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29화 (229/463)

229화: 새로 온 대내내

“모시고 들어와.”

이동이 담담하게 분부하자 문지기가 대답하고 돌아갔다. 청국은 휘장을 내린 채 손으로 휘장을 꾹 붙들고 있었다. 이동의 마차는 그 마차를 지나쳐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중문 앞에 멈춰 섰다. 곡 대내내의 마차도 뒤이어 대문으로 들어왔다. 휘장이 열리자 춘연이 먼저 내려서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휘장을 들어 올렸고, 곡 대내내가 거들먹거리며 마차에서 내렸다.

이동은 춘연을 유심히 살폈다. 머리카락은 가장 단순한 형식으로 둥글게 말아 올리고, 무릎을 덮는 길이의 헐렁한 남색 옥양목 긴 윗옷에 치마가 아니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윗옷 아래로 드러난 같은 색, 같은 옷감 바짓자락 아래 투박한 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청국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춘연을 바라봤다. 춘연의 차림은 쉰 넘은 경성 노태태의 차림이었다.

춘연을 샅샅이 훑어본 이동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바라보는 곡 대내내를 흘깃 쳐다봤다.

“들어와서 이야기해요.”

이동은 돌아서서 중문과 가장 가까운 난각으로 들어갔다. 곡 대내내는 매우 화가 난 듯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분노를 조금 누그러뜨리고는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는 투로 춘연이 내민 팔에 한 손을 살짝 걸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이동을 따라 난각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죠?”

난각에 들어서자, 이동은 앉지도 않고 곡 대내내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냉담하게 물었다.

“역시 상인 가문이군. 이렇게 손님 맞이하는 법이 어디 있어!”

곡 대내내는 경멸하는 얼굴로 난각을 훑어보았다.

“볼일 있으신가요?”

이동은 곡 대내내의 조롱을 상대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볼일이 있으니까 왔겠지.”

곡 대내내는 이동이 상대하지 않아도 태연하기만 했다. 그녀는 상하 존비를 구별할 수 없는 의자를 둘러보고는 자기가 상석이라고 여기는 의자에 앉아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치켜들고 내려다보는 기세로 이동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이야기해요.”

이동은 앉을 생각 없이 난각 구석으로 가서 탁자 위에 놓인 향로를 열고 향을 던져 넣었다. 곡 대내내는 샛눈을 뜨고 이동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팔걸이를 꼭 붙든 손에 힘을 서서히 풀면서 웃음을 쥐어짰다.

“너와 나는 남이 아니지. 따지고 보면 우리보다 더 가까운 자매는 없어.”

향로 뚜껑을 들고 있던 이동의 동작이 멈칫했다. 그녀는 뚜껑을 잘 닫고 돌아서서 곡 대내내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곡 대내내는 그녀의 시선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되었다.

“선후를 따져도 네가 날 형님이라고 불러야 해.”

곡 대내내는 못 본 척, 더 힘을 주어 허리를 세웠다.

나는 거인 가문 낭자, 백부 대내내, 세자의 정실부인이고, 이 여인은 첩이나 마찬가지인 상인 여식이야!

“형님 소리 듣자고 온 건가요? 거인의 여식이고 어릴 때부터 글을 배우고 글공부했다고 들었는데, 그럼 예부의 판결서를 못 본 건가요, 아니면 알아보질 못한 건가요? 웃다가 배꼽 빠질 그런 소리를 참 잘도 하는군요.”

이동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러니 혼인하자마자 시집에서 버림받지. 예부의 판결서만 있으면 네가 황화대규녀가 되고, 강가에 들어갔던 일이 다 사라진대?”

곡 대내내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청국, 곡 대내내를 배웅해. 볼일 없으면 이만 돌아가요.”

이동은 청국에게 분부하고 돌아서서 곡 대내내에게 한마디 한 다음 바로 걸음을 돌렸다.

곡 대내내는 다급해져서 벌떡 일어났다.

“기다려! 용건을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어!”

“말해요.”

이동은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없는 듯이 난각 입구에 서서 말했다. 곡 대내내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널 생각해서 와 준 거야!”

이동은 어이가 없어 죽을 것 같았다. 역시 이야가 고른 사람다웠다.

“예부의 판결서는 판결서일 뿐이야. 어떤 판결이 내려도, 너는 혼인했던 여인이고 시댁에서 친정으로 돌아간 여인이야.”

이동은 고개를 틀고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정신이 조금 가득해졌다. 이건 포석이다. 이런 포석을 깔고 무슨 거래를 하려고? 이야가 이런 모습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네가 비록 상인 가문 여식이지만, 백부에 들어와서 지냈었고 우리 강가의 며느리로 지낸 날이 있으니 재가할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겠지. 이가는 괜찮은지 몰라도, 우리 강가는 그런 망신을 당할 수가 없어. 하지만 네가 친정에서 늙어 죽게 된다면, 그게 말이지, 시어머니가 도중에 친정으로 돌려보낸 여인의 위패를 사당에 들이고 초상화를 남겨 제사를 지내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 가문 묘에도 들어가지 못하지. 너는 외로운 귀신이 되어 떠돌 수밖에 없어.”

