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01화 (301/463)

301화: 갑작스러운 질문

노부인이라고 해도 사실 민씨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노 영안백의 후실로, 현재 영안백 부인 화씨보다 네댓 살 많을 뿐이었다.

상인 가문 출신인 민 노부인은 자기 친정의 낮은 신분을 잘 알고 의붓아들과 의붓딸을 줄곧 성심을 다해 대했다. 잘 보이려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 부인이 혼인해서 들어온 이래, 더더욱 양보하고 또 양보하고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또 차렸다. 그녀가 예의를 갖춰 대하니 화 부인도 그녀를 존중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마음이 잘 맞아서 십여 년 동안 돈독하게 지내왔다.

민 노부인이 혼인한 후 낳은 딸 조염(趙冉)이 올해 열아홉이 넘었다. 작년 연말에 조염이 강환장을 마음에 들어 해서 두 가문 사이에 혼담이 오갔는데 나중에 이가가 강가에 말을 넣었고 강가가 이가로 결정했다. 그 일로 조염은 큰 병을 한 차례 앓기도 했다.

“궁에서 규수를 고르는 일에 생각이 생긴 건 아니시지요?”

화 부인은 민 노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이 생긴 것까진 아니다만.”

민 노부인이 미간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염저아의 성격을 너도 알지 않느냐. 속셈이 하나도 없다. 밤새 생각했는데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귀비 마마도 속셈 있는 분은 아니지 않으냐. 이게 참……. 황상은 마흔이 넘었고.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황상이고……. 이게 참…… 네가 결정하면 어떨까 하는데.”

“어제 저도 백야와 이 이야기를 했어요. 백야는 염저아를 궁에 보내고 싶어 해요. 지극한 총애는 아니더라도 웬만해도 좋으니까요. 아이를 낳으면 지금보다는 좋아질 거고요.”

화 부인은 일단 영안백의 생각부터 말했다. 민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화 부인의 말이 일단락되자 또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황상이 마흔이 넘었는걸…….”

“제 생각도 그래요. 황상이 마흔이 넘으셨는걸요. 염저아가 정말로 입궁하게 되면 서른쯤엔 태비가 될 거예요. 한창때에 말이에요. 노부인껜 염저아 하나뿐인데 잘 생각하셔야지요.”

화 부인은 거기까지 이야기했다. 이런 일에서 민씨 모녀 대신 결정을 할 순 없었다.

“휴. 말자, 말아. 염저아는 그런 복이 없다. 엇비슷한 집안을 찾아 편안하게 혼인시키자!”

민 노부인은 자기가 스물 남짓에 수절하고 의붓아들,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산 것을 떠올렸다. 운이 좋아서 의붓아들, 며느리 모두 착해서 다행이었지만, 딸까지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쿡쿡 쑤셨다.

민 노부인의 말에 화 부인은 표정이 밝아져서 웃으며 물었다.

“수국공부 육소야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방 소육 말이냐?”

민 노부인이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주가 육소야는 변변찮기로 소문난 인물인데!

“사방에 작위를 봉하는 건 기정사실이 되었어요. 영원히 세습하는 건 아니지만 육소야 대, 그다음 대까지는 이어져요. 육소야의 부친은 뛰어나고요. 제 당고모는 성품도 어질거든요. 제 생각엔 보기 드문 좋은 혼처라고 생각해요.”

“작위가 있다면야 참으로 좋은 혼처지. 하지만 상대가 우리를 눈에 차 하겠니.”

민 노부인은 언제나 자세를 낮추는 사람이었고, 화 부인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염저아도 백부 낭자인걸요. 주가 사방이 국공으로 봉해진다고 해도 넘보지 못할 혼처는 아니에요. 노부인이 괜찮다고 하시니 내일 수국공부에 가서 고모님 의중을 떠볼게요.”

주 귀비의 죽음으로 인해, 원래 정월 열엿새에 열릴 새해 첫 조회가 정월 스무날로 미뤄졌다.

올해 새해 첫 조회는 활기찬 예전과 달리 태자만 빼고 조용했다. 황상과 조정 대신들이 피로하고 기분이 저조해서인지 막 태자로 봉해진 사왕야만 유난히 활기가 넘치고 밝아 보였다.

조회가 끝난 후, 황상이 영원을 자극전으로 불러 들어갔다. 황상은 피곤한 얼굴로 화항에 누워 가까이 오라고 영원에게 손짓했다.

