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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273화 (273/463)

273화: 능구렁이가 된 고양이

시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하긴 했지만, 감히 탕약방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수간(茶水間: 탕비실)과 이 탕약방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시녀는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약 담당 시녀를 찾았다.

대황자는 무릎을 구부릴 뿐 움직이지 않는 시녀를 보며 화가 치밀었다.

봐라. 이것들도 아는 것이다! 이것들도 나를 안중에 두지 않아. 내 명령을 듣지 않아!

“내 말, 못 들었느냐? 마마의 약을 따라라!”

대황자의 매서운 고함에 시녀는 파르르 떨었다. 더는 망설이지 못하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서 수건을 잡고 약탕기를 들어 올린 다음 옆에 있는 붉은빛 탁반 위 도자기 그릇에 조심스럽게 탕약을 따랐다.

시녀가 약을 다 따르자 대황자는 탁반을 들고 앞장서라고 분부하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장녕궁으로 들어갔다.

장녕궁 안, 주 귀비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가서 알아봐라! 끝까지 조사해! 궁에 들고양이라니! 게다가 능구렁이 같은 들고양이다! 내 뜨락에 들고양이가 다 드나드는 것이냐? 난리가 났구나. 다 나가서 무릎 꿇어라! 너희를 먹여 살려 무얼 하겠느냐? 앵무새 몇 마리도 잘 돌보지 못하다니! 조사해라! 누가 들고양이를 들인 것이냐? 난리구나, 난리야!”

“모비, 진정하세요. 약이 다 되었습니다. 약 드셔야지요.”

대황자가 화항 곁에 서서 다독였다. 탁반을 든 시녀가 허리를 숙이며 탁반을 높이 치켜들어 대황자 앞으로 내밀었다. 법도대로라면 약 시중을 든다고 해도 시녀가 그릇을 대황자에게 전하고 대황자가 귀비에게 전해야 했다. 하지만 대황자는 그 탕약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시녀가 탁반을 내밀자, 그는 무심결에 옆으로 반 발짝 물러났다.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 앵무새 몇 마리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다니! 아들아, 네가 말해 봐라. 이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요즘 몸도 갈수록 안 좋아지는데 궁이 말이 아니구나. 이런 쓰레기들은 예전이었다면 진작 장을 쳐서 죽였을 것이다. 속 터져 죽겠구나!”

주 귀비는 아닌 게 아니라 몹시 화가 난 듯했다. 그녀가 가장 예뻐하는 앵무새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었다.

“모비, 역정 내지 마세요. 화를 내면 몸 상합니다. 그럴 가치 없습니다. 저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역으로 보내고 새로 고르면 됩니다. 화내실 것 없습니다.”

대황자는 처음으로 이렇게 차분하고 끈기 있게 달래고 또 달랬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보아라, 이러니 마음 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 들고양이 몇 마리로 이 꼴이 되었다. 누가 자객이라고 외친 것이냐? 알아내라! 하나하나 싹 다 알아내라! 알아낼 때까지 조사해라! 내가 너희들을 다스리지 못할 것 같으냐? 난리구나, 난리야!”

주 귀비는 갈수록 화를 냈고 대황자는 식어버린 탕약을 곁눈으로 바라보다가 시녀에게 분부했다.

“약을 마마께 올려라. 모비, 진정하세요. 저런 것들 때문에 화낼 필요 없습니다. 알아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싹 다 노역으로 보내세요. 보내고 다시 잘 고르면 됩니다. 모비, 일단 약 드세요. 식습니다.”

“화내지 말라고 하지만, 화가 나는 걸 어쩌겠느냐. 정말 속 터져 죽겠구나. 얼마나 예쁜 새인 줄 아느냐. 7, 8년이나 길렀다. 생으로 죽었어!”

주 귀비는 마음 아픈 듯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다른 취미는 없고 앵무새만 좋아했다.

대황자는 몸을 틀고 화항 가장자리에 앉아서 탁반을 든 시녀를 가리키며 다시 재촉했다.

“모비, 일단 약을 드세요. 이야기는 약을 드시고 하고요. 나중에 제가 좋은 앵무새를 골라서 보내겠습니다. 새 한 마리 때문에 지나치게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그렇긴 하다만.”

