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41화 (241/463)

241화: 아부는 쉽지 않아

대황자는 곧바로 돌아서서 나갔고, 사황자는 무릎을 꿇은 채 대황자가 대전에서 나가는 걸 보다가 눈알을 굴리며 무릎걸음으로 황상 앞으로 다가갔다.

“부황, 큰형님의 성격이 갈수록 포악해집니다. 부황에게 고함을 지르다니요. 앞으로…….”

“됐다.”

황상은 심란한 듯 사황자의 고자질을 무질렀다.

“이번 일은 네 형 잘못이 3할이라면 네 잘못은 7할이다! 설령 주홍년이 잘못했고 율법을 어겼대도 경부 관아가 있고 대리시, 형부가 있다. 어떻게 무턱대고 무창 상행으로 달려갈 수가 있느냐? 네가 사람을 잡으러 간 건 사적으로 형을 가한 것이다. 모르느냐?”

“부황, 경부 관아, 혹은 대리시 사람을 보냈다면 잡았겠습니까? 이쪽에서 움직이기도 전에 형님이 주홍년을 감췄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법을 어기면 돼?”

황상은 다시 화가 치밀었다.

“그놈이 칼에 달려든 겁니다. 그놈이 죽으려 한 거라고요. 제가 뭘…….”

그래도 사황자는 대황자보다 눈치가 빨라서, 아버지의 안색을 보고는 뒷말을 삼켰다.

“너희 형제가 핍박하지 않았다면 죽었겠느냐?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것이다. 새우등! 무슨 낯짝으로 입을 떼는 것이냐!”

황상은 갈수록 화가 났고 사황자는 더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고개를 숙인 채 끽소리도 하지 않았다.

황상은 심란하고 성가셔서 더는 사황자를 훈계할 기운도 없어 손을 저었다.

“너도 물러가라. 앞으로 본분을 지키고!”

사황자는 연신 대답하며 대전에서 나와서 길게 한숨을 내쉬고 곁에 있는 주 추밀부사를 향해 보란 듯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바람처럼 왕부로 돌아간 대황자는 서재로 직행했다. 장 선생과 주유해 모두 서재에서 오늘 조회에서 일어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망할 노친네!”

서재로 뛰쳐 들어온 대황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욕을 퍼부었다. 장 선생은 등을 꼿꼿이 세우고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대황자를 아연한 얼굴로 바라봤다.

“대왕야, 무슨 일입니까? 설마.”

설마 태자를 세우려는 것인가?

“그 노친네! 분명 넷째의 잘못이거늘! 사람을 죽였으니 죽어야 마땅하지! 쓸모없는 노친네!”

대황자는 분노에 휩싸여서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장 선생은 일단 한시름 놓고, 광분한 대황자를 질린 듯이 바라봤다. 대황자의 포효 속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주유해는 그런 대황자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쉴 새 없이 장 선생을 힐끔거렸다. 장 선생이 좀 말려 보길 바랐다. 그런데 장 선생은 팔걸이를 잡고 넋이 조금 나간 것 같은 얼굴로 앉아만 있었다.

대황자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은 뒤, 장 선생이 피로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대왕야, 이번 일에 대해 의논했잖습니까. 주홍년이 스스로 칼에 찔려 죽은 것이고, 사왕야가 잘못이 있더라도 큰 잘못은 아닙니다. 이 정도 일로는 사왕야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바란 건, 이 일로 조정 대신에게 사왕야의 본성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왕야가 국법도 무시하고, 제멋대로라는 걸 말입니다. 나라의 군주가 이러는 건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이 일로 대왕야가 진왕에게 채찍질한 일을 무마하려고 한 것입니다.”

“무마하긴 뭘 무마해? 내가 그놈을 때린 게 어때서? 형님이 아우를 훈계한 것이 무슨 잘못인데? 형님은 아버지와 같다! 내 보기에 자네는 정말 생각이 너무 많군!”

아직 화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대황자는 포악하게 고함쳤다.

장 선생은 못 들은 체하며 말을 이었다.

“사전에 다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오. 대왕야께서 이런 일을 했더라도, 설령 대왕야가 그 자리에서 주홍년을 찔러 죽였대도 황상과 귀비 마마는 죄를 묻지 않았을 겁니다. 죽을죄를 내리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고요. 사왕야도 그런 것입니다.”

