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86화 (286/463)

286화: 좀도둑

“괜찮다. 좀도둑이란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영 황후는 소심과 오황자를 함께 등 뒤로 끌어당기면서 소심에게 분부했다.

“오가아를 잘 돌보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발로 마차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마마, 들어가세요!”

위봉낭이 마차 지붕에서 뛰어 내려와서 영 황후를 등진 채 그녀를 마차 안으로 돌려보내려고 팔꿈치로 밀었다. 영 황후는 위봉낭의 팔꿈치를 피해서 옆으로 나오면서 물었다.

“칼이 있느냐?”

위봉낭은 놀라서 ‘응?’ 소리를 내더니 칼을 휘두르며 곧장 달려드는 검은 옷의 팔을 베더니 한 손으로는 떨어지는 팔을 받아 영 황후에게 건네고, 동시에 몸을 돌려 단칼에 검은 옷의 목을 베었다.

칼을 쥔 팔을 건네받은 영 황후는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비틀어서 칼을 꺼내 쥐고 가늠해 보았다. 쓸 만했다.

소심은 오황자를 안고서 마차 안에서 밖을 내다봤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영 황후와 위봉낭은 나란히 서서 마차에 탄 소심과 오황자를 등진 채 칼을 휘두르며 사람을 죽였다.

“밖을 보지 마세요.”

소심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밖을 바라보는 오황자의 눈을 가렸다. 오황자가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보게 해줘. 무섭지 않아.”

소심은 잔뜩 긴장했을 뿐, 두려운 것 같진 않은 오황자를 내려다보다가 웃으며 토닥였다.

정말로 제대로 외탁했네. 영씨 가문 사람은 하나같이 제대로 걷기도 전에 칼을 들고 전장으로 달려 나갈 듯이 굴지.

영 황후가 칼 하나를 빼앗아서 그대로 소심에게 던졌다. 소심은 칼을 받은 다음 두봉을 털어 오황자를 감싸고는 칼을 쥔 채 오황자 앞에 무릎을 반쯤 꿇고 앉았다.

오황자는 꼼지락거리며 두봉 위로 목을 길게 빼고는 소심의 어깨 너머로 밖을 바라봤다.

마차 외벽에 칼이 부딪치는 거슬리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누님! 마차에 타세요!”

영원의 목소리엔 별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 황후는 뒷걸음질 쳐서 마차에 올라탔다. 위봉낭이 아주 빠르게 말에 올라서 채찍으로 말 궁둥이를 갈겼다. 마차가 덜컹거리면서 바닥 가득한 시체를 짓밟더니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영 황후는 온몸이 핏물과 빗물로 젖은 채 한 손으로 마차 문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 칼을 쥔 채 마차 문을 지켰다.

마차의 덜컹거림이 가라앉고 칼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며 멀어지자, 영 황후는 안도하며 칼을 발치에 내려놓고 목을 돌리며 풀어주었다. 십여 년 동안 칼을 잡지 않았더니 심하게 손이 설었다.

소심은 칼을 내려놓고 피와 진흙으로 더러워진 영 황후의 족의를 벗겼다. 영 황후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기를 바라보는 오황자를 돌아봤다.

“무섭니?”

오황자는 입술을 꾹 다물고 쉴 새 없이 고개를 저었다.

“다음엔…….”

영 황후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오가아는 영가 사람이 아니다. 이 아이는 임씨,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다!

“어머니, 무섭지 않아요. 난 어른이에요.”

오황자는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로 영 황후를 바라봤다.

“나도 안다.”

영 황후가 아들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있는 한, 영씨 가문이 있는 한, 반드시 아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활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마차는 침묵에 빠진 채 앞으로 달려갔다. 비가 차츰 잦아들고 길도 순탄해졌다. 경성이 가까워졌다.

밤길을 달리는 상단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마차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영원은 말에서 내려 휘장을 걷고 머리를 내밀었다.

“소오는 무탈하지요?”

“괜찮다.”

“외숙, 괜찮으시죠?”

영 황후의 대답에 이어 오황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원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소오, 철이 들었구나. 나도 괜찮다.”

“어떻게 된 것이냐?”