당당하게 말하는 곡 대내내의 모습에 이동은 처음에 화가 나다가 나중엔 의아해졌고 마지막엔 우스워졌다.

휴, 문 이야, 정말 안목이 대단하네!

“나와 부군은 글공부한 이치가 밝은 사람이야. 자비로운 사람이지. 어찌 됐든 강가에 들어왔던 사람을 외로운 귀신으로 떠돌게 하자니, 나와 부군 모두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이동은 연극이라도 보듯이 곡 대내내를 바라보며 그녀가 정의롭고 자비롭게 읊어대는 말을 듣기만 했다.

“……난 너그러운 사람이니, 오늘 미리 말해둘게. 네가 죽은 다음에 우리 강가 묘에 들어와도 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엔 네 위패를 나와 부군 옆에 놓게 해줄게. 우리 강가 자손이 피우는 향과 제물을 누리게 해준다고.”

곡 대내내는 너그럽고 대범하게 자기 조건을 말했다.

“세상에 공돈은 없고, 공짜 연회도 없다지요. 이런 좋은 일을 약속하다니, 원하는 게 뭔가요?”

이동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곡 대내내는 이동의 미소에 눈에 띄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별것도 아니야. 우리 강가의 점포, 장원, 예전에 너희 이가가 은자 몇 푼 주고 사들였다며. 어찌 됐든 너도 우리 강가의 며느리였던 사람인데 그 은자 몇 푼을 따지려고 하다니. 정말 못 봐주겠어. 내 말대로 해. 그 은자는 포기해. 정말이지, 푼돈까지 연연하는 이런 상인 가문의 고질병, 정말 신물 나네.”

곡 대내내는 손수건을 꺼내서 싫다는 듯이 흔들어댔다.

“그게 다인가요? 다른 것도 있나요?”

이동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일단 이 정도야.”

줄곧 턱을 살짝 치켜든 곡 대내내는 매우 담담하게 대답했다.

“첫째, 그쪽이 말한 강가 점포, 장원. 다 우리 이가 거예요. 은자 몇 푼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 점포, 장원, 예부의 판결서에 똑똑히 쓰여 있어요. 우리 이가 같은 상인 가문은 감히 예부의 판결서를 거역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그 점포, 장원, 반드시 가지고 와야 해요.”

곡 대내내의 얼굴이 퍼레졌고, 이동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마저 말했다.

“둘째, 그쪽이 지금 사는 강가 저택, 그 댁 강 노야가 세상에 하나뿐인 상고 휘묵으로 팔아먹은 지 오래예요. 나중에 우리 이가가 샀고요. 공교롭게도 나도 매우 자비로운 사람이네요. 그 저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었네요. 당신네 강가 사람이 집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걸 차마 볼 수 없어서 돌려받지 않은 거예요.”

곡 대내의 퍼렇던 얼굴이 창백해졌다.

“셋째, 강가에 들어갈 때 혼수로 40만 냥을 가지고 갔는데 돌려받은 건 5만 냥이 안 돼요. 지참금 30만 냥 중에 10만 냥을 당신 부군이 고 이낭을 들이는 납채로 썼죠. 나머지 20만 냥도 듣자 하니 당신 부군이 고가에 줬다고 하더군요. 고 이낭의 웃음 한 번 얻자고 말이에요.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라 다 돌려받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강가 무덤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자비로우면 안 되겠네요. 저택, 은자, 관아에 고발해서 싹 다 돌려받아야겠어요.”

“미쳤구나! 이러니까…… 미치광이랑 이야기하지 않겠어! 미치광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니? 헛걸음한 셈 치지 뭐!”

곡 대내내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이득과 손실을 저울질한 다음 가장 좋은 선택을 하는 것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다.

이동은 곡 대내내의 펄럭이는 치맛자락과 당황해서 그녀 뒤를 바짝 쫓아서 나가는 가운데 서글픈 듯한 춘연을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람처럼 마차에 올라탄 곡 대내내는 춘연이 올라와서 제대로 앉기도 전에 머리에 비스듬히 꽂은 장식을 뽑아서 다짜고짜 춘연의 얼굴과 목을 찔렀다.

“이 천한 것!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한 것! 네가 부추긴 바람에 이 꼴이 되었어! 일부러 내가 망신 사는 걸 보려고 그런 거지? 내 얼굴에 먹칠하면, 너는 체면이 서는 줄 알아? 어림도 없어! 이 염치없는 년! 짐승 같은 년! 염치없는 천한 년!”

곡 대내내는 모질게 찌르며 악랄하게 욕을 했고, 춘연은 울지도 못하고 팔과 얼굴을 가리고 웅크려 있기만 했다.

