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61화 (261/463)

261화: 긴 수다

“곤란하고 혼란한 일이 있어서?”

이동이 툭 내뱉었다.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녀는 안팎으로 곤란을 겪었다. 그 시절에 그녀는 사찰을 찾아다니며 법사를 열고 보살 앞에 앉아 있었다. 가르침을 구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쁜 짓을 하거나 나쁜 생각을 품을 때도 보살을 찾아 용서를 구하겠지요.”

영원이 싸늘하게 웃었다. 이동은 동의하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었다.

“당신에겐 좋은 일이 맞는데 왜 기분 좋은 것 같지 않죠?”

이동이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이동의 물음에 영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좋은 일은 맞습니다만, 좋은 일이면 또 무얼 합니까?”

영원이 술을 꿀꺽 삼켰다.

“오늘…… 아니 어제, 궁에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겁니다. 큰일이요.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를뿐더러,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정북후부에서 떠나온 이래 지금까지, 궁 안 일엔 손가락 하나 꼼짝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엄두를! 못하는 게 아니라! 난 어전 시위로서 시위영에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형 아우로 지내고, 밤이 되면 선덕문 안에서 벌어지는 노름판이라면 어디든지 내 마음대로 갑니다. 노름하는 사람은 시위도 있고 대부분 내시입니다. 은자를 조금만 뿌리면 끄나풀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요! 작은 틈 하나만 파면 깊이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럴 엄두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왜인지 압니까?”

이동이 눈을 내리깔았다.

“낭자는 알겠지. 그렇지요? 나는 장공주 상대가 아닙니다. 궁 안엔 태의원, 승록사, 심지어 태복시(太僕寺: 궁중의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관청)도 건드릴 수가 없는데…….”

“태복시요?”

이동이 놀란 듯이 물었다. 장공주는 한 번도 태복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태복시경이 장공주 유모의 큰아들입니다. 선황 붕어 1년 전에 임명한 태복시경입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20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장공주가 아직 움직이지 않을 뿐입니다.”

영원은 설명해주고 말을 이었다.

“선황께서 붕어하기 1년 전쯤 조정 인사의 변동을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이렇게 티 나지 않는 자리 이동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보세요, 이런데 어찌 감히 장공주를 건드리겠습니까?”

이동은 고개 숙이고 술을 따라 주었다.

“정북후부를 떠날 때 아버지가 경고했습니다. 반드시 신중히 해야 한다고. 경성은 북삼로가 아니라서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이 많다고. 그중에 첫 번째가 바로 장공주였습니다.”

영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장공주가 어떤 분인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어떻게 감히 눈 밖에 날 일을 하겠습니까? 내 약점, 영가의 약점을 알고 있어요. 누님과 소오까지.”

“장공주는 그럴 분이…….”

이동의 말이 뚝 끊어졌다. 장공주라면 그럴 수 있었다.

영원이 피식 웃었다.

“내가 경성에 오자마자 소오를 끌고 나와서 내게 경고했어요. 장공주의 구역에 내가 손을 뻗으면 무슨 일을 할지 누가 압니까? 누님과 소오 일만으로 나는 이미 꼼짝 못 합니다.”

이동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장공주가 별궁 이야기를 몇 번 거론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의미가 명확했다. 그 별궁, 영 황후와 오황자가 기거하는 그 일대에 영 황후가 장악한 건 일부에 불과했고 다른 곳은 장공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영 황후와 오황자가 장공주의 손아귀에 있다는 건 정말 과장이 아니었다.

“궁 안에 손을 쓸 수가 없고 육부도 과하게는 건드리지 못해요. 아니, 거기도 함부로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해야겠네요.”

영원이 갈수록 깊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조정은 주군이 약세, 신하가 강세입니다. 묵 승상, 여 승상, 그리고 계 천관의 천하입니다. 내가 건드려도 될 사람이 있습니까? 무섭지는 않아요. 누님과 소오를 어쩌지 못할 테니까. 내 문제로는 더 두려워할 것 없고. 하지만 내가 손을 쓸수록 그들은 진왕에게 기울 겁니다. 약한 주군에 익숙한 그들은 두 번째 나약한 주군을 원할 겁니다. 지금도 그들 눈에 가장 좋은 태자 후보는 분명 진왕일 테지요.”

영원은 잔을 탁 소리 나게 이동 앞에 내려놓았다. 이동이 술을 채워주자 영원은 물 마시듯 한 모금 들이켰다.

“약한 척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씨 가문이 긴 세월 그래왔던 것처럼. 경성과 북삼로 외의 곳엔 손을 뻗지 않는 것으로 북삼로를 지켜 왔어요. 내가 약한 척해야 그들이 소오를 조금이라고 고려합니다. 보세요, 내가 이런 상황입니다. 손이 묶이고 발도 묶였습니다. 이렇게요. 그런데도 누님과 소오의 살길을 찾아주려면 전장에 나서서 싸워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는…… 나는 답답해 죽을 것 같습니다.”

이동이 빈 주전자를 영원 앞으로 밀어주자 영원은 일어서는 김에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술을 주전자에 따랐다.

“난 도움이 안 돼요.”

이동의 목소리는 낮고 가벼웠다.

“도울 필요 없습니다. 누가 누굴 돕겠습니까. 경성에 낭자가 있어서 적어도 이야기할 사람이 있는 겁니다.”

“앞으로 이야기하고 싶으면, 나라도 괜찮으면 찾아와요.”

