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승상 천거
“초 형이 이리 솔직하게 말하니 나도 터놓고 말하겠네. 초 형이 입각한다면, 자네는 중서, 나는 이부, 조정의 세를 반은 잡는 걸세. 내가 중서에 들어가느라 이부를 버리는 건 득보다 실이 큰일이야. 그래서 초 형과 상의하러 온 걸세. 자네와 내가 손을 잡고, 초 형을 추천하면 희망이 크네.”
계 천관은 초 상서 쪽으로 바짝 다가갔다.
“태자가 천거하는 쪽이 아무래도 세력이 거세겠지. 하지만 태자의 보위가 정해진 지금, 고 사사와 주 추밀은 어떤가. 고 사사는 똑똑히 판단하고 더 신중히 한다고 해도 주 추밀은? 형국공 직위로 말도 못 하게 득의양양하네. 그자는 태자를 세웠으니 성공했다고 태평하게 다리 뻗고 잘 생각을 할 텐데, 입각하여 승상이 될 기회를 보고 동하지 않을까? 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동하게 해야지.”
초 상서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말없이 술을 마셨다.
“영 황후가 양빈을 올려주고 규수를 골라 후궁을 채운 일, 참으로 훌륭한 수네. 영가는 확실히 하나같이 인물이야. 하지만 영가의 가장 큰 열세가 경성에 사람이 없다는 걸세. 영 황후와 영원이 부승상 자리를 노리고 싶어도, 누굴 천거하겠나.”
“여 승상의 생각은 어떤가.”
초 상서가 신중하게 물었다.
“여 승상은 내 부친을 가장 존경하셨네. 그건 자네가 잘 알지 않나.”
계 천관은 초 상서를 바라봤고 초 상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학문의 정수를 가장 잘 이어받은 건 여지안이라고 계 노승상이 말한 적 있었다.
“내가 보기엔, 여 승상이 영 황후의 회궁을 지지한 건 공적인 문제지 마음이 기운 게 아니라네.”
계 천관은 잔을 돌리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부친께서는 여 승상이 생각이 깊은 것이 결코 당신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 있네. 하지만 여 승상은 나이가 많아서 새 황제를 기다리지 못할 걸세. 아들들은 다 평범하고, 손자 여염이 출중하긴 하나, 천하에 백세 천자는 없고 황상도 젊지 않네. 십여 년 안엔 신구 대체가 이루어질 걸세. 여 승상은 십 년을 버티지 못하겠지. 하니 십 년 후엔 여염이 고작 서른 남짓이네. 어디까지 올라가겠나. 서른에 3품만 되어도 세상이 놀랄 일이네.”
초 상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한 세대가 부귀를 이루는 건 쉽지만, 그 부귀를 전승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여씨 가문의 상황이 이러니, 실로 신구 대체에 끼어들 필요가 없네. 황후마마의 회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이어서 부승상 추대를 거론했네. 또 오황자 글공부 문제도 한림원에 넘겼지만 어느 한림학사인지 지정하진 않았지.”
계 천관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두고 보게. 여염은 분명 서길사 시험을 보고 한림원으로 갈 걸세. 그리고 오황자를 가르치는 일에 여염이 가장 많이 떠맡게 될 걸세.”
초 상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정말 생각이 깊군! 이번에 부승상을 추대한 일도 아마도 책임을 분산하려는 속셈이겠지. 승상 세 분 중에 여 승상은 중간일세. 여 승상의 아들들은 관직이 낮고 여염은 한림원으로 들어간다면 여씨 가문은 이 큰일에서 표면적으로는 어느 쪽 손도 잡지 않은 게 되지. 요행히 오황자가 된다면, 여염은 제왕의 스승이라는 명분을 얻겠지. 그뿐만이 아니네. 여씨 가문의 가풍을 생각해 보게. 그 사이에 여염은 오황자와 막역한 친분을 쌓고 오황자의 신임을 얻겠지. 나가면 공격, 물러서면 수비. 정말이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묘수일세. 묘수.”
“그러니 여 승상은 중간에서 아무도 지지하지 않고 누구도 막지 않을 걸세. 이건 됐고.”
계 천관은 잔을 상에 내려놓았다.
“묵 승상 이야기를 해 보세. 묵 승상 둘째가 호부 시랑이네. 자네가 중서로 들어가면 순리적으로 묵 시랑이 상서로 올라가네. 그 점만으로도 묵 승상이 자네가 승상이 되는 걸 저지하겠나?”
