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37화 (237/463)

237화: 주육의 좋은 운

“문을 부숴라! 들어가 보자!”

주육은 버럭거리며 종복에게 분부했고, 종복 둘이 앞으로 나서서 정말로 문을 걷어차서 부숴버렸다. 주육이 가장 먼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영벽을 돌자마자 낡은 토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더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 열린 문이 보였다. 상방부터 곁채까지 아수라장이었다.

주육은 눈살을 단단히 찌푸렸다. 상을 치르러 간대도 이렇게 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도망치거나 강도를 만난 모습 아닌가.

“육소야, 도둑놈을 잡았습니다!”

주육이 두서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종복의 들뜬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종복 둘이 영리해 보이는 사환 한 명을 끌고 들어왔다.

“도둑이 아닙니다. 물건을 훔치러 온 것이 아니라 물건을 가지러 온 것입니다.”

“쯧! 바보냐? 아니면 우리 나리를 바보로 아는 거냐. 물건을 훔치러 온 것이 아니라 가지러 온 것이긴. 그게 훔치는 것이지. 뭐가 다르단 말이냐?”

종복이 사환을 향해 혀를 찼다.

“나리, 소인 정말로 도둑이 아닙니다. 소인은 이 집 심부름꾼입니다. 여긴 소인이 모시는 노야의 집입니다. 소인은 정말로 물건 가지러 왔습니다. 제 물건이요.”

사환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해명했다.

“너희 노야의 집? 노야가 누구냐? 이 집 심부름꾼? 무슨 일을 하는데? 너희 노야는? 어서 말해라!”

전 장궤의 종복을 잡은 주육의 두 눈이 빛났다. 사환은 바닥에 눌린 채 고개를 들고 주육을 바라봤다.

“아룁니다, 나리. 여긴 우리 노야의 집이고, 우리 노야는 전씨입니다. 해산물 장사를 하고요. 밖에선 다들 전 장궤라고 부릅니다. 소인은 노야 곁에서 시중을 듭니다.”

사환은 억울한 듯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며칠 전에 소인은 노야의 명을 받고 성 밖 보림사에 우리 노태야 장수등을 달러 갔습니다. 하룻밤 사찰에서 묵고 돌아왔더니 집이 이 지경이 됐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여기저기 물었더니, 노야의 고향에서 소식이 왔답니다. 노태야가 중병에 들었다고요. 노야는 매우 효성 깊은 분인데, 소식을 듣고 기절했답니다.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짐을 싸서 남으로 돌아갔대요. 그때 소인은 보림사에서 등을 지키고 있었고, 돌아오니 노야가 벌써 떠나고 없었습니다. 소인 성 밖으로 몇십 리 쫓아갔는데, 만나지 못했습니다. 소인은 노야가 경성에서 산 놈이라서 노야의 고향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남으로 몇십 리나 쫓아가도 만나지 못했고, 더 따라갈 수 없어서 돌아왔습니다. 제 물건을 챙겨서 가려고요. 나리, 소인도 불쌍한 신세입니다.”

사환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

주육은 지금 다른 사람의 읍소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울고 싶은 건 나다!

“말해 보아라. 노야를 모셨다니, 그럼 너희 노야의 장사에 관해서 아는 것이 있느냐?”

주육이 일말의 희망을 품고 물었다.

“조금은 압니다. 많진 않고요.”

사환은 매우 슬프고 괴로운 듯이 눈물을 훔쳤다. 그럴 만도 했다. 등을 하루 지키고 돌아왔더니 집이 사라지고 일자리도 없어졌으니.

“조금? 그럼 말해 보아라. 얼마 전에 너희 노야가 주렴을 팔았지? 너도 아느냐?”

“아룁니다, 나리. 소인도 압니다. 노야가 주렴 두 개를 팔았습니다. 처음 건 귀비 마마 생신 전에 영 칠야가 사 가셨습니다. 두 번째 건 며칠 전에 팔았고요. 두 번째 주렴은 첫 번째 것보다 물건이 좋았습니다. 소인, 그렇게 좋은 물건은 처음 봅니다.”

“누구에게 팔았느냐? 어서 말해!”

주육은 기다릴 수 없는 듯 눈에 불을 켜고 사환의 말을 잘랐다.

“무창 상행 주 대장궤에게 팔았습니다.”

사환은 시원스럽게 단번에 행방을 밝혔다.

“얼마에 팔았는지는 모릅니다. 은자 문제는…….”

“얼마에 팔았는지 알 바냐! 누구에게 판 건지만 알면 된다. 이럴 줄 알았다. 이번 일은……. 이놈을 끌고 가라. 가자, 사왕야를 만나야겠다.”

주육은 춤을 출 듯이 흥분해서 위엄 넘치게 분부했다.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걸!

