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얻어맞는 것이 익숙하다.
장 선생이 가차 없이 말했다.
“장사를 아무나 잘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돈 버는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지요. 하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멀쩡한 산초 장사도 하가의 손에서 돈 한 푼 못 버는 장사가 되었지 않습니까. 장사를 더는 하가 손에 두어선 안 됩니다. 정말로 장사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선생도 말씀하셨듯이 장사가 쉬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 중에 장사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선생의 말씀은, 상인 가문을 찾자는 뜻입니까?”
주유해의 말투에 불만이 배어 있었다. 장 선생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사는 당연히 상인 가문이 해야지요. 제가 소홀했습니다. 주 사야가 공공연히 사왕야 쪽에 서는데 귀댁의 어르신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줄 몰랐습니다.”
주유해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드러났고, 장 선생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귀댁의 사야가 고서강을 사왕야에게 천거했으니, 탕가도 사왕야의 돈줄이 된 겁니다. 휴. 얼른 우리도 돈줄을 찾아야 합니다.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탕가와 엇비슷한 큰 상인 가문은 몇 안 됩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선생, 분부만 하십시오.”
주유해는 장 선생의 말에 낙담하다가 또 길게 안도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돈 문제는 제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단 적당한 가문이 누가 있는지 사람을 보내 알아봐야지요. 그리고 그 진주 주렴, 하 대랑을 시켜 제대로 알아보십시오. 하나 더 살 수 있으면 제일 좋고요. 좋은 물건일 필요도 없습니다. 진주면 됩니다. 어떻게든 하나 사들이세요. 쓸 곳이 있습니다.”
“예.”
주유민은 무슨 돈으로 진주 주렴을 사냐고 물으려다가 그냥 삼켰다.
장 선생은 돈이 없고, 대왕야는……. 됐다. 내가 알아서 하자.
왕부에서 나온 대왕야는 관아로 직행했다. 저택에서 예부 관아로 가는 길은 마행가를 지나가는 게 제일 빨랐다.
그 비단 점포는 마침 마행가에 있었고, 대황자가 비단 점포 앞을 지나갈 때는 관아의 아전이 막 도착해서 수화곤을 휘두르며 구경하는 사람을 내쫓고 있었다.
대황자는 고삐를 잡고 말에 탄 채 내려다보다가 문 앞에 서 있는 묵칠과 잔뜩 움츠려서 옆에 찰싹 붙은 양 구야를 발견했다.
“무슨 일인지 가서 알아보고 오너라.”
양 구야를 본 대황자는 바로 진왕을 떠올렸고, 진왕을 떠올리자 강환장이 떠올랐다. 강환장이 떠오르자 동민이 떠올랐고, 동민을 떠올리자 자신에게 닥친 위기가 떠올랐다.
울화가 미움이 되어 쉴 새 없이 치밀었다.
양 구야가 비단을 사지 않고 돈을 내지 않았다고, 영원의 명을 듣고 온 아전은 이제 막 도착해서 무슨 일인지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대왕야의 사환이 와서 묻자, 아는 대로 대답했다. 사환이 쪼르르 달려와서 들은 대로 고했다.
진왕의 외숙이 비단 한 수레를 끌고 가고는 돈을 내지 않는답니다!
“밝은 대낮에! 천자의 발아래에서!”
대황자가 이를 부득 갈았다.
“가서 내 명을 전해라…….”
대황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맞은편에서 진왕이 말을 타고 종복, 사환을 거느리고 허둥지둥 이쪽으로 달려왔다.
“불러와라!”
더 나은 화풀이 상대를 찾은 대황자는 허둥지둥 말을 타고 달려오는 진왕을 채찍으로 가리키며 명령했다.
진왕은 양 구야가 또 사고를 쳤다는 말에 사환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식은땀을 흘렸다. 지난번에 외숙에게 일이 생겼을 때 겁에 질려서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지금은 골치 아프기 짝이 없는 혼사가 손에 묶여 있는데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어서 이 사달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하나도 없이 달려오느라, 기세등등하게 말에 탄 대황자를 보지 못했다. 그때 대황자의 사환이 앞을 가로막고 말을 전했다.
“혀, 형님!”
매섭게 노려보는 대황자의 시선에 진왕의 고삐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대답해 보아라! 부황이 뭐라고 분부하셨느냐!”
대황자가 채찍으로 진왕을 가리키며 짓씹듯 물었다.
“양, 양 외숙을…… 누가…….”
진왕은 더욱 두려워졌다. 대황자를 두려워한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뼈에 새긴 두려움이었다.
