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과거에 대한 많은 생각
요화전 밖은 갈수록 떠들썩해졌다. 복안 장공주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규수를 모두 평가하고는 아쉬움이 남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떠들썩한 재미는 정말 오랜만이야. 재미있어.”
“떠들썩해지려면 멀었어요.”
이동은 대전 안에 삼삼오오 모여 무리를 이루는 낭자와 노부인, 부인들을 바라봤다.
이런 분위기를 몇십 년 동안 겪었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어쩐지 아득한 느낌이었다. 허공에 붕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남김없이 전체를 둘러보는 기분이랄까.
복안 장공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다리를 꼬고서, 마실 듯 말 듯 찻잔을 입에 대고 대전 안의 노부인과 부인들을 하나씩 둘러봤다.
이동은 대전 안에 꽃같이 차려입은 낭자들을 서서히 훑어봤다.
조금 작고 통통한 주 육소야의 친누이 주 팔낭자는 콧등에 살짝 땀을 맺힌 채 얼굴을 치켜들고 손 십이낭과 이야기 중이었다.
전생에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예부 조 시랑의 작은아들 조명헌의 처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젊을 뿐, 이렇게 어리바리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한평생 즐겁게 보냈다. 이동은 그녀를 반평생 부러워했었다.
이동의 시선이 주 팔낭자에게서 손 십이낭으로 향했다. 전생부터 지금까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나는 것이었다. 전생엔 손 학사가 사황자에게 의탁해서 맹렬히 직진하다가 형제 상잔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그 후에 황상은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은 모두 연좌로 참했고, 손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손 십이낭이 어떻게 되었는지 듣지도 못했다. 아마도 죽었겠지.
이번에 손가가 멸문지화를 피할 수 있을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 이낭자는 낭자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 작은 무리에 서 있었다. 이따금씩 그녀의 자태가 가장 아름답고 밝게 빛났다.
이동은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춘시 후에 해 이낭자는 장원 진안방과 정혼했다. 진가는 산동 명문가로 진안방은 인품이 우수하고 재능이 출중해서 그 당시 경성의 모든 낭자를 매료시키는 사내였다. 그 두어 개월 동안 해 이낭자가 진안방과 정혼한 일이 경성에서 가장 떠들썩한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진안방은 양호상박의 싸움 중에 목숨을 잃었다. 해 상서는 회임한 손녀의 목숨은 지켜냈으나 진가는 원기가 크게 상할 정도로 거의 목숨을 잃고 그 후로 가문이 몰락했다.
해 이낭자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을 데리고 줄곧 경성에 살며 여러 가문을 전전했다. 그녀는 이동에게 매우 잘했고, 이동도 그녀를 애틋이 대했다.
올해 춘시 장원도 진안방일까. 다시 진안방과 혼인해도 이번엔 지난 생처럼 그렇게 고되고 힘겹진 않을까.
해 이낭자는 한쪽엔 초 삼낭자, 다른 쪽엔 묵 육낭자와 팔짱을 끼고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 중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맞은편 조 구낭자가 발을 구르며 웃어댔다.
이동의 시선이 초 삼낭자에게 향했고, 이내 입가에 미소가 희미하게 피어났다.
초 삼낭자는 여염의 처였다. 그 생각에 친근한 느낌이 몰려왔다. 전생엔 비몽사몽간 한평생을 보내느라 여 승상과 그녀 집안의 과거, 그리고 여 승상이 그녀와 그녀 어머니를 돌봐 준 일들을 알지 못했다. 이제 알게 되어서 초 삼낭자를 다시 만나니 저절로 친밀감이 느껴졌다.
“왜 웃어?”
복안 장공주는 이동의 포근한 미소를 보고 덩달아 빙그레 웃었다.
“이 어린 낭자들, 얼마나 귀여워요.”
이동이 별생각 없이 대답하자, 장공주가 얼떨떨해하다가 웃었다.
“네 모습을 못 보고 그 말만 들은 사람은 너를 일흔, 여든 하는 노인인 줄 알겠다!”
“장공주와 함께 수행하는 동안 심경의 큰 변화가 생기고 성장해서 그래요. 다 장공주 덕분입니다.”
이동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한테 뒤집어씌우지 마. 나는 ‘얼마나 귀여운 어린 낭자들이에요.’라고 말할 경지엔 오르지 못했거든. 너도 어린 낭자인데, 가서 이야기 좀 해 볼래?”
