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51화 (251/463)

251화: 혼인을 강요하다

강환장은 얼굴이 꾀죄죄하니 촌부만도 못한 고 이낭을 빤히 바라봤다. 강환장이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는 모습에 고 이낭은 매우 기뻐서 얼른 청서를 뿌리치고 다가가서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고 이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환장과 딱 붙어선 곡 대내내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잘랐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잘 생각해. 오라버니라고 부를 거면 당장 고가로 돌려보낼 테니까!”

“오라버니!”

고 이낭은 곡 대내내는 상대도 하지 않고 강환장만 바라보며 바짝 다가갔다. 오라버니가 돌아왔는데 곡씨를 안중에 둘 이유가 없었다. 예전의 이씨도 안중에 둔 적 없거늘.

곡 대내내는 싸늘한 눈빛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강환장은 순간 계 천관의 말을 떠올렸다.

“대내내의 말이 맞다. 법도는 지켜야지.”

곡 대내내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순간 기뻐서 두 뺨이 붉어졌다. 고 이낭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강환장을 바라봤다. 제 귀를 의심했다.

“오라버니…….”

“이 천것! 귀가 먹었니? 그렇게 오라버니라고 부르고 싶다면, 여봐라! 짐을 싸서 얼른 이것을 고가로 돌려보내라!”

곡 대내내의 기세가 아까보다 열 배는 올라갔다. 하지만 고 이낭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오로지 오라버니만 바라봤다.

“오라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 팔자야. 오라버니. 예전에 했던 말, 다 잊었어?”

고 이낭은 예전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고 앞으로 다가가서 품에 안기려고 했다. 하지만 강환장이 무심결에 뒤로 한 발짝, 또 한 발짝 물러섰다. 그 틈에 곡 대내내가 성큼 앞으로 나와서 깔끔하게 강환장과 고 이낭 사이에 끼어들더니, 강환장의 품에 안기려는 고 이낭을 밀쳤다.

“여봐라, 이 천것을 어서 끌고 가라. 우리 집안이 싫다고 하니 얼른 고가에 되돌려주어라! 이 천한 것!”

“데리고 가라.”

강환장은 당황한 듯 청서에게 분부했다. 청서는 멍하니 반응하지 못했고, 강환장은 곡 대내내를 지나쳐서 서둘러 밖으로 나가면서 다시 분부했다.

“청서, 고 이낭을 데리고 가라.”

그는 조금 놀랐다. 얼굴에 땟국물인지 뭔지가 묻고 온몸이 먼지투성이인 데다, 눈은 탱탱 부어서 솥에 던졌다가 다시 건진 덩어리 같은 사람이 정말 고씨인가. 몇십 년 동안 봐 오고, 몇십 년 동안 빠져 있던, 선녀같이 아름답던 고씨가 맞나.

이건 고씨가 아니다!

수국공부 조 노부인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변함없이 보림암을 찾았다. 보기 드문 좋은 사내 한둘의 사주를 들고 갈 때도, 빈손일 때도 있었다. 가서 서둘러 혼인하고 아이를 낳아 지아비를 내조하고 아들을 가르치는 현모양처가 되라고 복안 장공주를 가르쳤다. 세상 모든 여인이 걸어야만 하는 정당한 길이니까.

처음에 함께 앉아서 조 노부인의 긴 교훈을 같이 들은 후로, 복안 장공주는 다시는 이동을 동석시키지 않았다.

온 집안이 어리석고 억지 쓰는 수국공부의 전통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이어져 왔고, 조 노부인은 조씨지만 진정한 주씨 가문 사람이었다.

‘네가 곁에 앉아 있으면, 조 노부인은 너를 보면 볼수록 내가 긴 세월 동안 혼인하지 않는 잘못이 네 탓이라고 생각하고 너에게 뒤집어씌울 거야. 그러다 보면 너만 제거하면 내가 혼인한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이런 쓸데없는 화는 피하는 게 좋아.’

복안 장공주의 생각은 그랬다.

다행히 조 노부인은 나이가 많아서 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복안 장공주가 내주는 의자는 불편하고 차는 번번이 노부인이 싫어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나는 냄새도 그녀를 괴롭게 해서 일장 연설을 반 시진 정도 늘어놓은 후에는 지칠 대로 지쳐서 부축받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하루, 보름엔 이동도 대략 반 시진 늦게 나서서 보림암을 찾았다.

