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40화 (240/463)

240화: 그저 작은 난리

사황자가 자기 말이 맞다고 인정하라고 압박하지 않자 주 귀비는 무심결에 한시름 놓았다.

“이 아이도 참. 네 형은 그냥 널 겁주려는 거다. 사람을 죽였으니 목숨을 내놓으라니, 네가 죽인 것이 아니지 않으냐. 그자가 죽을 짓을 한 것이다. 죽을 짓을 하고 죽겠다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불쌍한 내 아들, 많이 놀랐지? 하가도 참. 아랫것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냐. 하가를 잘 훈계하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예.”

사황자는 억울하고 두려운 표정이었다. 정말로 억울했고, 정말로 겁먹었다.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주홍년이 자기가 보는 앞에서 곧장 칼로 달려줄 줄 어찌 알았겠나.

너무 끔찍했다. 정말로 겁에 질렸다.

“안신탕은 마셨느냐? 태의에게는 보였고? 아니라고? 아랫것들은 무얼 하느냐? 시중을 어찌 드는 것이야. 불쌍한 내 아들. 여봐라, 어서 태의를 모셔라!”

사황자의 억울한 얼굴, 사황자가 겪었을 두려움을 눈치챈 주 귀비는 순간 그녀가 가장 잘하는 유일한 수단인 자비로운 어머니 역할에 돌입해서 얼른 안신탕을 가져오고 태의를 모셔오고 사가아를 눕히라고 분부해댔다.

다음 날 조회는 물이 팔팔 끓는 만두 솥처럼 떠들썩해졌다. 너도나도 앞장서서 누구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황자는 자기가 쓸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동원해서 사황자가 거리에서 사람을 죽이고 까닭 없이 무창 상행을 몰수하고 턴 것을 매서운 언사로 탄핵했다. 이번엔 아주 단단히 준비한 대황자는 전후 사정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탄핵 상주서 뒤에 무창 상행 사람들이 피로 인장을 찍은 증언도 첨부하고 그날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주홍년 가족의 탄원서도 첨부했다.

대황자의 사람 외에 어사대 다른 어사들도 상주를 올렸다. 누군가는 매섭게 누군가는 담담하고 가볍게, 대놓고 지적하거나 암암리에 책임을 전가하며 이번 일을 탄핵했다. 너무나 큰 사건이었고 사건의 방향성, 성질이 너무 또렷해서 어사의 본분을 지키려면 탄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날 조회는 절을 하고 몸을 일으킨 순간부터 사황자가 거리에서 살인, 혹은 거리에서 사람을 핍박해서 죽인 일을 탄핵하는 상주가 줄줄이 올라왔다. 가장 완곡한 상주서에서도 사황자가 어째서 무창 상행에 뛰어 들어가서 주홍년을 잡고 주홍년이 검에 달려들어 죽게 한 것인지를 질타했다.

고서강이 판을 짠 사황자파도 뒤이어서 나섰다. 우선 사황자부터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울면서 경솔했던 작은 실수를 빌었고, 이어서 대황자가 주렴을 사서 아라에게 선물하고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일, 주홍년이 그 주렴을 산 사람이며 전 장궤를 해쳤음을 밝히고 질타했다.

조정에서 조회에 참석할 만한 사람은 하나같이 영리한 사람들인지라, 사황자가 살짝 거론하는 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주 귀비를 자극하기에 너무나 유용한 방법이었다. 이러니 사황자가 다급해져서 그런 일을 저지를밖에.

사황자는 이어서 어떻게 전 장궤를 찾아냈는지, 찾아냈는데 실종되어 생사를 모르게 된 일, 요행히 달아난 사환이 하나 있던 일, 그리고 무창 상행 주홍년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설명했다. 그저 주홍년에게 몇 마디 물어볼 생각이었고, 무창 상행에서 묻기가 불편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뿐이었는데 주홍년이 사주받고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려고 그 자리에서 죽을 줄 몰랐다고, 6월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어서 주 추밀부사가 눈물을 흘리며 죄를 청하는 상주서를 올렸다. 전 장궤를 찾은 건 자기 집 소육이고, 무창 상행 주홍년에게 팔았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소육이라고, 다 소육이 오지랖을 부린 바람에 대왕야를 거슬렀다고. 가련한 소육은 주홍년이 죽는 걸 보고 겁에 질려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정신이 돌아올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대황자는 논리로 압박했고, 사황자는 엎드려서 통곡하고 읍소했다. 대전 안은 울음소리, 호통 소리, 언쟁하는 소리로 잡기 패거리가 한바탕 노는 것처럼 떠들썩해졌다.

