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80화 (280/463)

280화: 투두법

주 추밀부사는 고서강과 사황자를 바라보며 고서강의 뜻에 동의하는 게 좋을지, 사황자의 뜻에 동의하는 게 좋을지 망설였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수국공이 다시 모두가 입을 열기 전에 나섰다.

“전하,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며느리가 상제 대례를 맡는 것보다 더 적합한 선택이 없습니다. 신, 동의합니다. 해 상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구경하듯 산처럼 단정하게 서 있던 예부 상서 해유덕은 수국공이 지명하자 살짝 몸을 숙이며 대답했다.

“이건 나라의 예법입니다. 국공야의 말씀은 집안 예법입니다.”

“묵 경은 어찌 생각하는가?”

황상이 묻자 묵 승상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신의 생각으론 차라리 복안 장공주가 잠시 고생하며 이 일을 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 동의합니다.”

고서강이 얼른 태도를 밝혔다. 영 황후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장공주는 다년간 수행하던 몸이고, 그뿐만 아니라 혼인하지 않은 낭자의 몸입니다. 예법에 맞지 않습니다.”

계 천관이 반대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회에 영 황후가 돌아오길 바랐다. 오황자를 사왕야 앞에 세워서 진왕을 막아줘야 한다.

황상은 눈살을 찌푸리고 심란한 듯 나라의 걸출한 신하를 바라봤다. 후궁에서 주씨의 대례를 주관할 사람 하나 고르는데 이렇게 많은 인물을 추천하다니. 평소에도 결정 내리는 일을 제일 싫어하는데 주씨만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 지금은 더더욱 그럴 심정이 아니었다. 다행히 그에겐 너무나 좋은 묘책이 있었다.

“여봐라. 콩을 가지고 오너라.”

그에겐 콩을 던져 결정하는 투두법이 있었다.

상 태감은 내시들을 지휘해서 노련하게 콩을 가지고 와서 묵 승상부터 추밀부사까지 사람당 한 알씩 나눠줬다. 사황자 순서가 되자 상 태감이 황상을 바라봤다. 황상이 손을 저었다.

“군신이 유별하니 사황자는 안 된다.”

막 콩을 집으려던 사황자는 눈썹을 휘날리며 손을 거두고 얼굴을 구긴 채 상 태감을 노려봤다. 그러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콩을 잡는 모두를 거만하게 내려다봤다.

오늘부터 명심해야 한다. 군신유별이다!

콩으로 결정한다는 말에 고서강은 내심 안도하고 안색도 좋아졌다. 자기 쪽 사람이 많으니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여 승상은 담담했고, 묵 승상은 여 승상보다 더 담담했다. 그가 제안한 복안 장공주가 되든 말든 상관없었다. 계 천관은 여 승상을 바라보고 고서강을 곁눈으로 흘깃 봤다. 여 승상은 언제나 계책을 세우고 움직이는 사람이니 믿음이 갔다.

수국공은 눈을 내리깔고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내리깐 눈꺼풀 아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주 추밀부사는 고서강과 사황자를 쉴 새 없이 번갈아 봤다. 예부상서 해유덕은 진정한 산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만 그의 그 믿는 기둥을 다른 사람이 모를 뿐이었다.

내시 셋이 주둥이가 좁고 배가 넓은 우과천정(雨過天睛) 자기 항아리를 들고 왔다. 자기 항아리 위엔 각각 영 황후, 복안 장공주, 양빈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시 셋이 도자기를 들고 순서대로 묵 승상 등 대신의 앞을 지나갔다.

묵 승상 등은 차례로 세 도자기 안에 손을 넣었다. 콩을 어디에 넣었는지는 자신밖에 모른다. 세 내시가 한 바퀴 돈 다음 항아리 세 개를 탁자 위에 올렸다. 항아리 세 개 밑바닥에는 얇은 비단 깔개를 깔아놓았다. 상 태감이 다가가 항아리에 담긴 콩을 쏟고는 각각의 깔개 위에 콩을 올려놓았다.

세 깔개 위, 영 황후의 깔개엔 콩이 세 개, 장공주와 양빈은 각각 두 개였다.

고서강은 깔개 위 콩 세 알을 빤히 바라보다가 얼굴이 시퍼레졌다. 어째서 영 황후가 세 알이란 말인가. 양빈이라야지. 다 계산했는걸. 양빈은 최소, 최소 세 알이라야 맞다. 그가 한 알, 수국공이 한 알, 주 추밀부사가 한 알. 사황자가 제안한 사황자비 정씨가 없는데, 그 두 사람은 자기 콩을 마땅히 자신이 제안한 양빈에게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두 알뿐인가. 누가 다른 사람에게 넣었나? 수국공? 주 추밀부사? 아니면 둘 다 아닌가? 이 형제, 사왕야가 아직 보위에 오르기 전인데 벌써 내분이 일어난 것인가?

