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72화 (272/463)

272화: 난형난제

대황자가 두 사람을 가리키자, 내시와 나이 든 시녀 모두 경악한 얼굴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나이 든 시녀가 무릎을 구부리며 대답했다.

“아룁니다. 대왕야. 아시다시피 이건 궁의 법도입니다. 마마의 약은 약장에서 나온 순간부터 장녕궁에 들어가기까지 저희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봐야 합니다.”

“그건 누군가 이상한 짓을 할까 봐 지키는 것이지. 내가 어머니 약을 손수 달이는데, 너희들이 볼 필요가 무엇이야.”

대황자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따져 물었다. 시녀가 곤란한 얼굴로 다시 무릎을 구부렸다.

“대왕야, 법도가 그렇습니다. 거역하면 목이 날아갈 중죄입니다.”

“꺼져라!”

대황자는 짧게 한마디로 되받아쳤지만, 나이 든 시녀는 감히 물러갈 수가 없어서 내시를 바라봤다. 내시가 허리를 구부리며 설득했다.

“대왕야, 물과 불은 무정하다 했습니다. 소인들이 보고 있으면 행여 대왕야께서 어디를 데이거나 혹은 연기에 눈이 아프지 않도록…….”

“내가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 하겠다는데, 너희들이 호시탐탐 지켜볼 필요가 뭐가 있느냐? 썩 다 나가라!”

대황자는 반드시 그들 모두를 쫓아내야만 했다.

“대왕야.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이 든 시녀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내 말도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

대황자가 어두운 눈으로 노려보자, 시녀는 가슴이 서늘해져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대왕야, 제발 이렇게 빕니다. 소인이 감히 한눈을 팔았다가는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럼 지금 네가 어딜 보고 있는 것이냐? 한눈을 팔았지? 그럼 이 자리에서 장을 쳐서 죽어야 마땅하겠지?”

대황자는 앞에서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시녀를 노려보며 냉랭하게 웃었다. 시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뻐끔댈 뿐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부를 따르겠느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장을 맞고 죽겠느냐? 그리고 너!”

대황자가 바라보자 내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대왕야, 제발 소인들을 살려주십시오. 실로…….”

“신형사(愼刑司)를 불러라. 바로 이 회랑에서 이 두 천것을 쳐 죽여라!”

대황자가 목소리를 높이자 시녀와 내시는 혼비백산했다. 이 궁에서 대황자가 사람을 때려죽이는 건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과 비슷한 사소한 일이었다.

“대왕야, 살려주십시오. 소인, 바로……. 대왕야, 살려주십시오.”

두 사람은 두려움에 휩싸여서 엉금엉금 문 쪽으로 기어나갔다. 대황자는 곁눈으로 징그러운 지렁이 두 마리 내려보듯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내시와 시녀는 문밖으로 나가서 부들부들 떨면서 두 시녀와 함께 서서 안쪽의 약탕기와 뒷짐 진 채 홍니로 곁에 서 있는 대황자를 힐끔거렸다.

대황자는 고개를 숙인 채 살며시 흔들리는 불씨와 불씨 위의 약탕기를 바라봤다. 약탕기 뚜껑 주변에서 서서히 열기가 피어올랐다. 갈수록 김이 거세게 피어오르고 뚜껑이 들썩였다. 옅은 약 냄새가 약탕기에서 퍼지고, 갈수록 짙어진 약 냄새가 온 탕약방 안에 퍼졌다.

대황자는 부글부글 끓는 약탕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김이 차올라 주변에 퍼지면서 눈앞이 어른거렸다. 그 유리등이 다시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검은 구멍처럼 텅 빈 두 눈도.

모질게 마음먹고 손을 쓰면 앞으로 천하를 군림하고, 모질지 못하면 죽을 날이 다가온다!

대황자는 서서히 웅크리고 앉아서 부글부글 끓는 약탕기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갈수록 짙어지는 약 냄새를 맡았다.

두 시녀, 나이 든 시녀와 내시, 네 사람의 여덟 개 눈동자가 탕약방 안에서 끓는 약탕기와 홍니로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넋을 놓고 약탕기를 바라보는 대황자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얼굴을 마주 봤지만, 아무도 끽소리를 내지 못했다.