영 황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는 백여 명, 서른 명 정도가 독한 놈이었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 사사일 겁니다. 나머지는 단칼에 쓰러질 만한 조무래기고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습니다. 달아난 놈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어두워서요. 우린 열하나, 죽었습니다.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고요. 이각 정도면 성에 들어갑니다. 이대로 들어갈까요, 아니면 씻고 옷 갈아입을까요? 뒤쪽 마차에 물이 있습니다.”

“씻고 가자.”

영 황후가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이었다.

누가 손 쓴 건지 생각할 것도 없지만 당장은 증거를 잡지 못한다. 설령 증거를 얻는다고 해도 주 귀비가 막 세상을 떠난 터라 황상이 차라리 같이 죽지 못해서 한스러워하고 있다. 지금은 새로 세운 태자, 주가가 무슨 짓을 해도 포용할 것이다. 증인, 물증을 줄줄이 내놓아도 황상은 주가를 어쩌지 않을 것이다. 사황자를 어떻게 할 일은 더더욱 없고. 황상에겐 영 황후와 오황자의 사활은 중요하지 않다. 더더욱 상관없고.

이런 때에 일을 크게 키우면 황상이 영 황후와 오황자를 더욱 미워하게 될 뿐이다. 지금은 적어도 황상의 미움을 받아선 안 된다.

유월을 비롯한 종복들이 마차 주변의 유리등을 켰다. 소심 등 시녀가 마차에서 내려 뒤에 있는 마차에서 대야, 물, 주전자를 챙겨 영 황후를 깨끗이 씻기고 단장시켰다.

마차 안엔 필요한 건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물건들이었다. 시녀들이 계탕으로 은사면(銀絲面)을 만들었다. 영 황후와 오황자 각자 한 그릇 먹었고 소심을 비롯한 시녀들도 배불리 먹었다. 궁에 도착할 때쯤이면 대례가 시작될 것이다. 궁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먹을 것이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은사면銀絲面: 상주常州 일대의 지방 면요리. 면발이 실처럼 가늘고 은색처럼 희고 부드럽다.)

일각 남짓한 시간 동안, 영 황후는 적어도 겉모습은 깔끔하게 단장하고 다른 마차로 갈아탔다. 영원은 대영에게 분부해서 피 묻은 이동의 마차와 물품이 담긴 마차를 자등 산장으로 돌려보냈다.

영 황후는 창문을 통해서 대영이 마차를 몰고 다른 길로 달려가는 걸 바라봤다.

됐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며칠 뒤에 다시 물어보자.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다.

장 태태의 마차, 안이 얼마나 정교하든 밖에서 보기엔 매우 소박하고 평범한 그 마차가 영 황후, 이 제국에서 황상에 버금가는 두 번째로 존귀한 귀인의 ‘어가’가 되었다. 그리고 의장은 진흙을 뒤집어쓰고 말에 탄 채 마차 곁을 따르는 영원, 그리고 유월을 비롯한 호위들이었다.

일행이 선덕문에 당도하자, 위봉낭이 마차에서 내려 말을 끌고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영원은 말에서 내려 마차 곁에서 도보로 걸었다. 소심을 비롯한 시녀들은 마차를 따라갔고 유월 등 호위는 선덕문 밖에서 기다렸다.

선덕문 안, 육부와 문하성, 중서성 등 각처 관리들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더 가지런하게 나와 있었다. 그들은 창가, 문 안, 문밖에 서서 경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차가 느긋하게 들어와서 느긋하게 궁문 쪽으로 가는 걸 바라봤다. 그리고 마차 곁에서 가슴을 펴고 위풍당당하게 위엄 부리며 걷는 영원과 영원이 밟고 지난 자리에 퍼지는 검붉은 핏자국을 바라봤다.

주 귀비의 영당은 문덕전에 차려졌다. 문덕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차가 멈췄다. 영원이 성큼 다가가 휘장을 젖히자 오황자가 먼저 뛰어내렸다. 오황자는 돌아서서 까치발을 들고 영 황후를 부축했다. 마차에서 내린 영 황후는 오황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문덕전 안으로 들어갔다.

문덕전 안, 이미 도착한 내외 명부, 내시, 궁인, 시립한 호위들이 쥐 죽은 듯이 숨죽이고서, 가슴을 펴고 담담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영 황후와 긴장한 작은 얼굴로 영 황후의 보폭을 열심히 따라잡으려 성큼성큼 걷는 오황자를 바라봤다.