두 사람은 예전부터 밖의 적을 아랑곳하지 않고 형제끼리 다투고 있었지!

고서강은 화가 나서 관자놀이 핏줄이 펄떡펄떡 뛰었다.

영 황후의 콩 세 알은 여 승상 한 알, 계 천관 한 알, 나머지 한 알은 누구란 말인가. 수국공? 주 추밀부사? 묵 승상 아니면 해유덕? 다 가능성 있다!

여 승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깔개를 바라봤다. 그와 묵 승상은 몇십 년 동안 단련한 내공으로 담담했고, 그저 양빈의 깔개를 잠시 더 바라볼 뿐이었다.

거사가 성공하기 전에 내부에서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일을 성사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큰 금기다. 하지만 거사가 성공한 후에 그제야 이권을 다투는 건 늦는다. 대국을 고려하면서 작은 이득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 싸우면서도 싸우지 않는 것이 원래 가장 파악하기 힘든 일이다.

여 승상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묵 승상의 시선이 복안 장공주의 깔개에서 잠시 머물렀어. 하나 더 있다. 누굴까? 고서강은 아니다. 해유덕도 아니다. 계 천관은 영 황후가 돌아오는 것을 전력 지지할 것이다. 수국공과 주 추밀부사? 재미있군. 묵 승상은 고 서강을 힐끔 바라봤다.

“영씨로 결정하지. 성지를 써라.”

황상은 깔개의 콩을 훑어보고 명했다. 자신이 정한 투두법은 언제나 큰 효과가 있었다.

“황상, 영원을 보내 영 황후를 모셔오십시오. 주 귀비의 상제 대례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영 황후를 빨리 모시고 오면 올수록 좋습니다. 오늘 밤 안에 돌아올 수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묵 승상은 뒤이어 누가 마중 갈지, 언제 마중 갈지 같은 세부 사항을 정했다. 황상이 그래, 하고 대답했을 때 상 태감이 이미 내시에게 명령해 필묵을 가지고 왔다. 해유덕이 일어서 작은 서안으로 다가가 성지를 썼다. 한림학사 출신에 4, 5년 동안 지제고(知制誥: 성지, 조서 등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한 관직)를 지냈고 평소에 성지를 쓸 때도 그가 맡아서 했다.

“오황자가 나이가 어려 영 황후만 회궁하고 혼자 별궁에 남는 건 적절하지 않을 듯합니다.”

평소처럼 묵 승상에 이어 여 승상이 덧붙였다.

고서강은 시퍼레진 얼굴로 맞은편 수국공과 주 추밀부사를 노려봤다. 오황자라는 말을 들은 사황자는 얼떨떨해졌다. 이 아우도 있다는 걸 잊고 살았다. 사황자는 드디어 사태를 깨닫고 다급하게 고서강을 바라봤다. 고서강은 그의 시선을 마주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 지경이 됐는데 그에게 무슨 방법이 더 있을까.

“다섯째는 줄곧 병들어 있지 않은가. 아픈 아이가 긴 길에 시달리는 걸 어찌 견디겠나. 게다가 돌아오면 경야하고 곡을 해야 하는데, 이 추운 날에 아픈 아이가 그걸 어찌 견디나. 괴롭히지 말고 그냥 별궁에 두게.”

고서강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사황자가 얼른 반대했다. 여 승상은 대답하지 않았고 묵 승상은 침묵했다. 수국공과 주 추밀부사도 물론 입을 열지 않았다. 계 천관은 못 들은 척 안 보이는 척했다. 이 일은 자신이 입을 열 필요가 없다. 해 상서는 성지를 쓰고 있었고 고서강은 더더욱 입을 열지 않았다.

사황자가 한참 기다려도 대전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는 조금 머쓱한 동시에 화가 잔뜩 나서 두 줄로 선 신하를 노려봤다.

“부황, 어찌 생각하십니까?”

“함께 데리고 와야지. 실로 병이 심하면 경야는 하지 않으면 된다.”

황상은 조금 성가셔졌다. 이 일로 너무 오래 시달렸다. 아직 큰일이 많거늘. 교교의 관, 부장품, 그리고 지궁(地宮: 제왕의 능묘 지하에 관을 놓아두는 건물)도. 자신과 교교의 지궁 공사를 작년에 겨우 시작했는데…….

“영명하십니다, 황상.”

여 승상은 그 말부터 하고 계속 물었다.

“오황자가 돌아오면 임시 거처를 어디로 할까요?”

“형님이 전에 묶던 연경궁으로 하세.”

사황자가 재빨리 대답했다.

고서강은 목이 막힐 뻔했다. 연경궁은 대황자가 전에 묵던 곳으로, 태자가 묵는 곳이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생각이 없을 수가!

