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그 적모
올해 상원절은 어쨌든 예년과는 비교할 수 없어서, 늦은 밤이 되기 전에 거리에 사람이 줄어들더니 갈수록 썰렁해졌다.
수녕백부, 강완과 강녕은 언짢은 얼굴로 저택으로 돌아왔다. 측문으로 들어가서 지친 얼굴로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때리며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이제 떠들썩해질 시기인데! 귀비 마마도 참, 섣달을 골라서 죽다니!”
강녕은 돌아오는 내내 그 소리를 했다. 강완도 미련 가득 남은 얼굴로 문밖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오늘 입은 옷은 작년에 이동의 혼수에서 얻은 것이었다. 은청색 바탕에 은청색 실로 수 놓은 치마에 은백색 직금 비단 여우 두봉, 그리고 주렁주렁 단 적금 머리 장식까지. 오늘이 오길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오늘은 밤새워 놀기로 진작 계획해 두었었다. 날이 밝자마자 성 밖으로 나들이 가서 상원절인 오늘을 위해 준비한 이 아름답기 짝이 없는 의복을 모두에게 선보이기로 작정했었는데, 하필 주 귀비가 이런 때 죽을 줄이야.
정말 흥을 잘도 깨는구나!
“가자, 내년도 있잖아.”
강완이 일어서서 강녕을 위로하는 동시에 자기도 위로했다.
두 사람이 막 일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여세요! 가족 사당을 지키는 왕 어멈입니다! 어서 문 여세요! 큰일 났어요!”
강완은 다급하게 사람을 불렀고 강녕은 큰일이라는 말에 두 눈을 빛내며 후다닥 빗장을 열었다.
큰일이 제일 좋지! 구경거리도 있고 얻는 게 생길 수도 있고!
가족 사당의 왕 어멈이 대뜸 머리부터 밀고 들어왔다.
“두 분 낭자셨군요. 세자는 어디 계세요? 큰일 났습니다. 묵란 낭자가 사라졌습니다.”
“묵란?”
강녕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고 강완은 화들짝 놀랐다.
“뭐? 그럼 아이는? 대가아는?”
“대가아는 있어요. 묵란 낭자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당에 돌아갔더니 아기가 목이 다 쉬어라 울고 있었어요. 어서 대야를 만나야 합니다. 아이고 세상에. 멀쩡히 묵란 낭자가 어디로 갔을까요? 안팎으로 다 찾아도 없습니다. 정말이지…….”
왕 어멈은 강완, 강녕을 따라 다급하게 바깥 서재로 향했다.
곡 대내내가 곡란원을 차지한 이래 강환장은 바깥 서재에 묵었다.
벌써 잠자리에 들었던 강환장은 강완이 고래고래 독산을 깨울 때 눈을 떴다. 독산이 문을 열자 왕 어멈이 후다닥 달려 들어왔다.
“대야, 큰일 났습니다. 묵란 낭자가 사라졌어요. 안팎으로 샅샅이 찾아도 없습니다!”
“등 구경 간 건 아니고?”
강환장의 첫 반응이었다.
“아닙니다. 아이고, 나리. 등 구경은요. 묵란은 아직 몸 추스르는 중입니다. 이 추운 날에 등 구경 갔다가 목숨을 내놓을 일 있습니까. 게다가 하루에 몇 번이나 젖을 먹여야 하는데 자리를 비울 틈이 어디 있습니까. 세자, 저택에서 묵란 낭자에게 보낸 옷이랑 은자랑, 평소에 묵란 낭자의 베개 아래 있었는데 그것도 사라졌습니다. 아이는 단단히 싸두었고요. 아이고, 세자. 묵란 낭자가 아무래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왕 어멈은 눈물을 훔쳤다. 수절하며 혼자 사는데 반년 동안 묵란과 밤낮을 같이 보내면서 꽤 정이 들었다.
“아이는?”
묵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거란 말에 강환장은 안도하며 얼른 물었다.
“낭자 방에 있습니다. 묵란 낭자를 찾아야 해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어요. 추워서 병이 들면 어쩝니까. 세자, 얼른 묵란 낭자를 좀 찾아보세요. 아이가 배를 곯고 있어요. 어찌나 우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왕 어멈은 묵란이 평소에 했던 말을 생각하자 마음이 욱신거렸다. 아무래도 돌아오지 않을 듯했다.
강환장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묵란이 몸을 풀고 나면 제대로 심문해서 대체 누구 아이인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래도 만월이 되기 전에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다니, 똑똑한 짓을 했군!
