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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300화 (300/463)

300화: 영리한 생각

“어머니, 방법을 생각하셔야 해요. 다섯째를 궁에 보내면 안 돼요.”

탕 삼내내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와 어머니, 둘 중 아무도 결정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오저아는 좋은 운을 타고났다. 알겠다. 마음 놓아라.”

경성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일을 겪게 된 상 대내내는 말도 못 할 정도로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예부상서 해유덕의 저택.

해유덕 부인 손씨가 상방에 들어가자마자, 해유덕 부부가 가장 아끼는 손녀 해 이낭자가 상방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해 이낭자가 맑은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초봄의 햇살처럼 밝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섰다. 온 방이 밝아지는 듯했다.

“피곤하셨죠? 대추탕을 고았어요. 제가 대추를 한 알 한 알 골라서 껍질을 벗겼거든요. 해가 밝기 전부터 지금까지 곤 거예요. 할머니, 드셔 보세요.”

“그래, 그래.”

가장 예뻐하는 손녀의 모습에 손 부인은 눈이 휘어라 웃었다.

“이저아, 이렇게 효성이 지극할까. 할미가 맛보마. 음, 역시 맛있구나.”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대추는 몸에도 좋아요. 새벽에 일어나서 입궁하셨으니까 대추로 보신하면 딱 좋아요. 의서에 있답니다.”

해 이낭자는 몸을 틀고 화항 가장자리에 앉아서 방실방실 웃으며 이야기했다.

“할머니, 궁에서 별일 없으셨죠?”

“큰일은 아니다만,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니란다.”

손 부인은 탕을 마신 후 다른 사람은 모두 물리고 대시녀 둘만 남긴 채 화항에 비스듬히 누워 손녀와 한담을 나눴다.

“양빈 마마가 비로 올라간단다. 며칠 안에 성지가 내려올 것이다.”

해 이낭자가 놀란 듯 고함쳤다.

“어머나! 영 황후마마가 정말로 어질고 대범하시네요. 양빈 마마가 빈으로 올라간 것도 진왕야를 낳아서 태후마마가 의지를 내려 올려주신 거잖아요. 귀비 마마가 세상을 뜨자마자 비가 되다니. 황후마마께서 그야말로 귀비 마마의 체면을 깎으시는 거네요.”

“그런 것까지는 아니다. 아마도 규수를 고르기 위한 포석이겠지.”

손 부인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낭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규수를 골라요? 황상에게요?”

“황상 말고 누구겠느냐? 당연히 황상이지.”

손 부인이 손녀를 토닥였다.

“양빈 마마의 자리부터 올려주고 규수를 고르다니, 황후마마는 현명한 분이란다.”

“음. 할머니, 그럼 어느 댁 규수가 뽑힐까요?”

이낭자는 그쪽이 더 흥미로운 듯했다.

“황후마마가 고르나요, 아니면 황상께서 친히 고르나요?”

“법도대로라면 마마께서 먼저 고르고 그중에 황상께서 고른단다. 생각해 보면 규수를 선발하지 않은 것도 벌써 십수 년이 되었구나. 황후마마는 현명한 분이니 양빈 마마와 함께 고를지도 모르겠다. 황후마마 관문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게다. 가문이 적당하고 규수가 적당하면 아마 다 통과할 것이야. 황상 관문이 문제지. 어느 댁 규수가 황상의 눈에 들는지.”

손 부인은 손녀와 한담을 자주 나눴고, 해 이낭자는 영리하고 말주변이 좋았다.

“이렇게 급하게 고르는 거라서 지방의 규수들은 경성으로 들어올 시간이 없겠어요. 경성 가문의 규수 중에서 고르게 되겠네요. 경성에 적당한 규수들이 누가 있을까요?”

이낭자는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분명 주가부터 고르겠죠? 주가엔 기껏해야 팔낭자 하나인데, 팔낭자는 생각이 짧죠. 하지만…….”

이낭자가 입을 비죽였다.

“주 귀비도 영리한 분은 아니었어요. 팔낭자가 귀비 마마를 닮았네요. 그렇죠, 할머니?”

“음, 이런 일은 모를 일이다.”

손 부인은 주 귀비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정말로 모를 일이었다.

“일단 팔낭자, 그리고 묵 승상댁도 있어요. 묵 육낭자는 장방 적녀죠. 생긴 것도 예쁘고. 온순하고 재능도 있어요. 조금 고지식하지만, 음…… 그래도 승상댁 규수니까 육낭자도 포함될 거예요.”

