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08화 (308/463)

308화: 어떻게 얘기해!

“내 말이!”

주육이 탁자를 내리쳤다. 영원의 말이 제 정곡을 콕 찔렀다. 온 조정에 아버지보다 더 뛰어나고 더 경력 있고 황상과 태자의 은총을 더 깊이 받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차피 내일이면 천거될 거요. 확정된 일이야. 형님에게 이야기해도 상관없겠지. 이건 비밀을 지키지 않은 게 아니니까. 아버지 말씀이 고 사사를 천거할 거래. 그가 가장 적합하다고.”

영원이 꽥 고함쳤다.

“고 사사가 적합해? 우스운 소리! 고 사사가 뭐라고! 어느 모로 따져도 네 아버지 발끝도 못 미치는데!”

영원이 주육보다 더 분해했다.

“아버지가 약속한 일이라니, 방법이 있나! 휴!”

영원의 눈알은 굴러가지 않는데 머리는 계속 굴러갔다.

“내 생각엔 네 부친을 설득해 보는 게 좋겠다. 승상이 되는 것도 전후를 따진다. 지금 고 사사가 먼저 입각하면 몇 년 뒤에 네 부친이 입각할 기회가 있어도 고 사사 뒤에 서야 해. 네 부친이 고 사사와 나이가 비슷한데, 줄을 섰다가 언제 수석 승상이 되겠느냐? 수석 승상과 차상은 차이가 크다!”

“내 말이!”

주육은 더 분통을 터트렸다. 영원이 아래턱을 문질렀다.

“생각해 보니까…… 고 사사가 승상이 되면, 앞으로 고자의 그자가 승상부 공자가 되는 것 아니냐? 그럼 우리가 함께 만나서 놀 때, 앉는 자리도 네 앞이 되겠구나. 묵칠은 수석 승상 공자고, 그다음이 바로 고자의의 자리가 되겠구나. 나는 괜찮다. 어찌 됐든 누님이 황후니까. 너는 저 멀리 가겠구나.”

영원이 힘껏 주육을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그럼 넌 앞으로 고자의에게 잘 보이려 노력해라. 정말이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강의 흐름도 동에서 서로 흐른다더니, 네 작위는 권세를 못 이긴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너의 집안과 고가가 차이가 확 나겠구나.”

주육은 아까 한 말엔 뜨뜻미지근했으나 지금 영원이 한 말엔 얼굴이 다 파래졌다. 항상 내게 아부하던 고자의에게 내가 아부해? 차라리 단칼로 쳐 죽여라!

영원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하는데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사환의 다급한 기별과 동시에 묵칠이 대뜸 들어왔다.

“드디어 찾았다! 왜 여기로 온 거냐.”

“아침 먹으러 왔다. 넌 먹었냐?”

영원은 묵칠을 유심히 살피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물었다. 묵칠은 영원 옆에 앉으며 차를 받아서 일단 마시고는 대답했다.

“먹었지. 아니라도 먹을 기분이 아니고.”

“무슨 일인데? 얼른 말해!”

주육이 순간 기운이 나서 목을 길게 내밀었다.

“할머님이 혼처를 정했지?”

영원은 울상짓는 묵칠의 얼굴을 보며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것밖에 없었다. 묵칠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 것까지는 아닌데, 곧 정하겠지. 휴. 지붕이 새는데 하필 비가 오다니!”

주육이 다급히 물었다.

“어느 댁 낭자냐? 어째서 소리 소문도 없이 곧바로 정한 거냐? 아이고! 그럼 곧 성혼하겠구나? 하하하. 경사다. 축하한다, 축하해!”

“너라고 괜찮을 것 같으냐? 네 모친도 슬슬 혼처를 구하고 있을걸?”

묵칠은 거의 달라붙을 듯한 주육의 얼굴을 밀어냈다.

“어느 댁 낭자냐?”

영원도 다급히 물었다. 이런 때 묵 승상가가 어느 가문과 사돈을 맺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태자 쪽과 혼인이라도 하게 되면…….

“결정 난 건 아니고. 그냥…… 곧 정해질 것 같다. 우리 셋째 고모님 질녀, 명씨 가문 삼낭자. 그저께 경성에 왔단다. 오늘 아침에 겨우 알았다. 아이고!”

