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자기 아이가 아니야?
“숙조부, 정말로 제 아이가 아닙니다.”
강환장은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이고. 너도 참. 고씨가 그렇게 좋으냐? 전에 네가 고씨 때문에 무슨 일까지 했는지 들었다. 휴, 됐다. 됐어. 이야기하지 말자. 난 너를 제일 아낀다. 환장아, 고씨가 그렇게 무서워서 아이를 저택에 데리고 가지 못하겠거든, 알았다. 내가 데리고 오마. 네 숙모더러 키우라고 하마. 우리 강가 자손이다. 환장아, 그러면 안 된다.”
강환장은 귀가 윙윙 울렸다. 하지만, 정말로 제 아들이 아닙니다!
“숙조부, 강가 자손이 아닙니다. 남의 씨입니다!”
강환장은 다시 열심히, 숙조부를 설득하려 애썼다.
정말로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강가 자손이 아니라고!
“아이고! 너도 어리지 않거늘! 언제까지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것이냐! 나도 젊을 때 어리석은 짓을 했지만 너처럼은 아니었다! 어찌 이리 어리석어! 나는 네 나이 때…….”
“숙조부,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강환장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일어서서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저런 저런. 어찌 저리 어리석어. 뭐가 씌었구나.”
숙조부는 강환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슬슬 화가 났다.
숙조부 집에서 나온 강환장은 대문 앞에 서서 흐릿한 별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참 서 있다가 터덜터덜 수녕백부로 돌아갔다.
숙조부가 한 말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다들 그가 고씨가 화를 낼까 봐 두려워서 아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한다.
고씨를 편애하는 건 맞다. 하지만 고씨를 두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씨는 성격이 유순하다……. 고씨를 떠올린 강환장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째서 이번 생의 고씨는 지난 생의 고씨와 딴판일까? 예전의 고씨는 식견이 탁월하고 재능이 출중하며 만사 명백히 간파했다. 지금 같은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어째서 이번 생과 지난 생의 그녀가 확연히 달라졌을까.
무엇을 빠뜨렸을까? 잘 생각해 봐야만 했다. 고씨가 어째서 지난 생과 확연히 다른지를 깨닫게 되면 왜 이번 생이 지난 생과 확연히 다른 것인지도 깨달을지도 모른다.
주 귀비의 영구를 한 달 동안 지킨 경성의 고관과 명부들은 관을 대상국사에 잠시 의탁한 후에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되었다.
영원은 정북부후로 돌아가 시원하게 목욕하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찻잔을 들고 편안하게 차를 마시려고 하는데 최신이 뵙길 청한다고 대영이 밖에서 기별했다.
영원이 어서 들어오라고 명하자 최신은 안으로 들어가 예를 갖춘 후 품에서 종이를 꺼내 양손으로 바쳤다.
“칠야, 이것 좀 보십시오.”
영원이 받아서 뒤적여봤더니 진맥 기록과 처방이었다.
“주씨 것인가?”
“예.”
최신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칠야 말씀이 맞았습니다. 보십시오. 주 귀비는 죽을 때 안면이 푸르죽죽하고 피를 흘렸답니다. 입술에 잇자국이 있는 것, 이 모든 것은 학정홍에 중독된 증상입니다. 그런데 다음 장을 보십시오. 주 귀비는 처음에 배가 아프다고 했답니다. 사지에 힘이 빠지고 토사곽란을 일으켰답니다. 태의가 녹두와 금은화, 감초수로 해독했고요. 이건 단장초(斷腸草)의 증상입니다. 그리고 여기, 보세요. 여기 적힌 말, 뼈가 있는 말입니다. 그 당시 현장에 있던 태의라면 주 귀비가 두 가지 독에 중독된 걸 다 알 겁니다. 대왕야가 털어놓은 학정홍 말고 단장초도 있는 것을요.”
“역시 그랬군.”
영원은 흡족한 듯 손에 든 종이를 바라봤다.
“태의원은 당분간 건드리지 마라. 태의원을 건드리면 넷째가 눈치챌 것이다. 그 당시에 있었던 태의를 감시하고 잘 지켜. 나중에 다 증인이 될 사람이다. 넷째가 단장초를 쓴 것이겠지. 넷째가 어디서 단장초를 구했는지 알아내. 일단 그것부터 조사하고 이야기하지. 명심해. 증거를 찾아야 한다. 증인, 물증 다 있으면 제일 좋고.”
“칠야, 쉽지 않을 겁니다.”
최신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음. 나도 안다. 내가 하려는 일은 원래 쉬운 일이 아니지.”
