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그 주인에 그 종
녹매가 자길 보며 묻는 듯이 하는 말에 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눈 감기 전에 돈을 거의 다 쓰고 200냥 정도 남은 것도 다 어머니에게 썼지. 거창하게 장례는 치러드려야지. 우리 어머니가 번 돈이니까, 어머니에게 다 쓸 생각이었어.”
“소유 언니는 반루에서 2년 동안 일했어요. 나중에 낭자가 소유 언니가 만든 음식을 좋아했고, 태태가 마침 낭자 배가 시녀를 고를 때라 만 어멈이 소유 언니를 찾아갔죠. 그렇게 소유 언니는 우리 집에 들어와서 낭자의 식사 시중을 들었어요. 나중에 낭자가 강가에 들어갔을 때 따라갔고요. 나중엔 또 강가에서 나왔고요.”
“그런데 진가에서 왜 찾아온 것이냐?”
문 이야가 녹매에게 물었다.
“진가 오라버니가 새로 아내를 구했는데, 올해 그 아내가 병에 걸려 죽었대요. 아들 하나, 딸 하나, 이렇게 자식 둘을 남기고요. 소유 언니를 후실로 들이려고 찾아온 거예요.”
녹매의 말투는 덤덤해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퉤! 염치도 없네!”
추미가 혀를 차며 하는 말에 녹매도 한숨을 내쉬었고, 문 이야도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소유야, 솔직히 말하마. 화내지 말아라. 예전 일은 진가 잘못은 아니다. 진가 태태가 네 어머니처럼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어도 진가에서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암자에 보내고 자주 들여다보면 되지. 시정 사람 중에 너처럼 환자 하나를 위해서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너야 너와 어머니 단둘이고, 네가 음식 솜씨가 좋아서 그렇지, 평범한 집안이면 어땠겠냐. 위로는 어른, 아래로는 어린애, 한 가족에 입이 몇이냐.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에게 모든 돈을 쓸 수 있겠냐.”
“이야의 말씀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저도 그런 도리를 알고요. 일가 몇십 명 있는 집안이면 모든 돈을 고치지 못할 환자에게 써서 가산을 탕진하면 안 되지요. 하지만!”
소유가 문 이야를 빤히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은자는 모두 어머니가 번 거예요. 자기가 번 돈을 쓰면 안 돼요? 어머니가 번 돈으로 어머니 병을 고치는 게 왜요?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에요. 잘못된 일인가요? 어디가요? 왜 자기가 번 돈을 자기가 쓰면 안 되죠? 그 은자는 어머니가 번 거예요. 어머니 거라고요. 내 것도 아니고 진가 것은 더더욱 아니에요. 어머니가 써도 돼요! 탕진해도 된다고요!”
녹매는 누가 봐도 흥분한 소유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봤다. 추미는 숭배하는 표정으로 눈빛을 빛내며 소유를 바라봤다.
문 이야는 잠시 침묵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 말은 참, 뭐랄까, 듣기엔 일리 있다. 하지만 예법으로 따지면 그런 게 아니다.”
“그럼 예법이 잘못된 거예요!”
소유가 단호하고 고집스럽게 문 이야의 말을 무질렀다. 문 이야는 소유를 빤히 보며 입을 뻐끔, 또 뻐끔거리다가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소유 언니의 말, 일리 있어요!”
추미는 거의 손뼉을 칠 기세였다.
“맞지! 자기가 번 돈인데, 자기가 쓰면 왜 안 돼? 진가가 뭐라고. 무슨 염치로 상관해? 언니 어머니 돈이, 언니 돈이 진가 거래? 어쩌면 그렇게 염치가 없지?”
문 이야는 마찬가지로 할 말 없는 얼굴로 추미를 바라봤다.
녹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그것 봐. 난 처음부터 진가 오라버니를 따라가라고 설득할 마음 없었어. 솔직히 말해서, 난 가끔 정말 모르겠어. 왜 여인은 혼인해야 하지?”
마침 술을 머금던 문 이야는 녹매의 말에 술이 목구멍에 걸려 길게 몇 번이고 계속 목을 빼고서야 겨우 기침을 참았다. 술기운이 조금 오른 녹매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언니, 봐봐. 다른 집은 됐고, 우리 집만 봐도 그래. 안식구 바깥식구, 일가가 다 이가에서 일하고 대대로 노비인 집도 많아. 다른 건 됐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만 봐도…….”
녹매는 추미가 건넨 손수건을 받아서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일하는데 어머니 월전이 아버지보다 200전 더 많아. 줄곧 그랬어.”
녹매의 말이 조금 두서없어졌다.