영원은 용상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서서 모든 신하를 내려다봤다. 한창 흥미진진한 연극이 진행 중인 무대를 따분하고 건조하게 지켜봤다.

국가 대계와 민생 대사를 논의해야 할 조정이 대황자와 사황자가 억지 쓰고 생떼 부리는 곳이 되었다. 황상, 정말 영명하십니다!

“됐다.”

황상이 드디어 목소리를 냈다. 피곤하고 무기력한 목소리였다.

“경부 관아에 사건이 넘어갔다니, 관아에서 주홍년이 죽음을 맞이한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라 명해라.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너희 둘, 따라와라. 주 경도 잠시 남게.”

황상이 또 나서서 수습할 생각이군. 영원은 대황자와 사황자를 번갈아 봤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 황상은 이번에도 두루뭉술 수습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계속 이러다가는…….

음, 수습하라지. 이런 식으로. 그래, 매우 좋다.

성지를 받은 형 부윤은 한 글자, 한 글자 쪼개서 읽고는 다시 합쳐 읽었다. 이해는 했다. 황상의 뜻은 사황자를 이 사건에서 빼내라는 것이었다. 주홍년이 ‘죽음을 맞이’한 원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죽음을 맞이했다는 건 스스로 죽었다는 이야기다. 즉, 자결. 죽음을 맞이한 원인을 조사하라는 건……. 원인 있는 자결이라면 사왕야는 상관없어진다. 오히려 주홍년의 피로 온몸을 적시고 재수 없게 피해 본 사람이 된다.

다만 이렇게 되면, 사왕야는 완전히 무사하게 빠져나오게 된다만 대왕야는?

형 부윤은 이마를 두드렸다. 황상의 성지는 절대로 거역할 수 없다. 하지만 대왕야는? 대왕야도 거스르면 안 되는걸. 그 ‘원인’ 쪽으로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나? 어느 정도까지?

넋을 놓고 한참 생각하던 형 부윤은 발을 구르며 관아에서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몰래 빠져나와서 방법을 구하러 여 승상부로 직행했다.

경성에서 보림암으로 들어가는 각종 소식은 예전보다 배는 빨라졌다. 멀리 보림암에 있는 복안 장공주는 고작 반 시진 차이로 경성에서 막 발생한 이 큰일, 작은 일을 모두 알게 되었다.

이동은 고개를 숙이고 차를 갈면서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요 상궁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오늘 조회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복안 장공주에게 보고하는 걸 들었다.

요 상궁이 보고를 마치고 물러가자 녹운이 뒤에서 돌아 들어와서 나직이 보고했다.

“장녕궁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대왕야가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사왕야도요.”

복안 장공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녹운은 공손하게 물러갔다. 복안 장공주는 글러 먹은 두 황자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다리를 흔들었다.

“이것 좀 봐.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지?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눈 뜨고 못 본 척하려고 하네. 굳이 원수 손을 잡아주려고 해. 이러다가 아들 둘이 서로 칼을 찌르며 동귀어진하면 어쩌려고?”

이동이 손을 크게 떨었다. 그 두 사람은 장공주의 말대로 동귀어진했다.

“좀! 왜 그렇게 변변치 않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복안 장공주는 도구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이동을 노려보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부모로서야 무마해야지 어쩌겠어요.”

이동은 도구를 제대로 쥐고 자신의 실수를 얼른 수습했다. 복안 장공주는 심란하고 초조한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중점이겠어? 두 사람 모두 상대를 해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고 있어. 그게 이 일의 중점이야! 황상은 그걸 마주해야 한다고! 즉시 해결해야 하는 일이야! 대체 황상은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아니면 눈먼 척하는 거야? 이번 일로 주홍년과 전 장궤 일가가 죽었다는데도 못 본 체하는 거야? 어리석어! 예전에 계 황후가 있었을 땐 이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는데, 매일 주 귀비를 보고 있으니 주씨처럼 어리석어졌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동은 찻가루를 잔에 넣으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물었다.