자등 산장에 와서 강가 점포와 장원 문제를 담판 짓겠다는 건 곡 대내내 스스로 결정 내린 일이었다. 결정을 내린 뒤, 춘연을 불러 이씨의 성격이 어떤지 물었을 뿐이었다. 춘연은 낭자의 성격이 매우 좋다고 대답했을 뿐이었고.

곡 대내내는 거칠게 찌르고 욕하면서 한바탕 화풀이하고는 지쳐서 드디어 머리 장식을 거두고는 등 받침에 기댔다. 그러고도 헐떡이면서 춘연을 걷어찼다.

“천한 년, 뭘 멍하니 보고 있어! 목마른 거 안 보여?”

춘연은 덜덜 떨면서 서랍을 열어서 따듯한 주전자를 꺼내 차를 따라서 손을 떨며 건넸다. 곡 대내내는 차를 받아서 마지막 한 모금까지 꿀꺽꿀꺽 마시고는 마지막에는 춘연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차가 다 식었잖아! 이 쓸모없는 천것!”

춘연은 잔을 받고 뒤로 물러난 후에야 손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닦았다.

“하나같이 천한 것들뿐이야. 10만 냥이라니! 고가 그 천것이 10만 냥 가치가 있어? 이 이야기 들은 적 있어?”

화풀이를 끝낸 곡 대내내는 다시 차를 마시며 앞날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춘연은 내심 안도했다. 그녀의 경험으로, 지금까지 버텼으면 다 버틴 것이었다.

“들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세자야가 10만 은자를 세어서 고가 노야와 대야에게 주었어요.”

“쯧! 노야 같은 소리 하네. 그런 인간이 노야는 무슨! 천한 것들!”

곡 대내내는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강가에 칼을 휘둘러 한바탕 소란스럽게 한 후, 당연히 그녀가 강가 안살림을 맡았다. 고 이낭과 청서 두 천것을 혼내주고 반나절 무릎 꿇리자마자 진 부인이 고 이낭과 청서의 거처를 정원으로 옮겼다.

곡 대내내가 정원 문 앞을 지키며 고 이낭과 청서를 두 시진 넘게 욕하는데도 그 두 천것이 나오지 않았다. 적자 앞에 나이 많은 서자 둘이 떡하니 버티고 있을 걸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었다. 둘이 아니다. 강가 사당에 하나 더 살고 있으니까!

셋 다 아들이라면……. 곡 대내내는 그 생각만 하면 칼로 불여우들을 하나씩 찔러 죽이지 못함이 원통했다.

곧 셋이나 태어날 서자를 치우지 못했는데 강가 점포, 장원은 빼앗겨야 한다니. 곡 대내내는 마음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느낌이었다.

이가가 이토록 악랄하고 독하다니. 이러니 자손이 대가 끊기지!

그녀는 이가가 대대손손 대가 끊기길 저주했다.

주육으로서는 아주 절묘한 임무를 받은 셈이었다. 은자 문제로 아라를 홀대하지 말라고 사왕야가 입을 열었으니, 주육은 그 말을 더 확대하여 해석했고 아버지에게서 족히 만 냥이라는 돈을 뜯어냈다. 게다가 모자랄 수 있지만 일단 대충 써보겠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은자를 얻은 주육은 호기롭게 일단 아라에게 사람부터 보내 알린 다음 단숨에 류만, 운수, 청월 등 경성에서 가장 인기 많은 기녀를 몽땅 불렀다. 그다음엔 기분 좋은 일이 있으니 모두를 대접하겠다고 곳곳에 소식을 보냈다.

연향루에서 연회를 연다는 주육의 소식을 들은 묵칠은 조금 망설였다. 연향루에 다시 가서는 안 된다고 부친이 진지하게 당부했었다. 아라가 너무 그립지만, 연향루에 가면 안 된다는 건 사실 부친이 당부하지 않아도 본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향루로 자신을 초대한 것은 다름 아닌 주육 아닌가.

묵칠은 머리를 긁적이며 빙글빙글 돌다가 영원을 만나러 갔다. 영원은 분명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을 테니, 영원이 가면 자기도 가고 영원이 가지 않으면 자기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영원은 모든 걸 불 보듯 환하게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어리벙벙하게 굴었다.

“안 그래도 네게 물어볼 참이었다. 누가 그러던데, 사왕야는 자기 물건을 남이 건드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아라도 사왕야의 것인 셈 아닌가? 아, 아닐 수도 있겠구나. 아라가…….”

영원은 턱을 문지르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시중든 사람이 많지. 내 생각엔 사왕야와 아라는…….”

영원은 야릇한 얼굴로 두 엄지를 비비면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사왕야가 그저 새로운 재미를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기녀 한 번 품어 보지 못한 사내를 사내라고 할 수 있느냐? 음, 분명 그런 것일 거다!”

“그렇겠지! 칠 형의 말이 맞아. 기녀는 품으면 그만이지, 품은 기녀를 집에 들여 가둬놓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야.”

묵칠은 영원의 추측을 너무 믿고 싶었다. 아라를 한동안 보지 못해서 정말로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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