초 상서의 눈꼬리가 떨렸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묵 시랑보다 몇 살 많을 뿐이다. 자신이 늙어 죽길 기다리다가 묵 시랑의 목이 빠질 것이다.
“태자는 자기들끼리 싸우고 상잔할 것이고, 묵 승상, 여 승상은 좌시하겠지. 자네와 내가 손잡고 자네를 천거하면 손바닥 뒤집기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큰 가능성이 있네.”
분석을 끝낸 계 천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데 초 상서는 또 주저했다. 그런 초 상서의 마음을 잘 아는 계 천관이 말을 이었다.
“초 형, 깊이 생각할 것 없네. 초 형은 오로지 주군을 품은 좋은 신하가 되고 싶은 것이지. 나도 아네. 나도 다른 뜻이 없네. 다만 그 자리, 첫째, 초 형이 가장 적당한 사람이고, 둘째, 초 형이 입각하면 적어도 나와 진왕야를 상대할 일념으로 눈에 불을 켜진 않을 테지. 나는 그것으로 됐네.”
“계 형, 자네 정말 결심한 겐가?”
초 상서는 걱정스러운 듯 계 천관을 바라봤다. 계 천관은 초 상서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초 형, 공적인 면으로 말해서, 진왕이 자질이 조금 떨어지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도 천성이 온화하고 자비롭네. 자질이 부족한 걸 알아서 간언도 잘 듣지. 태자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비슷은 하네. 오황자는 아직 어려서 성품이 정해지지 않았네. 영가는 무자비한 무인 가문이네. 오황자에겐 영가의 피가 흐르지. 또한, 오롯이 영씨 손에서 자랐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나.”
한참 만에 초 상서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무자비하다는 건 신하와 만백성에게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계 천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사적인 면으로 보면 진왕은 성격이 유순하고 재능이 평범한 것이 황상과 매우 닮았네. 초 형도 보아 왔듯이, 황상이 그렇지 않았다면 이십여 년 동안 묵 승상과 여 승상 같은 온화한 승상이 그 자리에 있었겠나? 게다가 진왕은 외톨이나 마찬가질세. 양가 같은 외가는…….”
계 천관은 피식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거기까지 말해도 초 상서는 이미 다 알아들었다. 진왕의 성격, 재능. 이런 처지. 이익을 다투는 사람도 곁에 없다. 하지만 오황자는 다르다. 영씨 가문에서 손을 뻗지 않는다 해도, 궁에 있는 황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물며 영씨 가문이 이미 손을 뻗었다. 영원이 오지 않았나.
“계 형의 생각이 깊으이.”
초 상서는 침묵하다가 계 천관을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계 천관도 잔을 들고 두 사람이 살짝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잔을 비웠다.
영원은 화원을 지나쳐 담을 넘고는 두봉 자락을 탁탁 털어 쓰다듬으며 매무새를 고친 다음 목을 가다듬었다. 멋지게 돌아서서 걸음을 떼다가 쟁반을 들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기를 바라보는 수련과 부딪칠 뻔했다.
“네, 네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영원이 화들짝 놀라자 수련이 매서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드릴 말씀인걸요!”
“그렇군……. 하! 훌륭한 녀석이구나. 위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다니. 내 그럴 줄 알았다. 너희 낭자를 모시는 시녀들은 하나같이 훌륭하지! 역시 그 주인에 그 종이다. 가서 일 봐라. 나는 알아서 가면 된다.”
영원은 옆으로 스윽 가서 수련을 지나쳐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수련이 뒤를 쫓아갔다.
“녹매! 어서 낭자에게 기별해. 또 오셨어!”
영원이 몇 걸음 만에 서쪽 상방 문 앞에 도착하자 이동이 휘장을 걷고 나와 문 앞에 서서 그를 바라봤다. 영원은 돌아서서 장읍하고 일어서서는 문을 밀면서 몸을 비틀고 이동에게 말했다.
“들어가서 이야기합니다. 밖이 춥습니다.”
이동은 살며시 한숨을 내쉬며 회랑을 따라 서쪽 상방으로 다가가 안으로 들어갔다. 휴, 북부인은 다 이렇게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걸까.
