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또 일을 망치다
주 귀비는 그 말이 거북했다.
“내가 왜 화를 낸단 말이냐? 미천한 기녀를 상대로 내가 왜 화를 내? 네 아우가 올해 겨우 몇 살이냐. 철없는 어린아이다. 이게 큰일도 아니고, 어미인 내가 이런 일을 신경 쓰겠느냐? 내가 왜 화를 낸단 말이냐?”
“모비가 화가 났든 아니든, 주홍년을 죽인 건 넷째입니다. 제가 봤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당시 무창 상행 밖을 겹겹이 에워싼 사람들이 모두 봤습니다. 부황이 굳이 그 녀석을 감싸려고 하시다니, 사람을 죽이고도 벌 받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황자는 아무나 죽여도 됩니까? 부황이 그렇게 감싸기만 하는 건 망국의 징조입니다.”
대황자가 나름 완곡하게 말한 편이었지만, 주 귀비의 귀에는 매우 거슬렸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망국의 징조? 망국의 징조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느냐? 갈수록 애가 되는구나. 넷째는 네 아우다. 아들인데, 아버지가 감싸지 않을 수 있느냐? 주가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을.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어떻게 아우를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모비, 제 말은 다 사실입니다.”
대황자는 ‘사랑이 깊은 만큼 엄하게 가르친다’는 말을 속으로 읊으며 분노를 억누르고 그래도 온화한 말투로 주 귀비를 설득했다.
“부황은 아비이기 이전에 나라의 주군입니다. 나라가 먼저, 집안은 다음입니다. 넷째 문제를 이렇게 처리하시면 안 됩니다. 주홍년은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라 넷째가 저에게 뒤집어씌우려고 꾸민 겁니다. 저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주홍년을 죽였습니다. 살인은 중죄인데 모함도 큰죄입니다. 하지만 부황은 보고도 못 본 체하십니다.”
“말하는 것 좀 보아라! 난리 났구나!”
주 귀비는 대황자가 황상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는 걸 보고 놀라고 화가 났다. 황상이 잘못할 리가 있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황상은 잘못한 적이 없거늘!
“황상께서 언제 잘못한 적이 있으시냐? 황상 잘못이라고 하다니, 정말 정신 나간 게로구나. 그리고 네 아우도 그렇다. 네 아우가 얼마나 겁이 많은데. 어릴 땐 벌레 하나 죽이지 못했다. 사람을 죽여? 네 아우를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느냐. 이게 아들이 할 소리냐? 형님이 할 소리야?”
대황자와 성격이 비슷한 주 귀비는 입만 열면 자신의 논리로 생각이 흘렀다. 상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거나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이해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가 뭘 했다고 형님답지 않다고 하십니까? 제가 형님답지 않다면, 넷째는 아우답습니까? 왜 그건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까? 이 일은 제가 옳습니다! 넷째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헛소문만 믿고 뛰쳐 들어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까? 사람을 죽였으면 누구라도 죽어 마땅합니다. 황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황은 국법도 무시하고 그놈을 감싸고, 모비는 저만 나무라시는군요. 그놈이 잘못한 겁니다. 명백한 그놈의 잘못입니다!”
대황자는 화를 억누르지 못했다.
“네 아우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러고도 네가 형님이냐? 넌 어릴 때부터 그랬다. 사사건건 아우와 다투고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지. 너는 형님이다. 형님다운 곳이 어디 있느냐?”
주 귀비도 화가 치밀었다. 두 아들이 쉴 새 없이 사달을 일으켜서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니 기분이 좋을 리 있나.
“예,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럼 그놈은 아닙니까? 어릴 때부터 저를 형님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먼저 그런 게 아니라 그놈이 먼저 불경했습니다! 넷째가 태어난 후로 모비는 절 쓸모없다 여기셨지요. 그놈만 편애했습니다. 모든 일에 그놈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놈은 어리고, 그놈은 아우니까 다 저더러 양보하라 하셨습니다. 제가 왜요? 그놈은 아우입니다. 저를 형님으로 여겼답니까?”
대황자의 목소리가 주 귀비의 목소리보다 커졌다. 주 귀비는 화가 나서 손발이 서늘해졌다.
“내가 널 어찌 대했기에? 뭘 잘못했기에…….”
대황자와 주 귀비는 각자 자기 이치만 주장하고 상대의 말은 전혀 듣지 않았다. 갈수록 목소리가 높아지고, 갈수록 분노가 커졌다. 대황자가 벌떡 일어서서 주 귀비를 손가락질했다.