“예? 나리, 소인은 법을 지키는 선량한 백성입니다. 나리, 소인을 어디로 끌고 가시려는 겁니까? 소인, 정말로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인 물건을 가지러 온 겁니다. 살려주세요. 소인은…….”

사환은 겁에 질린 듯이 손발을 휘두르며 고함쳤고, 주육은 짜증이 났다.

“이 멍청한 것들아! 어서 입을 틀어막고 끌고 가지 못할까!”

주육의 명령에 사환은 더 겁에 질려서 악악 고함치더니 갑자기 종복을 밀치고 후다닥 달아났다.

“잡아라! 어서! 놓치면 안 된다!”

주육은 다급해서 펄쩍 뛰었고, 종복과 사환이 우르르 뒤를 쫓았다. 사환은 회랑을 따라 월동문을 지나더니 각문을 통해서 노련하고 익숙하게 물고기보다 빠른 동작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문 밖으로 나갔다. 뒤를 쫓아가던 종복, 사환 무리도 각문으로 뒤따라 나가서 텅 빈 거리를 따라 골목으로 뛰쳐나갔더니 사람이 바글바글한 마행가가 나왔다.

사람들은 얼이 빠졌고 주육은 길길이 뛰면서 욕을 퍼부어대다가 말을 타고 돌아갔다. 그렇게 몇 걸음 움직이다가 이내 화가 풀렸다.

일개 사환은 없어도 그만이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알고 싶은 일은 이미 알아냈으니까. 그 진주 주렴은 내 짐작대로 대왕야가 사왕야를 모함하려고 아라에게 사준 것이로군.

함정 하나에 10만 냥이라니. 정말 통이 크기도 하지. 돈도 많아!

주육은 곧장 사황자를 찾아가서 사환이 한 말을 덧붙이고 키워서 이야기했다.

“……사왕야, 이럴 줄 알았습니다. 사실 딱 봐도 불 보듯 분명하지 않습니까. 경성에 대왕야 말고 누가 감히 사왕야 머리에 똥을 붓겠습니까. 보세요. 맞지요? 대왕야도 참. 이런 시시한 짓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괜히 아라만 좋은 일 했습니다. 10만 냥이라니…….”

쓸데없이 날아간 10만 냥을 생각만 하면 침이 흐를 지경이었다.

“개뿔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사황자는 화가 치밀어서 악을 쓰며 주육의 말을 잘랐다. 오전에 주 귀비에게 철썩철썩 맞다가 대전에서 쫓겨 나왔다. 나가다가 마침 부황을 만나서 얼마나 혼났는지.

‘너희 둘, 모비에게 불효하는 것은 짐에게 불충인 것을 모르느냐!’

호통치던 부황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서늘해졌다.

“사환은 달아났지만 주가가 있지. 여봐라. 주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아라. 바로 잡아서 제대로 심문해야겠다!”

사황자가 고함치며 분부했다.

주 대장궤는 당연히 무창 상행에 있었고, 무창 상행으로 달려간 종복은 손님을 붙들고 곰팡이 핀 산초를 비싼 값에 떠넘기는 주 장궤를 한눈에 발견했다. 사황자는 즉시 사람을 거느리고 관아에서 나가서 왕부 호위를 모아, 주렴을 샀다는 주 대장궤를 잡으러 무창 상행으로 달려갔다.

경성엔 생각 없는 한가한 사람과 생각 많은 한가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어서, 주육이 전 장궤 집에서 사환을 붙잡았다는 소식이 곧바로 대황자 귀에 들어갔다. 대황자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장 선생은 듣자마자 다급해져서 주 대장궤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무창 상행에 있다는 주유해의 대답에 장 선생은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정말이지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한마디라도 덜 하면 사달이 나는구나. 그 일이 끝난 뒤 주 장궤를 경성 밖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대왕야는 생각이 없고, 주유해도 똑같이 생각이 없구나!

“어서 가라! 주 대장궤에게 어서 성을 떠나서 촉(사천四川)으로 가라고 해라! 어서! 즉시! 멀리 갈수록 좋다! 내년에 다시 돌아오라고 해라! 잠깐, 혹시 잡히면 어떻게든 자진하라고 전해라! 그러지 않으면, 흥! 일가를 생각하라고 해라!”

장 선생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주 장궤가 사왕야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주 장궤는 형을 견딜 만한 사람이 아니지. 낱낱이 불어버리면, 실컷 일을 꾸며서 제 발등 찍는 꼴이 되는 것을!

소식을 전하러 쪼르르 달려나간 사환은 금세 돌아와서 급보를 전했다. 사왕야가 호위를 거느리고 관아에서 나와서 무창 상행으로 가는 것 같더라는 소식이었다. 사왕야가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고.

“대왕야, 무창 상행에 한 번 다녀오십시오.”

장 선생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아까 바로 사람을 보내서 주 대장궤를 찔러 죽였어야 했구나. 또 마음을 어질게 쓰고 말았어!