섣달 초하루, 이동은 평소처럼 반 시진 늦게 자등 산장에서 나섰다. 보림암 후원에 들어서자마자 온 뜨락에 평소와 다른 심각한 기운이 가득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듣기 거북한 말을 하던가요?”

이동은 복안 장공주 맞은편에 앉아서 나긋나긋 물었다. 복안 장공주는 찻상에 두 자 넘게 쌓인 붉은 청첩을 턱으로 가리켰다.

“봐 봐. 이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 고르래. 해 지기 전에 성으로 사람을 보내서 알리라네.”

“뭐라고요?”

이동은 너무 놀라 고함치면서 청첩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복안 장공주가 몸을 기울이더니 청첩을 툭 쳐서 날려버렸다. 날아가서 묵직하게 땅에 떨어지는 청첩들을 바라보며, 이동은 곧바로 영원의 짓인가 하고 떠올렸다. 복안 장공주를 도망갈 수 없는 사지로 몰아세우려는 건가?

“조만간 벌어질 일이라고, 장공주도 말씀하셨었잖아요.”

이동은 청첩 더미를 들어 올리고 바닥에 떨어진 것도 주워서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내던졌다. 복안 장공주는 이동이 청첩을 버리는 걸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청첩들이 그녀를 짓누르는 바위였던 것처럼, 던지고 나니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처럼.

“너무 갑작스러워.”

복안 장공주는 이동이 창문을 닫는 걸 바라보며 답답한 듯 말했다.

“연말이잖아요. 전에 외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도 섣달만 되면 잔소리하셨어요. 동저아, 너도 이제 어리지 않다. 슬슬 시집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하면서요.”

이동은 수건을 짜서 찻상을 닦았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어.”

복안 장공주는 웃고 싶은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예전엔 안 그랬대도 앞으론 그럴 거예요.”

이동은 상을 다 닦고 손을 씻은 다음 다시 맞은편에 앉아서 다구를 꺼내 찻잎을 그을렸다.

“앞으로…….”

장공주는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리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슬슬 앞날을 계획하셔야 해요.”

이동은 곧바로 차를 가는 게 아니라 고개를 들어 진지한 얼굴로 장공주를 바라봤다.

“이 마당에 숨어서 못 본 척, 못 들은 척,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오늘은 조 노부인이 청첩을 가지고 온 것이니 버려도 그만이지만, 내일 황상도 청첩을 잔뜩 보내면요? 내일 안에 고르라고 하면요? 그것도 버리실 거예요?”

“네가 버렸잖아!”

복안 장공주가 아이처럼 대답했다.

“예. 제가 버렸어요. 그렇다고 내일 황상이 청첩을 보내면, 그걸 제가 버릴 수 있나요? 안 버리면, 고르실 건가요, 말 건가요? 고르신다면 할 말 없고, 안 고른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머리 깎고 출가하실 거예요? 황상이 허락하실까요? 황상이 허락하지 않는데 누가 머리를 깎아드릴까요? 혼자요? 그럼 곁에 있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목이 날아갈 텐데요? 그러실 수 있으세요?”

이동의 가차 없는 말에 복안 장공주의 안색이 오히려 좋아지더니, 아무 말 없이 이동을 흘겨봤다.

“황상은 선황 앞에서 장공주의 뜻대로 해주겠다고 맹세하셨어요. 하지만 황제가 정말로 금구옥언(金口玉言), 한 말은 모두 지키던가요?”

이동은 복안 장공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설령 황상을 이겨낸다고 쳐요. 새로 황위에 오르는 분은 안 그럴까요? 혼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서 이 작은 뜨락에서 평생 살도록 해줄까요? 황상이 눈 감기 전에 새 황상에게 장공주의 혼사를 부탁하는 유언을 남기면요? 그럼 어쩌실래요? 새 황상은 어떡할까요?”

복안 장공주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이동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공주는 저와 다르세요. 저는 버틸 수 있지만, 장공주는 그러지 못하세요. 저는 벗어났지만, 장공주는 벗어나지 못하세요.”

“일단 돌아가.”

복안 장공주가 싸늘하게 말하고 일어서서 뒤로 들어갔다. 이동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갈아놓은 찻가루를 잔에 넣고 차를 내려서 천천히 홀짝이고는 그제야 일어섰다.

다음 날 아침, 이동이 보림암 밖에서 마차를 내리자마자 도생 사태가 그녀를 맞이했다.

“이 보살, 장공주께서 전갈을 남기셨습니다. 황상께서 입궁하라는 기별을 보내셨답니다. 아침 일찍 입궁하셨어요.”