“정말 헛된 생각만 하는군! 그 노친네들 두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안 보이나? 눈이 멀었나? 죽을죄를 내리지 않아? 하! 꿈도 크군! 날 죽일 핑계를 찾지 못해 안달이라고! 두 사람 눈엔 넷째야말로 아들이고 나는 아니야! 난 이미 아니라고!”

“황상과 귀비께서 대왕야를 아들로 여기지 않으면 대왕야가 지금 무사히 여기 있겠습니까? 진작 땅에 묻혔을 겁니다.”

장 선생이 참지 못하고 뾰족하게 굴자 대황자의 안색이 바로 변했다.

주유해가 얼른 나서서 눙치려 했다.

“선생은 다 대왕야를 위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대왕야, 일단 진정하세요. 고모님 성격을 모르십니까? 달래야 합니다. 선생의 말도 일리 있습니다. 황상과 귀비께서 변함없이 대왕야를 아끼지 않으면 사왕야가 대왕야를 가만히 두었겠습니까?”

대황자가 콧방귀를 뀌며 입을 다물었다.

“대왕야, 장녕궁에 다녀오세요.”

장 선생은 갈수록 피로해졌다. 피로해서 말하는 것도 힘겨운 지경이었다.

“황상 쪽은…….”

장 선생은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황상 쪽은 이미 망쳤으니 주 귀비 쪽에 공을 들여서 상황을 만회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대왕야, 대왕야는 아직 황자입니다. 호시탐탐 대왕야를 사지로 내몰려는 사왕야도 곁에 있고요. 성격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황상이 떠나고 그 자리에 오르시면, 그땐 내키는 대로 하세요. 죽이고 싶은 사람은 죽이세요.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장 선생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대황자의 모습에 초조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사라지고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듣지 않으면 그도 이제 어쩔 수 없었다.

“대왕야와 사왕야는 동복형제입니다. 재능, 명망 모두 막상막하…….”

“쯧! 그놈이 어찌 나와 비교돼! 발꿈치에도 못 미친다!”

대황자가 힘껏 혀를 찼다. 장 선생은 못 들은 척, 대황자의 고함 속에 말투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대왕야와 사왕야는 그저 황상과 귀비의 총애만 다투면 됩니다. 특히 귀비 마마의 총애를요. 대왕야, 진작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대왕야와 사왕야는 까놓고 말해서 귀비 마마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천하를 얻습니다. 대왕야, 절대로 대의를 가벼이 여기지 마세요.”

“그래? 그 말대로라면 장유니 적서니 모두 상관없겠군? 모비가 대통을 넘겨주는 사람이 대통을 이어받는 거라고? 그런 거라면 이 자리에서 칼로 목을 베는 게 낫겠군. 모비 마음에 아들은 넷째뿐이고 나는 아들이 아니니까.”

대황자는 주 귀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쿡쿡 쑤셨다.

“적서를 따지려면 별궁에 있는 분이야말로 적출입니다!”

장 선생이 가차 없이 하는 말에 대황자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주유해가 얼른 웃음 지으며 나섰다.

“선생, 농담도 참. 대왕야, 선생의 말이 맞습니다. 고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이 황상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황상께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잖습니까. 대왕야, 고모님은 대왕야를 가장 아낍니다. 아시잖습니까. 대왕야는 장자입니다. 고모님과 황상이 대왕야께 거는 기대가 큽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엄하게 키운다지 않습니까. 두 분이 대왕야를 사왕야보다 엄하게 대하는 것도 두 분이 거는 기대가 커서입니다. 선생, 그렇지 않습니까?”

“유해의 말이 지극히 옳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엄하게 키운다는 것은 황상과 귀비께서 대왕야에게 건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평소 언행거지에서 대왕야를 사왕야보다 엄하게 단속할 수밖에요. 그건 사왕야를 편애해서가 아니라 대왕야를 편애해서입니다.”

장 선생은 주유해가 말하는 방향으로 대왕야를 설득했다.

대황자는 그 말엔 설득이 됐는지 성질을 죽이고 차를 마셨다. 장 선생이 그를 바라보며 계속 당부했다.

“대왕야, 옛날 생각을 좀 해 보십시오. 어릴 때, 귀비 마마께서 얼마나 대왕야를 아끼셨습니까. 세상 부모 마음이 그렇습니다. 귀비 마마는 어릴 때와 변함없이 대왕야를 대하십니다. 절대로 황상과 귀비 마마를 스스로 멀리하시면 안 됩니다. 장녕궁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귀비 마마의 환심을 사는 겁니다. 귀비 마마의 기분만 좋아지면 다른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황자는 일어서서 들릴 듯 말 듯 알았다고 대답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점심 먹고 가도 된다.”