이동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영원은 이미 두봉을 흔들며 지난번에 앉았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동이 뒤따라 들어오는 걸 보고 지난번에 이동이 나왔던 상방 곁채 쪽을 돌아봤다.
“밖이 참 춥습니다. 봄이 되었으니 이렇게 춥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지. 이 방은 참 따듯합니다.”
영원은 팔을 비틀어 꾹꾹 누르면서 시원한 듯 숨을 내뱉었다.
수련이 쟁반을 들고 들어와 연자차(蓮子茶) 두 그릇을 상에 내려놓자, 영원은 이동이 마시라고 할 것도 없이 한 그릇을 들어 올려 호로록 마시고는 연신 칭찬했다.
“참 잘 만들었군. 역시 시녀들이 훌륭해.”
“음, 나중에 당신 대신 닷 냥씩 상을 줄게요.”
이동이 연자차를 들어 올리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수련은 풉 하고 웃으며 돌아서서 녹매에게 차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영원은 조금 머쓱한 듯 품 안을 더듬었다.
“오늘은 괜찮습니다. 내가 은자를…….”
영원은 품 안을 한바탕 더듬고는 또 더듬었다. 이동은 쉴 새 없이 품 안을 더듬는 영원을 차를 마시면서 흘겨보다가 화제를 돌렸다.
“위봉낭은요? 한동안 못 봤네요.”
“아!”
기회를 잡은 영원은 재빨리 손을 거두고 진지하게 이동의 물음에 대답했다.
“누님을 모시고 돌아오라는 황상의 명령이 내려온 날, 오가아 곁으로 보냈습니다. 몇십 년 동안 도적으로 살아서 경각심이 매우 높습니다. 재주도 좋고. 솔직히 말해서, 누님 걱정은 안 합니다. 가냘픈 것 같아도 사실은 매우 포악합니다. 눈도 깜빡 안 하고 사람을 죽입니다. 소오는 달라요. 소오가 걱정되는데 위봉낭이 곁에 있으면 조금 안심할 수 있습니다.”
수련과 녹매는 얼굴을 마주 보다가 함께 영원을 향해 입을 비죽였다.
“몇십 년 동안 도적으로 살다니……. 위봉낭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으세요?”
위봉낭을 좋게 본 이동이 저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위봉낭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위봉낭이 내 앞에서 한 말입니다. 몇십 년 동안 도적으로 산 걸 매우 뿌듯해합니다. 차차 알게 될 겁니다.”
영원이 싱긋 웃었다.
이동은 대충 그러냐는 식으로 대꾸하고는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일이 좀 있어서……. 그런데 나한테 물어볼 말이 있지 않나?”
영원이 몸을 기울이고는 숨을 죽이고 이동을 바라봤다. 이동은 얼떨떨해하다가 곧 피식 웃었다.
“상처는 좀 나았나요?”
“상처? 아, 그거. 나았습니다.”
영원은 이동보다 더 얼떨떨해하더니, 오른손을 들어 왼 어깨를 주물렀다.
“나았어요. 마음 써줘서 고맙습니다. 그게 단가? 다른 건 없고?”
“뭐가 더 있겠어요. 오가아를 어떻게 가르칠 건지 물어요? 들어도 모르는데요.”
이동은 영원의 왼 어깨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았다. 지난번에 똑똑히 봤는데 분명 오른쪽 어깨였는데!
“보름날, 묵칠 그 녀석이 아라인지 어라인지 이야기한 건 물어보고 싶지 않고요?”
영원이 조금 분한 듯이 이동을 흘겨봤다.
“아, 아라요.”
아라라는 이름에 이동은 생각이 많아졌다.
지난 생엔 진왕이 태자가 된 후에 아라가 양 구야 저택에 팔려 갔다. 누가 사서 보낸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진왕이 갑작스럽게 태자가 된 일로 허둥댔던 바람에 많은 일에 소홀했다. 진정되었을 땐 아마 아라가 죽은 지 오래였던 것 같다. 아니면 그 당시엔 아라라는 기녀를 아예 유의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그녀가 아라를 알게 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십여 년 후에 연향루와 비연루가 팔려서 허물고 새로 짓게 되었을 때 이미 상서가 된 묵칠이 반쯤 허문 연향루 앞에서 아라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한 적이 있었다. 하마터면 관료 사회에 큰 소동이 일 뻔했다.
그 일로 아라라는 인물을 조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