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62화 (262/463)

262화: 영원의 즐거움

영원은 탁자를 탁 내리쳤다.

“강환장은 경성에서 평이 좋다고 하더군요. 아, 예전에 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던데, 그 어미에 그 딸이라는 말은 모른답니까? 고가가 엉망진창인데, 고씨가 뭘 보고 배울지 생각 못한답니까? 그런 고씨에게 집안일을 맡겨요? 집안일이 날 때부터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그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인지상정이 아니라 인지불상정이죠.”

이동은 잔을 들고 고개 숙인 채 술을 머금었다.

“또 하나!”

영원은 양 구야 일을 떠올렸다.

“당신은 그와 있을…… 흠, 이상한 걸 알아채지 못했나요?”

“강환장과 고씨는 청매죽마라서 어릴 때부터 정이 깊었어요. 사랑하는 사람 눈엔 서시로 보인다잖아요. 콩깍지가 끼었겠죠.”

이동은 은근히 말을 돌렸다. 강환장이 왜 이상한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안다. 지금 강환장은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한 상태니까.

“그렇긴 하죠.”

영원은 또 술을 비우고 잔을 이동 앞에 내밀었다.

“강가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지요? 말을 전하고 소식을 전할 사람이요.”

영원은 온몸에서 제멋대로라는 느낌을 풍겼고, 말은 더욱 제멋대로여서 생각나는 대로 입에 올렸다.

“없어요.”

이동은 어이가 없었다. 강가에 사람을 두긴 왜 둬. 어렵사리 벗어났는데. 다시는 ‘강’자를 듣고 싶지도 않을 정도인데.

“하긴. 강가 같은 곳에 사람을 둘 필요도 없지. 온 저택 사람이 구멍 숭숭 난 체 같은걸. 아니, 체만도 못하지. 체는 그나마 바닥이라도 있지. 수녕백부는 그냥 구멍입니다. 구멍. 동전 스무 냥, 열 냥이면 되겠네. 아니, 찻값이면 원하는 건 뭐든 알아낼 수 있지.”

영원은 수녕백부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난 듯 탁자를 내리쳤다.

“이번에 경성에 들어와서 견문이 넓어진 것으로 치자면 수녕백부가 그중 하납니다. 맞다. 곡씨, 정말이지 문도의 안목에 트집 잡을 것이 하나 없어요. 사람을 너무 잘 골랐어. 들었습니까? 곡씨가 새로 법도를 세웠는데, 강가의 첩은 아무도 비단옷, 보석 장신구를 못 걸친답니다. 첩 세 사람 모두에게 두꺼운 남색 솜옷, 솜바지를 두 벌씩 지어주고 그것만 입으라고 한답니다. 일부러 한 번 보러 갔었는데, 햐! 끝내주더군요!”

영원이 탁자를 내리치며 껄껄 웃었다.

“너무 보기 좋더군요. 당신도 가 봐야 하는데, 그걸 못 보는 게 너무 아쉽네요. 우리 북삼로의 시골 아낙도 강환장의 첩보단 격식을 갖춥니다. 그게 말입니다, 강환장이 돌아오는 날, 대영을 보내서 알아보라고 했죠. 강환장의 첩이 옷을 갈아입었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어땠을 것 같습니까?”

남 이야기하듯 듣고 있던 이동은 영원의 물음에 고개도 들지 않았다.

“어이! 맞춰보라니까.”

영원이 이동의 팔을 쿡쿡 찔렀다.

“그런 짓을 왜 해요. 싫어요.”

이동은 단번에 거절했다. 강가 일은 듣고 싶지 않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었다.

“에헤이, 맞춰봅시다. 틀린다고 내가 비웃을 것도 아니고.”

영원이 다시 쿡쿡 찔렀다.

“싫어요.”

이동이 뒤로 몸을 피했다.

“한 번만! 분명 맞출 수 있습니다. 맞춰봅시다.”

영원이 고개를 내밀며 주전자를 들어 올리려는 이동을 붙잡았다.

“딱 한 번만요.”

“갈아입지 않았을 거예요.”

“정답!”

이동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고 영원이 탁자를 내리쳤다.

“당신 안목에 정말 감탄한다니까. 좋네요!”

이동은 어이가 없어 눈을 흘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음, 어제도 대영을 보내 알아봤거든요. 변함없이 솜옷, 솜바지 세 개가 주르륵! 강환장은 대체 그걸 어찌 견디는 걸까요? 그 점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인내심이 아주 대단합니다.”

“중요한 일이 많은 사람이, 강가는 왜 신경 쓰고 있어요?”