“태자를 세워야지.”

복안 장공주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지금 태자를 세우면 두 사람의 목숨은 지키겠지. 적어도 황상이 살아 있을 동안은 두 아들도 살 수 있어.”

“두 사람이요?”

이동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자, 복안 장공주가 싸늘하게 웃었다.

“황가의 혈통은 고귀해서 역모를 꾸며도 높은 담 안에 가둘 뿐이야. 지금 태자를 세우고 다른 하나는 가두면 되지. 황상이 있는 한 아무리 갇혔더라도 누가 홀대하겠어. 감금이자 보호지. 새 황제가 즉위하면…….”

복안 장공주의 말이 뚝 멎더니, 한참 만에 무기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면 즉위한 다음엔 감금된 형제를 풀어주고 경성 주위 작은 현을 줘서 내보내지. 자유라는 명목으로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엄격하게 감시하고. 감금된 쪽이 못 말릴 정도로 어리석지만 않으면 고분고분 착실하게 살면서 한 세대 버티면 끝날 일이야. 하지만 이 두 형제는 황상보다 못하고 주 귀비와 막상막하니까, 누가 즉위하든 곧바로 상대를 죽이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동은 복안 장공주를 바라봤다. 상대만 다치게 하고 자기는 무사하게 빠져나오는 것, 그 두 사람 모두 이루지 못한다. 둘 다 파멸하는 것이 그 두 사람에겐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

“안타깝게도 둘 다 못 말리게 어리석지. 감금된 쪽은 감금되어서도 어떻게든 판을 엎으려고 할 거고 조만간 큰 화를 부르겠지. 휴, 아무리 그래도 어찌 됐든 임가 혈육이야. 난 피를 보고 싶지 않아. 특히 임가의 피는.”

이동이 바라보자 장공주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했다.

“왜 그렇게 봐?”

“스스로 죄업을 지은 자는 죽어 마땅해요.”

이동의 나지막한 말에 복안 장공주는 안색이 어두워져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말없이 차를 몇 잔 마신 후, 복안 장공주가 허탈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 앞에서 난 출가해서 세간 일을 묻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이동은 아무런 말 없이 장공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찻잔을 바라봤다. 설령 그녀가 세간 일을 묻지 않는대도 세상이 그녀를 찾아온다. 살아 있는 한 정토(淨土: 부처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는 없다.

조회 후, 황상이 대황자와 사황자를 따로 불렀지만, 이 두 흙탕물은 아무리 해도 섞이지 않았다. 대황자는 율법, 국법, 나라와 국가의 대의를 읊으면서 사황자가 주홍년을 죽인 죄를 물어야 한다고 고집부렸다.

이번 일은 사황자는 겉으로는 정당한 것 같아도 사실은 조금도 당당하지 못하니, 고서강의 지시에 따라 정에 호소하는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대황자가 황상 앞에서 핏대를 세우며 물고 늘어질 때 사황자는 무릎을 꿇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황상이 화가 나서 목이 다 붉어져도 대황자는 양보하지 않고 ‘살인은 죽을죄, 법을 어기면 황자도 백성과 같은 죄를 물어야 한다.’는 말만 고집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황상이 대황자의 뺨을 내리쳤다.

“이 가문, 이 나라, 모두 짐의 것이다! 아직은 네가 이렇게 물고 늘어질 자격이 없다! 네 아우다! 네 친아우! 동복 형제! 아무리 아우가 너를 거슬렀다고 해도 이렇게 모질게 사지로 몰아세울 순 없다!”

“이 녀석이 절 사지로 몰 때는 왜 아무런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녀석이 절 사지로 몰 때는 부황, 모비 모두 못 본 체하지 않으셨습니까?”

대황자가 버럭버럭 고함쳤다.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왔다.

황상은 화가 나서 얼굴이 다 뒤틀렸다. 눈물 콧물 흘리는 대황자를 노려보다가 털썩 주저앉아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물러가라.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돌아가서 잘 생각하고 죄를 청하는 상주서를 올려라. 하나같이 짐의 속을 뒤집는구나! 짐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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