영원은 재빨리 다가가 화항 앞에 무릎 꿇고 허리를 세우고 살짝 올려다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며칠 전에 네 손위 누이가 너희 영씨 가문 사람은 무술 실력이 뛰어나고 몸이 튼튼하다고 하면서 오가아에게 무술 가르치는 일을 너에게 맡기고 싶다고 하더구나. 그래야 몸이 튼튼해진다고 말이다. 짐 생각에도 네가 매일 한가하게 말썽이나 피우는 것보다 낫다고 여긴다. 내일부터 하루 반 시진이든 한 시진이든, 오가아를 데리고 수련해라.”

황상이 나지막이 하는 말이 길어질수록 영원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황상의 분부가 끝날 때쯤엔 얼굴이 쭈글쭈글해질 지경이었다.

“황상! 제 무술 실력을 어디에 내놓겠습니까! 그런 실력으로 오가아를 가르치라니요! 망하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황상! 어전 시위 중에 고수는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황상…….”

황상이 못 말린다는 듯 영원을 바라봤다.

“또 헛소리하는구나! 너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한량처럼 살 것이냐. 형국공(荊國公) 말이 네 재주가 뛰어나다고 하더구나. 짐이 보기에도 그렇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오가아를 잘 가르치면 좋고, 또 하나 네가 오가아 곁에 있으면 네 누이도 안심하지 않겠느냐.”

“여기가 경성이지 변경도 아닌데 걱정할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은 가슴이 철렁해서 일부러 삐딱하게 굴었다.

“오가아는 몸이 약하고 네 누이가 엄하게 단속한 바람에 그 나이 되도록 밖을 데리고 나가서 구경시켜 본 적도 없고.”

황상의 말이 돌연 뚝 그치더니 조금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컸으니 그 나이에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경성에 먹을거리, 놀거리, 네가 훤히 꿰고 있다고 하더구나. 모르는 게 없다면서? 오가아 곁에 네가 있으면 짐도 마음이 놓인다.”

“황상! 입방아만 찧을 줄 알고 제대로 된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 고얀 놈들 말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정통한 걸 따지자면야 제가 주 소육을 어떻게 이깁니까. 묵 승상댁 소칠도 못 이깁니다! 황상, 허튼소리 믿지 마십시오!”

영원은 얼굴 가득 떳떳한 표정이었다. 황상이 그런 그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짐이 뭘 어찌했다고 그러느냐! 네 꼴 좀 보아라. 소육과 묵 승상부 소칠까지 끌고 나와? 이리저리 핑계 댈 것 없다! 첫째, 오가아에게 무술 몇 가지를 잘 가르쳐라. 둘째, 오가아를 잘 보살펴라! 오가아는 네 생질이다!”

“예.”

영원은 대답은 시원스럽게 하면서도 황상을 바라보는 얼굴엔 서러움이 가득했다. 황상은 기도 차고 웃음도 날 것 같아서 상체를 일으켜서 영원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 얼굴 지우지 못하겠느냐! 이 정도 사소한 일을 시켰다고 그렇게 억울한 것이냐! 짐이 널 부리지도 못한단 말이냐? 공으로 밥을 먹어야겠느냐!”

“아닙니다! 억울하지 않습니다! 자형, 보십시오. 하나도 억울하지 않습니다!”

영원은 억울한데 웃음을 쥐어짜는 표정이었다. 황상은 콧방귀를 뀌었다.

“또 하나. 너도 이제 나이가 찼다. 전엔 네 누이가 줄곧 병들어 있었다만, 드디어 몸이 조금 좋아지지 않았느냐. 네 혼처를 찾아보라고 짐이 이미 네 누이에게 분부했다. 경성에서 좋은 혼처를 찾아보라고 말이다.”

“황상!”

영원이 꽥 고함쳤다.

“경성이요? 황상! 저는 돌아갈 겁니다! 황상, 제가 1년 동안 말을 참 잘 들었지요? 사고를 하나도 치지 않았습니다. 황상! 저 이제 북삼로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황상, 작년 말부터 북삼로로 돌아가는 문제를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예, 저도 나이가 찼지요. 돌아가서 아내를 골라 혼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상, 어머니가 좋은 아내를 골라준다고 했습니다. 제 아내를 구하는 이런 사소한 일로 황상과 마마를 귀찮게 해서 되겠습니까! 황상, 황상께서 말씀하셔서 그냥 저를 집에 돌려보내 주세요. 예?”