영원이 종이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소인, 물러가겠습니다.”
최신이 물러가자 영원이 대영을 불러들여 물었다.
“이 낭자는 경성으로 옮겨 왔나?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말해 봐.”
“예, 아룁니다. 칠야가 궁으로 들어가고 이튿날, 이 낭자 일가가 경성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 동안은 별 큰일은 없었습니다. 연말연시에 수녕백부에 아들 셋이 늘었습니다. 장자는 섣달 스무사흘 날 태어났습니다. 고 이낭의 시녀 묵란의 아이입니다. 다만.”
대영이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었다.
“강환장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합니다.”
“자기 아이가 아니야?”
영원은 멈칫하다가 곧 탁자를 내리치며 껄껄 웃었다.
“계속해 봐!”
“예. 그날 희소식을 듣고 강환장은 강가에서 가장 항렬이 높은 숙조부 댁에 찾아갔습니다. 소인이 연줄 닿는 사람을 찾아 그분과 술을 마셨는데, 강환장이 찾아와서 묵란이 낳은 아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더랍니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요. 다른 사람 씨라고요.”
“알았어, 알았어. 계속해.”
영원은 매우 즐거워했다.
“예. 정월 초이레, 고씨가 아들을 낳고 초아흐레, 청서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다 무사히 낳았습니다. 강가 사당에서 태어난 장자는 강환장이 먹을거리와 옷을 보냈답니다. 고씨와 청서의 아들 유모는 강환장이 직접 구해왔답니다. 곡 부인이 두 아이 유모를 들여주지 않으려고 해서랍니다. 곡 부인은 곡씨와 청서더러 직접 젖을 먹여 키우라고 했답니다. 자기 눈에 두 아이 모두 잡것이라고요.”
영원은 풉 웃다가 차를 다 뿜었다.
“강환장이 구한 두 유모는 지금껏 아이 젖을 한 번도 먹이지 않았답니다. 두 유모 모두 곡 부인이 불러갔고 짠 젖도 다 곡 부인이 마셨답니다.”
대영은 매우 담담하게 강가의 소문을 이야기했다.
“강환장은 유모의 젖을 곡 부인이 마신 것을 아마 모를 겁니다.”
“그럼 두 아이는?”
영원은 문 이야의 안목에 다시 감탄했다.
“청서는 아이를 낳자마자 젖이 돌아서 아이에게 먹일 젖이 충분하답니다. 고씨는 첫날 젖이 나오지 않아 다음 날 종일 울다가 주방에 열 푼을 주고 으름덩굴을 달여 마신 다음 젖이 조금 돌았답니다. 지금은 매일 족발과 으름덩굴을 달여서 먹어서 아이 먹일 만큼은 젖이 나온답니다.”
“이렇게 큰일을 강환장이 모른다고?”
“진 부인이 몸 푼 여인을 사내가 보면 안 좋다고 못 만나게 한답니다. 아이만 데리고 나와서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 같습니다. 강환장은 연말연시에 거의 매일 대상국사에 갔습니다. 한 번 가면 반 나절 머물렀고요. 초이틀엔 대상국사에 가지 않고 아침 일찍부터 양 구야 집 앞에 서서 두 사람이 출타하는 걸 보다가 또 오가까지 따라가서 앞에서 지켜보다가 돌아왔습니다. 다른 건 별것 없습니다.”
영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상국사는 몰라도 양 구야 집은 왜 지켜보는 걸까?
사람을 시켜 양 구야를 지켜볼까?
됐다.
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인원이 부족했다. 태자가 독을 썼다는 증거를 조사하고 손에 넣으려면 시간과 일손 모두 든다. 누님이 쓸 사람도 남겨 둬야 하고.
됐다. 일단 내버려 두자.
“이가는 경성에 옮겨 왔으니 더 지켜볼 것 없다.”
일손을 생각하던 영원은 이가를 떠올렸다. 이가도 그만 지켜보는 게 좋을 듯했다. 악의는 없지만 장공주가 달리 생각하거나 이 일로 거리를 만들까 걱정이었다.
누님이 궁으로 돌아왔으니 기반을 잡아서 소오와 누님을 지켜야 한다. 궁을 어느 정도 장악하려면 복안 장공주와 크고 작은 충돌은 불가피한데, 이런 때에 문제를 보탤 것 없으리라.
이가와 이동을 떠올린 영원은 무심결에 창밖의 밝은 햇살을 바라봤다. 그녀가 경성으로 들어왔으니 만나서 이야기하기 편해졌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다.