이동은 가슴이 철렁했다.

“언제 가셨어요?”

도생 사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소식은 언제 왔나요?”

“반 시진 전입니다.”

도생은 할 말이 있는 듯 이동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합장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별원으로 가.”

이동은 마차에 올라서 대교에게 분부했다. 대교는 마차를 별원으로 몰았다.

별원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던 이동은 지난번에 갔었던 각문으로 가자고 분부했다.

보아하니 이 문은 쓰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이 별원의 대문은 항상 이렇게 굳게 닫혀 있었다. 열린 적이 있긴 한지 모를 노릇이었다. 복안 장공주는 항상 각문으로 출입했다.

이동은 각문 밖에 서서 수련이 한참 동안 문을 두드리는 걸 지켜봤다. 각문 안은 여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수련은 손이 다 아플 정도로 문을 두드리다가 이동을 돌아봤다. 이동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차에 올랐다. 수련이 다급하게 마차에 오른 후 대교가 마차를 몰고 자등 산장으로 돌아갔다.

자등 산장 입구, 강환장이 한 손을 뒷짐 진 채 꼿꼿이 자등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독산은 말을 끌고서 산장 안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듯 열심히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보려 했다.

“낭자, 강가 세자야가 우리 장원 앞에 서 있습니다!”

마차가 자등 산장으로 향하는 큰길로 들어서자마자 대교가 강환장과 독산을 발견하고 다급히 고삐를 잡았다.

대교가 너무 급하게 고삐를 잡은 바람에 마차 안에 있던 이동이 흔들려서 앞으로 쏠렸다. 그녀는 다급하게 마차 벽을 짚으면서 휘장을 젖히려는 수련을 말렸다.

“세울 것 없어. 볼 것도 없어. 상대하지 마. 우리는 그냥 돌아가면 돼.”

“예.”

대교가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상관없는 사람을 상대할 것이 무엇인가. 그 생각에 대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마터면 낭자의 체면을 깎을 뻔했다. 그는 얼른 고삐를 고쳐 쥐고 아무것도 못 본 듯이 말 두 마리를 몰고 느긋하게 자등 산장 쪽으로 향했다.

강환장이 기척을 듣고 돌아서서 마차 앞에 단정하게 앉아서 채찍을 휘두르는 대교와 대교 뒤의 커다란 주단 마차를 바라봤다.

마차는 강환장을 지나쳐 곧장 측문으로 들어갔다. 강환장은 두봉을 털고 계단에 올라 문고리를 두드렸다. 문틈으로 문지기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대낭자에게 내가 만나자고 한다고 전해라.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문지기는 잠시 주저하다가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돌아오는 내내 복안 장공주가 돌연 궁으로 불려간 일로 조마조마해서 잠시도 진정하지 못했던 이동은 문지기의 말을 듣고 돌아보지도 않고 분부했다.

“내가 만나는 건 불편하다고, 할 말이 있으면 대야를 만나라고 해.”

“대야는 안 계십니다. 어제 성으로 문회 하러 가셨습니다. 내일 돌아오신답니다.”

문지기가 이동 뒤를 따르며 하는 말에 이동은 걸음을 멈췄다. 수련이 뒤에서 건의했다.

“태태는 댁에 계시니까 태태를 만나라고 할까요. 아니면 안 만나겠다고 하던가요. 낭자가 만나는 건 그렇잖아요.”

이동은 잠시 침묵하다가 중문에서 가장 가까운 난각으로 향했다.

“모시고 와.”

“낭자, 정말 만나시려고요? 이야를 모시고 올까요? 이야와 함께 만나시는 게…….”

수련은 조금 당황했다. 아직 예전의 고야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럴 것 없어.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어. 예상한 일이야. 경성에 돌아오자마자 올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미룰 줄은 몰랐네.”

“그럼 제가 곁에 있을게요.”

수련은 이동 뒤에 바짝 붙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낭자를 보호할 생각이었다.

이동이 막 난각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강환장도 도착해서 난각 안으로 들어섰다. 이동을 보지도 않고 우선 난각을 살피더니 난각의 남쪽 창문 앞으로 다가가서 창문을 밀었다.

“이 난각은 남쪽 경치가 제일 좋지. 1년 사계절을 다 볼 수 있으니 말이지.”

수련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강환장을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알지? 여기 온 적이 있나? 말도 안 돼. 내가 모르게 그럴 수가 없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