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66화 (266/463)

266화: 중점은 단 하나

봄처럼 따듯한 대전 안으로 들어온 주 귀비는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하지만 심장이 쿵쿵 뛰고 손발이 차가웠으며 관자놀이 양쪽이 툭툭 튀었다.

곽씨는 온몸이 흠뻑 젖어서 겉에 걸친 도요의 두봉까지 벌써 흠뻑 젖었다. 그녀는 장녕궁 바닥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 부르르 떨었다. 잠시 멈췄다가 또 부르르 부르르, 몸을 심하게 떨었다.

장녕궁에선 주 귀비의 명령 없이는 아무도 움직이지 못해서, 곽씨의 젖은 옷을 벗기고 마른 옷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주 귀비의 규칙이 그랬다. 이런 일은 더더욱 주 귀비의 명령이 있기 전엔 아무도 꿈쩍하지 못했다.

예전부터 이 장녕궁에서 홑옷만 입고 무릎 꿇고 벌 받다가 온몸이 꽁꽁 얼어서 돌아간 후에 그 길로 병이 들어 죽은 미인, 재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번에 온몸이 젖어서 바들바들 떠는 사람은 미인, 재인이 아니다. 주 귀비는 그저 너무 놀라고 너무 의외의 일이라 흐트러져서 분부하는 걸 잊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장녕궁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의 규칙을 위배할 수 없었다. 잊은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어찌 알겠나. 원래 대황자비를 싫어하는 사람인걸.

장녕궁으로 들어간 주 귀비는 격렬하게 몸을 떨고 있는 곽씨를 한눈에 발견했다. 미친 듯이 떠는 곽씨와 아까 대전 앞에서 눈을 부릅뜬 조씨의 모습이 겹쳐서 보이는 순간, 주 귀비의 두려움은 돌연 분노로 변해서 바닥에 누운 곽씨를 손가락질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욕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목소리였다.

조씨의 시신을 메고 나가던 내시는 정원 문 앞에서 급한 걸음으로 허둥지둥 달려오는 황상과 황상을 따르는 대황자, 사황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게 무슨 일이냐?”

황상은 내시가 메고 있는 사람이 이미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이건 누구인가.

대황자와 사황자가 양옆으로 다가갔다. 제대로 확인한 사황자는 살며시 안도하며 뒤로 물러나진 않고 대황자를 힐끔 바라봤다. 측비 조씨임을 알아본 대황자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조씨를 죽여? 이제 사람까지 죽이는 건가?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후하게 장례를 치러 주어라.”

황상은 대황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대황자는 휙 돌아보며 황상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황상은 이미 그를 지나쳐 황급히 걸음을 내디뎠다. 안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욕설에 주 귀비가 매우 걱정되었다.

사황자는 황상의 뒤를 바싹 따라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대황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조씨의 시신을 지나쳐 뒤쫓아갔다. 조씨가 어떻게 죽은 것인지 제대로 물어봐야 했다. 조씨가 뭘 잘못했기에?

장녕궁 안, 주 귀비는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떠는 곽씨를 아직도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안으로 뛰어 들어온 황상과 두 황자는 대전 안의 상황을 보고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곽씨가 조씨를 해친 것이냐?”

이게 황상의 첫 반응이었다. 두려움에 휩싸여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던 주 귀비는 황상을 보자마자 마음이 놓여서 황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황상을 끌어안고 목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통곡하느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바닥에 누운 곽씨는 계속해서 혀를 깨물고 있었다. 입 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기절하면 안 된다. 이 대전 안, 이 궁에 자기 편을 들어줄 사람은 본인뿐이다. 이대로 기절하면 여지없이 죽게 된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온몸에 힘을 주고 정신 차리려고 애를 썼다. 격렬하게 떠는 와중에 계속해서 혀끝을 깨물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 반드시 정신 차려야 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고 싶었다.

황상이 하는 말을 들었다. 살아 있어 다행인 와중에 무수한 슬픔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랬다. 자기가 그녀를 해쳤다. 하지만 그녀를 해치지 않았다면 자기가 당했을 것이다.