“칠야, 주 육소야가 오셨습니다. 칠야가 계시는지 묻습니다.”
사환 대웅이 목소리 높여 고했다. 영원은 얼떨떨해졌다. 이제 막 돌아와서 면도하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주육이 찾아오다니. 주육도 영구를 모시고 막 돌아왔는데 빠르기도 하지. 무슨 일이 그렇게 급해서.
“바깥 서재로 모셔라. 바로 간다고 해.”
영원이 분부했다.
주육도 깔끔하게 단장했지만, 초췌한 것이 기가 쪽 빠진 듯이 버석거렸다. 팔걸이의자에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다가 영원이 들어가자 팔걸이를 붙잡고 일어서려는데 일어나지 못했다.
“형님, 드디어 얼굴을 보는군.”
“드디어 얼굴을 보긴 무슨. 한 달 내내 매일 봐 놓고.”
영원이 주육의 어깨를 내리치며 의자에 다시 앉혔다.
“대영 있느냐? 육소야에게 안신탕 한 그릇 내어드려라.”
“그게 얼굴을 본 거요? 얼마나 멀었는데. 산 넘고 물 건넌 것처럼 멀었지.”
주육은 의자에 더 힘없이 널브러졌다. 영원은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산 넘고 물 건너라! 참으로 좋은 말이군.
한데, 우리 둘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쓰나.
“꼴 좀 보라지. 가자. 나가서 좀 돌자. 어디에 가고 싶으냐? 내가 한턱내마.”
영원은 주육이 자신의 정북후부에 오래 있는 게 싫었다. 그는 몇 마디 하고는 나가서 놀자고 주육을 일으켰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 그냥 형님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야. 형님, 나 여기가 괴롭소.”
주육이 가슴을 문질렀다. 마음이 까닭 없이 답답했다.
영원은 주 귀비의 죽음을 떠올렸다.
“괴로워? 그렇겠지.
그럼 풀어야지. 술 마시며 즐겨보자. 연향루로 가자. 류만과 운수를 불러와서 춤추고 노래하라고 하고, 아라의 손을 붙잡고 거나하게 취하면 모든 괴로움이 사라질 거다.”
영원이 주육을 잡아끌었다. 주육은 그도 그렇다 싶어서 온몸에 힘을 풀고 기운 없이 영원 뒤를 따랐다. 정북후부에서 나가자마자 묵칠의 사환 야우가 대문 맞은편에 서서 목을 길게 빼고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라.”
영원이 지시하자 대영이 조르르 달려갔다가 금세 야우를 데리고 돌아왔다. 야우는 울상 지으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칠야, 드디어…… 드디어 나리를 뵙니다. 우리 칠소야가 나리를 뵈면, 혹시 시간이 되면 저희 저택에 한 번 들러서 저희 나리를 좀 불러내 줄 수 있는지 여쭤 보랍니다. 다른 건 만나서 직접 말씀드리겠답니다.”
“너희 이야가 또 소칠을 가뒀느냐?”
야우의 말을 듣자 주육은 훨씬 기운이 났다. 묵칠의 불운은 그의 행운이라 듣자마자 기운이 났다. 언제나 그랬다.
“이번엔 승상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달 가까이 갇혀 지내셨습니다.”
야우의 얼굴에 기쁜 기색은 사라지고 울상만 남았다. 칠소야가 한 달 동안 적잖게 들볶은 모양이었다.
“가 볼까?”
영원은 아까보다 훨씬 기운 나 보이는 주육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한 달 가까이 갇혀 지낸 건 처음이라고. 얼른 가 보자.”
주육은 얼른 대답하고 말을 몰고 앞장섰다. 야우는 몰래 빠져나왔는지 말을 타지 못해서 팔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쫓아갔다. 다행히 성안이라 사람이 많아서 말을 빠르게 달리지 못했고 야우의 두 다리로도 네 다리를 여유롭게 쫓아갔다.
묵 승상부, 전 노부인이 막 깔끔하게 소세하고 나와서 화항에 비스듬히 누워 가물가물 잠들려는데 어멈이 들어와서 영원과 주육이 칠소야를 찾아왔다고 고했다.
전 노부인은 눈을 뜨고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저었다.
“나가라고 해라.”
묵칠은 저택을 나가서 몇 걸음 걷다가 괴성을 질렀다.
드디어 거처를 벗어났다! 한 달 동안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
영원은 말을 타고 맨 뒤에 서서 묵칠과 주육을 번갈아 봤다.
음, 오늘 두 사람이 통쾌하게 즐기도록 술을 먹여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