“부황이 뭐라고 하시더냐? 양설곤은 네 혈육이다. 아무리 미천해도 네 혈육이야! 잘 돌봐야 한다고 부황께서 말씀하지 않았느냐? 대답해 봐라, 혼사는 결정했느냐? 아니라고? 부황 말씀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냐? 왕으로 봉해져 왕부를 세우고 소속 관리들이 생기니까 날개가 다 자란 것 같으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도 되는 것 같으냐? 정말 간이 부었구나! 나도 기어올라도 될 사람으로 보이냐? 그렇지? 부황도 안중에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으냐? 그렇지? 네가 이 몸의 사람에게 수작을 부려 해쳐도, 그걸 내가 알아도 어쩌지 못할 것 같으냐? 그렇지? 주제도 모르고. 네가 대체 무엇인지 거울이나 비쳐 보아라! 천한 것이 낳은 천한 것이!”
대황자는 말할수록 화가 났다. 강환장의 상주서를 받았을 때부터 쌓인 화가 지금 이 순간 단숨에 치밀었다. 화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치밀고, 손에 든 채찍에도 힘이 들어갔다. 대황자는 채찍을 치켜들어 진왕의 머리로 힘껏 휘둘렀다.
항상 맞느라 매질에 이골이 난 진왕은 오히려 반응이 아주 날렵했다. 고삐를 놓고 말채찍을 던지더니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대황자의 채찍이 매섭게 바람 소리를 내며 철썩 떨어지고, 소리와 함께 진왕의 옷자락이 찢어지고 팔에서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처참하게 고함치는 진왕과 흉악하게 뒤틀린 얼굴로 채찍을 연달아 휘두르는 대황자. 묵칠은 그 모습을 점포 앞에 선 채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져서 바라봤다.
떠들썩한 마행가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진왕의 비명과 채찍이 비단옷을 찢고 살을 찢는 처참한 소리만 남았다.
피를 철철 흘리는 진왕을 눈이 휘둥그레져서 멍하니 바라보는 양 구야의 바짓자락을 타고 오줌이 흘러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영원은 험악한 표정의 대황자를 길모퉁이에 서서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잠시 후 돌아섰다.
추밀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외진 골목에 푸른 비단을 두른 큰 마차가 서 있었다. 마차 안, 주 추밀부사가 들뜬 마음을 억누르려고 애써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맞은편에 앉은 낯빛이 살짝 어두운 고서강을 바라봤다.
“오늘 일, 실로 놀랍군.”
주 추밀부사는 침통해 보이려고 애썼지만, 말끝에 흥분이 드러났다. 고서강은 그런 그를 힐끔 보고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 추밀부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대왕야와 사왕야가 자라는 걸 봐 왔네. 대왕야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거칠었지. 말도 못 하던 때에 필요한 게 있을 때 유모가 조금만 늦어도 걷어차고 때렸어. 깨물기도 했지. 번번이 피를 봤고.”
고서강은 주 추밀부사를 바라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대왕야의 성질이 천성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강산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천성이다.
주 추밀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왕야가 다섯 살 되던 해, 휴, 지금까지 잊지 못하네. 우리 소육이 어릴 때부터 강아지, 고양이를 좋아했지. 특히 강아지를. 그땐 그 애 어미도 뭐든 오냐오냐할 때라 사자개를 기르게 해주었지. 겨우 두어 개월에 눈덩이처럼 둥글둥글한 녀석이었네. 다들 녀석을 좋아했지. 나도 예뻐서 어쩔 줄 몰랐네. 한번은 대왕야가 우리 저택에 놀러 왔을 때, 아이들이 다 그 녀석과 놀고 싶어 하고 안으려고 했지. 강아지야 짐승 아닌가, 철이 들지도 않았고 평소에 소육과 지내는 게 익숙하니 소육이 부르니 대왕야는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소육에게 쪼르륵 달려갔네. 대왕야는 몇 번 부르다가 화가 치밀어서 강아지를 걷어찼어. 걷어차인 강아지는 그대로 날아가서 바닥에 떨어져서 죽었지.”
주 추밀부사는 그 당시 상황을 회상하자 정말로 마음이 아파왔다.
“그때…… 휴, 어머님도 몹시 놀라셨지. 그때부터 대왕야의 성격이 너무 포악하다고 생각했네. 고작 두어 개월 된 강아지를 어찌 걷어찰 수 있나. 소육은 그때 너무 놀라서 마음의 병이 생겨 큰 병이 났지. 그때부터 소육은 대왕야를 무서워했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무섭네.”
“그렇지. 그런 성격이지. 사람이 태어나면 단속하고 가르치는 이유가 다 천성을 다스리고 예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닌가. 대왕야의 수신(修身) 수행은 아직 멀었네.”