이동은 그가 강가 이야기 하는 걸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영원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잘 들어 봐요. 내가 쓸데없이 강가 일에 신경 쓴 덕분에 정말로 중요한 걸 알아냈는걸. 계 천관이 이미 진왕 쪽에 붙었습니다. 강환장을 여러 번 찾아갔어요. 대놓고 가르치고 타이르던데요. 쳇.”

이동은 너무나 의외였다.

“계 천관이요? 계 노승상의 아들? 계소영의 부친?”

“맞아요. 의외죠? 근데 왜 의외라고 생각하지? 나는 하나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영원은 그 일이 못마땅한 듯했다.

“의외인 게 아니라…….”

계소영이 있는데, 어째서 계 천관이 되었을까.

“휴, 진왕을 세우려는 사람도 있는데 누님과 소오는 아직 새장에 갇혀 있고.”

영원은 탁자를 내리치며 웃던 즐거움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큰 바위를 치울 수 있을까요. 첫째가 정말로 넷째에게 손을 쓴다면, 무슨 수를 쓰든 하나를 지켜야 해요. 둘 다 파멸하면 진왕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니까요. 어떻게 해야 그 바위를 치울 수 있을까요.”

“주 귀비요?”

이동이 나지막이 묻는 말에 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귀비가 살아 있는 이상 누님이 돌아오지 못하고, 누님이 돌아오지 못하면 소오도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래서 곤란한 국면인 겁니다. 내가 마음껏 손을 쓰면 누님과 소오가 모든 이에게 공격받을 겁니다. 음으로 양으로 공격하겠죠.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마음껏 움직이지 않으면, 지금 같은 상황이고. 휴!”

영원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팔걸이의자에 깊이 앉아서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초승달을 가리자 화원 안이 어두워지는 듯했다.

이동은 말없이 영원을 바라봤다. 그가 말한 곤란한 국면을 줄곧 생각했다. 전생엔 영원이 말한 대로 진왕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이번에도 한 걸음, 한 걸음 그 방향으로 가는 듯했다.

“이번에 경성으로 오면서 수하를 다 데리고 왔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정말 어쩔 수 없는 때가 오면, 수하들을 거느리고 선덕문으로 쳐들어갈 겁니다. 신이 막으면 신을 죽이고, 불조가 막으면 불조를 죽여서라도 싹 다 죽여 버릴 겁니다. 누님과 소오를 해롭게 하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싹 다 죽여 버리고 누님과 소오를 황궁으로 들여보낼 겁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죽으면 그만이고, 혹시 살아남으면, 죽음으로 하늘에 감사하면 그만이니까.”

이동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건 괜히 모질게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느낄 수 있었다.

달이 구름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영원은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고개를 들고 초승달을 올려다봤다. 이동은 그런 그를 바라봤다. 달빛이 비스듬히 영원의 한쪽 얼굴을 비췄다. 새까만 눈썹, 맑은 눈빛, 오뚝한 콧대 아래 붉은 입술. 눈이 부시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잘생긴 젊은이가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저 멀리서 닭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전해왔다. 영원은 꿈에서 깬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는, 자기를 바라보는 이동을 빤히 바라봤다.

“벌써 닭이 우는데요?”

영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닭 울음소리가 또 들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또렷했다. 이동이 웃으며 일어섰다.

“칠야, 얼른 돌아가세요. 조회에 늦겠어요.”

“네, 갑니다.”

영원이 기지개를 켰다.

“나 대신 당신 시녀에게 닷 냥씩 주어요. 음식도 좋고, 술은 더 좋았고!”

영원은 체면 차리지 않고 이동에게 한마디 남기고는 손을 젓고는 돌아서서 사라졌다.

이동은 느릿느릿 계단으로 내려가 하품을 참으며 느린 걸음으로 돌아갔다.

대황자가 분노, 상심, 슬픔, 갖가지 심정을 안고 대상국사에 들어갔을 때, 사황자는 아라를 주육 모친 명의의 오진 뜨락으로 기분 좋게 불러들였다.

아라는 중문에서 마차에서 내려 어멈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손님 중에 싫은 정도를 따지면 사황자가 단연코 일등이었고 이등은 저 멀리 있었다. 하지만 사황자는 지금껏 영 칠야가 그녀에게 내린 유일한 임무였다. 그러니 사황자가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싫게 굴어도 열심히 환심을 사려 노력해야 했다.

더울 정도로 따듯한 상방에 사황자가 옷깃을 풀고 벌써부터 짜증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사황자의 시선을 마주한 아라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번에도 예전이랑 똑같구나.

