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사기꾼이 너무 많아
묵칠을 본 양 구야는 구세주를 본 것처럼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칠소야! 내 탓이 아니다. 정말 내 탓이 아니야. 내가 아니야.”
“무슨 일이냐? 어찌 감히 양 구야를 이리 대해? 너희들, 양 구야를 몰라보는 것이냐?”
반년 동안 관리 노릇을 한 묵칠이 거드름을 피우기만 하면 꽤 관리의 위엄이 보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경성엔 식견 넓은 사람이 많아서 묵칠이 부리는 관리의 위엄은 눈곱만큼도 쓸모가 없었다.
“칠소야, 양 구야가 돈을 내지 않고 비단을 한 마차나 가지고 갔습니다.”
장궤의 시큰둥한 말투에 분노가 느껴졌다.
“아니다! 그런 적 없어!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양 구야는 다급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한 시진 전에 관사 둘, 사환 하나를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 세 사람, 나리와 함께 온 거지요?”
장궤가 양 구야를 향해 따지자, 양 구야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저었다.
“맞다, 맞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다…….”
“점포로 들어오자마자, 그들이 비단을 사러 온 거라고, 양 구야가 그러셨지요?”
장궤는 양 구야의 변명을 무지르고 계속 물었다. 양 구야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맞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움츠린 채 가련한 눈으로 묵칠을 바라봤다.
“많이 살 거라고 하면서 점포에 있는 건 적어도 모든 종류를 백 필은 사야 한다고, 양 구야께서 말씀하셨지요? 그 관사 말이 양 구야의 혼인 때 필요한 거라고 했습니다. 칠소야도 아시겠지만, 이 경성에서 양 구야가 혼담 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연말, 연초 사이에 혼인할 것이고요. 양 구야가 데리고 온 그 관사가 양 구야가 보는 앞에서 한 말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잖습니까. 나중에 그 관사가 하는 말이, 양 구야의 혼사는 진왕비께서 총괄한다고 했습니다. 비단을 진왕비께서 직접 봐야 한다고.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잖습니까? 칠소야, 그 관사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우리 일꾼이 그 관사가 보는 앞에서 확답받은 일입니다. 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고요.”
장궤는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절반은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었다. 이 망할 양 구야를 왜 믿었을까!
“그 관사와 사환, 구야가 데리고 온 건가? 사람은? 어디로 갔지?”
묵칠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양 구야가 또 사기당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다. 난 몰라!”
양 구야의 목이 더 움츠러들어서, 이제는 애처롭게 묵칠을 보지도 못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야 돕는다고요!”
묵칠이 미간을 찌푸리며 위협했다.
“내 탓이 아니다! 정말로 아니야……. 오늘 아침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해서 그저…… 양 잡탕 한 그릇 먹고 싶다고 생각했지. 오늘 날이 흐려서 매우 춥지 않으냐. 나중에 장호수 차탕점에 갔는데 그 관사가, 난 정말 모르는데, 진왕부 관사라고, 날 찾고 있다고 하지 않아. 그래서 양고기 탕을 먹고 돼지머리 고기도 달라고 했지. 좋은 고기였다. 마늘즙을 발라서…….”
양 구야가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중엔, 배 불리 먹었지. 배 불리 먹고 났더니, 혼사가 정해졌다고 비단 점포에 가지고 하길래 온 것이다. 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진왕부 관사라면…….”
“헛소리하는 겁니다! 소인, 진왕부에 가서 문지기에 물었습니다. 그런 일 없답니다!”
장궤가 화를 내며 묵칠의 말을 잘랐다. 묵칠은 이마를 두드렸다. 그도 떠올랐다. 첫째, 양 구야의 혼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둘째, 설사 정말로 비단을 산다고 해도 관사가 양 구야를 찾아갈 리가 없다. 양 구야가 또 사기당한 게 자명했다.
“관아에 고발해야겠군.”
묵칠이 어이없는 얼굴로 장궤를 바라보며 제안하자, 장궤가 일꾼들을 바라봤다. 그 비단을 찾아오지 못하면 그와 일꾼들이 물어내야 한다. 점포에서 가장 귀한 직금 비단과 초금 옷감이었다. 그 한 마차에 싣고 간 것을 물어내려면 몇 사람이 반년 벌 은자를 토해내야 한다.
일꾼들은 장궤를 향해 고개 저었다.
우리 탓도 아닌데, 은자를 물을 수는 없지!
“고발하든 말든, 우리는 모릅니다! 비단값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물어주셔야 하고요!”