“싫어요.”
이동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음.”
묵 육낭자를 붙들고 웃어대는 해 이낭자와, 해 이낭자를 살짝 치면서 해 이낭자보다 더 활짝 웃는 조 구낭자를 바라보던 복안 장공주의 입가가 굳었다.
“저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관리의 위계를 보는 것 같네. 해가는 묵가를 보고 웃고, 조가는 해가를 보고 까르르하고, 정말 귀여운 낭자들이야.”
“다 보이더라도 굳이 말씀하지 마세요. 재미없잖아요.”
이동은 해 이낭자를 바라보며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 마셔.”
복안 장공주는 화제를 돌리면서 시선도 돌려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탕 오낭자와 하 십일낭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탕 오낭자는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해 이낭자 무리를 부럽고 동경하는 얼굴로 눈빛을 빛내며 바라봤다. 어떻게든 그 떠들썩한 무리에 끼고 싶은 듯 발치를 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
하 십일낭은 정신이 조금 딴 데 팔린 듯했다. 낭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얼굴인데 시선은 쉴 새 없이 조 노부인을 향해 있었다.
복안 장공주는 그런 하 십일낭을 힐끔 보다가 이동을 쿡쿡 찔렀다.
“저 아이, 생긴 것도 닮았고 꿍꿍이도 가득해. 저 아이가 가장 적합하겠어.”
“네?”
이동은 얼떨떨해하다가 장공주가 하 십일낭 이야기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 십일낭은 조 노부인과 수국공 부인 오씨가 데리고 왔다. 수국공 세자 부인 하씨의 친정 여동생이니 따지고 보면 대황자의 사람이었다.
이동은 무심결에 조 노부인을 바라봤다. 예전엔 이 노부인이 황상보다 먼저 떠나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하 십일낭을 궁에 보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걸 정말로 모르는 걸까?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걸까.
저 하 십일낭은 정말로 입궁하고, 또 총애받는다면 언제든 사달을 일으킬 부류다. 진짜로 영리한 낭자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동은 영 황후를 바라봤다. 하 십일낭이 아마도 영 황후의 첫 번째 선택지겠지.
상석에 앉은 영 황후가 조 노부인 일행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잠시 후에 수국공 부인 오씨가 은근슬쩍 다가가 하 십일낭에게 눈짓했다. 하 십일낭은 주변을 힐끔 보고는 오씨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오씨가 귓속말하자 하 십일낭은 잔뜩 굳은 표정이지만, 감정을 완전히 숨기진 못하고 놀라고 기뻐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해 이낭자가 힐끔 그녀를 봤다. 초 삼낭자를 돌아보다가 마침 하 십일낭자를 보더니 뭐라고 소곤소곤하다가 옆으로 잡아끌어서 머리에 꽂은 화전을 꼼꼼히 손질해주는 등 매무새를 고쳐 주고 뒤로 물러나서 다시 다가가 정리해주고 또 바라봤다. 그제야 만족했는지 등을 밀며 묵 육낭자와 초 삼낭자에게 보여주었다.
“똑똑하긴 한데, 지나치게 똑똑한 게 문제네.”
마찬가지로 그 장면을 본 복안 장공주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동은 멈칫했다. 누구 말일까. 하 십일낭? 해 이낭자? 해 이낭자는 원래 누구에게나 친절한데…….
하 십일낭은 가장자리로 다시 돌아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녀와 몇 마디 나누고는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정방에 가는 듯했다.
“휴.”
복안 장공주는 하 십일낭이 계단으로 내려가는 걸 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동은 영 황후를 바라봤다. 영 황후는 어린 낭자 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조 노부인이 하는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계속해서 탕 오낭자를 지켜보던 고 사사 부인 유씨는 더는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녀는 앉아 있기 피곤해서 조금 걷는 것처럼 낭자들 쪽으로 다가가서, 낭자들 무리에 안으로 거의 비집고 들어간 탕 오낭자를 대뜸 끌고 나왔다. 그러고는 매서운 얼굴로 나지막이 몇 마디 하자 탕 오낭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그 모습에 고 사사 부인 유씨가 눈살을 살며시 찌푸리자 탕 오낭자가 얼른 활짝 웃었다. 고 사사 부인은 몇 마디 더 구시렁거리고는 탕 오낭자를 풀어주고는 다시 산책하듯 자리로 돌아갔다.