“이리 와라!”

아라가 가슴 가득한 엉망진창인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사황자가 짜증을 냈다. 아라는 더 요염하게 웃으며 허리를 흔들며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한 걸음 내디디고 멈칫하고, 다시 한 걸음 내디디고 또 멈칫하고.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게다가 문에서 침상이 너무 가까워서, 영 칠야 생각을 지우기도 전에 사황자가 덥석 그녀를 잡아 침상에 눕혔다.

아라의 노력과 부드러움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거칠고 조급해하던 사황자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긴 밤이 남아서 다급하게 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아라는 눈을 감고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마음도 열심히 다스렸다. 전보다 더 즐겁게 일을 치른 사황자는 바로 아라를 보내지 않고 즐거운 얼굴로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러니 소육이 널 칭찬하지. 기녀들은 어릴 때부터 사내 시중드는 법을 배운다지? 과연 좋구나. 우리 저택엔 너처럼 눈치 빠르고 분위기 아는 사람이 없다.”

사황자는 조금 전 운동이 매우 흡족한 듯했다.

아라는 드디어 또 한 번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 그러나 하반신이 여전히 쑤셨다. 이번에도 예전처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내보낼 줄 알았는데 웬걸 못 가게 할 줄이야. 아라는 배 속 가득한 원망과 함께 조금은 두려워졌다. 흥이 올라 또 달려들면 어쩌지?

배 속 가득한 원망이 조금씩 악의로 변한 아라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은지, 어떻게 애교를 부리는지, 그런 작은 기술만 배운답니다. 침상 일은요, 전에 사부는 항상 ‘정’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셨어요.”

“음? 정? 그게 무슨 말이냐?”

사황자가 놀란 듯이 물었다.

“제가 왕야를 잘 모셨다고 생각하시는 건, 제가 왕야에게 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왕야를 사모하니까요. 그러니 몸도 당연히 왕야를 사모하는 거죠. 마음이 있어서, 왕야도 기분 좋으신 거예요.”

아라는 지극히 요염하게 웃어 보였다. 사황자의 안색이 조금 흐려졌다.

“그럼 마음이 없으면? 기녀들이 모든 손님에게 마음을 품는단 말이냐?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마음이 없으면 몸이 굳어요. 우리 사부의 말을 빌려서 말해 보면, 사내들이 그런 여인을 목석이라고 느낀대요. 그 일도 촛농을 씹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다른 사람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요. 정이 없는 사람은 밤을 함께 보내지 않아요.”

아라는 갈수록 줄줄 말했다. 사황자의 안색이 아까보다 더 좋지 않았다. 아라는 그의 얼굴을 힐끔 살폈다. 사황자가 언짢아할수록 그녀는 즐거워졌다.

“정은 무슨. 기녀는 무정(無情)이요, 놀이패는 무의(無義)라고 했다. 연향루는 은자만 주면 밤을 보낼 수 있는 곳 아니냐. 넌 은자에게 마음이 있는 거다.”

“사왕야 같은 분은 기녀도 푹 빠지는 걸요. 은자가 좋긴 해도 은자는 은자, 사람은 사람이에요. 제가 사랑하는 건 사왕야 자체랍니다.”

사람을 어르는 건 아라의 본업이었다.

“입에 꿀을 바른 것 같구나.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따지지 않으련다.”

사황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눈썹을 휘날리며 웃었다.

“왕야, 무슨 일로 이렇게 기쁘세요? 아라에게 말씀해보세요. 아라도 기뻐하게요.”

아라는 생글생글 웃었다. 영 칠야가 분부하진 않았지만, 사왕야에게 말을 캐낼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부모님의 은혜만 생각하면 마냥 기쁘구나.”

사황자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황상과 귀비 마마가 사왕야를 가장 아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걸 오늘에야 아셨어요?”

아라의 말에 사황자가 미소 지었다.

“전에도 알았지. 다만 요즘은 더 똑똑히 보이는구나.”

“왕야, 말씀해보세요. 가르쳐 주시고요. 아끼는지 아닌지, 어떻게 하면 알아볼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사람 마음을 알 수 있죠?”

아라가 계속해서 어리광을 부리며 매달리자 사황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그럼 가르쳐주마. 예를 들면, 같은 일을 다른 여인이 하는 걸 보면 내가 벌을 주는데, 네가 하는 걸 보면.”

사황자가 아라의 이마를 톡 때리며 말을 이었다.

“못 본 척하고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그게 널 아끼는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