해 이낭자는 흥미진진하게 계속 셈했고 손 부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 승상 댁은…… 계 천관 댁엔 어린 낭자가 없네요. 하지만 계가는 대가족이니까 적당한 낭자를 고를 수 있을 거예요. 분명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 계가에서 규수를 골라 궁으로 보낼까요?”

해 이낭자의 물음에 손 부인은 잠시 생각했다.

“할미 생각엔 그러지 않을 것 같구나. 백 노부인의 말을 들어보면 사람을 골라 보낼 것 같지 않았다.”

“음, 그럼 계가는 됐고. 정북후부엔 영 칠야 말고 경성엔 아무도 없으니 여기도 빼고. 안원후 소가는요? 후부엔 적당한 규수가 없지만 소씨 일가에 적당한 규수를 고르면 몇 명은 있을 거예요. 제 생각에 소가는 분명 후보를 넣을 것 같아요. 할머니 생각엔요?”

손 부인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녀는 꽤 안목이 좋았다.

“그리고 고 사사 저택, 그 댁엔 적당한 규수가 없어요. 일족은 다 산서에 있으니 이 댁도 빼고. 나머지는, 상서 댁 몇 곳인데, 거기도 적당한 규수가 없네요. 영안백부? 조 육낭자는 매우 교만하지만, 또 모를 일이니까 조 육낭자도 쳐야겠어요.”

“영안백부 화 대내내는 수국공부 화 부인의 당질녀다. 고려해도 된다.”

손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조 시랑부 구낭자도 괜찮아요. 가문이 좀 별로긴 해도요.”

해 이낭자는 계속해서 꼽았고, 온 경성 가문을 죄다 훑고 나자 손 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얘도 참. 경성에 모르는 가문이 없구나.”

이낭자는 뿌듯한 듯 턱을 치켜들었다.

“물론이죠.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인정에 통달한 것도 재산이라고요. 할머니도 그러셨잖아요. 사람 마음을 끌어모으면 복 받는 통로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요 영리한 것!”

손 부인이 손녀의 뺨을 꼬집으며 예뻐 죽겠다는 듯 웃었다.

“다 할머니의 가르침 덕이죠!”

이낭자는 손 부인을 끌어안고 어깨에 뺨을 비볐다. 그렇게 한참 더 손 부인과 함께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다가 상방에서 물러났다.

손 부인의 상방에서 물러난 이낭자는 걸어가면서 다시 세세히 곱씹었다. 잠시 후 결정을 내리고는 대시녀 감초를 손짓해서 불렀다.

“우리 창고에 있는 십 년 묵은 백차를 가지고 오렴. 가서…….”

이낭자가 손을 꼽아 보았다.

“차병으로 일곱 개 가지고 와. 잘 포장해서 내게 가지고 오렴. 어서 가.”

감초가 명령을 받고 물러간 후, 이낭자는 거처로 돌아가서 향을 입힌 향 종이를 꺼냈다. 먹을 갈라고 분부하고 자리에 앉아 직접 서신을 써서 넣고 봉했다. 감초가 차병을 가지고 돌아오자 상자에 서신과 차병을 담고 손님 접대하고 선물을 보내는 어멈을 불러 수국공부 팔낭자를 비롯한 낭자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그녀가 아까 손 부인과 셈해본, 입궁할 가능성이 큰 낭자들이었다. 평소에 친분이 두텁지만, 지금은 더 깊은 친분을 맺어두어야 했다. 정해진 다음, 혹은 입궁한 다음에 교류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어찌 됐든 지금부터 잘 지내면 오래 사귀어 온 막역지우인 셈이 되니까.

이른 아침, 안원후부 묵 부인은 묵 승상부 중문에서 마차에서 내려 허둥지둥 전 노부인을 만나러 갔다.

전 노부인이 손녀 묵 육낭자와 집안일을 의논하는데 묵 부인이 들어가 예를 갖추자마자 묵 육낭자와 시녀, 어멈을 물렸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육저아, 좀 거닐다가 오렴.”

전 노부인이 모두를 물리자 묵 부인이 화항 자락에 앉아 울상을 지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나서 주셔야겠어요! 정말이지!”

“또 무슨 일이냐.”