이동이 술에 생강과 당을 넣으며 나긋나긋 말했다.

“집 떠날 때부터 어려운 일임을 각오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낭자, 내가 누님과 소오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영원이 한 손으로 잔을 쥐고 다른 손은 팔꿈치를 탁자에 걸치고 턱을 괸 채 울적한 듯 물었다. 술이 조금 취한 모습이었다.

“그럼요.”

이동은 매우 확신에 차 대답했다. 영 황후와 오황자를 구하기만 하는 거라면 아마 가능할 것이다.

“술 많이 드셨어요.”

“아뇨.”

영원이 이동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낭자의 술은 당수(糖水) 같아서 두 동이를 다 마셔도 안 취합니다.”

“그래도 많이 마시지 말아요.”

영원은 매우 순종하는 얼굴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한 동이만.”

이동은 유심히 그를 살폈다. 조금 술기운이 돌긴 하지만 눈빛이 또렷한 걸 보고 술동이를 들여다봤다. 동이에 술도 많이 남지 않았다. 그럼 한 동이는 다 마시게 두자.

“소오는 그 나이 되도록 명절이란 걸 모릅니다.”

영원은 술잔을 흔들며 서글픈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나는 그 나이 때 해도 되는 일, 하면 안 되는 일 모두 하며 놀았는데. 북삼로에 안 가본 곳이 없고 못 본 구경거리가 없었는데. 소오는 낭자와 함께 진하 부두에 한 번 가본 게 답니다.”

“앞으로 갈 수 있을 거예요.”

이동이 공허하게 그를 위로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영원은 역시나 술에 취하지 않았다. 취하지 않았을뿐더러 정신이 매우 맑았다.

“내가 하려는 일이 성공하면, 누님과 소오만 그 새장에서 꺼내서 경성으로 돌려보내기만 하면, 낭자, 내가 장담하건데 누님은 분명 소오를 그 의자에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궁궐 문을 나오기가 어려워져요. 성문을 나오는 건 더더욱 어려운데 가긴 어딜 갑니까.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나, 누님, 그리고 소오는 죽음뿐입니다.”

영원은 별안간 말을 멈추고 잔을 입술에 대고 조금씩 홀짝였다.

“죽으면…… 혼백이 되어 밤에 사방을 떠돌겠군요. 그렇게 되면 낭자의 말도 허튼소리는 아니겠네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이동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곡해하다뇨!

“우리 둘 사이에 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 되죠. 개의치 말아요.”

영원이 잔을 들어 이동 앞에 놓인 잔에 부딪혔다.

“자, 한잔합시다. 우리 영가 사람은 생사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말합니다. 내가 경성에 온 이상,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성공하면 왕, 실패하면 죽음. 못 할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대와 나, 뻔히 아는데 말 못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동은 잔을 들어 올려 술을 마시고는 잔을 뒤집었다. 영원은 보자마자 잔을 다시 제대로 돌려놓았다.

“잔 덮지 맙시다. 더 마셔요. 나랑 한잔합시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전자를 들어 이동에게 따라주고 자기 잔도 채웠다.

“이런 이야기 하지 말고 다른 이야기 합시다. 강환장이 찾아왔었나요?”

영원은 팔꿈치로 탁자를 지탱하며 고개를 내밀고서 이동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뭐라고 하던가요?”

“뭐라고 하긴 뭐라고 하겠어요. 어디서 곡씨를 찾았는지 묻더군요.”

“낭자를 의심하다니……. 음.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니지. 곡씨는 문도가 찾아냈고, 문도는 이가 막료니까 낭자가 찾은 거나 마찬가지지.”

영원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서는 한쪽 다리를 팔걸이에 걸쳤다.

“낭자를 떠올리다니, 머리를 굴리긴 하는군.”

영원이 갑자기 다리를 내리더니 두 팔로 탁자를 짚고서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저기, 당신처럼 가냘픈 어린 낭자가, 어디에 서 있어도 나긋나긋, 수묵화 같은 모습인데, 난 당신만 보면 즐거운 생각밖에 나지 않아요……. 아니, 아니, 그런 즐거운 생각이 아니라, 오해하지 말아요. 내 말은, 당신만 보면 꽃이 피는 것 같다는 거지. 봄이 오고 달이 뜨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다 이렇게 아름답고 즐거운 생각만 나는데 강환장은 곡씨 일로 당신을 떠올리다니. 나라면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걸!”

이동은 영원의 눈을 노려보았다. 무슨 말이지. 칭찬이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난 강환장이 너무나 이상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영원이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이동의 얼굴에 더 가까이 얼굴을 내밀었다.

“스물 남짓한 나이에 지나치게 침착한 것 같지 않습니까?”

이동은 가슴이 철렁했다. 무심결에 뒤로 몸을 기댔다가 얼른 다시 당기고는 은주전자를 들어 영원에게 술을 따라주며 시선을 피했다.

“어릴 때부터 성숙한 사람도 있긴 하지요. 계 노승상 같은 분이 바로 스물 몇부터 침착했어요. 그분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환장 그놈이?”

영원은 입을 비죽이며 무시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고씨 말입니다, 말해 봐요. 뭐가 대단합니까? 있잖습니까, 내가 직접 가서 그 고씨를 몇 번 봤습니다. 대체 특별한 점이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요. 저기, 강환장 그놈, 눈이 삔 것 아닐까요? 당신이 아니라 고씨를? 눈이 얼마나 삐면 그럴 수 있답니까? 그리고 고씨에게 안살림을 맡긴 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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