파르르 격렬하게 떠는 와중에 곽씨는 아니라고, 자신은 아니라고 외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이, 목소리가 목에 걸려 아무리 애써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모비! 곽씨도 여기에서 죽길 바랍니까!”

대황자는 황상 품에 안겨서 애간장이 끊어질 듯 우는 주 귀비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목을 누가 틀어쥐기라도 한 듯 꽉 잠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씨를 죽이고! 이제 곽씨를 죽이려고 하면서 억울할 게 뭐가 있어!

그랬다. 이런 상황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봐왔다. 젊고 아름다운 미인, 재인을 무릎 꿇려 죽였을 때마다 억울하게 무릎 꿇다가 죽은 게 자신인 양 이렇게 부황 품에서 울었다.

곽씨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대황자의 말은 똑똑히 들렸다. 그 목소리가 사신의 발걸음 소리처럼 들리는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오히려 갑자기 기운이 생겨서 고개를 틀고 온 힘을 다해 기어가서 대황자의 다리를 붙들고 그를 올려다봤다. 입을 뻐끔거려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죽은 사람 같은 얼굴에 눈물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대황자는 고개를 숙여 곽씨를 바라봤다. 죽음 앞에서 미친 듯이 살길을 바라는 곽씨의 모습에 마음의 어느 한구석이 건드려졌는지, 대황자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곽씨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는 곽씨를 화항에 눕히고 돌아서서 분부했다.

“젖은 옷을 갈아입혀라. 태의는 어디 있느냐?”

장녕궁에서 대황자와 사황자의 명령은 심지어 주 귀비의 명령보다 잘 먹혔다. 아까부터 애처로워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던 시녀들이 허둥지둥 다가와 휘장을 들어 올리고 옷을 벗기고 마른 옷을 가지고 와서 금세 곽씨의 젖은 옷을 모두 갈아입혔다. 두 시녀가 화항 앞에 웅크리고 앉아 커다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말려주었다.

태의도 다급하게 나와서 진맥하고 환약을 먹이고 탕약 처방을 내리고는 발바닥 등 혈자리를 누르라고 시녀들에게 분부하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대황자는 반쯤 정신이 돌아온 곽씨를 화항 곁에 서서 멍하니 바라봤다. 대황자의 시선에 곽씨는 말도 못 하고 그저 쉴 새 없이 눈물만 흘렸다.

사황자는 대황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샛눈을 뜨고 대황자, 그리고 쉴 새 없이 우는 대황자비 곽씨를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시선을 돌리고 제 옆에 공손히 서 있는 정씨를 바라봤다. 그리고 또 시선을 돌려 주 귀비를 안고 나긋나긋하게 계속해서 위로하는 황상과 황상 품에 머리를 묻고 조금씩 서러움을 내려놓은 주 귀비를 바라봤다.

사황자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정말 온통 위선자들뿐이구나! 온통 천박한 것들뿐이야!

황상 눈엔 주 귀비와 주 귀비의 서러움밖에 없었다. 주 귀비는 황상의 보살핌 아래, 언제나처럼 서러움의 눈물을 모두 흘리고는 통곡이 흐느낌으로 변했다. 눈물도 멎고 서러움도 사라졌다.

“많이 놀랐느냐.”

주 귀비가 울음을 그치고 이제 말이 들릴 상황이 되자 황상은 그제야 부드럽게 물었다. 주 귀비는 서러움에 다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죽었답니다. 황상, 내가 죽은 사람을 제일 무서워하는 걸 알잖습니까.”

“괜찮다. 이미 들고 나갔다. 여기서 죽지 않았다. 가슴은 아프지 않으냐? 태의에게 진맥하라고 할까?”

근래 십여 년 동안 주 귀비가 이렇게 서러울 일은 거의 없었지만, 황상이야 십여 년 동안 위로한 횟수가 너무 많아서, 그녀가 서럽게 통곡한 후에 어디가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 똑똑히 기억했다.

“응.”

주 귀비는 대답하고 화항에 누우려고 걸음을 떼다가 이미 화항을 차지한 곽씨와 곽씨를 에워싼 시녀, 태의, 그리고 대황자를 보고는 순간 안색이 흐려졌다.