사람을 보내 찾으면 소동이 난다. 몇 달 동안 집안이 겨우 조용해졌는데 이런 때 또 소란이 일면…….
설사 그 물건을 찾아와서 누구 아이인지 알아낸들, 돌려보내든 아니든, 웃음거리가 된다. 지금 수녕백부엔 아무런 일이 없어야 한다.
떠나도 상관없다. 아이는 데리고 오면 되고. 한 달 남짓한 아이가 살지 죽을지 어찌 아나.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음, 더 좋고.
“독산 있느냐? 네가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라.”
결정을 내린 강환장은 독산에게 분부했다.
“그럼 묵란은요? 나리, 얼른 사람을 보내 찾아야 합니다. 몸도 다 추스르지 않았는데. 요 몇 달 동안 잘 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왕 어멈은 다급해졌다.
“경성이 얼마나 넓은데, 바다에서 바늘 찾기다. 어른이 무슨 일이 있겠나. 돌아올 생각이 있으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독산을 데리고 가서 아이를 데려와라.”
강환장은 몇 마디로 왕 어멈을 돌려보냈다.
상황을 파악한 강완과 강녕은 살금살금 나가서 진 부인 정원으로 달려갔다. 이 큰일을 어서 보고해야지!
아이가 배를 곯고 울어서 목이 다 쉬었다는 말에 진 부인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강가의 장손이다, 장손! 묵란 이년, 정말 못 쓰겠구나. 이런 어미가 어디 있나.
“네가 가서 아이를 여기로 데리고 와라.”
진 부인이 봉운에게 명령했다.
“대가아도 그렇지. 어떻게 독산을 보내나. 독산 같은 어리벙벙한 놈이 아이를 어찌 돌본다고. 혹시 다치면 어쩌려고. 봉운은? 중문에 마중 가 보아라. 아이가 분명 배를 곯았을 것이다. 유모를 불러서 아이가 도착하면 바로 젖을 먹이게 준비해라. 불쌍한 내 손자…….”
진 부인은 흥분해서 주절주절 끝이 없었다. 아직 얼굴도 보기 전이나 큰 손자는 곧 이 노부인의 목숨 줄이 될 듯했다.
봉운은 명령을 받고도 곡란원에 유모를 부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모를 부르지 않으면 아이 젖은 누가 먹이나. 그녀는 정원에서 나와 주저하고 또 주저했다. 가지 않을 수는 없어서 용기를 내서 곡란원 앞으로 갔다. 굳게 닫힌 곡란원 대문을 바라보며 또 한참 주저하며 용기를 겨우 내서 문을 두드렸다.
막 문을 두드리는데 안에서 문이 열리고 어멈이 고개를 내밀었다. 봉운인 걸 본 어멈이 생글생글 웃었다.
“어머나, 봉운 낭자였네요. 우리 대내내를 만나러 왔나요?”
“대내내, 아직 주무시지 않아요?”
봉운이 놀란 듯이 물었다. 곧 동이 틀 때인데.
“주무셨지요. 아까 대야가 사람을 보내서 깨셨어요.”
어차피 말 전하러 온 사람이 돌아가야 문 닫고 쉬는 어멈은 느긋하게 봉운과 이야기를 나눴다.
“묵란 아이 일로?”
“묵란 아이요? 묵란 아이가 왜요?”
문지기 어멈은 호사가의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아니에요. 저택으로 데리고 와서 키운대요. 부인이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시고 유모도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봉운은 곧바로 대답했다. 대답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럼 묵란 낭자는요? 같이 저택으로 돌아옵니까? 그럼 우리 대야는 이낭이 넷? 이낭 넷에 아들이 셋이라. 정말 시끌벅적하겠네요.”
문지기 어멈은 연신 아이고 소리를 냈다. 잘 되었다. 한동안 재미있는 일이 없었는데.
봉운은 어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수화문 안을 바라보며 말 전하러 온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세자야가 사람을 보냈으면 분명 대소야 일일 것이다.
잠시 후에 한 어멈이 수화문 안에서 나오자 봉운이 재빨리 다가갔다.
“대소야 일이에요? 뭐라고 하세요?”
“뭐라고 하긴 뭐라고 하겠어요. 대내내더러 대소야를 잘 돌보라고 하셨어요.”
새벽에 불려 나와 말을 전하러 온 어멈은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부인께서 대소야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는데.”
봉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낭자, 그런 말을 내게 하면 뭔 소용이랍니까?”
어멈은 봉운의 말을 막고는 휘적휘적 사라졌다. 봉운이 멍하니 주저하자 문지기 어멈이 하품하며 재촉했다.