종종걸음으로 맞이하러 나온 상 태감이 두 사람과 살짝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삼개구배(三磕九拜), 세 번 고개를 조아리고 아홉 번 절하는 대례를 올렸다.

영 황후는 오황자의 손을 잡고 꼿꼿이 서서 지켜보더니, 상 태감이 마지막 절을 올린 뒤 오황자에게 말했다.

“상 태감은 네 부황을 곁에서 매우 오래 모신 자이다. 재능과 덕이 높으신 자이지. 어서 부축해드려라.”

“예!”

오황자는 매우 정중하게 대답하고 상 태감을 부축하려 다가갔다. 일어서려던 상 태감은 영 황후의 말을 듣고 일어날 듯 말 듯, 오황자가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일어서서 오황자를 향해 굽실거리며 가당치 않다고 예를 올렸다.

“마마, 오는 내내 고생하셨습니다. 황상은 뒷전에 계십니다. 마마, 오황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상 태감은 영 황후와 오황자를 안내해서 문덕전 뒷전으로 들어갔다.

황상은 문덕전 뒷전에 초췌한 얼굴로 탑상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사황자, 이제 태자는 탑상 앞 팔걸이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태자 맞은편 탑상과 살짝 떨어진 등받이 없는 의자에 두 눈이 팅팅 부은 조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

상 태감이 영 황후와 오황자를 안으로 모시자, 조 노부인은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일어서려 했다. 일어서기 전에 상 태감이 얼른 내시에게 눈짓하자 내시가 쪼르르 달려가 조 노부인을 부축했다.

영 황후는 오황자의 손을 잡고 탑상 앞으로 가 무릎을 구부려 예를 갖췄다. 오황자는 탑상 앞에 무릎 꿇고 삼개구배 대례를 올렸다.

처음으로 부친인 황상을 만나는 것이었다.

황상은 온 신경이 오황자에게 쏠려서는 멍하니 오황자를 바라봤다. 존재를 거의 잊었던 아들을.

태자는 팔걸이의자에 단정하게 앉아서 오황자를 내려다봤다. 얼굴에 미움이 가득했다. 감출 생각도 없었다.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황자가 대례를 마친 후, 황상이 기운 없이 가쁜 숨으로 그를 불렀다.

“이리 오너라. 얼굴 좀 보자.”

오황자는 탑상 가장자리에 딱 붙어서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황상을 바라봤다. 오황자의 맑은 눈빛, 영원과 닮은 매우 예쁘장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황상의 얼굴에 친근함과 포근함이 서서히 퍼졌다.

“여기 앉아라.”

황상이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부드러워졌다. 오황자는 탑상 가장자리에 반듯하게 앉아서 황상의 미소에 미소로 답했다.

“태어나자마자 병에 시달렸는데, 이제야 겨우 좋아졌구나.”

황상이 오황자의 작은 손을 잡고 끌어당기며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글공부는 시작했느냐?”

“시작했습니다. 조금밖에 못 배웠습니다.”

어른스럽게 굴려고 노력하는 오황자의 모습에 황상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몸이 약하니 글공부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몸부터 잘 단련해라. 오느라 힘들었지? 일단 가서 쉬어라.”

“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황.”

오황자가 일어서서 공수하며 장읍하고 물러서서 조심스럽게 영 황후를 바라봤다. 영 황후가 미소 지었다.

“소심을 불러 쉬러 가렴. 요 며칠 좀 나아졌는데 다시 심해지면 안 된다.”

“예!”

오황자의 목소리가 살짝 높은 것이, 목소리에 감추지 못한 기쁨이 배어 있었다.

태자는 황상과 묻고 답하는 오황자를 줄곧 삐딱하게 흘겨보고 있다가 황상이 글공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자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황상은 그제야 조 노부인이 줄곧 서 있던 걸 발견하고 앉으라고 손짓했다. 조 노부인은 황상에게 감사 인사부터 하고 영 황후를 바라봤다.

“거의 십 년 만에 마마를 뵙습니다.”

조 노부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을 꿇으려 하자 영 황후가 재빨리 다가가 손으로 조 노부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노부인은 어른이고 연세도 드셨는데 이렇게 대례를 갖추실 것 없습니다.”

영 황후는 조 노부인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황상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씨는 원래 분별 있는 사람이었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황상, 마마, 시각이 됐습니다.”

밖에서 사례관이 눈짓하자, 상 태감이 앞으로 나와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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