황상은 간절하고, 고뇌하는 가운데 갈망하는 눈빛을 보이는 영원을 빤히 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경성에 남아서 네 누이와 오가아를 돌볼 생각을 해야지. 이런 때 집으로 돌아가긴 뭘 돌아간단 말이냐.”

영원의 표정이 더 간절해졌다.

“황상, 아시지 않습니까. 어릴 때부터 누님이 절 단속했습니다. 나중엔 커서 더는 누님이 어쩌지 못했고요. 그런데 지금…… 지금은 누님이 황상 옆에 있으니……. 황상,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예?”

“네 말을 들어보니 짐이 그동안 널 너무 방종한 것 같구나.”

황상이 영원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게 아니라…….”

“네 누이와 오가아를 데리고 올 때, 길에 자객이 있었다고?”

황상이 영원의 말을 자르고 별안간 물었다. 영원은 얼떨떨해졌다.

“자객이요? 그런 적 없습니다만. 좀도둑 몇은 있었습니다. 큰비가 오고 날이 어둡긴 했는데, 그게 자객이었습니까? 말도 안 되지요. 누굴 죽이려고요? 누님이요? 누가 감히요? 오가아요? 그럴 리가요. 아니면 저요? 하지만 전 밉보인 사람이 없는걸요. 황상, 엄밀히 조사하셔야 합니다! 이게 웬일이랍니까!”

영원은 멀뚱멀뚱 정신을 차리고는 이내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황상이 영원을 흘겨보며 물었다.

“좀도둑 몇? 몇 명이나 되더냐?”

“모릅니다. 그날 큰비가 온데다가 코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습니다. 두 다리로 뛰어온 좀도둑이라서 말을 몰고 달려가서 말에 앉은 채 칼을 휘둘렀습니다. 멈추지도 않아서 몇이나 죽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막고 강도질하려는 좀도둑이지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자객이었다니요!”

영원은 어리벙벙한 표정이더니 곧 후회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경성으로 돌아오자마자 황상께 고하려 했는데, 나중에 황상…… 황상 얼굴이 너무 안 좋아서 큰일도 아니기에 그냥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네 누이는 알고?”

영원은 고분고분한 표정을 지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누님이 황상께 말씀드린 겁니까?”

황상은 그런 듯 아닌 듯 고개만 끄덕였다.

“소육에겐 뭐라고 했더냐? 몇백 명?”

영원은 엎드려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건…… 그 뭐냐. 연향루, 아라 앞이라, 신이 허풍을 좀 떨었습니다. 몇 명이라고 했지, 몇백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신이 매우 대단하다고, 한칼에 하나씩, 한칼에 하나씩 벴다고.”

황상은 잡히는 대로 상주서를 영원 머리 위로 내던지며 굳은 얼굴로 호통쳤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이렇게 큰일을 감히 짐에게 감춰? 한칼에 하나, 흥! 정말로 한칼에 하나씩 죽였더구나! 통쾌하게 사람을 죽였으니 돌아와서 끽소리하지 않은 것이지? 경성과 고작 백 리 떨어진 곳에 무슨 좀도둑이 그렇게 많겠느냐! 그런 생각을 했어야지! 이 어리석은 것!”

영원은 엎드려서 끽소리도 내지 못했다. 황상이 주육에게 물었나? 아니면 묵 승상을 통해 알게 되었나? 아니면 연향루에 끄나풀이? 황상이 언제 알았을까?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조사했나? 얼마나 조사해서 알아냈을까?

영원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서늘해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고 있었다.

“짐을 생각해 줄 줄도 알다니, 그런 효심이 있으면서 한칼에 하나씩 죽일 때는 짐에게 골치를 보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냐?”

황상은 다시 상주서를 영원을 향해 집어 던졌다.

“황상, 그땐 비도 너무 많이 오고 날도 어두워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영원은 어떻게 말이 샌 건지 생각하던 걸 접고 일단 황상이 하는 말을 따라 얼렁뚱땅 잘못을 인정했다.

“흥! 정신이 없긴 하지! 사흘돌이로 골치를 보태는구나!”

황상은 화가 좀 풀린 듯했다.

“잘 들어라. 오가아를 잘 돌봐라. 허튼짓하지 말고. 나가 보아라.”

영원은 서둘러 물러났다. 자극전 밖으로 나가서 찬 바람을 좀 맞다가 궁에서 나가 일단 시위방으로 향했다. 우선 거기에 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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