는지 묻고는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곧장 서재로 향했다.

화항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고 사사는 부인이 돌아왔다는 말에 획 눈을 치켜뜨며 상반신을 들썩하다가 이내 천천히 다시 앉아서 눈을 내리깔고 계속 차를 마셨다.

“노야!”

들어와 인사하는 유씨의 목소리에 은근히 불안함이 배어 있었다. 불안을 감지한 고 사사의 두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

“어떻게 되었소?”

“탕가 저아가 정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더이다.”

유씨는 화항 자락에 몸을 틀고 앉아서 이를 악물었다.

“들어가자마자 다 물어 두었거든요. 황상께서 조회가 끝나면 꼭 화원을 거니신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연회 장소와 멀지 않아서, 동백꽃만 따라 쭉 가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가다 보면 넓은 길이 나오는데 바로 거기라고요. 얼마나 명확합니까? 그런데 그 길을, 길을 잃어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답니다. 화가 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못 만났나?”

고 사사는 결과에만 관심 있었다.

“남으로 쭉 가라고 했거늘 북으로 갔는데 어떻게 만납니까.”

유씨는 매우 화가 난 듯했다.

“길을 잃은 거요, 아니면 가기 싫어서 일부러 돌아간 거요?”

고 사사가 핵심을 찌르자 유 부인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엔 길을 잃은 것 같아요. 궁에 들어가 진정한 귀인이 되는 일입니다. 탕가 같은 가문이야 좋아서 어쩔 줄 모를 텐데, 싫을 리가 있나요. 게다가 길을 잃었을 때 데리고 온 사람이 장공주를 모시는 대시녀 녹운이었어요. 일부러 저를 찾아와 이야기해주고 가더라고요.”

“음.”

한참 만에 고 사사가 겨우 대답했다. 묘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작 이런 일도 꼬여서 이렇게 되다니. 태자가 태자인 이상, 미래의 천하의 주인인데 어떻게 이 정도 운도 없을까.

“수국공부는 하 낭자를 데리고 갔다던데.”

“예.”

유씨는 또 덜컥 걱정됐다. 듣자 하니 하 십일낭은 순조롭게 황상을 만났고 게다가 한참 이야기도 나눴다고 한다.

“하가 십일낭이에요. 수국공 세자 부인 하씨의 서출 여동생. 생긴 것이…….”

유씨가 조심스럽게 고 사사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귀비 마마와 조금 닮았답니다.”

고 사사의 굳은 얼굴에 눈빛이 음험하기 짝이 없었다.

보아하니, 첫째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군!

“나갔다 오겠소.”

고 사사는 화항에서 내려와 걸음을 내딛다가 걸음을 멈추고 마찬가지로 밖으로 나가려는 유씨를 돌아봤다.

“이 정도 작은 일도 이렇게밖에 못 하오! 내가 다 부끄럽소!”

고 사사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고 유씨는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한 감정이 뒤섞여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서재 뜨락에서 나와 거처로 돌아간 유씨는 소세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화항에 정좌하고 앉았다. 차를 받은 그녀는 공손하게 앞에 서 있는 셋째 며느리 탕씨를 보고 또 봤다. 볼수록 화가 치밀었다.

“다들 물러가라. 셋째는 남고.”

유씨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른 며느리는 내보내고 싸늘한 눈으로 탕 삼내내를 바라봤다.

“네 여동생이 영리하고 총명하다고 했지? 보기 드문 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탕 삼내내는 유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몰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가 치밀어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끽소리도 하지 않았다.

“동백꽃을 따라 끝까지 가라고 했더니, 그 정도도 못 해서 길을 잃었다. 그게 영리하고 총명한 것이냐? 너희 탕가의 영리, 총명이란 이런 것이냐? 어쩐지 평소에 내가 널 가르칠 때도 아무리 가르쳐도 제대로 못 하더니. 내가 한 말을 이해한 적이 없는 것이지?”

유씨는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이러니 탕가에 몇십 년, 백 년 가까이 서생 하나 없지. 이렇게 어리석은데 어찌 서생이 나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 있는 탕 삼태태는 속으로 날 듯이 기뻤다. 여기까지 듣고 시어머니가 화가 난 이유를 깨달았다. 다섯째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다섯째가 어리석어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어리석다고 생각하면 하라지. 탕가 온 가족이 어리석다면 어리석다고 생각하라지. 어차피 시어머니가 어리석다고 한다고 해서 정말로 어리석은 것도 아니고. 아미타불! 다섯째가 참으로 운이 좋구나. 이번 큰 겁의 첫 관문을 일단 무사히 넘겼어! 보살께서 보우하셨구나!

유씨는 일각 넘게 훈계하고 욕한 후에야 서서히 화가 가라앉았다.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고분고분 훈계 듣는 탕 삼내내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어리석긴 해도 효심은 있는 아이고, 태도는 흠잡을 것이 없으니, 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