“봉운 낭자 별일 없으면 이제 문 닫아야 해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 청소해야 하는걸요.”
“일단 부인께 보고하고요.”
봉운은 잠시 주저하다가 부인께 보고하기로 했다. 부인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보자.
아들이 큰 손자를 곡 대내내에게 맡겼다는 말을 들은 진 부인은 불평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금세 내려놓았다.
“그래, 너희 세자야가 잘 결정했다. 대갓집 법도가 그렇지. 아이는 적모가 곁에 두고 가르쳐야 한다. 너희 대내내가 아무리……. 너희 세자야의 결정이 옳다. 적모 곁에서 자란다니, 너희 대소야의 복이지. 묵란 이년, 참 모질지. 어떻게 아이를 버리고 달아날 수가 있느냐. 제가 낳은 새끼를!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모질 수가 있지. 너희 세자야가…….”
진 부인은 주절주절, 몇 번이고 쳇바퀴 돌 듯 반복하다가 드디어 피곤하다고 잠자리에 들었다.
곡란원, 곡 대내내는 얼굴을 잔뜩 구기고 침상에 누워있었다. 잡것을 나더러 키우라니. 흥. 키우라면 키우지……. 잘되었다!
“너!”
곡 대내내는 바닥에 웅크리고서 눈 붙일 엄두도 못 내는 춘연에게 베개를 집어 던졌다.
“목말라. 유모의 젖을 다 짜서 가지고 와. 설화 빙당을 좀 넣고 끓여서 가지고 와.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 짜와! 어서!”
춘연은 베개부터 주워서 곡 대내내 곁에 놓아주고 남청색 솜옷을 걸치고 유모 둘을 깨우러 후조방으로 향했다.
어멈이 묵란이 낳은 강환장의 장자를 안고 들어왔을 때, 곡 대내내는 빙당 넣은 젖을 느긋하게 마신 뒤였다. 곡 대내내는 춘연이 안고 오는 아이를 싸늘하게 바라봤다.
“가까이 와 봐. 잡것 얼굴 좀 보자.”
춘연이 아이를 곡 대내내 곁에 데리고 가자 곡 대내내는 뽀얗고 토실토실한 갓난아이를 싸늘하게 노려봤다. 손톱을 길게 기른 손가락으로 아이의 연약한 뺨에 대는 걸 본 춘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톱으로 쿡 찔러서 아이 얼굴에 손톱자국을 낼까 봐 걱정이었다.
“좀 보렴. 세자야를 조금이라도 닮았니? 누구 씨인지 모를 잡것이야! 그리고 후원에 있는 저 둘도. 셋 다 잡것이야!”
곡 대내내는 이를 갈듯 잇새로 그 말만 내뱉었다. 춘연은 울다 지치고 배도 곯아서 자는 듯 마는 듯 기운 없는 갓난아이를 안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고씨에게 데려다줘. 젖을 배불리 먹이라고 해. 앞으로 둘이서 번갈아 가며 젖을 먹이라고 해. 하루에 족발 하나 뚝딱이잖아. 낭비하면 안 되지.”
곡 대내내는 손가락을 거두고 느긋하게 분부했다.
춘연은 토 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이를 안고 고 이낭과 청서의 거처로 향했다.
뜨락 문을 나가자 찬 바람이 휘잉 불었다. 춘연은 처량하고 서글퍼졌다. 목 놓아 통곡하고 싶었다. 뭐에 홀려서 그때 떠나지 않고 남았을까. 죽느니만 못한 이 생활이 언제 끝날까.
사람은 죽었을 때 자기가 이미 죽은 걸 모른다고 한다. 오칠일이 되어서야 자기가 죽었음을 깨닫는다고.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바로 이날에 마지막으로 돌아와서 생전의 집과 가족을 둘러본다고 한다.
주 귀비의 오칠일도 문덕전에서 열렸다.
조 노부인은 딸이 이날 자기가 죽었음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보고 윤회의 세상에 발을 내디딜 것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다. 그녀는 울고불고, 몇 번이고 혼절했다.
점심에 오칠례가 끝나자 영 황후가 몸소 다가가 조 노부인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태자비 정씨는 영 황후를 살피면서 백 노부인과 전 노부인 중에서 갈등하다가 전 노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 노부인은 한사코 사양했다.
내시가 의자를 옮겨오자 영 황후는 백 노부인, 고서강 부인 유씨, 그리고 참석하러 온 여러 노부인, 부인에게 앉으라고 명했다. 시녀들이 차와 간식을 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