묵 승상, 계 천관, 하물며 성지를 쓰던 해 상서까지 모두 사황자를 바라봤다. 오황자가 연경궁에 묵으면, 태자 책봉 받고 다시 궁으로 들어오면 댁은 어디에 묵으시려고?

“그리하던지.”

이미 혼백이 주 귀비와 함께 반은 떠난 황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여 승상은 눈을 내리깔고, 묵 승상도 눈을 내리깔고, 계 천관은 단정한 표정으로 그저 눈만 몇 번 깜빡였다. 사황자는 태자 자리에 분명 오래 있지 못하겠군. 벌써 그 징조가 보여.

수국공과 주 추밀부사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황자가 모친을 시해하여 위리안치되었다. 그런 대황자가 묵었던 불길한 곳을 다섯째에게 주는 게 제일 좋지.

고서강은 입술을 달싹이며 맞은편에서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떡이는 수국공과 주 추밀부사를 바라봤다.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황상이 이미 대답했다. 됐다. 게다가 태자가 어디에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연경궁에 살면서도 목숨을 잃은 태자는 역대에도 많았다. 대황자도 위리안치되지 않았나.

영 황후가 궁으로 돌아와 대례를 주관하는 일과 세부 사항을 드디어 다 상의해서 정했다. 내용도 다 정했고, 해 상서도 성지를 다 써서 황상에게 보였다. 그런 다음 황제의 옥새를 찍어 얼른 별궁으로 가서 영 황후와 오황자를 맞이해서 돌아오라는 성지를 영원에게 보냈다.

경성에서 별궁까지 말로 질주해도 한 시진 반은 걸리다. 오늘 반드시 영 황후가 반드시 궁으로 돌아와야 한다. 아니면 내일 내외 명부의 경야에 지장을 준다.

지금까지도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황상이 그 일을 정한 후, 그다음에 논의된 관이니 부장품이니 하는 일은 모두 순조롭고 재빠르게 진행되어 황상이 하자는 대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문 이야는 내내 질주하여 자등 산장에서 복안 장공주의 별장으로 달려갔다. 장공주를 만나 명을 받고 다시 별장에서 경성까지 질주했다. 이가 저택 문 앞에서 마침 마차에서 내리는 만 어멈을 마주쳤다. 만 어멈은 오늘 이신이 옮겨올 예정이라 미리 저택을 정리하러 왔다. 내일이나 모레 장 태태와 이동도 돌아올 예정이었다.

문 이야는 말을 끌고 가라고 분부하고 문간방에서 눈에 띄지 않는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여복을 데리고 측문으로 나가서 정북후부로 직행했다.

반드시 서둘러 영원을 만나야 하는데 영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일단 정북부후로 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여복이 먼저 가서 알아봤더니, 영원이 마침 저택에 있었다. 문 이야가 측문으로 들어가자 대영이 서둘러 마중 나와 문 이야를 데리고 전원 서재로 향했다.

문 이야가 뜨락으로 들어가자마자 영원도 도착했다. 문 이야는 바로 공수했다.

“중요한 일입니다.”

영원은 얼른 대영에게 나가서 지키라고 명했고 문 이야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낭자가 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잘 들으세요. 주 귀비가 중독된 증상을 유의하시랍니다. 그날 장녕궁에 두 왕야 모두 있었답니다.”

문 이야가 또박또박하는 말에 영원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주 귀비의 중독 증상? 장녕궁에 두 왕야 모두 있었다!

그 두 마디 말 뒤에 숨은 정보는 영원의 상상을 초월했다. 영원은 잠시 얼떨떨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허, 정말 전대미문의 참변입니다.”

문 이야의 탄식에 영원은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두 아들이 함께 손을 쓰다니, 주 귀비의 참변은 실로 전대미문의 참변이었다.

“증상을 알아보는 건 쉽습니다. 그 자리에 태의가 많이 있었으니까요. 태의원에도 진맥한 문건이 있습니다. 어려운 건 나머지지요. 누가 그랬는지, 증거를 대려면 증인, 물증 다 있어야 합니다. 한 번에 확실히 못 박아야 합니다.”

문 이야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는 말에 영원이 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안심하게. 땅을 석 자를 파더라도 반드시……. 흥!”

문 이야가 허허 웃었다. 영원은 안심하라고 말하지만, 수확이 반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증인, 물증 다 갖추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영 황후와 오황자 쪽은요?”

문 이야가 가장 신경 쓰는 건 그 문제였다.

“다 준비해두었네.”

영원이 간단히 대답하자 문 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이 다 준비해두었다는 이 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낭자는…….”

영원이 말을 떼자마자, 뜨락 밖에서 대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칠야! 성지입니다!”

“어서 나가십시오!”

문 이야가 눈빛을 번뜩이면서 영원을 밀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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