장궤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묵칠은 머리를 긁적이고 생각하다가 야우를 불러 분부했다.
“관아에 다녀오너라. 영 칠야를 찾아가서 이 일을 알려라. 얼른 와서 양 구야를 도와달라고 해.”
야우가 쏜살같이 관아로 달려갔다.
야우의 보고를 들은 영원은 무슨 일인지 바로 파악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돼지머리 고기 하나에 따라가서 돼지머리가 되다니. 정말이지, 최고의 돼지머리가 아닌가.
“바로 가마. 일단 돌아가서 네 칠소야에게 말씀드려라.”
영원은 나른하게 분부하고는 야우가 쪼르르 나간 후에 의자에 기댄 채 이리저리 흔들었다.
양 구야가 사기당한 것이라고 판결 내리고 그 손해를 비단 점포에 지우면 악역을 자신이 맡게 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음. 그 비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왕부에서 물어야 하니…….
“사람을 보내 진왕부에 기별해라. 양 구야가 비단을 사고 돈을 주지 않아서 비단 점포에 붙들려 있다고 해라.”
영원이 대영을 불러 분부했다.
조회가 끝나고, 대황자는 성질을 누르고 주 귀비를 찾아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왕부로 돌아갔다. 서재 안, 수국공 세자 주유해와 막료 장 선생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황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황자가 들어오자, 주유해는 서둘러 일어나서 예를 올렸고 장 선생은 허리를 살짝 구부리며 대황자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대황자의 표정은 안 좋은 건 아닌데 좋은 건 절대로 아니었다.
“하가 장사는 어찌 되어가냐.”
대황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주유해를 빤히 보며 물었다. 올해 산초를 좋은 가격에 팔지 못했고, 지금까지 창고에 잔뜩 쌓여 있었다. 또 진주로 2, 30만 냥 손해를 봤는데 동민에게 일이 생겨 연말의 뇌물은 바라지도 못한다. 항상 은자로 고민하긴 했어도 올해처럼 쪼들린 적은 없었다.
“아직입니다. 대왕야도 아시다시피 장사가 쉽지 않습니다. 하 대랑이 장사꾼도 아니고.”
대황자가 탁자를 내리치며 주유해의 변명을 잘랐다.
“장사꾼이 아니야? 그럼 그자의 쓸모가 무엇이냐? 핑계는 필요 없다. 그놈이 안 되면 다른 놈으로 바꿔라!”
“그건 별일 아닙니다. 대왕야, 오늘은 귀비와 이야기 잘 나누셨는지요?”
장 선생이 주유해 대신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별일이 아니야? 그럼 큰일은 무엇이지?”
대황자는 장 선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싸늘하게 되물었다.
“천하가 큰일이지요.”
장 선생은 대황자의 분노한 시선을 마주하며 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왕야도 명백히 아실 겁니다. 계속 이렇게 눈 가리고 어리석게 굴다간, 은자 걱정이 아니라 목숨을 걱정하셔야 할 겁니다! 대왕야의 목숨! 이 저택 모두의 목숨!”
“결국은 그게 그거지.”
대황자는 장 선생의 시선을 피하며 자존심 부리며 한마디 했다.
“귀비 마마는 오늘 기분이 좋으셨습니까?”
대황자가 한발 물러서자 장 선생이 가장 관심 가는 일을 다시 물었다.
“어머니에겐 넷째밖에 없다!”
대황자가 분노해서 말하자, 장 선생은 피곤한 기색이었다.
“대왕야, 지금 국면에 대해 몇 번 이야기했습니까. 황상께서 귀비 마마에게 이토록 정이 깊은 것은 매우 드문 귀한 일입니다. 황상에겐 사실 대왕야와 사왕야 두 아들밖에 없고요. 대왕야는 귀비와의 모자의 정, 황상과의 부자의 정만 얻으면 됩니다. 대왕야, 그저 ‘효’자만 잘 지키시면 됩니다.”
대왕야는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귀비 마마의 환심 하나면 됩니다. 귀비께서 대왕야가 효성 깊다고 생각하면 황상께서도 대왕야가 효도한다고 생각하십니다. 대왕야는 장자라서 원래 귀비 마마와 황상의 편애를 얻어야 마땅합니다. 황상께서 대왕야를 태자로 세우겠다고 어디 한두 번 말씀하셨습니까? 황상과 귀비의 마음엔 대왕야야말로 국본이고, 태자입니다. 대왕야는 그저 자중하고 귀비 마마의 환심만 사면 됩니다. 다른 건 중요치 않아요.”