약탕기가 끓는 소리가 약해지자 문 앞에 있던 시녀가 어쩔 수 없이 귀띔했다.

“대왕야, 약이 다 달여졌습니다. 소인이 들어가서 약을 따르겠습니다.”

시녀의 목소리에 대황자는 놀란 듯이 진저리치고는 화난 눈으로 시녀를 노려봤다.

“꺼져라!”

시녀는 무심결에 뒷걸음 물러나며 입을 다물었다.

대황자는 일어서다가 너무 오래 웅크리고 있어서인지 잠시 비틀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다시 앞으로 나가서 약탕기 손잡이를 잡으려 하자, 두 시녀는 손잡이로 향하는 대황자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도록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약탕기 손잡이에 손이 닿자마자 대황자는 뜨거워서 얼른 손을 다시 거두고 뒷걸음질 쳤다. 손을 들어보니, 손잡이에 닿은 손가락이 뎄는지 하얘졌다.

“덴 것 안 보이느냐? 약 가지고 와라! 명심해라, 마마를 놀라게 해선 안 된다. 아니면 죽음뿐이다!”

대황자 매섭게 네 사람을 노려보자 두 시녀는 허둥지둥 오소리 기름을 가지러 갔다.

대황자는 저쪽으로 뛰어가는 시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수시로 자기를 훔쳐보는 시녀와 내시를 바라봤다.

덴 손가락도 그리 아프지 않은 것 같은데 마침 잘 됐군. 두 사람을 보냈으니 이제 둘 남았다.

“어서 젖은 수건을 가지고 와라! 어서! 약이 다 졸아 없어지겠다!”

대황자가 매섭게 분부하자 나이 든 시녀는 대황자의 등 뒤에 선반에 걸린 수건 몇 개를 바라봤다. 하지만 입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거기 있다고 말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젖은 수건을 찾으러 갔다.

“넌 들어와서 불을 꺼라.”

대황자가 마지막에 내시에게 분부하자 내시가 후다닥 안으로 들어왔다. 한참 타오르는 숯불을 끌 방법이 없었다. 설령 끄더라도 귀비의 이 약이 다 졸아버릴 것이다. 대왕야가 손수 달인 약인데, 절대로 졸아버리면 안 된다. 내시는 다급한 나머지, 선반 걸이에서 수건을 꺼내서 손에 두르고 화로 위의 약탕기를 들어 올려 옆 선반에 올려놓았다.

“나가라!”

대황자가 방법을 깨달은 것처럼 소리치자, 내시는 수건을 손잡이 위에 올려놓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대로 문턱을 넘으려 발을 들었는데, 대황자가 돌연 뒤에서 걷어찼고 내시는 그대로 밖으로 날아갔다.

내시를 걷어찬 대황자는 재빨리 품에서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한 손에는 도자기 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수건을 감은 채 약탕기 뚜껑을 열었다. 약탕기에서 뿜어나오는 열기도 신경 쓰지 못하고 도자기 병 안에 든 가루를 몽땅 약탕기에 부었다. 그리고는 또 한 번 도자기 병을 두어 번 탈탈 털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이 손을 멈추고 밖을 휙 바라봤다. 문밖의 내시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일어나려고 애쓰는 그 내시 외에 밖엔 아무도 없었다.

대황자는 시선을 거두고 무심결에 좌우를 둘러보고는 뒷걸음질 쳐서 비취색 불주금 화분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화분의 흙을 파서 도자기 병을 묻었다.

대황자는 도자기 병을 묻고 안도하며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훔쳤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서서히 내뱉은 다음 침착하게 앞으로 나가서 약탕기 뚜껑을 덮고 손잡이를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흔들면서 약을 잘 섞었다. 그러고는 약탕기를 내려놓고 돌아봤더니 내시가 기어 일어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피했다.