탕 오낭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무리에서 밖으로 한 걸음 옮겼다가 다시 한 발짝 더 물러섰다. 복안 장공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녹운을 불렀다.
“네가 가 보렴. 저 아이가 정말로 내키지 않는 거라면 네가 도와줘.”
녹운은 대답하고 바로 돌아섰다.
탕 오낭자는 주춤주춤하다가, 계속해서 그녀에게 눈치를 주는 고 사사 부인을 힐끔 바라봤다. 결국 계속 주저할 수는 없어서 느릿느릿 걸음을 떼며 요화전 밖으로 나갔다.
“저쪽!”
복안 장공주가 이동을 흔들자 이동은 조 시랑 부인 마씨와 이야기 중인 호부 상서 초회현 부인 고씨를 바라봤다.
곡 대내내와 그 뒤에 강완과 강녕이 그 두 사람에게 예를 갖추고는 무언가 이야기 중이었다.
“아!”
복안 장공주가 눈살을 찌푸렸다가 펴고는 이내 활짝 웃었다.
“잊을 뻔했네. 초회현 부인 고씨가 수녕백부 이낭 고씨와 같은 성씨지. 다만 촌수가 좀 멀어. 고씨 종친은 근래 고가 부자를 사당에 들이지도 않는데, 저 곡씨, 정말 심하게 뻔뻔하네.”
복안 장공주는 살짝 고개를 내밀고 둘러보고서야 구석에 있는 진 부인을 발견했다.
“아무리 그래도 수녕백 부인은 서생 가문 출신이라 저 지경으로 염치없진 않은데, 저 정도로 뻔뻔한 것도 재주다.”
이동은 곡 대내내 뒤에 바짝 붙은 강완과 강녕을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그녀보다 키가 작았다. 하나는 그녀보다 말랐고, 하나는 그녀보다 통통한데 그녀 옷을 입고 있으니 치마는 몰라도 웃옷이……. 누가 봐도 자기 옷이 아님을 알아볼 것이다.
“네 혼수지?”
복안 장공주는 이동이 대답하지 않은 걸 보고 이동의 시선을 따라 강완과 강녕을 보다가 단번에 파악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네, 몸에 맞지 않네요.”
복안 장공주는 다시 들여다보고는 탄식했다.
“동저아, 너처럼 영리하고 꿰뚫어 보는 아이가 애초에 어쩌다가 강가를 골랐을까. 저 집구석은 위아래로……. 쯧!”
복안 장공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 이틀 쌓은 내공이 아닌데, 애초에 왜 고른 거지?”
“왜 자꾸 그 말씀을 하세요. 질리지도 않으세요?”
이동이 쌀쌀맞게 대꾸하자 복안 장공주는 헛웃음치고는 더는 귀찮게 굴지 않고 화제를 돌려 각 가문 규수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시녀가 갖가지 간식을 들고 와서 탁자 위에 늘어놓자마자 영안백부 민 노부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복안 장공주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이동은 일어나 민 노부인을 맞으며 예를 갖췄다.
“너 같아 보였는데 정말 너였구나.”
민 노부인은 정말 놀라고 반가운 표정을 짓다가 복안 장공주를 힐끔 바라봤다.
“문안드립니다, 장공주.”
“그렇게 예의 갖출 것 없어요.”
복안 장공주는 담담하게 대답하며 예의 차리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민 노부인은 접대에 능한 사람이 아니어서, 같이 있으면 주눅만 드는 복안 장공주와 오래 이야기하는 대신 이동을 붙잡고 다정하게 이것저것 물었다.
“어머니는 잘 지내시고? 네 어머니가 양자를 들였다지? 참으로 잘된 일이다. 진작 그렇게 해야 했다. 연말연시에 내가 좀 바빴다. 너도 알잖니. 미룰 수 없는 접대가 많으니 말이다. 너와 네 어머니를 저택으로 초대해서 이야기나 나누려고 했는데 줄곧 시간이 없었다. 네 양오라비, 스물 초반에 거인이 되었다지? 춘시에 참가한다고? 너도 참, 놀러 오지 않고.”
민 노부인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줄줄 이어졌고 이동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복안 장공주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줄곧 내외명부 상대하는 걸 귀찮아해서, 내외명부에 이런 인물이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