주 추밀부사는 고서강의 말의 의미를 종잡을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게 말일세. 대왕야가 성혼하고 왕부를 세운 후엔 글공부하는 시간이 줄었네. 전 황조의 기록도 1년 넘게 읽었는데 끝내지 못했다는군. 사왕야는 한 달에 책 한 권, 혼인하기 전보다 더 근면히 읽는다는군.”
“군자란 첫째, 천성이 후덕해야 하고 둘째, 자제할 줄 알아야 하네. 그 점에선 대왕야가 확실히 사왕야만 못하지.”
고서강의 찬찬한 목소리에 주 추밀부사는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바로 그렇지! ‘인(仁)’이 가장 중요하지. 인군이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우리 백성, 신하의 복이니 말일세. 대왕야 같은 성정으로 정말로 천하를 다스리게 되면, 전 황조처럼 한마디만 거슬러도 그 자리에서 신하를 때려죽이는 일도 곧 벌어질까 두려우이.”
“주군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는 걸세.”
한마디 풀어준 고서강이 다시 조이고 있었다.
주 추밀부사는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상반신을 살짝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고 형, 우리가 어떤 사이인가. 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오늘 내 솔직히 말하겠네.”
“주 형과 내가 진작 지기가 되었지.”
고서강은 두 사람의 교분을 인정했다.
“고 형은 지금 사사 자리에 있고 다음이 계상이네. 눈앞에 있어. 계상 자리는 고 형이 떼놓은 당상이네. 하지만 고 형이 노력하지 않으면 계상까지일 걸세.”
주 추밀부사가 화제를 돌리는데도 고서강은 대답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고 형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승상이 되려면, 심지어 수상이 되려면, 육부에 고 형을 지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고 형은 북부 출신일세. 남쪽 서생이 북부 출신을 어디 안중에 두던가. 조정에 북부 출신이 몇이나 되나? 남부 출신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고 형의 재능으로 수상이 되면 계 노승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묵 승상보다는 훨씬 뛰어날 걸세. 고 형, 백관을 통솔하고 나라를 위해 애쓸 생각을 해본 적 없나?”
주 추밀부사는 고서강을 빤히 보았고, 고 서강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나는 주 형이야말로 수상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생각하네.”
“하하. 농담도 참. 나는 음서 출신이네. 개국 이래 음서 출신이 승상이 된 전례가 있는가? 전 황조에도 없었네. 게다가 나는 주제를 아네. 추밀부사도 힘겨워. 앞으로 조금 더 노력해서 추밀사가 되는 것이 한계이네. 게다가 주가는 지금은 가문이 하나이고 한 가문에 봉작이 둘인 건 너무 과해서 그런 것이지, 앞으로 분가하면 후작 자리는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일세.”
“개국 이후 세습을 더 이상 거론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
고서강이 안타까운 듯이 하는 말에 주 추밀부사 허허 웃었다.
“그런 걸 어찌 감히 생각해. 솔직히 고 형, 우리 소육이 변변치 않아서 그놈을 위한 포석을 마련해 주지 않을 수가 없네. 여지를 마련해 주어야 해. 지금은 사왕야가 그 녀석에게 친형님처럼 대해주는 것, 그것뿐이야. 난 그저 그 작위가 그 녀석, 혹은 그다음 대까지만 가길 바라네. 주가 조상의 공덕이 있으니 그다음 대에 출중한 자제 한둘은 나오겠지. 그러면 작위를 이어갈 수 있지 않겠나.”
“주 형의 멀리 보는 안목에 감탄하네. 나도 수상까지는 감히 바라지 못하네. 그저 북부 서생의 원통함을 풀어주고 싶은 것이야. 북부 출신이 승상이 되는 첫걸음을 내가 떼게 되면 앞으로 우리 북부 서생에게도 기회가 많이 질 걸세.”
“고 형, 안심하게. 내가 고 형을 전력으로 지지하겠네. 사왕야 쪽도 마음 놓고.”
주 추밀부사는 매우 기뻤다. 고서강이 말을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고서강의 지지가 있으면, 다들 수수방관하는 조정에서 사왕야가 기선을 잡게 된다.
추밀부사와 헤어진 고서강은 곧장 저택으로 돌아가서 탕호우를 불러들였다.
“네 아비에게 즉시 경성으로 들어오라고 소식을 전해라. 탕가의 기연이 어쩌면 찾아왔는지 모르겠다고 네 조부에게 전하라고 해라.”
탕호우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한마디도 물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고분고분 대답하고 물러나서 심복 관사를 즉시 산서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