“제게 잘해줬다는 말씀이 나옵니까? 이렇게 저를 괴롭히는 것이 잘해주는 겁니까? 저는 태어나자마자 태자가 돼야 했을 몸입니다. 그런데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그러고도 잘해줬다는 말이 나옵니까? 절 견제하고 위협하려고 넷째를 낳은 걸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이런 고얀 자식!”
주 귀비는 삿대질해대는 대황자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대황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소매를 휘두르고는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는 큰아들의 모습에 화가 나서 목 놓아 울었다.
대황자는 분개한 마음으로 장녕궁 밖으로 달려나가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황상과 부딪칠 뻔했다.
“무슨 일이냐?”
화가 나서 얼굴이 다 뒤틀린 아들을 본 황상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황자가 화를 누르며 뻣뻣하게 대답하고는 황상을 지나쳐서 나가려고 할 때, 황상도 정전에서 흘러나오는 어렴풋한 울음소리를 이미 들었다.
“돌아와라!”
황상이 굳은 얼굴로 대황자를 불러 세워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명령하고는 걸음을 서둘러 정전으로 들어갔다. 화항에 쓰러져서 우는 주 귀비를 보고 물을 것도 없이 대황자 때문임을 알아봤다. 대황자 말고 감히 그럴 사람이 누굴까.
황상은 정전 입구에 서서 대황자를 불러들인 다음 대전 안에서 울고불고하는 주 귀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말해 보아라. 어떻게 감히 네 어미를 저렇게 울린 것이냐? 이게 네 효도냐? 응?”
대황자는 고개를 비틀고 한마디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꼴 좀 보아라! 지금 이 꼴이 무엇이냐! 셋째가 아무리 그래도 네 아우다! 어떻게 거리에서 채찍을 휘두를 수가 있느냐! 걸왕 주왕에 버금가는 행위라는 걸 모르느냐? 짐이 사가아를 편애한다고? 네가 거리에서 셋째를 때렸을 때, 짐이 널 위해 탄핵 상주를 얼마나 많이 물렸는지 아느냐? 몇 광주리였다! 광주리로 들고 들어올 양이었어! 다 짐이 짊어졌다! 모르느냐? 그땐 어째서 짐이 널 편애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근래 네가 얼마나 일을 많이 일으켰느냐? 고치지는 않고 오히려 갈수록 더하는구나! 오늘은 짐에게 대들더니, 지금은 네 어미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네 효도는 무엇이냐!”
대황자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황상 앞에 서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잘못하지 않았으니까.
“짐이, 짐이 얼마나 많이 말했느냐? 응? 너, 그리고 사가아에게 가장 중요한 건 ‘효’라고. 네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그다음이 충이다. 지금 네 꼴을 봐라. 아우를 채찍으로 때리고, 동복형제인 친아우를 사지로 몰고 있다. 그건 불인(不仁)이며, 어머니에게 대든 것은 불효요, 짐에게 불경한 것은 불충이다. 불인, 불효, 불충을 모두 저지른 네게 짐이 눈을 감은 후 네 어미와 아우, 국가 대업을 안심하고 넘길 수 있겠느냐? 짐이 감히 그럴 수 있겠느냐?”
대황자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휙 들었다.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황상이 손가락질하며 분부했다.
“무릎 꿇어라. 네 어미 화가 풀릴 때까지 꿇어라!”
대황자는 털썩, 정전 입구에 무릎을 꿇었다. 귓가가 윙윙 울리고 황상의 말이 계속해서 귓전에 메아리쳤다.
불인, 불효, 불충을 모두 저지른 네게 짐이 눈을 감은 후 네 어미와 아우, 국가 대업을 안심하고 넘길 수 있겠느냐?
불인, 불효, 불충을 모두 저지른 네게 짐이 눈을 감은 후 네 어미와 아우, 국가 대업을…….
짐이 감히 그럴 수 있겠느냐? 짐이 감히…….
그 말이 쉴 새 없이 천둥처럼 귓전에 메아리쳤다. 생각할 수도 없고, 혼도 빠져나갔다.
대황자는 자기가 얼마나 오래 꿇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자기가 무슨 정신으로 무릎을 꿇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그를 부축해서 봄처럼 따듯한 정전 안으로 들인 다음 눈물을 철철 흘리며 마음 아프기 짝이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 귀비, 그리고 허탈한 와중에 마음 아픈 듯 바라보는 황상을 대하고서야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대황자는 주 귀비를 빤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떼고 황상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나.