“내가 모르겠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어머니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해 왔는데?”
대황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원망 가득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난 넷째에게 아무런 수완을 부리지 않았는데, 넷째는 사사건건 나를 비방한다. 어머니 앞에서 내 험담하고. 어머니는 어리석게도 넷째가 말하는 대로 다 믿는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넷째가 얼마나 악독한지는 보지 않고 나를 질타하신다. 어머니가 어리석은 것을, 내가 어쩌란 말이냐?”
대황자는 갈수록 화가 나서 얼굴이 시퍼레졌다.
“대왕야, 동민이 과거장 사안으로 한 번에 무너졌습니다. 본인 신세를 망쳤을뿐더러 대왕야의 명성까지 망쳤습니다. 그 청탁 명단, 대왕야의 분부라는 걸 조정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미래의 주인인 대왕야가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일을 하신 것이고, 대왕야 스스로 자신을 미래 나라의 주인으로 여기지 않으신 겁니다.”
장 선생이 또박또박 느리게 말했다.
“황상께서도 매우 실망하셨겠지요. 대왕야, 동민의 일로 조정의 마음이 사왕야에게 기울었습니다. 대왕야께서 지금이라도 각성하지 않고 동민 같은 사안을 몇 번 더 만들면, 그땐 대왕야에게 기회가 없을 겁니다.”
대황자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얼굴이 시퍼레졌다. 그러나 장 선생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대왕야도 잘 아실 겁니다. 대왕야와 사왕야는 그저 누가 귀비의 환심을 얻느냐에 달렸다는 것을요. 대왕야, 대왕야는 장자입니다. 이미 ‘장’이라는 이득이 있습니다. 귀비께서 대왕야가 너무 불효하다 생각하지만 않으면 사왕야보다 우위에 있는 것입니다. 대왕야, 지금 하셔야 할 일은 귀비의 환심을 얻는 일입니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황자가 말꼬리를 잡았다.
“중요하지 않다니? 넷째가 어머니에게 바친 그 주렴이 어머니 눈앞에 걸려있다! 어머니가 오늘도 그 주렴을 보면서 사가아의 효성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셨어! 들었나? 들었냐고! 내 주렴을 없앴고, 내 은자는 모두 그놈의 효심이 되었다! 중요하지 않아? 그래 좋다. 그럼 자네가 은자 없이 주렴을 하나 마련해 오든가. 넷째보다 더 좋은 것으로, 어머니가 넷째의 효심을 버릴 수 있는 것으로! 내 것을 걸게 하란 말이다!”
“효심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지? 그럼 무엇인지 알려다오!”
대황자가 장 선생의 말을 잘랐다.
“대왕야, 선생의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대왕야의 말씀도 옳습니다. 돈이 없으면 걸음을 떼기 어렵지요. 효심도 다 돈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다만.”
주유해가 주춤하며 말했다.
“사왕야도 요즘 귀비 마마의 화를 꽤 돋웠습니다. 그 아라, 할머님 말씀을 들어보니 귀비 마마께서 화가 많이 나셨답니다.”
“우리가 그 아라를 이용할 수 있겠군요.”
장 선생이 말을 받았다.
“어떻게요?”
주유해가 다소 흥분한 듯 물었다. 장 선생은 눈빛을 살짝 빛내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화제를 바꿨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 예. 곰곰이 생각하십시오. 저는 대왕야의 말씀이 일리 있는 것 같습니다. 천하는 큰일이지만, 은자는 지금 눈앞에 닥친 큰일입니다. 지금 은자가 없는데, 나중에 천하를 다툴 수 있겠습니까? 대왕야, 제 말이 맞지요?”
대황자의 표정이 순간 훨씬 누그러져서 장 선생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장 선생은 주유해의 말을 전혀 못 들은 듯이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오후에 예부에서 제사 문제를 논의할 겁니다.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 대왕야께서 의견을 내셔야 해요.”
주유해가 모래시계를 힐끔 보고 대황자를 상기시켰고, 대황자가 일어서자 얼른 사환을 불러 대황자의 환복 시중을 들게 했다.
대황자가 두봉을 입고 나가자 장 선생이 주유해에게 나직이 말했다.
“은자 문제도 생각하긴 해야겠지요.”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실로…….”
주유해는 쓴웃음 지었다. 하 대랑이 조바심이 나서 머리가 다 하얗게 셀 지경이지만, 큰돈을 뭉텅뭉텅 버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까.