“어머니도 똑같이 일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봐. 아버지 시중까지 든다고!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면 화항에 턱 앉아서 다리 쭉 펴고 어머니가 물을 끓여 다리 씻겨 주길 기다리지. 우리 어머니가 음식 하고 술 내오길 기다려. 술 마시면 그대로 머리를 대고 자고, 우리 어머니는 아침부터 밤까지 쉴 수가 없어. 병이 나서도 집안일에, 아이에, 아버지를 돌봐야 해. 둘 다 일하는데, 왜 어머니만 이렇게 힘들어야 해?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왜 우리 어머니가 다 해야 해?”
문 이야는 눈물을 쉴새 없이 흘리는 녹매를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어머니는 딸 넷을 줄줄이 낳은 후에야 아우를 봤어. 우리 어머니는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 줄줄이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 받을 뜨거운 물도 직접 끓였어. 딸이든 아들이든, 모두 심가 자식 아니야? 조씨인 우리 어머니가 무슨 상관이야? 아들을 낳으면 심가 대를 잇는 거지 조가 대를 잇는 것도 아닌데. 고생하고 힘든 건 모두 어머니가 다 하는데 집안엔 다 심가야. 어머니만 조씨야. 남이잖아. 남이 왜 심가에서 소처럼 일해야 하지?”
녹매는 주전자를 덥석 잡아 잔을 채우더니, 고개를 젖히고 잔을 비우고서 탁, 내려놓았다.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여인은 어찌 됐든 혼인해야…….”
문 이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허점이 많고 너무 성의 없는 말이었다.
“다들 이렇게 이야기해요. 여인은 혼인해야 한다고. 여인은 사내, 집이 있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혼인하는 게 뭐가 좋아서요? 사내가 무슨 소용인데요? 집이 생기면 소처럼 일하는 거 말고 무슨 장점이 있어요? 소유 언니 좀 보세요. 소유 언니 어머니, 우리 집이었다면……. 우리 집안 은자도 적어도 반 이상을 어머니가 벌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소유 언니 어머니 같은 병에 걸리면, 주인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으면 다 우리 집안 돈으로 고쳐야 할 텐데, 아버지가 한 푼이라도 낼까요? 어느 집에서 그러겠냐고요. 그냥 어머니가 죽길 기다렸다가 새로 아내를 들이겠죠. 이런 집, 이런 사내가 무슨 소용이 있어서요? 여인이 혼인해서 좋을 일이 뭐가 있어요?”
녹매는 문 이야를 빤히 보며 따박따박 물었다. 문 이야는 무심결에 몸을 뒤로 슬쩍 젖혔다.
“혼인을 장점 때문에 하는 건 아니지…….”
문 이야는 말을 하다 말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일이 다 그렇단다. 녹매, 술이 과했구나.”
소유는 추미에게 눈짓하고 일어서서 차를 따라 녹매에게 건네고 자기 차도 따랐다.
“난 성(姓)도 없어. 가족도 친지도 없으니까, 난 늙으면 이 집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다 생각해 놨어.”
“좋지!”
추미가 얼른 대답했다.
“내가 알아봤는데, 태태, 그리고 그 전에 노태태도 아랫것에게 후덕하셨대. 평생 혼인하지 않고 노태태와 태태가 임종을 돌봐 준 사람도 있대. 많대! 다들 잘만 지냈어!”
“여기서 여생을 보낼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안 되면 암자를 구해 봐야지. 머리는 깎지 않고 수행해도 되고, 머리를 깎아도 돼. 어차피 나이 들어서 머리카락이 있고 말고는 상관없잖아. 은자도 있고, 은자가 있으면 시중들 사람은 걱정 없어. 죽고 나면 싹 화장해서 재를 땅에 뿌리는 거지. 아무 데나 괜찮아. 난 불조가 제일 좋더라. 사람이 죽으면 윤회한대. 난 이번 생에 살생을 너무 많이 했으니 다음 생엔 아마도 닭이나 거위로 태어나겠지. 알게 뭐람!”
소유는 개의치 않는 듯 손을 저었고, 추미가 손뼉을 짝 쳤다.
“언니 말 참 잘한다. 맞아. 대를 잇고 말고,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똥이다!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이 계집애, 미쳤어! 똥이라니. 만 어멈이 들으면 혼쭐난다, 너!”
녹매는 술에 취한 와중에도 법도를 똑똑히 기억했다. 문 이야는 아무런 말 없이 술을 연달아 비웠다. 시녀 셋이 같이 모여서 다 딴소리하고 있었고, 자기가 도와서 풀어주거나 해결해 줄 것도 없어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추미는 헤실헤실 웃으며 주전자를 들어 올려 두 사람의 잔을 채우고 잔을 들어 올렸다.
“자, 우리 낭자가 평생 순조롭길 기원하며 한잔해. 이제 혼인하지 않으시면 좋겠어. 혼인은 왜 해. 개똥이다!”