“황상, 아이가 겁에 질렸지 않습니까.”
주 귀비는 멍하니 얼이 빠진 대황자 때문에 가슴을 칼로 베는 것 같았다.
황상은 얼굴이 퍼레져서 넋이 나간 대황자를 보며 마음 아픈 가운데 후회했다.
아까 말을 너무 심하게 했구나. 두 아들 모두 매우 선량하고 겁이 많은데…….
“됐다. 짐이 몇 마디 했다고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 짐의 장자가 어찌 이리도 간이 작아.”
황상의 말투가 곧바로 누그러지고 온화해졌다.
“부황의…….”
대황자는 다시 정신이 돌아오고 조금씩 생기를 찾았다.
“부황의 가르침이…….”
“네 부황이 무슨 말씀을 하셨든 다 널 위해 한 말씀이다. 네 부황도 화가 나서, 홧김에 한 말씀이다. 고치면 된다. 얘야.”
주 귀비는 황상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어릴 때부터 겁이 많더니, 커서도 이럽니다. 이렇게 겁 많은 아이가 무슨 나쁜 짓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사가아도요. 다 어린애입니다. 궁에 있을 땐 얼마나 좋았나요. 나간 후로는……. 밖엔 대가아와 사가아를 이간질하는 소인배뿐입니다. 잡아서 때려죽여야겠습니다.”
주 귀비는 두 아들의 잘못을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이 사주한 것으로 돌렸다.
“짐도 안다. 다만 아이가 커서 집을 이루고 왕부를 세웠으니 당연히 궁 밖으로 나가야지. 이건 법도다.”
황상은 주 귀비를 위로하고 조금 엄숙한 얼굴로 대황자를 돌아봤다.
“잘 들어라. 너도 이제 어리지 않다. 왕부를 세우고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을 낳은 어른이다. 어릴 때처럼 허튼짓하면 안 돼. 사가아도 마찬가지다. 짐과 네 어미는 나날이 나이 들어간다. 몇 년이나 너희들을 돌볼 것 같으냐. 앞으로는 두 사람이 의지하고 도와야지. 전장에서 부자지간인 것처럼 돕고 친형제처럼 싸우라고 했다. 앞으로 네가 의지할 사람은 사가아다.”
대황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친형제처럼 싸우라고 하는 걸 보니, 친형제가 맞기는 하네. 친형제라서 너 죽고 나 살기로 싸우는 건가 보지.
“……어릴 때부터 짐은 네 성격이 강인하다고 여겼다. 앞으로 네가 네 아우를 잘 돌봐야 한다. 근래 어째서 자꾸 어긋난 길로 가는 거냐.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네 아우를 사지로 몰려고 하다니. 큰애야, 네가 이러면 짐이 어찌 마음 놓고 사가아를 네게 맡기겠느냐. 사가아는 그런 면에서 너보다 낫다. 너희 형제 둘 다 무탈하게 잘 지내야 한다. 아니면 네 어미가 어찌 살아가겠느냐.”
사가아가 낫다는 황상의 말에 대황자는 가슴이 쿡 쑤셨다. 놀라고 두렵고 고통스러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잘 들어라. 짐이 눈 감은 뒤, 네 어미, 너, 사가아 모두 잘 지내야 한다. 큰애야. 잘 생각해라. 사가아의 장점을 보려고 해보아라. 보고, 배울 건 배우고…….”
황상이 고심하며 구구절절 읊는 말을 대황자는 듣고 싶은 부분만 들었다. 예를 들면 사가아가 너보다 낫다, 사가아의 장점을 배워라 같은.
“……됐다. 돌아가서 푹 쉬어라.”
입이 마르게 훈계한 황상은 차를 연달아 마시고는 손을 저었다. 주 귀비는 마음 아픈 표정으로 얼굴이 시퍼레진 대황자를 바라봤다.
“대가아의 안색 좀 보세요. 추위에 너무 오래 떨었어요. 여봐라. 가마로 대가아를 모셔라. 왕부에 다녀오라고 태의원에 전갈도 넣고. 제대로 진맥하라 해라. 그리고 곽씨에게도 대왕야가 추위에 떨었으니 세심히 모시라고 전해라. 대가아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대전 안에 있는 시녀와 대전 밖의 내시 모두 연신 대답하고는 가마를 들고 와 대황자를 왕부까지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