“네 고모님 댁 질녀? 양절 명씨 가문? 그럼 괜찮군. 양절 명씨 가문은 인재가 속출하는 강남 계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가 아니냐. 명가 낭자는 하나같이 재녀(才女)라고 하더라. 삼낭자도 재녀냐?”

주육은 일단 영원에게 설명부터 해주었다. 그가 알기로 영원은 북삼로 이외의 일은 전혀 몰라서 모두 그가 가르쳐줘야 했다.

묵칠의 얼굴이 더 울상이 되었다.

“재녀지! 당연히 재녀지. 그냥 재녀도 아니고, 차 한 모금 머금고 한마디하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생긋 웃고 마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런 재녀!”

영원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너와?”

“내가 어찌 그래. 한마디로 어찌 알아들어. 내가 그녀와 무슨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야. 속속들이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걸? 육 누이와는 한마디 하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금방 깨달은 표정을 짓더군. 뭘 알겠다는 거야? 정말이지…….”

묵칠은 매우 괴로워했고 주육은 그 맘 잘 안다는 얼굴로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잖냐. 난 그런 사람이 제일 싫다. 지난번에 아라도 그런 짓을 하더라. 술 한 모금 머금고는 탄식하잖냐. 나를 모르는 자에게 무엇을 바라겠느냐는 둥, 그 자리에서 화를 냈다. 이 몸한텐 안 통하니까 내 앞에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아라야 훈계하면 듣지만, 아내는 그럴 수도 없지. 오히려 혼쭐날 수도 있어. 아이고! 가련하구나!”

주육은 동정하는 얼굴로 힘껏 묵칠의 어깨를 두드렸다.

영원이 핵심을 짚었다.

“명가 삼낭자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낭자가 널 마음에 들어 하겠냐?”

“할머니 말씀을 들어 보니까, 이 혼사를 나 몰래 상의한 지 반년은 되었더라고. 이번에 고모님 동서가 그 삼낭자를 데리고 온 모양이야. 다른 일은 없고 오로지 혼사 때문에 온 것 같았어. 나 자체는 별로라도, 내가 상공부 공자고 할아버님은 수석 승상이잖나. 그 점만으로도 별로가 아닌 게 되는 것이지.”

묵칠이 풀이 폭 죽어서 하는 말에 주육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묵칠이 아무리 변변찮아도 승상부 공자, 수석 승상가 공자였다.

영원은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주육의 얼굴을 흘끔거리면서 못 본 체하며 묵칠과 이야기했다.

“그렇긴 하지. 네가 가끔 헛짓을 하지만, 대체로 나쁘지 않지. 성혼하면 나아질 거고. 어찌 됐든 승상부 공자 아니냐. 재녀가 뭐 어때서, 네가 이런 꼴을 하는 것이냐.”

영원은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칠 형님, 우리는 남이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는데, 나는 정말로 내가 좋은 사람, 마음 맞는 사람과 혼인하고 싶다. 부부는 둘이 평생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야 하지 않아. 그렇지? 명가 삼낭자 자체는 좋지. 너무 좋지. 그런데 삼낭자가 하는 말은 내가 못 알아듣고, 내가 하는 말은 삼낭자 수준에 안 맞고. 그런데 어떻게 평생 얼굴을 맞대고 사나? 우리 집안은 첩도 들이면 안 되는데.”

묵칠은 매우 괴로운 듯한데, 주육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라가 있잖으냐. 경성에 가장 이해심 넓은 기녀. 첩을 들이지 못하면 밖으로 즐거움을 찾으러 가면 되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영원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로 싫으면 할머님께 말씀드리고 다른 사람을 골라야지. 얼렁뚱땅하면 안 될 일이다. 한번 얼렁뚱땅으로 평생이 결정된다.”

묵칠은 얼굴을 문질렀다.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일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실 거다. 할머님은 바로 명 삼낭자처럼 서생 가문 낭자를 원해. 그래야 내 아들이라도 글공부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시지. 아버지도 그렇게 여기시고. 내가 뭐라고 말하겠어. 명 삼낭자가 글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해? 할머님이 상대나 해주실까?”

“그럼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고?”

영원도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없지. 놀아 봐야 기루에서 놀았지, 내가 호색한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묵칠이 영원을 흘겨봤다. 내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날 기회가 어디에 있다고!