“개똥 같은 저속한 말 하지 말라니까! 만 어멈에게 벌 받는다! 나도 우리 낭자가 평생 잘살길 빌어! 혼인은 개똥!”
녹매는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잔에 든 술을 반은 쏟았다.
“녹매, 너 그만 마셔. 술도 잘 못 마시면서. 그리고 낭자는 우리랑 달라.”
소유가 녹매의 술잔을 뺏고 찻잔을 쥐여 주었다. 녹매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잔을 높이 들고 추미와 잔을 부딪치고 또 문 이야의 잔에 힘껏 부딪히고는 잔을 비웠다.
“이야, 우스운 꼴을 보였네요.”
소유는 주량이 상당한지 정신이 매우 또렷했다.
문 이야가 재빨리 손사래 쳤다.
“그런 소리 할 것 없다. 녹매 낭자가 성격이 올곧아서 그래. 감탄이 나오는군. 소유,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만 해라.”
“없어요.”
소유는 술을 더 달라고 잔을 내미는 녹매에게 차를 다시 채워주었다.
“진가는 만 어멈이 이미 알아서 돌려보냈어요. 그리고 낭자, 태태가 계시는걸요. 저희들끼리 술이 과해서 헛소리하는 거니까, 마음에 담지 말고 그냥 우스갯소리로 듣고 넘기세요.”
“이건 우스갯소리가 아니지.”
문 이야는 생각이 많은 듯했다.
“규중에도 호걸이 있다고 하지 않나. 너희 낭자가 비범하고 특별하더니 너희들도 그렇구나. 다만…… 됐다, 됐어. 앞으로 낭자를 잘 모셔라. 네 말이 맞다. 일단 잘 살아야지. 죽은 뒤엔, 등이 꺼지는 것과 같다. 등이 꺼지면 아무것도 없어.”
녹매가 가장 먼저 쓰러져서 화항에 엎드려 잠들었고, 추미도 취해서 벌렁 누워 잠들었다. 문 이야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울적한 것 반, 술에 진짜로 취한 것 반, 힘 빠진 걸음으로 비틀비틀하며 문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사환이 벌써 기다리고 있다가 부축해서 돌아갔다.
이동의 등나무 화원의 그 화청 안, 이동은 발등을 덮을 정도로 긴 회서(灰鼠: 친칠라) 두봉을 걸치고 영원 맞은편에 앉아서 그가 말하길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두봉이 꽤 괜찮군요. 지금 입기에 딱 좋네.”
영원이 두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이런 털옷을 입기엔 이르죠. 일부러 꺼내라고 분부한 거예요.”
이동은 아주 진지하게 두봉에 대해 설명했다.
“경성은 그렇지만, 우리 북삼로였다면 진작 함박눈이 내렸을 겁니다. 벌써 털옷을 꺼냈어야 해요. 좋은 털옷 몇 벌 선물해드릴까?”
영원이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필요 없어요. 경성은 춥지 않아요. 칠야, 용건이 있어서 온 건가요, 아니면 이야기하러 온 건가요?”
이동이 물었다. 매번 이랬다. 그녀가 묻지 않으면 그는 본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있긴 하죠.”
영원이 몸을 움직여 자세를 바로잡았다.
“진주 주렴 이야기, 문도에게 듣고서 사람을 시켜 전가를 지켜봤습니다. 그 진주 주렴, 하가가 사려는 겁니다.”
“대황자요? 진주 주렴을 사서 무엇하게요? 주 귀비에게 선물하려고?”
“그건 아닌 것 같고. 대황자 성격에 넷째를 따라할 리가 없으니까. 지금 사서 무얼 하려는 건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비슷한 진주 주렴 하나 더 내놓을 수 있습니까? 지난번 가격으로요. 차액은 내가 내겠습니다. 아니면 내가 사는 셈 쳐도 되고.”
이동은 지난번 창고 정리했을 때 기억을 더듬었다.
“있긴 있어요. 두 개는 더 있을 거예요. 진주는 오래 두기 좋지 않아요. 특히 이런 진주 주렴은요. 외할머니가 진주를 좋아해서 여러 개 산 거예요. 다만, 지난번에 내보낸 건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모두 질이 훨씬 좋아요. 알도 더 크고.”
“대황자가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는 일단 상관하지 말고, 한 개를 내게 팔아요. 지난번엔 가격을 낮췄죠? 두 배는 어떻습니까?”
영원이 통 크게 말했다.
“지난번엔 뒤처리하기 좋은 가격으로 내놓은 건데, 낮게 내놓았겠어요? 이번 주렴이 질이 더 좋긴 한데, 지난번 가격으로 내놓아도 돼요. 칠야를 거칠 것 없이 바로 전 장궤에게 내놓을게요.”
이동은 영원에게 돈을 벌 생각이 없었고, 영원도 매우 흔쾌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