주 귀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으며 탕약을 들어 올렸다.

“너도 알지 않으냐. 난 새가 잘못되는 게 제일 싫다. 네 어미는 마음이 약해서, 새들이 고생하는 걸 못 본다. 봐라. 저것들이 새 하나도 잘 보살피지 못하고 고양이에게 물려 죽게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모비, 약부터 드세요.”

대황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 귀비 손에 들린 탕약 그릇을 바라봤다. 주 귀비가 손을 떨어 약을 쏟으면 공들인 게 헛수고가 된다.

“됐다, 됐어. 너와 사가아만 짓궂은 짓을 하지 않으면 내가 화낼 일이 무엇이야. 난 너희 둘만 보고 산다.”

주 귀비는 한 손에 탕약을 들고 다른 손으로 애틋하게 대황자의 손을 토닥였다. 주 귀비가 약 그릇을 입가로 가져대자 대황자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무심결에 할 말이 있는 듯, 말리려는 듯 손을 들고 입을 달싹이다가 결국 꿀꺽 삼켰다.

주 귀비는 눈살을 찌푸린 채 단숨에 약을 비우고 약 그릇을 시녀에게 건넸다. 재빨리 입을 헹구고 밀전을 씹으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할는지. 네가 어릴 때 말이다. 그러니까 요만했을 때.”

주 귀비가 손을 들어 키를 어림잡았다.

“말도 아직 잘 못 할 때 풍한이 들어서 태의가 약을 처방했는데 아무리 달래도 먹으려 하지 않지 뭐냐. 내 품에 안겨서 우는데, 이 어미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대가아, 병이 났는데 약을 먹어야지. 안 먹으면 어쩌니.’ 했더니, 네가 울면서도 이치를 따지더구나. ‘저는 아프지 않아요. 다 나았어요.’ 하고 말이다. 정말이지…….”

주 귀비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눈살을 찌푸리며 배를 눌렀다.

“배가 왜 갑자기 아프지.”

대황자는 멍하니 주 귀비를 바라보다가 별안간 튀어 일어났다.

“태의를 불러라! 어서! 서둘러라!”

주 귀비는 통증으로 몸이 오그라들었다.

주 귀비가 병이 났으니 관례대로 주 귀비의 몸이 다 낫기 전엔 수시로 달려올 수 있도록 태의들이 항상 장녕궁과 그리 멀지 않은 연경전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장녕궁에서 태의를 부르자마자 태의들이 매우 빨리 도착했다.

태의 네댓은 장녕궁에 발을 들이자마자, 두 눈이 벌겋게 붓고 안색이 누렇게 뜬 주 귀비를 보고는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으려 했다.

귀비가 어찌 중독된 것 같은 모습이지. 이게 무슨 일일까.

“어서 황상을 모셔라! 귀비께서 위태로우시다!”

태의정 오 태의가 분부하고는 다른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달려가 귀비의 눈을 까뒤집고 살폈다.

“어서! 숯 재를 가지고 와라! 그리고 소금물도! 서둘러라!”

오 태의의 서슬 퍼런 분부는 몇몇 태의가 귀비를 보자마자 든 생각을 입증하는 셈이었다. 태의들은 순간 심장이 오그라들어서 허둥지둥 앞으로 달려가 침을 놓고 약을 먹이고, 주 귀비를 화항에 엎드려놓고 머리를 화항 밖으로 내밀게 한 다음 구토를 유발하는 약을 먹였다. 주 귀비가 시커멓고 누런 물을 웩웩 뱉었다.

“마마, 힘껏 뱉으십시오. 다 뱉으셔야 합니다. 다 뱉으면 괜찮아집니다. 더 드시게 해라. 얼른!”

오 태의는 다급해서 이마며 온몸이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화항 곁에서 시녀들을 지휘했다. 더 많이, 더 빨리 토하게 복부를 누르라고 명령하고,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구토약과 해독약을 만드는 태의를 재촉했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주 귀비의 입에 구토제와 해독제를 쏟아부었다.