“반드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주 육소야가 잡은 사환이 달아났답니다. 그놈이 뭘 알든, 무슨 말을 했든, 달아난 이상 증거가 없습니다. 대왕야께서 주 대장궤만 데리고 와서 잘 처리하면 누가 와도 뒤집을 수 없습니다!”

“알았다. 내가 가 보마.”

대황자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이번엔 장 선생이 주유해에게 말했다.

“유해 자네는 적당한 사람을 골라서 그 사환을 찾게. 하종수가 전가와 만난 적 있으니 하종수를 데리고 가게. 찾으면 바로…….”

장 선생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어서!”

주유해가 다급하게 달려나갔고, 모두 나간 다음 장 선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힘이 풀려서 털썩 화항에 주저앉았다.

주유해를 시켜 주렴을 구하라고 했더니, 하종수가 지난번에 주렴을 산 전 장궤에게 다시 가서 살 줄이야.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조만간 사달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전 장궤의 지난번 주렴을 산 사람이 사왕야인데, 단서를 따라 역으로 추적하면 분명 전 장궤가 나올 것이고, 전 장궤를 찾아내면…….

에휴, 내가 요행을 바랐구나. 사왕야가 대왕야처럼 어리석으니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여겼지. 사왕야가 대왕야보다 훨씬 영리할 줄은 몰랐다. 지난번 주렴에서 단서를 잡고 조사해 나갈 줄이야.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했을까.

장 선생은 멍하니 창밖의 밝은 하늘을 바라봤다.

어쩌다가 이렇게 어리석은 실수를 했을까.

대왕야를 따른 후, 해가 갈수록 마음이 식고 해가 갈수록 나태해졌다. 해가 갈수록 염증이 났고.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귀찮았었다.

고자의가 집으로 돌아가서 주렴 이야기를 한 다음, 고서강은 즉시 탕호우의 숙부인 탕가 경성 가주 탕 이야를 불러들여서 경성에서 주렴을 판 사람이 있는지, 누가 내놓은 건지, 누구 손을 거쳤는지, 누구에게 팔았는지 조사하게 했다.

경성에서 장사와 관련된 일을 탕가가 조사하려 들면 못 알아낼 일이 거의 없었다. 다음 날, 주육이 영원을 찾아간 시각보다 아주 조금 늦게 탕 이야는 보고하러 고서강을 찾아갔다.

“물건 한두 개를 따로 내놓는 건 대부분 어려움이 생긴 상인입니다. 아니면 몰락했거나 위험이 닥친 대갓집에서 몰래 사람을 시켜 파는 물건이거나요. 이런 장사는 비밀을 가장 중시해서 공들여 수소문해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아니었으면 오늘 아침 일찍 보고하러 왔을 겁니다.”

탕 이야는 우선 왜 이제야 온 것인지부터 변명했고 고서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계속 말을 이었다.

“급고당의 요 장궤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런 물건을 자주 내놓거든요. 요 장궤 말이 그런 물건을 내놓은 적이 없답니다. 해산물 쪽은 전 장궤가 가장 많이 손댄다고 해서 전 장궤를 찾아갔는데…….”

탕 이야가 잠시 말을 멈추고 뒷이야기를 하기 전에 고서강이 그의 말을 잘랐다.

“전 장궤였나?”

“정말 영명하십니다, 고야.”

탕 이야가 얼른 아부부터 떨었다.

“맞습니다. 전 장궤였습니다. 지난번 주렴도 전 장궤가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주 육소야의 손을 거쳤답니다.”

“그건 나도 아네.”

고서강이 다시 탕 이야의 말을 잘랐다. 사왕야의 주렴은, 영원이 사서 주육의 손을 거쳐 사왕야에게 팔았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의 시간은 매우 귀중해서 탕 이야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예, 예, 예.”

탕 이야는 조금 머쓱해지고 또 조금 조마조마해졌다.

“지난번 주렴은 무창 상행 하 대야가 본 적 있답니다. 매우 마음에 들어 했는데, 그때 이미 팔린 때라 전 장궤가 다시 주렴을 손에 넣었을 때 곧바로 무창 상행 주 대장궤를 찾아갔답니다.”

“주 대장궤가 사들인 건가?”

고서강이 또 한 번 말을 자르자 탕 이야는 낭패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예.”

“주렴을 내놓은 사람은 누구고? 누가 판 것인가?”

“그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말이 잘린 탕 이야는 뭘 말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쨌든 많이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싶었다.

“알아내지 못해? 전가에게 물어보지 않았나?”

고서강이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은 듯 탕 이야를 바라봤다. 탕 이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셔야지요!

“그게 이렇게 된 건데…….”

“간단히 말하게. 할 일이 태산일세!”

고서강이 짜증 나는 듯 분부했다.

“예, 전 장궤는 남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저께요. 갔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