탕약방 맞은편 회랑 난간 밖, 사황자가 벽 밑에 딱 붙어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막 모퉁이를 돌자마자 문 밖으로 날아가는 내시를 발견했다. 그 순간 사황자는 지극히 빠르게 반응해서는 곧바로 난간 아래로 몸을 숨기고는 난간 사이로 탕약방을 바라보았다. 대황자가 약탕기에 무언가 넣을 때 본능적으로 고개를 움츠렸고, 덕분에 대황자가 고개를 드는 순간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대황자는 불주금 화분에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문밖으로 날아온 내시가 힘겹게 고개를 들자, 사황자는 재빨리 몸을 숙이고 벽에 딱 붙어서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흥분해서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아깐 멍하니 보기만 했는데, 약 냄새를 맡자 믿기 힘든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가 약에 넣은 게 무엇일까. 설마…….

사황자의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곧바로 일어서서 고함치며 무슨 짓을 하느냐 따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지워버렸다.

저 약은 분명 모비의 약이다. 그냥 이대로 밀어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회랑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면 이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지 생각하던 사황자의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왔다! 내가 여기 있는 걸 누가 본다면…….

사황자는 다급해서 땀이 흘렀다. 누가 본다면, 자기가 여기 있는 걸 첫째가 안다면…… 모든 게 끝이다!

어쩌지?

주변을 둘러봤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다급해진 사황자가 땀을 흠뻑 흘리면서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요행을 바라며 뛰어나가려고 하는 참에 정전 회랑 쪽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뒤이어 처참한 앵무새 비명과 우당탕 소리가 이어졌고, 사황자는 재빨리 몸을 돌려 고개를 살짝 내밀고 회랑 위를 바라봤다.

탕약방 앞, 내시가 목을 빼고 정전 입구를 바라봤고 대황자도 대번 밖으로 나와서 불안한 얼굴로 정전 방향을 바라봤다. 오소리 기름을 가지고 돌아오던 두 시녀, 그리고 젖은 수건을 찾아서 온 나이 든 시녀도 걸음을 멈추고 정전 회랑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확인하기도 전에 정전은 혼란에 휩싸였다. 고양이 같은데 고양이보다 훨씬 큰 동물 몇 마리가 우왕좌왕 날뛰었고 회랑 가득 걸린 앵무새들이 어떻게 새장에서 나온 건지, 퍼덕퍼덕 날아다니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앞발을 마구 휘두르는 고양이를 피해서 후다닥 날아가는 놈도 있고, 미련하게 제 머리통을 고양이 입으로 들이미는 놈도 있었다.

회랑에 등롱이 여러 개 떨어지고 등롱에 촛불이 붙으면서 활활 타올랐다.

장녕궁의 시녀와 내시 모두 튀어나와서 흙이든 물이든 퍼부어 불을 끄고, 고양이를 잡고 앵무새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이 앵무새들은 모두 귀비 마마의 보물로, 중요하기로는 황상과 두 황자에 버금가는 존재였다. 몇 마리 죽으면 장녕궁에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놀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객이다! 서둘러라! 자객이다”

등롱이 떨어져서 아수라장이 된 장녕궁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대황자는 대번 탕약방에서 나와 다급하게 정전으로 달려갔다. 왜 달려가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자객이라는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이 아닐까.

사황자도 벌떡 일어서서 아무도 없는 텅 빈 탕약방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 손으로 난간을 짚고 매끄럽게 넘어갔다. 성큼성큼 탕약방 안으로 들어가서 한 손으로 약탕기 뚜껑을 열고 다른 손으로 재빨리 품에서 도자기 병을 꺼내 몽땅 들이부었다. 약탕기를 들어 올려 몇 번 흔들고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칫하고 돌아서서 대황자가 파묻은 도자기 병을 꺼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고는 도자기 병을 홍니로 밑에 버리고 탕약방에서 뛰쳐나갔다. 그길로 아무도 없는 회랑을 따라 단숨에 장녕궁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미친 듯이 달려서 장녕궁과 그리 멀지 않은 빈 궁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러고 문에 기대서 헉헉대며 숨을 골랐다.

정전 문 앞까지 달려간 대황자는 돌연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서 다시 달려갔다. 올 때보다 더 빨리 달려서 탕약방 안 약탕기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고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봐라! 약을 따라라!”

두 번 고함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대황자가 고개를 들었다. 탕약방 앞엔 아무도 없었다. 대황자는 다시 탕약방에서 나와서 맞은편에서 허둥지둥 달려오는 시녀를 가리켰다.

“이리 와서 마마의 약을 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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