온 장녕궁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황자는 화항 옆에 나무 인형처럼 서서, 약을 들이마시고 고통스럽게 토하면서 갈수록 얼굴이 누렇게 뜨고 숨결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주 귀비를 바라봤다. 온몸에 감각이 없어졌다. 저건 그를 낳고 기른 그의 어머니였다.

사황자가 빈 궁전 안에 숨어서 조마조마하며 문틈으로 밖을 내다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장녕궁에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 나와서 연경전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연경전 쪽에서 오 태의정이 약상자를 들고 맨 앞에 서고 태의들이 나는 걸음으로 줄줄이 장녕궁을 향해 달려갔다.

사황자는 몸을 일으켜서 뒷걸음질 쳤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뱉다가 문틈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봤다. 그러다가 문을 조금 더 열어서 머리를 내밀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문을 좀더 열고 재빠르게 비집고 나간 후 문을 닫았다. 일단 걸음을 멈추고 힘껏 헛기침하면서 매무새를 가다듬고 관을 고쳐 쓰고 느릿느릿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또 발을 멈칫하고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장녕궁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걸음 내딛다가 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돌아서서 돌아가는 길을 골라 크게 빙 둘러서 다시 장녕궁으로 향했다.

황상이 장녕궁으로 달려 들어갔을 때, 주 귀비는 이미 열댓 그릇의 탕약을 마시고 다시 열댓 그릇만큼 토해냈다. 더는 토할 것이 없는데도 호전되는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기력이 약해졌다.

“교교(嬌嬌)!”

황상은 이미 생기를 잃은 주 귀비를 빤히 보며 비틀거리며 앞으로 달려갔다. 황상을 본 주 귀비는 비처럼 눈물을 흘리며 버둥버둥 옆에 있는 대황자를 가리켰다. 말을 하고 싶은데 그냥 입만 달싹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황상은 주 귀비를 덥석 안고서 상처 입은 야수 같은 모습으로 오 태의를 노려보며 고함쳤다. 오 태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황상, 귀비가 독에……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황상은 콧구멍에서 어느새 피가 흘러나오는 주 귀비를 내려다봤다.

“누구냐. 누가…….”

주 귀비가 황상을 힘없이 잡아당기며 입술을 달싹였다. 황상이 다급히 허리를 숙이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황상, 부탁입니다. 대가아를, 탓하지, 마세요. 대가아는, 내, 내가 낳은, 아들입니다. 죽이지, 마세요. 나는, 그 꼴, 못 봅니다.”

“알았다.”

황상은 비처럼 눈물을 흘리느라 그 짧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죽으면, 사, 황자를, 태자로, 곧바로.”

주 귀비는 황상의 옷깃을 힘껏 잡아당겼다. 옷깃을 갈수록 꽉 붙들던 주 귀비는 격렬하게 몸을 떨더니 양손으로 옷깃을 잡은 채 숨이 끊어져서 고개를 떨궜다.

“교교!!”

황상은 주 귀비를 꼭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

사황자가 막 장녕전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황상의 가슴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 귀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꼬투리가 터진 콩처럼 튕겨 나와서, 곧바로 각자 전해야 할 가문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이미 잠자리에 들었던 백 노부인은 계 노승상이 세상을 떠난 이래로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흔드는 손길에 단꿈에서 깨어났다.

백 노부인을 깨운 사람은 심복 원 어멈이었다. 그녀는 뒤에 서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고는 돌아서서 나가서 직접 문 앞을 지켰고, 검은 옷은 백 노부인에게 귓속말한 다음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 원 어멈의 배웅을 받고 떠났다.

백 노부인은 멍하니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웃고 싶은데 눈물이 철철 흘렀다. 아운의 말대로, 그 여인이 드디어 죄업을 받고 죽었다.

“여봐라.”

백 노부인이 눈물을 훔쳤다. 외실에 꼼짝도 할 엄두를 못 내고 누워있던 대시녀 상엽이 후다닥 일어나서 도엽을 불러 불을 켜고 휘장을 열고 내실로 들어갔다.

“소세시켜 다오.”

백 노부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그녀를 오래 모신 상엽은 직감적으로 큰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상엽과 도엽은 간단히 백 노부인 소세 시중을 들고 겹겹이 옷을 입혔다. 검은 옷을 배웅한 원 어멈도 휘장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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