“그건 그렇습니다.”

장 선생이 대황자 뒤에서 나직이 대답했다.

대황자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주유해는 계속해서 장 선생의 안색을 살폈다. 그가 넌덜머리가 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괜찮네. 그저 지쳐서 그러네. 풍한이 든 모양일세. 괜찮아.”

장 선생은 마음속에서 치미는 권태를 감추려 했다.

“태의를 모실 테니 진맥 받으십시오.”

주유해는 얼른 말하고 장 선생이 대답하기 전에 밖으로 나가서 태의를 모시라고 분부했다.

장 선생은 방 안에 앉아서 주유해의 지시를 들으며 힘껏 미간을 문질렀다. 기운 차려야 했다. 대황자의 체면은 생각하지 않더라도 수국공부의 체면은 생각해야 했다.

오후, 대황자는 왕비가 준비한 활짝 핀 동백꽃 화분 두 개를 들고 주 귀비를 만나러 입궁했다.

장녕궁으로 들어간 대황자는 그 길로 정전으로 곧장 향했다.

주 귀비는 두 아들을 쥐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는 마음으로 떠받들며 키웠다. 대황자든 사황자든 장녕궁에 들 땐 기별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보배 아들이 기별을 기다리는 큰 수고를 하게 할 수가 없었다.

주유해와 장 선생이 말한 ‘국가 가업을 이을 기대’라는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대황자는 평온한 모습으로 미소 지은 채 정전에 들었다. 아들만 보면 즐거워지는 주 귀비는 아들이 가지고 온 확실히 평범해 보이지 않는 동백꽃 화분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곽씨가 손수 기른 겁니다. 수십 개 중에 이 두 개가 그나마 괜찮아서 가지고 온 것인데 어머니가 마음에 드신다니 곽씨의 효심이 빛을 발하는군요.”

대황자가 웃으며 말했다. 왕비 곽씨가 기른 꽃이라는 말에 주 귀비의 희색이 한층 흐릿해졌다.

“곽씨가 고른 것이었구나. 어쩐지. 꽃이 흠잡을 곳 없이 좋긴 한데 분위기가 좀 떨어지는구나. 곽씨의 안목은 역시 네 안목과 비교할 수 없지.”

큰 며느리, 넷째 며느리, 모두 손수 골랐지만, 대황자부든 사황자부든, 정비가 측비만큼 효성 깊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고를 때 더 꼼꼼히 골랐어야 했는데. 두 집 모두 정비와 측비를 모두 바꾸었으면 좋았을 것을.

“화분일 뿐입니다. 그저 새로운 것 구경하시라고 가지고 온 것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세요. 다음에 제가 골라서 오겠습니다.”

대황자는 개의치 않았다. 곽씨의 안목이 자기만 못한 건 어머니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다만 이런 화초를 신경 쓴 적이 없어서 이 화분과 저 화분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찌 됐든 네 효심 아니냐.”

주 귀비는 잘 보이는 곳에 화분을 놓으라고 한 다음 화항에 비스듬히 앉아서 큰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주가놈, 하가 아랫것이라고? 게다가 가노라니. 유해에게 말해서 아랫것을 잘 관리하라고 하가에 전해라. 이것 보렴. 어떻게 그런 나쁜 놈이 있겠니. 멀쩡하게, 굳이 사가아가 보는 앞에서 칼로 달려들다니. 사가아가 큰 병이 날 뻔하지 않았니. 너무 악랄한 인간이다.”

몇 마디 만에 주 귀비는 사랑하는 사가아가 놀란 이 일을 입에 올렸다. 그 주가놈이 실로 너무 가증스러웠다. 하가도 마찬가지였고.

대황자는 언짢아졌다.

“모비, 이게 왜 주홍년 탓입니까. 하가 탓은 더더욱 아닙니다. 넷째가 주렴을 사서 아라에게 주었습니다. 미천한 기녀에게 모비보다 더 마음 쓰더니 모비가 화를 내자 그 일을 저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습니다. 하가에서 산 주렴이라고 하면서요. 주홍년은 자진한 게 아닙니다. 넷째가 찔러 죽였습니다.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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