그녀 자신의 눈이 닿는 곳에서, 그 중심은 오로지 그녀여야만 했다. 그녀 말고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은 두 아들뿐이었다. 곽씨 저것이 제가 뭐라고 화항에 누워있을까.

황상도 눈살을 찌푸렸다. 귀비가 기거하는 곳인데 곽씨가 누워있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지 않나!

“곽씨를 저쪽 침상으로 옮겨라.”

황상의 목소리에 언짢음이 배어 있었다. 사황자는 눈썹을 까딱였다. 희색이 얼굴에 퍼지기도 전에 아라의 말을 떠올리고는 뜨거운 물을 끼얹은 얼음처럼 기쁨도 싹 녹아 없어졌다. 사황자는 대황자, 그리고 황상과 황상 품에 안긴 주 귀비를 번갈아 봤다. 희색이 가라앉았다.

대황자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황상과 주 귀비를 흘겨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시녀들이 곽씨를 낮은 침상에 옮긴 후 화항의 모든 침구를 재빠르게 새로 바꾸는 걸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하게 웃었다.

황상은 주 귀비를 부축해서 화항에 눕혔고, 시녀와 태의들이 우르르 몰려가 탕이요, 물을 올리며 부채질하고 진맥했다.

태의 여러 명이 번갈아 가며 주 귀비를 진맥하고는 조금 놀랐지만 진정되어서 별 탈 없고, 그저 안신탕만 마시면 된다고 아뢰자 황상은 그제야 안도했다. 주 귀비도 드디어 이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주 귀비가 평안 무사한 것을 확인한 황상은 그제야 곽씨를 돌아봤다. 그리고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대전 구석에 선 정씨를 바라보고는 굳은 얼굴로 궁인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어쩌다가 목숨까지 잃는 사달이 난 것이냐?”

사황자가 정씨를 바라봤다. 정씨는 고개를 숙인 채 지극히 담담하게 서 있었다. 이번 일은 그녀와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일이라 안심하고 구경만 하면 그만이었다.

대황자는 주 귀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비에게 물어야지. 모비의 수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수단을 자기 아들에게 쓸 줄이야. 독한 호랑이도 자식은 물지 않거늘.

“후원에서 호수에 빠졌답니다. 왕비와 부인을 모시고 온 내시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 불러들여라.”

밖에서 기다리던 내시가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서 무릎 꿇고 고했다.

“황상, 아룁니다. 소인 후원에서 당직 중인데 구곡교에서 살려달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른 뛰어갔더니, 왕비와 부인 모두 물에 빠져 있었습니다. 왕비와 부인의 시녀는 다리에 있었습니다. 소인들이 호수에 들어가 왕비와 부인을 건져 올렸을 때, 왕비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부인은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두 시녀는?”

황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황자가 돌연 주 귀비를 빤히 보며 물었다.

“두 사람이 왜 구곡교에 간 것입니까? 모비, 두 사람을 왜 구곡교로 보내셨습니까? 한겨울엔 구곡교는 출입 금지 아닙니까? 모비, 두 사람을 왜 구곡교로 보내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주 귀비가 대답하기 전에 황상이 벌써 안색이 변해서 매섭게 호통쳤다. 하지만 대황자는 목에 힘을 줄 뿐 황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사황자는 황상을 힐끔 보고 또 목이 뻣뻣해진 대황자를 바라봤다. 황상이 첫째를 혼내는데 기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오히려 씁쓸해서 마음이 안 좋았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깊을수록 심하게 혼낸다는 것이지!

곽씨의 시녀 도요와 조씨의 시녀 보주가 앞뒤로 대전 안으로 들어와 황상 앞에 무릎 꿇었다. 도요는 쉴 새 없이 떨어댔고, 보주는 넋이 나가서 뻣뻣하게 무릎을 꿇고 멍한 눈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보는 앞에서 주인 두 사람이 호수에 빠졌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거의 죽어간다.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된 일이냐! 말해라!”

대황자가 고함친 바람에 기분이 좋지 않은 황상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매서웠다. 도요는 더 두려워졌다. 능지에 처하는 건 아니겠지. 능지 형을 떠올린 도요는 식겁해서 울지도 못하고 양팔만 후들후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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