영원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 일은…… 소칠, 네가 한 말 중에 지극히 옳은 말이 있다. 부부 두 사람은 평생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마음에 드는 사람과 혼인해야 해. 이 칠 형님이 도와주마! 우리 형제, 셋이 아무리 못나도 머리를 맞대면 제갈량 하나는 나와야지!”

“맞다, 맞아. 나도 있다. 육 형님도 도와주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마음에 드는 여인과 혼인하게 해주마!”

주육은 얼른 가슴을 두드리며 원 형님을 따라 태도를 밝혔다.

“그래, 너도 있고! 너도 제 마음에 드는 아내를 골라야 할 테니까!”

영원은 주육을 단숨에 의자에 눌러 앉히고 엄숙한 얼굴로 주육을 바라봤다.

“농담하는 거 아니다. 잘 생각해라. 우리 형제가 마음을 합해 보겠느냐? 너, 그리고 소육, 모두 마음에 드는 아내와 혼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해야지!”

묵칠은 얼른 대답하고는 금세 덧붙였다.

“하지만 형님, 지나친 짓은 안 돼. 누군가를 해치면…….”

“걱정하지 말아라. 너 그게 무슨 말이냐. 사람을 해치는 건 그게 누구든 덕이 깎일 일이다. 어떻게 할지는 우리 형제 셋이 상의부터 하고 움직이면 된다.”

묵칠이 뭘 걱정하는지 아는 영원은 얼른 대답했다. 묵 승상과 묵 이야 눈 밖에 날 생각은 없었다.

“그럼 형님부터 말해 봐. 어쩌면 좋지? 겁줘서 돌려보내?”

정신이 번뜩 든 주육은 의자를 밟고 올라가 소매를 걷어붙일 기세로 물었다. 영원이 한 주먹에 다시 앉혔다.

“첫 번째, 너와 소육 모두 나이가 찼다. 혼인은 해야 해. 올해 혼처를 정하고 미루다가 내년, 후년에 혼인하면 될 거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묵칠이 고개를 끄덕였고, 주육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혼인하든 말든 별 느낌 없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었다.

“두 번째, 마음에 드는 사람과 혼인하려면, 우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야 할 것 아니냐.”

영원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리키자 묵칠과 주육이 함께 그 손가락 끝을 바라봤다.

주육은 머리가 어질거렸다. 하나 마나한 소리를!

“원 형님, 말이야 쉽지, 그걸 어떻게 해. 어디서 찾아? 우리와 혼인할 사람은 분명 대갓집 규수 명문가 여식일 테지. 그렇지? 명문가 여식이 아라, 류만도 아니고 고르라고 줄을 서 있기라도 하나?”

묵칠은 영원이 손 쓰기 전에 먼저 주육을 때려 앉혔다.

“뭐가 그리 급해! 칠 형님 말이 끝나지도 않았구만. 넌 방법이 없어도 칠 형님이 방법이 없겠냐?”

“고르라고 줄 서 있는 건 불가능하지만, 만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첫째, 해마다 저택에서 꽃구경, 문회 같은 걸 열지 않으냐. 그렇지? 기껏해야 호수 너머, 정자 너머로 얼굴은 보이잖아. 그렇지? 상대가 시를 지으면 우리도 시를 지어서…….”

“원 형님, 시를 지은 적 있고?”

주육이 툭 물었다.

“지은 적 없는 게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 말은 기회가 없지 않다는 말이다! 됐다, 됐어. 너 같은 멍청이에겐 더 명백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히 말하는 수밖에 없다. 자, 잘 들어라. 첫 번째, 이 혼사는 수준이 비슷해야 하지? 그렇지? 수준이 안 맞으면 되겠어? 자, 네가 아라와 혼인한다고 하면 네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널 때려죽일 것이다. 수준 맞는 가문 어린 낭자가 몇이나 되겠느냐.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 봄에도 무슨 회, 무슨 절이 잔뜩 열린다. 방생 법회도 열리지 않았더냐. 얼굴 보는 게 어렵냐? 일단 거기서 눈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방법을 써서 몇 번 더 만나보면 되지 않으냐. 너희 둘 다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으냐? 정말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영원은 두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성질을 부렸다. 사실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사실 그의 계획은 이동을 만나 상의해 보려는 것이었다. 묵칠과 주육에게 적당한 아내감을 찾아주는 일이 이동에게는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일일 것 같았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자기가 어찌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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