전 노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궁에서 사람을 고르는 일 때문이지 뭐겠어요.”

묵 부인이 바짝 다가갔다.

“어떻게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졌을까요? 어제 날이 다 저물었는데, 삼방 이내내가 사낭자를 데리고 절 찾아왔어요. 얼마나 사낭자 칭찬을 해대는지. 이내내가 돌아가기도 전에 이방 대내내가 또 찾아왔지 뭐예요. 어젯밤에 앞뒤로 네댓 무리가 찾아왔어요. 저아들을 궁에 보내겠다고요. 어머니, 다들 미친 거 아닐까요?”

묵 부인의 얼굴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전 노부인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가의 가풍은 노 안원후 손에 다 망가졌다. 십 년, 이십 년 동안 그녀와 승상야가 힘을 다해 버티면서 후부의 가풍이 조금 좋아지긴 했는데, 소씨 일족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휴!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곧바로 바닥이 드러나는구나!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전 노부인은 딸 생각부터 물었다.

“이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요. 예전 고내내 일을 보면 모르나요. 그때는 노후야도 계시고 소가가 떵떵거리던 시절이었다고요! 하나같이 무슨 생각인지. 딸아이를 궁으로 보내기만 하면 두 번째 귀비 마마가 나올 줄 아는가 봐요. 정말 미쳤지!”

묵 부인은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럼 후야 생각은?”

전 노부인은 이번엔 사위인 소 후야의 생각을 물었다.

“우물쭈물해요. 무슨 생각인지는 알지요. 되는대로 찔러볼 생각인 거예요. 어차피 나쁠 건 없으니까요. 전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소가가 위풍당당하던 때만 생각하고, 능력도 없고 배포도 없고, 꼼수만 있죠.”

묵 부인은 정말로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

“자람과는 상의했고?”

전 노부인이 다시 물었다.

“어머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후야에게 물어보는 건 몰라도 자람은 왜요. 아직 어린데 무슨 상의를 한다고요. 뭘 알아서요.”

묵 부인은 조금 성질이 급해졌다. 이 일로 너무 화가 나서였다.

“자람이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지. 후야는 가문을 지탱할 사람이 못 된다. 나와 네 부친은 이제 늙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너희 오누이를 보살피겠느냐. 자람이 제 아비보단 낫다고 네 부친이 자주 말씀하셨다. 어리지 않다. 작년에 임무도 맡지 않았느냐. 이런 일은 그 아이와 상의해야지. 제 아비, 혹은 네 아우에게 상의하고 가르침 받으라고 자람을 가르쳐라. 큰일을 겪어 보면 자람도 성장할 것이다. 앞으로 너희 가문도 지탱할 사람이 있어야지.”

“어머니 말씀이 옳아요.”

묵 부인은 얼떨떨해하다가 깨닫고는 얼른 일어서서 모친을 향해 예를 갖췄다.

“지금 바로 가서 자람과 상의할게요.”

성격이 불같은 묵 부인은 온다면 오고 간다면 간다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다가 금세 다시 발을 돌려서 몇 걸음 만에 화항 앞으로 다가와서 진지한 표정으로 전 노부인을 바라봤다.

“어머니, 아까 하신 말씀, 다시는 하지 마세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제 일생을 지켜주셔야 해요. 어머니도 만수무강하셔야 하고 아버지도 만수무강하셔야 해요!”

“알았다.”

전 부인은 마음이 포근해져서 웃으며 손을 저었다.

“어서 가거라. 잘 상의해서 좋은 수를 내고. 양빈 마마를 비로 올리는 문제는 아마 오늘 조정에서 결론이 날 것이다. 연회도 며칠 안에 치를 것이야. 어서 가라. 너희 가문, 명심해라, 모질어야 할 때는 모질어야 한다.”

“그건 저도 알아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갈게요.”

묵 부인은 전 노부인에게 인사하고 허둥지둥 아들과 상의하러 돌아갔다.

영안백부, 영안백 노부인 민(閔)씨는 눈 밑이 거뭇해서는, 며느리 화 부인을 맞으면서 몸을 살짝 숙였다.

“어서 들어와 앉아라. 춥다.”

화 부인은 예를 갖추고 화항 자락에 앉았다.

“노부인, 어제 잘 못 주무셨어요?”

“잘 못 잔 정도가 아니라 밤새 잠을 못 잤다.”

민 노부인이 눈가를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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